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69)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69화(169/190)
【169화 – 최재민, 신선들의 테이블에 앉다】
사직빌딩 11층의 대표실은 깨끗했다.
마치 어제도 누가 사용한 것처럼.
김앤강에서 김한의 존재는 그러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도 늘 있는 것 같은.
“이 변호사한테 들으니까, 최 변호사가 사무실 결정에 불만이 있다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김한이 물었다.
대답하기 전 재민은 ‘ㄷ’자 소파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이정후의 얼굴을 먼저 봤다.
눈인사를 건넸으나 돌아온 것은 싸늘한 눈초리뿐이었다.
“혹시 알파빗의 의뢰 수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사무실의 결정에 반대되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오해가 있었나 보네. 이재와의 합병은 여기 이 변호사가 사무실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라서 말이야.”
어렸을 적 처음 듣는 신들의 이야기는 귀가 솔깃하게 만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나이를 조금 먹고 들었을 땐, 이미 들어본 이야기라 별로 감흥이 없다.
교훈도, 재미도 없다.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있던 이야기를 한참 뒤, 나이가 많이 들어 우연히 다시 듣게 되면, 깜짝 놀란다.
모르고 있던 부분을 발견하고,
그 과장된 이야기 속에 진리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화는 결국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인 것을.
「김앤강에는 김한이라는 ‘하늘’과 강태산이라는 ‘산’이 있고, 그 산을 밟고 오르려는 ‘신선들’이 살지.」
대학 시절, 김앤강에 얽힌 ‘신화’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야기에 흠뻑 빠졌었다.
동기들 술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하면, 열띤 토론을 할 정도로 흥분했었다.
법원이나 검찰만큼이나 들어가고 싶은 곳이었다.
아니, 순수하게 어느 조직이 더 궁금하냐고 물으면 대답은 김앤강이었다.
그랬는데···
막상 들어오고 나니 달라졌다.
콩깍지가 벗겨졌다는 표현이 알맞을까.
무뎌졌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할까.
어차피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었다.
미화된 이야기는 이제 유치하게 들릴 뿐.
‘하늘’이니, ‘산’이니, ‘신선’이니 하는 말들은 술자리에서 윗분들 조롱할 때나 쓰는 것이 되었다.
그러고 살았다.
같이 떠들던 동기들이 하나둘 김앤강을 떠났다.
자신감 하나로 똘똘 뭉친 기세 좋았던 젊은 어쏘는 어느새 중년 남자가 되었다.
버텨낸 그는 김앤강의 시니어 파트너가 되었다.
산세는 중턱에서 보이지 않는 법.
올라와 보니 알겠다. 이곳이 험한 산이었다는 것을.
운이 좋았다는 것도. 제아무리 체력이 좋았어도 길을 잃었다면 올라올 수 없었던 봉우리였다는 사실을.
“그럼, 최 변호사가 잘 정리하면 되겠네. 문제없는 거지?”
하늘이 말했다.
신선이 노려보고 있다.
대답하기 전,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키려 했는데, 목이 막혔는지 넘어가지 않는다.
신화 속에 들어와 있는 그는 이제 그 안에 담긴 진리가 보인다.
우스운 비유와 과장을 벗겨내고 자신 역시 인간이 아닌 욕망으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
자유로운 광대는 왕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룰에 얽매인 자는 그러하지 못하기에.
“결정을 이미 내리신 거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재민은 언제든 뛰어내릴 수 있는 자유로운 광대의 연기를 시작했다.
“최재민 변호사, 자네의 의견을 듣자고 부른 자리가 아니야.”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았던 이정후가 입을 열었다.
이 자가 김앤강의 신선 중 가장 고약한 인간이다.
그를 설득하러 간 자리도 아니다.
“그래서 대표님께 부탁을 드리는 중이었습니다.”
재민은 고개를 꼿꼿이 든 채 말했다.
이정후와 최재민이 시선이 가운데 탁자 위 중앙에서 부딪혔다.
둘은 서로를 보느라 눈치채지 못한다, 그 순간 상석에 앉은 김한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찔거린 것을.
언짢아서? 아니면, 흡족해서?
“최 변호사, 그렇게 안 봤는데, 아직도 때와 장소를 가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 자넬 이 자리에 부른 이유를 정말 모르겠어?”
당연히 안다.
경고하려고 부른 자리라는 걸,
후배의 하극상을 잡으려고 만든 자리라는 걸.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까.
