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70)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70화(170/190)
【170화 – 고대의 계약】
서울 구로구,
게이트웨이 사무실.
“변호사님, 계속 여기 계셨나요?”
“네. 일찍 오셨네요, 대표님.”
오성규 대표는 저녁 식사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각이 되어서 돌아왔다.
“더 올 사람도 없어서요. 변호사님, 식사는 하셨나요?”
“점심은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저녁은 아직 못했지만. 대표님은 식사하셨나요?”
“아니요. 저도 아직···.”
“그럼, 어디 가서 식사라도 먼저 하실까요? 어디 가시는 게 불편하시면, 배달 음식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럴까요?”
범상의 제안에 오성규는 늘 시키는 밥집에서 백반 정식 두 개를 시켰다.
음식은 금방 도착했다.
특별한 것 없는 찬과 찌개였지만, 허기진 두 남자에게는 꿀맛 같은 음식이었다.
음식이 오기 전, 범상은 검토했던 자료들에 대한 의견을 건넸다.
이재의 행동에는 분명 문젯거리가 될 만한 잘못들이 있었다.
법적 처벌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기사가 나가면 떳떳할 수만은 없을 것들이었다.
오성규는 범상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렇게 이재와 LK에 대한 범상의 조언이 끝날 때쯤 음식이 도착했고,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레 알파빗의 오퍼로 넘어갔다.
오퍼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사람은 오성규였다.
그가 서두르는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LK에 대한 안 좋은 감정, 지친 마음, 어려운 재정 상태 등이 작용했고, 같이 밥을 먹고 있는 범상에 대한 신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면, 말씀하신 조건들을 알파빗에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큰 무리가 없는 것들이기는 한데, 확실하게 컨펌 받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참- 아이러니하네요.”
“무엇이 말인가요?”
“한 변호사님은 알파빗의 변호사님인데, 저희 쪽 변호사보다 백배, 천배는 더 도움을 주시네요.”
“아, 마침, 말씀 잘하셨습니다. 방금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는 알파빗의 변호사입니다. 협상 관련해서 지금까지 제가 대표님께 설명해 드린 것에 거짓이나 과장은 없습니다만, 어찌 됐든 인수 협상이니까, 대표님께서 이재가 아닌 다른 로펌을 통해 이중으로 확인해 보시는 것을 권유해 드립니다.”
“꼭 그래야 하나요?”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계약이니만큼 신중히 검토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러다가 또 이재 같은 데를 만나면 소용없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변호사들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잊을만하면 자기가 알파빗의 변호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절대 푸시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들이 그를 더 신뢰 가게 해준다.
오성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저는 그냥 변호사님을 믿겠습니다.”
다시 한번 권하려던 범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오성규 대표에게는 그것마저도 짐인 듯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은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다만, 마지막 체결 전에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최종 사인 전에는 독립 로펌의 의견을 받아보시도록 하시죠.”
“은근히 고집이 있으시네요. 하하. 알겠습니다.”
오성규는 웃으며 대답했다.
···
그렇게 업무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고,
둘은 배달 음식 포장지를 분리해서 버린 후 인스턴트커피를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범상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주제를 꺼낼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는데, 마치 그 마음을 읽은 것처럼, 오성규가 먼저 꺼냈다.
“형은 진짜 천재였을까요?”
“제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에 관해 전문가는 아니지만, 형님께서 개발하신 프로그램은 확실히 현존하는 그 어떤 챗봇 프로그램보다 우수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특히 현재의 RLHF 형 챗봇이 넘어야 하는 큰 한계 중 하나가 실시간 학습 능력인데, 오성필 님의 프로그램은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요. 그런 프로그램을 변변한 지원도 없이 혼자서 개발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형님의 천재성은 증명된 것이 아닐까요?”
오성규는 고마웠다.
완성되지 못한 프로그램임에도 범상이 그 가치를 알아주었다.
물론 LK도, 알파빗도 알아봤지만, 그들과는 달랐다.
“거대 언어 모델의 지능은 매개변수의 규모에 달려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똑똑해질수록 전력 소모가 급격히 증대할 수밖에 없고, 결국 매우 비환경적, 비효율적인 머신으로 전락하게 되는 맹점이 있는데, 게이트웨이의 프로그램이 비전대로만 완성된다면, 그 문제 또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오성규는 범상의 지식에 감탄했다.
그가 만난 변호사들은 기술에 관심이 없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변호사님은 진짜 이쪽 분야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아니요. 잘 모릅니다. 이번 협상을 위해서 보내준 자료들을 이해하는 척하는 것이지, 수박 겉핥기 정도일 뿐입니다.”
“아니신 것 같은데요.”
“이번에 관심이 많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진짜 아쉽네요. 형이 변호사님을 만났으면 진짜 좋아했을 텐데···.”
범상도 아쉽다.
그랬다면, 지금 보이는 저 방의 ‘문’에 관해서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혼자 있는 동안 열어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범상은 이용할 수 없는 ‘문’이었다.
“아, 형님께서 ‘문’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까?”
이중적인 질문이었다.
나눈 대화에 비춰봤을 때, 오성규 대표는 형의 사무실에 존재하는 ‘문’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번 떠봤다.
