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62)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62화(162/190)
【162화 – 날씨가 심상치 않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울에 들어온 최재민은 출근하기도 전에 도대기부터 먼저 만났다.
“얼마나 진행된 거야? 김 대표님이 승인하셨어?”
재민은 법무법인 이재와의 합병 소식을 물었다.
말이 합병이지 사실상 김앤강이 싫어서 박차고 나갔던 선배들을 다시 흡수하겠다는 것이었다.
“김한 대표님은 재가하시겠다는 뜻을 이미 밝히신 것 같고, 지분 파트너 변호사님들 중에서도 고 변호사님 정도만 반대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갑지 않은 동기의 설명에 재민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다섯 남은 ‘신선들’ 중에서 한 명만 반대 중이라면, 조만간 결정이 난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미 결정은 났고 발표만 남기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성일용 변호사님도 돌아오시는 거고?”
최재민이 제일 궁금한 건 이전 사수가 복귀하느냐였다.
그가 나가고 그 자리에 오른 최재민이었기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재의 문 변호사한테 슬쩍 물어봤더니, 분위기는 그런 거 같다고 해.”
재민도 같은 후배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도대기가 그렇게 들었다면, 다시 물을 필요가 없었다.
사안에 대해 문 변보다 더 잘 알만한 내부 사람은 묻는다고 대답해 주지 않을 일이었다.
“발표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
그 말도 맞다.
양측이 사인하기 전엔 모르는 일.
다만, 이렇게까지 알려졌다면 90% 이상은 진행되었을 게 뻔했다.
“근데, 에퀴티 파트너 중에 반대하시는 분이 고 변호사님밖에 없다고?”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래.”
생각해 보니 가장 심하게 반대해야 할 사람이 이정후였다.
그런 그가 제안한 합병이니, ‘신선’ 중에 반대할 사람이 없는 게 이해가 간다.
국내소송팀의 고중석 변호사가 그나마 반대해 주는 것이 고맙다.
‘이정후 변호사는 왜 합병을 제안했을까?’
‘언제부터 얘기가 오고 간 거지?’
‘몇 달 만에 성사된 것이 아닐 텐데···.’
‘이 합병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뭐지?’
‘설마 눈엣가시인 나를 내치기 위해서?’
‘그렇다고 원수를 불러들인다고?’
‘둘이 그렇게 사이가 나쁜 게 아니었던 건가?’
‘내가 석윤재 변호사보다 더 골칫거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
수많은 질문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사태를 아직 막아볼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였다.
“강 변호사님은 뭐라고 하셔?”
최재민은 강태산 변호사에 관해 물었다.
도대기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힘드신가?”
이번에는 앞뒤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기.
최재민도 안다.
와일드카드였다는 것을.
미국 사무실 오픈 관련해서 회의가 있던 날, 강태산 대표가 사무실에 나타났다.
우연이 아니란 것쯤은 최재민도 곧장 눈치챘다.
그 덕분에 뉴욕 사무실 건이 승인될 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회의가 끝나고 도대기로부터 들었다.
강태산 변호사님께서 힘든 와중에도 그 일 때문에 직접 나오신 거라는 사실을.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건강을 회복하신 건 아니었다.
순간 ‘태산’에 찾아가 또 한 번 도와달라고 요청해 볼까 떠올렸던 재민은 생각을 일단 미뤘다.
미국 사무실 오픈은 지금의 안건과 상황이 달랐다.
조건부였기는 했어도, 그때는 ‘하늘’의 재가를 받고, ‘신선’들을 설득 중이었고,
도대기의 말이 정확하다면, 지금은 김한 대표가 합병을 이미 재가를 한 상황이었다.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강태산 대표에게 김한 대표의 뜻을 꺾어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백인찬 변호사님은 뭐라고 하셔? 아니지, 그분은 이런 일에 신경 쓰실 분이 아니지. 파이낸스는? 김창균 변호사님도 아시지? 반대하실 것 같은데.”
재민은 어떻게든 반대 의견을 모아볼 생각이다.
물론 결정권은 에퀴티 파트너들에게 있었지만, 시니어 파트너들이 뜻을 모아 반대한다면, 다른 안건이면 몰라도 이전 선배들을 데리고 들어온 결정은 막아볼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정후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김한을 직접 찾아가서 다시 한번 생각해달라고 요청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먼저 사무실 내에 영향력 있는 시니어 파트너들의 뜻을 모아야 한다.