이십 년이나 차이 나는 후배 하나 어떻게 못 해서 대표까지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들어왔을 때부터 표정이 썩어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죄송합니다. 정중히 재고를 부탁드리는 행동이 분별없는 행동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대표님께 사과드리고 시키신 대로 정리해.”
“···.”
“뭐하는 짓이야. 얼른 대답하지 않고.”
이 상황을 어떻게 깨고 나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알파빗이 아니라 그 누가 와도 안 된다고 했을 때, 눈치챘다.
아들 김재후가 양호락 변호사 밑으로 갔다는 말을 들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미 논의가 끝난 사안.
이대로 부딪히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상대는 이미 그 상황까지 상정해 두고 이 자리를 만들었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가겠습니다’라고 해 봤자, 바뀌지 않을 결론.
각오는 하고 들어왔다.
상대가 모르는 두 장의 히든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무엇부터 낼까?
하나는 한범상이 쥐여준 카드고, 다른 하나는 강태산이 준 카드다.
전자로도 승산이 있다.
하지만, 아까부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신선의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이 정말 너무 보고 싶다.
“어제저녁에 강태산 변호사님 병문안을 드리고 왔습니다.”
재민은 강태산이 준 카드를 먼저 꺼냈다.
들고 들어온 서류를 봉투에서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강 변호사님께서는 합병에 반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정후의 시선이 탁자 위 서류로 향했다.
김한의 시선은 최재민에게로 향했다.
“태산이 그 친구가 최 변호사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이르든가?”
“예.”
“그러면서 이걸 자네한테 줬어?”
“예.”
이정후는 김한의 눈치를 봤다.
서류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본 듯한 김한이 집어들 자세를 취하지 않자, 이정후는 서류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
김한의 글씨체를 아는 이정후의 두 눈에 힘이 들어간다.
어쩔 수 없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소용없다.
<동업자약정>이라는 제목의 서류는 명필(名筆) 김한이 직접 쓴 것이었고, 그 내용은 김한과 강태산의 동업에 관한 것이었다.
곧바로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보니, 끝에는 ‘김’과 ‘강’의 익숙한 서명과 날인이 박혀있다.
이정후는 누구를 먼저 봐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 약정서는 언제 작성된 것인지···?’
‘이걸 최재민이 어떻게···?’
그의 시선은 김한한테서 최재민으로, 그리고 다시 들고 있는 문서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렇구먼. 그래서, 그렇게 당당했네. 그러면, 최 변호사는 이걸로 무엇을 하려고?”
이 질문을 기다렸다.
혹여 이 질문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그래서 한범상이 준 카드를 먼저 낼까 망설였는데.
다행히 하늘은 산과 맺은 계약을 지키려는 듯하다.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같은 요청. 이미 두 번이나 제지했던.
분주하게 문서를 읽어 내려가던 이정후는 고개를 들어 최재민을 쏘아봤다.
이번에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심하게 면박을 주려는 순간,
“그게 다인가?”
김한이 먼저 질문했다.
최재민을 향했던 이정후의 시선이 김한에게로 돌아간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네.”
무거운 침묵.
그 침묵의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정후는 모르겠다.
불안하다.
“강 변호사가 자네한테 이 문서가 뭔지 설명해 주던가?”
“네,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
“네.”
“그래도 그게 다야?”
“그게 전부입니다.”
또 한 번의 무거운 침묵.
깨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급해진 이정후는 약정서의 내용을 서둘러 살폈다.
“그게 전부다라······내가 만약 재고해서도 같은 생각이면?”
이때다.
다른 카드를 꺼낼 타이밍.
재민은 망설임 없이 한범상 카드를 꺼냈다.
“재고하실 동안에 딜은 마무리되어 있을 겁니다.”
“?”
“한범상 변호사가 진행 중입니다.”
“한 변호사가 진행 중이라고?”
“네.”
“흠···최 변호사가 한범상 변호사를 아주 신뢰하나 보네.”
“네.”
“그 말에 책임은 질 수 있고?”
“책임지겠습니다.”
이정후는 약정서를 다 검토했다.
그러나,
“하하하- 보기 좋네, 선후배 사이가. 한때 여기 이 변호사와 나도 그랬지. 이 변호사.”
“네, 변호사님.”
“석 변호사를 언제 보기로 했다고 했지?”
한발 늦었다.
“내일···만나기로 했습니다.”
“미루지.”
!!!
“선배님, 하지만···.”
“미뤄야겠어.”
김한이 말했다.
