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63)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63화(163/190)
【163화 – 알파빗의 의뢰】
보스턴에서 제일 큰 로펌이자, 매출 규모로 세계 10위에 랭크된 롭스 앤드 그레이(Robbs & Gray)의 사무실은 보스턴에서 오래된 구역 중 하나인 백 베이 지구에 자리했다.
롭스 앤드 그레이가 주최한 크리스마스 파티 후 며칠 뒤, 나는 그들의 사무실을 찾았다.
연말이라 사무실은 한산했으나,
국적 불문하고 여느 대형 로펌처럼 연휴에도 나와서 일하는 변호사들은 존재했다.
삼 주 전쯤 캠퍼스 와인 앤 치즈에서 만났던 알렉스 켈러 변호사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언급한 게이트웨이사(社) 인수 건을 짧게나마 회의하기 위해서였다.
“보내주신 게이트웨이사(社)에 대한 기본자료를 검토했습니다.”
기본자료라고 말했지만, 사실상은 회사소개 브로셔 수준의 자료였다.
흥미로운 것은 설립된 지 2년도 안 된 작은 기업이라는 사실이었고, 심지어 홈페이지도 없는 회사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확인해 봤어? 수임할 수 있겠어?”
“그건 파티에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요.”
“파트너 아니었어? 한국 로펌은 파트너도 사건 수임 승인이 필요해?”
“그건 아닌데. 현재 제 신분이 일단은 유학생이랑 직접 수임할 수가 없어서, 제 위의 시니어 파트너를 통해서 사건에 ‘참여’하고 있어요.”
“아하! 그렇다고 했지. 자꾸 까먹네. 미안.”
알렉스는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게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제 위의 시니어 파트너를 직접 소개해 줄 수도 있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어. 나는 네가 수임, 아니,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어.”
알렉스는 지난번에도 ‘내’가 맡아주었으면 한다고 했었다.
아무리 인상이 좋았다고서니, 고작 몇 주 전에 있었던 와인 앤 치즈 이벤트에서 처음 만난 변호사에게 꽤 중요해 보이는 케이스를 의뢰하는 게 이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하는 게 게이트웨이의 기술이라고 했죠? 하지만, IP 라이선스 계약이 어려우면 아예 회사를 인수할 마음도 있다고.”
“맞아.”
“게이트웨이에 관심이 있는 클라이언트는 누구인가요? 보내주신 자료에는 없던데. 일부러 안 알려주신 거라면 말씀해 주시지 않아도 되기는 하는데, 컨플릭트 체크를 정확하게 하려면 알면 좋기는 하니까요.”
「컨플릭트 체크: 혹시 의뢰하는 로펌이 상대방을 대리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건에서 우리를 상대로 하는 사건이 있는지, 이해충돌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절차」
“그건 클라이언트가 이미 내부적으로 확인했어. 한국에 소송이 걸려있거나, 김앤강이 상대방의 대리인인 사건은 없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도 사무실하고 컨플릭트 여부 확인은 했어요. 게이트웨이로부터 의뢰받은 일이나 상대하는 사건은 없는 것 같아요.”
“굿. 그러면 그 시니어 파트너가 컨펌하면 맡을 수 있다는 말이지?”
“네.”
“그 시니어 파트너는 언제 돌아온다고 했지? 이름이 ‘제이 초이’라고 했던가?”
“다음 주 수요일에 뉴욕 사무실로 복귀하신다고 들었어요.”
“오케이. 알았어.”
“미리 연락은 취해놓을게요.”
“그래 주면 아주 좋지.”
그렇게 회의가 끝날 듯싶었다.
그런데,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던 알렉스는 일어나려던 나를 붙잡고 말해주지 않으려고 했던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 협상을 맡아달라고 의뢰한 클라이언트가 알파빗이야. 수임하면 알게 되겠지만, 아직은 오프-더-레코드로 알려주는 거야.”
“게이트웨이에 관심이 있는 회사가 알파빗이라고요?”
“응.”
알파빗(Alphabit Inc.)
글로벌 시가총액 5위로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그 자체만으로도 놀랄만한 사실이었으나, 그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잘 알려지지도 않은 국내 소기업의 기술에 이렇게나 큰 관심이 있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사실은 롭스 앤 그레이 한국 사무실을 통해서 이미 게이트웨이와 접촉하고 있었었어.”
롭스 앤 그레이는 몇 년 전 서울에 사무실이 열었다.
한국 변호사를 포함해 총 다섯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법률사무실이었고, 업무 대부분은 롭스 앤 그레이 미국 사무실의 연락처 역할이었다.
“올 초에 처음 컨택해서 협상을 시작했는데, 거기 수석 엔지니어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협상이 중단됐고,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전혀 진행이 안 되고 있어. 한국 사무실을 통해서 여러 번 연락을 취했는데, 답이 없어.”
“답이 없다는 건···.”
“사실상 협상 결렬이라고 할 수 있지.”
“양해각서 같은 것도 체결하지 않았나요?”
“협상 동안에는 기밀로 하자는 약식 비밀 유지 계약서만 있을 뿐이야.”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을 소유한 알파빗이 국내 무명 회사의 기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깜짝 놀랄만한 조건에 회사를 통째로 사고 싶을 만큼.
