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57)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57화(157/190)
【157화 – 올인】
쾅!
전략기획실,
여창욱의 방.
힘차게 닿은 문이 다시 열린다.
잔뜩 긴장한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필요하신 거 있으신가요?”
“물 한 잔 가지고 와!”
“네.”
“차가운 걸로.”
“네.”
여창욱은 비서에게 윽박지르듯 명령했다.
누구였어도 당장 자리를 피하고 싶은 분위기.
그래 놓곤 도망치듯 나가려는 비서가 못마땅했는지 다시 불러세웠다.
“어디가?”
“물을 가져오라고···.”
“말 안 끝났어.”
“죄송합니다.”
“가서, 이 부장 오라고 해.”
“이성민 부장이요?”
“그럼, 또 누가 있어?”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나가고, 여창욱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쿵!
소파 옆 탁자를 내리쳤다.
좀처럼 분이 삭히지 않는다.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농락당한 기분이 당연히 좋을 리 없었다.
아니다 싶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사장실에 다시 들어가 사실대로 말하라는 녀석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심하게 긁어놓았다.
“건방진 새끼가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어디 그따위 짓거리를···.”
삭혀지지 않는 분이 입 밖으로까지 튀어나왔다.
당장 달려가서 머리채를 잡아 무릎을 꿇리고 싶지만, 지금은 방도가 없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싫은 좋든, 대표가 알았고 승인이 떨어졌다.
인제 와서 저것들이 제멋대로 한 것이며, 동의한 적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 타이밍은 이미 지나갔다.
여창욱은 사장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한 한범상의 눈빛이 잊히지가 않는다.
‘이제 가만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드시죠.’라고 비웃는 듯한 눈빛.
자신을 먼저 찾아왔을 때와는 달랐다.
어린놈의 잔꾀에 당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으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똑똑-
“들어와.”
좀 전에 호출한 전략기획실 이성민 부장이 그를 찾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전무님.”
“듀혼 측에서 합의 제안을 해왔다는데 사실이야?”
여창욱은 모를 걸 알면서 다짜고짜 묻는다.
미국 민사 소송은 현재 박진우의 법무팀에서 주관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알아 오라는 취지였다.
“네?”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합의 제안을 해왔다는 말은 블러핑이 아닌 듯싶다.
그게 거짓이면 저렇게 당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제안 조건이 어떤지를 알아야 대응을 할 수 있다.
청구 금액의 1/3에 합의할 수 있다고 장담한 건 그놈이니까.
“이 새끼들, 허무맹랑한 짓거리이기만 해 봐. 사기꾼 새끼들 내 손으로 영창에 보내줄 테니까.”
“네?”
속마음이 여과 없이 또 한 번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영문을 모르는 부하직원이 자신도 알아야 하는 건가 싶어 되물었지만, 여창욱은 무시하고 다음 지시를 내렸다.
“김영준 팀장 설득하는 일은 어떻게 되고 있어?”
김영준 팀장.
아다마크론 연구팀 팀장으로 현재 미국 FBI 조사 선상에 올라와 있는 직원 중 한 명이다.
“저번에는 거의 넘어온 듯싶었는데, 다시 또 망설이는 것 같습니다.”
“사람 하나 설득하는 일 하나를 제대로 못 해서는···쯧쯧,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어!”
“죄송합니다.”
여창욱이 자르려는 ‘꼬리’이다.
“그 집 애가 아프다면서?”
“네.”
“그런 거 적당히 이용하면 되잖아!”
“안 그래도 그걸 이용하고 있는데···.”
“진작에 끝냈어야 하는 일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말이야! 이 부장이 전략기획실에서 하는 일이 뭐야, 도대체!”
“···죄송합니다.”
그 위로는 개발팀 최현중 전무가 있다.
이 일로 이미 사퇴했다.
“최 전무는? 최현중 전무는 어떻게 하고 있어? 김영준이 설득 못 하면, 최 전무가 조사받으러 미국에 가야 하는 거 몰라?”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최 전무님이 일선에서 설득하고 계십니다.”
“설득 못 하겠으면, 팔을 비틀어서라도 말을 듣게 하란 말이야! 이것들이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으면서···지금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 이 부장! 너 정신 안 차려!”
“죄송합니다.”
“이번 주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설득해. 설득해서 진술서에 사인하게 만들어.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농락당했지만, 여창욱에게 남아있는 카드가 있다.
미국의 형사 절차.
한범상이 그놈이 잘 모르나 본데 애초에 듀혼 사 연구원을 만나는 일을 승인한 사람이 효경의 대표다.
그게 FBI의 귀에 들어가면 끝이다.
대표가 듀혼과의 협상보다 더 두려워하는 일이 그거다.
‘잠깐, 잠깐.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은···.’
분노로 뜨거웠던 그의 머릿속에 순간 간사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부장, 잠깐 기다려 봐.”
권력을 위해서라면 조직이 반 토막이 나도 상관없는 인간.
여창욱은 나가야 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던 이성민을 불러세웠다.
“예, 전무님.”
“그렇지. 지금은 오히려···허허, 그게 맞겠네.”
“···.”
“이 부장, 김영준 팀장 설득하는 일. 잠시 보류해.”
여창욱은 그가 가진 마지막 카드를 사용하려 한다.
-*-
대표를 만나기 전, 범상으로부터 계획을 듣고 동의한 그였지만, 막상 사장실 안으로 여창욱이 들어왔을 땐 등골이 오싹했다.
십 년 이상 같이 일한 자신도 그런데, 그런 여창욱을 대하는 한범상은 시종일관 담담했다.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렇게 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살짝 의문이 들었다.