사전적인 의미는 정한 약속을 나중으로 넘기자는 것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그 기한이 아주 오래될 것임을 이미 상정한 듯했다.
최재민은 <동업자약정서>를 두고 나왔다.
···
사직빌딩 11층 대표실,
최재민을 먼저 내보낸 이정후는 김한 쪽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선배님, 이미 얘기 끝난 사안입니다. 이제 와서 미루다니요. 아시지 않습니까, 파이낸스팀 건을 해결하면서 LK의 최 회장이 부탁한 건입니다. 만약에 틀어지면, 심 의원님 입장이 많이 곤란해질 겁니다.”
김한은 후배를 응시했다.
한때는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웠던 후배였는데,
복심(腹心)이라고 할 만큼 그의 뜻을 잘 알았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척척 해냈었는데···
스무 살이나 어린 후배 하나 어떻게 하지 못해 쩔쩔매기나 하고.
모르는 문서 하나에 다급해진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자네도 저렇게 날카로울 때가 있었는데.”
“선배님···.”
“그 약정서, 내가 써 준 거야.”
“알아봤습니다.”
“싫다는 태산이 그 친구를 삼고초려까지 하면서 판사 그만두고 나랑 이 사무실을 차리자고 설득하기 위해서 써 준 약속.”
“제가 방금 훑어봤는데, 이 문서의 효력이 걱정되시는 거면, 보니까 이후에 저희가 들어오고 나서 작성된 약정서와 충돌하는 것도 있고, 변경된 조건들도 많아서. 이름을 쓰지 않겠다는 것 외에는 지분도 다투어 볼 만하고, 이걸로는······”
설명이 길다.
상대가 대한민국의 첫 로펌을 창시한 사람인데.
정말로 다급해진 것이 아니라면 감이 떨어졌다.
사실 진작부터인가 느끼고 있었다.
아닌 척해도 손가락 사이로 자꾸만 흘러내리는 모래들을 움켜쥐려고 조급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후야.”
“···네, 선배님.”
“방금 한 말을 못 들었나?”
내가 써 준 거라고.
“···.”
“저 친구는 그걸 태산이한테 받아서 나한테 놓고 갔어.”
강태산의 이름과 지분을 걸고 달라고 한 것이 고작 ‘기회’였어.
배짱 있는 놈.
그걸 보지 못하면 정후, 자네도 내려올 때가 된 것인지 몰라.
“선배님, 신중하셔야 할 때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때가 왔을지도.
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변호사.”
“예.”
“다음 주에 에퀴티 파트너들을 다 소집해.”
“에퀴티 파트너들을요? 무슨 일로···?”
결정했다. 최재민을 앉힐 것이다.
“자네가 늘 말했잖아, 젊은 친구들을 중용할 때가 되었다고.”
“!!!”
“시대는 참 빨리 변해. 도태되지 않으려면 우리 사무실도 변할 때가 됐지.”
한때는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웠던 후배였는데···
그 순간 이정후는 김한보다도 늙고 쇠약해 보였다.
-*-
‘김’과 ‘강’이 맺은 약정서에는 ‘강’의 지분과 이름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반세기 전에 맺어진 약정서의 효력은 오래된 지폐와 같았다.
액면에 적힌 표가는 퇴색된 지 오래.
그렇다고 가치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김한 대표의 표정을 보기 전까지 <동업자약정서>의 가치가 얼마나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그걸로 무엇을 하려느냐고 물었을 때 눈치챘다.
‘강’과의 약속을 지킬 의사가 있다라는 것을.
그건 강태산 대표도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재민은 약정서를 두고 나왔다.
그것은 ‘김’이 ‘강’에게 한 약속이었다.
그걸로 지분이나 자리를 얻어낸들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강태산 대표가 내주었을 때도 그러라고 내준 게 아니었다.
자신 있었다.
한범상이 있다.
지금 게이트웨이 사무실에 가 있는,
장담하는데, 당장 내일 중으로 계약서 초안을 작성해서 모레 체결해 버릴 수도 있는···
징징-
[범상: 최 변호사님, NDA 사인본은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상규 대표의 부탁으로 지금 게이트웨이 사무실에서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저녁때 만나 뵙고 드리겠습니다. 간략하게 먼저 보고드리면, 오상규 대표는 알파빗의 오퍼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습니다.]한 치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대의 계약
아공간 속,
신비의 열매를 찾아다니다 발견한 회색 문은 잠겨있었다.
당겨도 보고 밀어도 봤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문고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이 문은 어떻게 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