그런데 아직 기사화된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초대형 투자자를 양팔을 벌리고 환영해도 모자랄 판인데, 분위기상, 이 협상의 갑은 게이트웨이사(社)인 것처럼 들렸다.
이젠 물어야 했다.
“알렉스, 이런 큰 거래의 의뢰를 내게 문의해 줘서 다시 한번 감사해요. 한데, 이젠 묻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 케이스를 나한테 맡기고 싶은 이유가 뭔가요? 우린 고작 삼 주 전에 와인 앤 치즈에서 봤을 뿐인데.”
내 질문에 알렉스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고작 삼 주 전에 봤을 뿐이지. 근데, 그 삼 주 동안에 너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사람들을 세 명이나 찾을 수 있었어.”
나를 강력하게 추천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개리 터커는 너를 아주 높게 사던데.”
“코너스톤 그룹의 미스터 터커 말인가요?”
“우리 파이낸스팀의 큰 클라이언트지. 삼전의 사내 변호사도 너를 잘 알고 있었고. 아, 그리고, 효경인더스트리-듀혼 사건도 하고 있다면서?”
“어, 그걸 어떻게···?”
“화이트 앤 체이스의 태너 카일이 내 대학 동기야. 누구를 인정하는 녀석이 아닌데, 네 이름을 기억하더라고. 그 친구가 상대 로펌의 주니어 파트너급을 기억할 정도면, 한, 네가 꽤 인상적이었던 거지. 뭘 어떻게 했길래, 그 친구가 네 이야기를 하면서 한숨을 내쉬게 만든 거야?”
결국 세상 진리는 어디든 같다.
넓은 곳이든, 좁은 곳이든.
경력과 신뢰는 열심히 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차근차근 쌓인다.
순간 뿌듯했다. 그리고,
“그것 외에도 레퍼런스 체크를 꼼꼼하게 했어. 화려하던데. 삼전에, 코너스톤에, 아람코에···그냥 한국 변호사 한 명을 삼 주 전에 만나서 일을 맡기려는 건 당연히 아니었어. 한국 변호사가 있었으면 하고 있었어. 그것도 실력이 아주 좋은 한국 변호사를 찾고 있었지. 그러던 와중에 너를 소개받았고, 찾아보니까, 딱 우리가 원하던 변호사였던 거야. 한국 최고 로펌 경력에 미국 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파이낸스, 기업 인수, 플러스 특허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출신.”
하버드 로스쿨로 결정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진짜 궁금해지네. 경력이 몇 년이라고 했지? 6년? 7년?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거지? 사건도 사건이지만,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시간이 나온 거야? 월 250시간~300시간씩 쓴 거야?”
청구만 그렇게 했을 뿐, 500시간~1,000시간씩 투자했다.
알렉스의 질문에 미소로 대답했다.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자, 이 정도면 우리가 왜 네가 이 협상을 맡아줬으면 하는지 설명이 되었을까?”
충분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꼭 맡아주었으면 좋겠어.”
“수임하는 데에 문제는 없을 거예요. 돌아가서 바로 한국에 연락해 볼게요.”
“빠를수록 더 좋지.”
“네. 아, 하나만 더.”
“물어봐.”
“상대방 로펌은 어디인가요? 게이트웨이 측은 로펌은 선임하지 않았나요?”
“했어. 로펌 이름이 ‘석, 리 앤드 제’야.”
‘석, 리 앤드 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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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에 돌아온 재민은 파이낸스팀 시니어 파트너 김창균을 만났다.
법무법인 이재 합병 관련해서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도대기로부터 간략한 내용을 들었다. 현진-코너스톤 UAM 프로젝트 관련해서 이정후 변호사의 도움을 들었다고.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를 설득할 수 있으려면 그 ‘도움’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했다.
“김 변호사님, 이재가 들어오면 김 변호사님도 껄끄러워지시지 않습니까? 김 변호사님이 합병 반대 의사만 밝혀주시면, 제가 백 변호사님이랑 유경민 변호사님을 설득해서, 김한 변호사님을 만나보겠습니다.”
“나는 곤란해.”
“이런 질문을 드려서 죄송한데요. 이 변호사님한테 무슨 도움을 받으셔서 그러시나요. 아니면, 혹시 이정후 변호사님하고 어떤 약속이라도 하셨습니까?”
최재민의 질문에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김창균은 이정후로부터 받은 ‘도움’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했다.
김창균으로부터 사정에 대해 들은 재민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냥 ‘도움’이 아니었다.
김한이나 이정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급의 ‘도움’이었다.
이러면 설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됐어, 최 변.”
“···.”
이재와의 합병은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 되었다.
재민이 허탈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그 순간, 보스턴에 있는 범상으로부터 문자가 들어왔다.
[범상: 변호사님, 문자 보시면 전화해 주세요. 롭스 앤 그레이에서 들어온 신건인데요. 간략한 사건 개요는 메일로 보냈습니다. 게이트웨이라는 국내 회사 인수 건이고요. 클라이언트는 전화 주시면 유선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범상: 그리고 상대방 측 로펌은 법무법인 이재입니다.]회색지대
법은 유동적이고 모호하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흑도 백도 아닌 애매한 경계.
회색지대가 많다.
애초에 법이 명확했으면 변호사라는 직업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보면 김앤강도 그러한 경계 안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