“김창균 변호사님은 동의하시는 모양이야.”
“동의하신다고! 왜? 이재가 들어오면 껄끄러워지는 팀 중의 하나가 파이낸스팀인데.”
클라이언트 관리에 있어서 겹치는 분야가 많다.
“김창균 변호사님이 얼마 전에 현진-코너스톤 UAM 프로젝트 관련해서 이정후 변호사님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다고 하네.”
“도움? 무슨 도움?”
“자세한 것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로는······.”
도대기 역시 재민과 같은 배를 탄 상황.
재민이 오기 전 나름대로 알아본 정보를 공유했다.
다만, 현진-코너스톤 UAM 프로젝트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자세한 것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컨소시엄이 깨질 뻔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정후 변호사 덕에 넘어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 왜 나는 못 들었지?”
“기사 한 줄 안 났어.”
“그래도, 그 정도 일이면 한 변이 이야기했을 법도 한데.”
“김창균 변호사님이 한 변호사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은 모양이야.”
“왜?”
“정신이 없었잖아.”
사실이다.
지난 1년 동안은 정말 정신이 없었고, 그중 최근 4, 5개월은 미친 듯이 바빴다.
재민은 도대기에게 들은 것들을 토대로 다시 한번 상황을 점검했다.
해상팀 시니어 파트너 백인찬과 특허팀 시니어 파트너 유경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먼저 파이낸스 시니어 파트너 김창균을 설득해야 했다.
“방금 이야기는 김 변호사님한테 들은 건 아니지?”
“응, 아니야.”
“내가 직접 들어봐야겠어.”
–*–
우리가 미국에 와 있는 동안, 많은 일이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보스턴,
페어몬트 호텔 연회장,
롭스 앤 그레이 크리스마스 파티.
“한, 우리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은 게이트웨이 사(社)의 기술이야. 하지만, IP 라이선스 계약이 어렵다면, 우리 클라이언트는 회사를 인수할 마음도 있어. 들으면 깜짝 놀랄만한 조건에. 한, 도와줄 수 있겠어?”
최 변호사님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또 다른 방향에서 이 일에 접근하고 있었다.
알파빗의 의뢰
아까부터 그녀의 머리칼이 목덜미를 간지럽혔지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댄 채 물었다.
“그거 알아요?”
뭐요?
“범상 씨한테서 무지 좋은 냄새가 나는 거.”
좋은 냄새?
“처음에는 풀냄새 같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뭐랄까···더 오묘해요.”
“오묘요?”
“응.”
“어떻게?”
“흙냄새도 나는 것 같고, 나무 냄새 같은 것도 있고.”
“흙냄새, 나무 냄새?”
“음···그래, 맞다. 숲. 범상 씨한테서 숲 냄새가 나요.”
숲?
“지금요?”
“지금도 나고, 예전에도 가끔···향수 쓰는 거는 아니잖아요? 집에 향수는 없던데.”
······설마?
“하영 씨.”
“왜요? 한 변호사니임-”
“만약에 하영 씨한테 아공간 같은 게 있으면 어떨 거 같아요?”
“아공간? 그게 뭐예요?”
“아, 그러니까, 드래곤볼···보다는 그게 낫겠다. 해리포터 봤죠?”
“당연히 봤죠.”
“거기에 나오는 ‘필요한 방’이라고 기억해요?”
“네. 그 해리하고 친구들이 들어가서 마법 연습하는 방.”
“맞아요, 그 방.”
“만약 하영 씨한테 그런 방이 생기면 어떨 거 같아요?”
생뚱맞은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가늘고 큰 눈이 어찌나 촉촉한지 내 얼굴이 보일 정도였다.
“이 천재 같은 뇌로 범상 씨는 그런 상상을 하는구나.”
“저 천재 아니에요.”
“천재가 아니라고요?! 영어, 베트남어, 아랍어, 일어, 한국어를 구사하고, 해상, 특허, 회계···모르는 분야가 없고. 골프에, 낚시에 사냥 등등등 온갖 취미를 다 즐기시면서···천재가 아니라고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똑똑한 사람이 우리 작은아빠이었거든요. 근데, 범상 씨를 만난 이후로 바뀌었어요. 범상 씨로. 내가 아는 제일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에요.”
부끄러웠다.
그녀의 순수한 두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그런 칭찬을 듣고 있으니 더욱더.
더 물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겐 ‘문’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