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6)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6화(16/190)
【016화 – 변변찮은 변 변호사】
점심시간,
마이클은 친한 국제중재팀 동료 외국 변호사들과 자주 가는 식당을 찾았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 그는 한범상을 도마 위에 올렸다.
“너무한 거 아니야, 진짜. 잘하고 있는 사건을 빼서 주고.”
“내가 하던 것 중에서도 하나 거기로 갔어.”
“그러니까 말이야! 번역일이나 좀 주라고 하길래, 제대로 교육하려나 보다 했는데. 이건 완전 뒤통수야.”
“눈치 본 거 아니야?”
“눈치?”
“처음부터 사건 빼서 주면 괜히 말 나올 거 같으니까, 괜히 번역일 시키면서 은근슬쩍 사건에 끼워 넣었다가, 분위기 괜찮은 거 같으니까, 바로 사건 재배당한 거잖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
“그렇다니까.”
“더럽다 진짜.”
“아- 짜증 나. 타임 시트 보니까 신 건도 배당하더라고. 이러면서 은근슬쩍 국제중재팀으로 넣으려는 거 아니야? 최 변호사님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그렇게 안 봤어? 최 변호사님이 어쏘들한테 안 그런 척해서 그렇지 원래 그런 분이셔. 야망 있는 사람이야.”
마이클이 포문을 열자, 다른 어쏘 변호사들도 거침없이 불만을 토해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일에 대해 가장 피해 의식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마이클 변이었다.
“BS 타임 시트 봤어?”
“봤어. 그래도 솔직히 240시간 쓴 거는 대단하더라.”
“왓? 그게 진짜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라고?”
“월 240시간을 쓰려면 주말에도 다 나와야 해. BS가 주말에 나온 거 본 적 있어?”
잘 모른다.
“내가 비서한테 물어봤어. 아니래.”
“아니래?”
“응. 아니야.”
“그럼, 그거 다 허위 기재인 거야?”
“그럴 수도 있어. 게다가 다 번역이잖아. 진짜 자기가 다 했는지 어떻게 알겠어.”
업무 시간을 타임 시트에 자동으로 기재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반면, 외부 미팅이나 자택 근무 등 사무실 밖에서 일했을 경우에는 추후 별도로 기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도 결과물이 있잖아. 집에서 했다고 하면 뭐 어쩌겠어? 누가 도와줬다고 해도 펌에서 신경도 쓰지 않을 거고.”
“난 못 믿겠어. 영어도 잘 못하던데, 그 많은 번역을 진짜 자기 실력으로 해냈다는 게.”
“발음이 좀 그렇기는 하더라.”
“진짜인지 아닌지 테스트해 볼 거야.”
권모술수 권민우.
몇 년 전 인기 있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캐릭터.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데에 있어서 권세와 모략, 술수를 가리지 않는 사람.
로펌에는 실제 그런 사람이 많다.
“뭘 어쩌려고, 마이크?”
마이클 변은 콧방울을 실룩거렸다.
점심에서 돌아온 마이클은 자기 방으로 가기 전, 범상의 방문을 노크했다.
“한 변.”
“네, 변 변호사님.”
“저스트 콜 미 마이클. 마이크라고 불러도 되고.”
“편해지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음- 오케이. GL 디스플레이 중재건 관련해서 앨런 앤 오버리의 찰스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글로벌 크로스 라이센싱 계약 관련해서 당시 DULL 사(社) 한국지사 담당자하고 주고받은 이메일 전체를 번역해 줄 수 있겠냐고. 의견을 주려면 아무래도 전체를 봐야겠다고.”
“아, 진짜요?”
“얍.”
“그런 이메일은 기록에서 보지 못했는데···.”
“전화로 왔어요. 내가 아직 이 사건의 코레스폰던트(correspondent, 담당)인 줄 알고.”
사실은 재배당 전에 전화를 받았었고, 깜빡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확인하고 처리하겠습니다.”
“네. 아, 근데 좀 급한 거 같던데··· 뭐, 이제 한 변 담당이니까. 난 신경 안 쓸게요.”
“네.”
-*-
그날 오후,
최재민 변호사 사무실.
GL 디스플레이 중재 사건 파일을 검토하고 있던 최재민은 시계를 봤다.
오후 5시 30분.
영국은 오전 8시 30분이다.
출근 시간 전이지만, 최재민은 앨런 앤 오버리 사무실의 찰스 플레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있는 의견서가 너무 늦는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헬로우.”
“하이, 찰스, 잇츠 미, 제이.”
최재민 변호사는 ‘J’ 이니셜을 자신의 영어 이름처럼 사용했다.