범상을 따라 주차장까지 내려온 박진우는 주위를 한번 둘러봤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그러자 젊은 김앤강 변호사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김영준 팀장님을 압박하던 것을 멈출 겁니다.”
신기하다.
이미 들은 내용인데 그가 그런 목소리로 말해주니 안심이 된다.
역시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변호사라 다른 건가.
아니, 도하영 변호사를 포함해 다른 김앤강 변호사와 일해본 적이 있다.
이 친구는 다르다.
문제를 올곧이 장악하고 있는 지배력 같은 게 느껴진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럼, 한편으로는 다행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해야 할 일이 생긴다.
이것에 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김영준 팀장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으려던 여창욱이 압박을 그만두면, 그 불똥은 그 윗선인 최형준 전(全) 전무에게로 올라가게 될 것이고,
비브라 영업기밀 관련해서 듀혼 연구원 접촉을 대표가 승인했다는 사실을 아는 최형준 전무는 대표에게는 리스크였기에 그가 미국에서 기소되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그렇게 되면, 대표는 다시 여창욱을 찾을 것이다.
“듀혼과의 협상을 재촉해 보겠습니다.”
김영준 팀장과 친분이 있는 법무팀 이사 박진우는 여창욱의 행태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입지가 크지 않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표를 찾아가 직접 말해보기도 했고,
여창욱 전무의 ‘꼬리 자르기’식 대응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보려고도 해봤지만,
수완 좋고 무서운 여창욱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그에게 운이 좋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여창욱 전무가 선임한 로펌이 실수를 저질렀고, 듀혼과의 민사 소송이 답답한 진보를 보이자, 법무팀에 맡기라는 대표의 지시가 떨어졌다.
형사 조사 관련해서는 전략기획실 여창욱 전무가 관리·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대표의 뜻은 ‘꼬리 자르기’는 계속 진행하되 민사 소송은 법무팀에 맡겨보라는 것이었다.
심사숙고한 박진우는 도하영을 찾아갔다.
전에 일하는 것을 봤을 때 믿음직하기도 했지만, 여창욱과 접점이 아예 없는 사람한테 일을 맡기고 싶은 점도 컸다.
그리고 마침 파트너로 승진한 그녀였다.
“그럼, 저는 한 변호사님만 믿겠습니다.”
“네, 미국에 계신 최 변호사님하고 도 변호사님하고 머리 맞대고 고민해서 효경에 최대한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운이 작용했다.
하지만, 훌륭한 선택이었다.
도하영 변호사와 함께 이런 실력 좋은 파트너들이 있었을 줄이야.
범상과 대화를 나눈 박진우는 여창욱의 협박으로 인해 생겼던 일말의 의심이 사라졌다.
이 사람, 다 계획이 있다.
여창욱 리스크를 확실히 배제해야 한다고 한 말, 허투루 한 것이 아니다.
듀혼 사가 청구하는 금액의 1/3에 합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연락드리겠습니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 박진우는 범상이 탄 차가 주차장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다 보고 난 후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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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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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효경인더스트리 건물 주차장을 빠져나온 범상은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으로 차를 돌렸다.
여창욱 전무를 사장실에서 마주칠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기회였다.
일부러 더 그를 도발했다.
그가 예상대로 움직여 줘야 계획대로 일이 돌아간다.
한범상은 더 이상한 확률 게임을 하고 있지 않다. 상대를 보고 플레이하는 중이다.
형사 소송은 민사가 마무리되면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다.
민사 합의가 이루어져도 형사 소송이 즉각 종결되지는 않겠지만, 영업기밀 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없으면 기소가 어려워진다.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화이트 앤드 체이스를 상대로 쉽지는 않을 거라 예상한다.
그래도 오늘 여창욱을 코너로 몰지 않았다면, 협상할 기회가 아예 없었을 것이다.
한쪽만 전부를 걸고 하던 게임에서 저쪽도 전부를 걸게 만들었다.
이제 김영준 팀장을 만나봐야 한다.
그 전에 그가 가장 힘들어하는 금전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
임직원책임배상보험 문제.
BMP 파리바와의 분쟁을 먼저 매듭지어야 한다.
사무실로 돌아가면 범상은 제일 먼저 하영에게 전화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텔레파시가 통했다.
띠리링- 띠리링-
[옆집 변호사]“여보세요.”
-한 변호사님.
“네, 도 변호사님.”
-회의 잘 끝났어요?
“네, 그럭저럭. 안 그래도 막 전화하려고 했는데.”
-왜요?
“BMP 파리바 관련해서 도 변호사님하고 회의할 게 좀 있어서요. 지금 운전 중인데, 한 십오 분쯤 뒤에 들어가서 다시 전화해도 될까요?”
-십오 분이요? 십오 분 뒤에는 조금 힘들 것 같아요. 택시를 타야 해서.
“아, 밖이구나. 그럼, 집에 들어오시면 전화 주실래요? 기다릴게요”
-어디서요? 어디서 기다리실 건데요?
“어디서요? 사무실에서요.”
-광화문?
“네.”
-한 변호사님,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요.”
-배 많이 고프세요?
“네? 아-니요.”
-그럼, 조금만 기다리실래요?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은데. 아, 택시 왔다!
???
“도 변호사님, 지금 어디 계세요?”
-저요? 인천공항이요.
리시브, 토스 그리고 스파이크
“도 변호사님이 왜 여기에···?”
일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온 그녀는 단지 범상이 보고 싶어 온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BMP 파리바를 만나려고요.”
선물을 가지고 왔다.
“네?! 잘하면 FBI 조사가 무혐의로 종결될 것 같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