악센트가 약간 있으나 거의 티가 나지 않는다.
“출근 전이지? 아침 일찍부터 전화해서 미안해. 조금 급해서 말이야.”
“괜찮아. 사무실에 가고 있는 중이야.”
“통화 괜찮아?”
“운전 중이지만. 괜찮아. 말해.”
“짧게 할게. GL 디스플레이. 싱가포르 중재. 상 시장독점 제재 관련해서 의견서 주기로 한 거, 내일 아침 한국 오픈까지 줄 수 있어?”
“응? 아···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최재민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요청한 지 2주가 넘었다.
와도 벌써 왔어야 한다.
“늦어지는 이유라도 있어?”
“늦어지는 이유가 있냐고? 우린 기다리고 있었지.”
“뭘?”
“추가 서류를?”
“추가 서류?”
“응. EU법상 DULL 사(社)의 책임소재를 판단하려면 아무래도 한국지사 담당자하고 주고받은 서신 전체가 필요할 것 같아서 요청했는데, 오질 않길래, 나는 양이 많아서 시간이 걸리는 줄 알았지.”
미간에 잡힌 주름이 더 짙어진다.
“그게 꼭 필요한 거야?”
“원하면 몇몇 가정하에 의견을 줄 수는 있어. 그렇지만, 정확하게 하려면 검토해야 할 것 같은데.”
클라이언트로부터 재촉받는 상황.
하지만, 가정하에 주는 의견을 바탕으로는 사건을 진행할 수 없다.
“알았어. 바로 보내줄게. 근데 번역 서류 요청한 이메일이 없던데.”
“마이클하고 통화했었어.”
“마이클? 마이클 변?”
“응.”
“알았어. 바로 보내줄 테니까. 일단 오늘 출근하면 다른 질의에 대한 의견부터 작성해서 보내줘.”
“물론이야. 그렇게 할게.”
딸깍.
전화를 끊은 최재민은 곧바로 마이클 변의 내선 번호를 눌렀다.
그의 미간에는 주름이 여전히 잡혀있다.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내 방으로.”
딸깍.
끊은 지 1분도 안 돼서 재민의 방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들어와.”
마이클 변이었다.
“변호사님.”
“GL 디스플레이 중재건. 번역 서류 왜 아직 안 보냈어?”
“네?”
“찰스하고 통화했다면서. 앨런 오버리에서 요청한 서류 아직 준비 안 된 거야?”
“아, 그거···제가 통화한 거는 맞는데, 변호사님이 한 변호사한테 재배당하셔서, 저는 한 변호사한테 전했는데요, 앨런 오버리에서 추가 요청한 서류가 있다고. 한 변이 아직 안 보냈나요?”
재배당 시, 이런 일이 아주 가끔 일어난다.
최재민은 짜증이 났다.
“한 변한테 얘기했다고?”
“네.”
“알았어. 나가봐.”
최재민은 마이클을 돌려보냈다.
그러고선 이제 범상을 불렀다.
“한 변호사, 변 변호사한테서 앨런 오버리에 보내야 할 번역 서류 있다는 말 들었어?”
“네.”
“근데 왜 아직이지?”
“네? 아, 그게 보니까 양이 좀 많고 그래서, 변호사님하고 먼저 확인하고···.”
“확인할 게 있었으면 바로 나한테 왔었어야지! 뭐가 더 급한 일인지 파악할 줄 아는 것도 변호사한테 필수적인 자질이야.”
범상은 순간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뭘 당했는지 직감했다.
마이클 변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범상은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영국 시각 클로징 전까지 끝내서 보내겠습니다.”
타격감 제로
그들은 늘 이유가 있다.
-니가 날 이상하게 쳐다봤잖아.
-그러게 왜 걔랑 친하게 다녀.
-수업 시간에 선생님한테 질문을 왜 하는 건데.
따돌림을 당해봐서 안다.
뭐라고 변명하든 진짜 이유는 하나다.
내가 만만하게 보여서.
그리고 어설프게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자, 해결되는 하나 없다는 것을.
범상은 아공간에 들어갔다.
나왔을 땐 밤 11시도 되지 않았다.
번역은 완성됐다.
범상은 영국 앨런 앤 오버리에 보내는 이메일을 작성했다.
「첨부 파일 – GL Display translation.docx」
발송은 몇 시간 뒤 새벽에 되도록 예약해 둔다.
제아무리 번역 천재라고 해도 한두 시간 안에 끝내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양의 번역이다.
메일 보낸 범상은 이제 롤(LOL)을 켰다.
잠이 오지 않는다.
아공간에서 자고 나왔다.
‘몇 판만 하고 자야지···’
이런 상쾌한 아침이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