“어, 그걸 어떻게 아세요?”
“회사 이름도 게이트웨이이고 제가 본 자료에도 보면 ‘문’, ‘포털’ 같은 단어들이 가끔 나와서요.”
“형은 좀 자기만의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형이 개발하던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 LK 측 엔지니어들과도 회의할 때도 보면, ‘문’이니 ‘포털’이나 하는 형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 그랬군요.”
역시나 몰랐다.
“가끔 저한테도 이상한 말을 했어요.”
“이상한 말이요?”
“‘이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다.’ ‘문만 찾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언젠가 너한테도 보여주겠다.’”
“아-”
범상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듣고 나니 더 아쉽다.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고를 당하기 며칠 전에도 이상한 얘기를 해서 제가 제발 그런 얘기는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얘기였길래···?”
“스트레스 때문인지, 한동안 회색 문을 열어야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중얼거렸어요.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에 에러가 생겼는데, 그걸 해결하려면 무슨 회색 문을 열어야 한다고. 그 해답이 회색 문 너머에 있을 것 같다고.”
!!
“회색 문이요?”
“네. 허허- 좀 황당하죠? 그런 형이었어요. 상상력이 풍부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회색 문을 여셨나요?”
“네? 아···네, 열었다고는 했어요. 무슨 맹약인지 서약인지를 해야 한다나 뭐라나. 아무튼 공간의 주인과 계약하고 열었다면서 신이나 했어요. 드디어 에러를 풀 방법을 알아낸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 후로 며칠 뒤 사고를 당한 거였다.
“맹약이요?”
“우습죠? 형이 만화를 참 좋아했어요. 제가 말씀드렸나요? 만화가가 되겠다고 학원도 다닌 적이 있다고? 집에도 가면 만화책에 방한 가득 차 있어요.”
만화?
“그나저나 이걸 다 알고도 알파빗이 인수하겠다고 할지가 걱정이네요. 설마 안 한다고 하지는 않겠죠, 변호사님?”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알파빗도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이 미완성인 점도 알고 있습니다.”
범상은 오성규를 안심시켰다.
괜찮은 듯싶어 형에 대해 조금 더 물어봤다.
의심스럽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먼저 하고 싶었지만 생뚱맞게 들릴 것 같아 할 수 없었던 질문을 했다.
“형님이 혹시 금을 좋아하셨나요?”
“금이요?”
-*-
“엄마, 나 왔어.”
게이트웨이 사무실에서 나와 서울 집에 돌아왔을 때는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언제나처럼 엄마는 아직 취침 전이었다.
“또 왔니.”
“‘또 왔니?’는 또 뭐야?”
“또 왔으니까, 또 왔다고 묻지. 그럼, 뭐라고 물어.”
“엄마, 나 미국에서 온 거야. 퇴근하고 온 게 아니라.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
“그래. 누가 뭐랬니.”
“에엥?”
“나 비행기 타고 온 거라니까.”
“그랬겠지. 그럼, 배 타고 왔겠니.”
“엄마!”
“너 지지난 주인가도 비행기 타고 왔었고, 그 전주에도 왔었잖아. 얘, 동네 사람들이 자꾸 엄마한테 물어. 너 진짜 하버드에 간 거 맞냐고. 근데, 너 진짜 이렇게 자꾸 나와도 되는 거니? 학교는 진짜 괜찮은 거야?”
헐-
안 되겠다. 다음부터는 나와도 회사 근처에서 자야겠다.
하긴, 반년 사이 열 번도 더 나왔으니···
“나 올라가.”
“밥은?”
“먹었지.”
“그래, 그럼. 쉬어. 아참, 이번에는 며칠이나 있어?”
“몰라. 안 말해줄 거야. 안 보이면 간 줄 알아.”
“냉장고에 너 오면 주려고 김치 포장해 놨으니까, 갈 때 가지고 가.”
“아, 진짜? 아싸! 근데,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김치를 포장해 놨데?”
“지난번에 왔을 때 보니까, 왠지 금방 올 것 같더라.”
“뭐야. 우리 엄마 왜 이렇게 촉이 좋아졌어.”
“오늘 아침에 왔는데 아직까지 밖에 있다 온 거면, 일하다 왔나 보네. 얼른 올라가 쉬어.”
“알았어. 엄마도 쉬어. 내일 아침에···. 아, 맞다. 엄마, 나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소금 뿌려야 하는 거 아닌가?”
“장례식장에?”
“응, 일로 알게 된 분인데, 형님이 돌아가셔서 들어왔어.”
“아우- 저런···. 저기 문 앞에 서 봐. 소금 뿌려줄 테니까.”
“응.”
엄마의 명령에 나는 현관이 있는 곳으로 가 섰다.
엄마는 굵은소금을 내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소금 입자가 얼굴로 튀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솔직히 나는 믿지 않은 미신이었지만, 엄마와 같이 사는 이 공간에서 지켜야 하는 룰이었다.
“됐어. 올라가. 속옷은 벗어서 내놓고, 겉옷은 드라이 줘.”
“네.”
“아, 근데, 엄마.”
“응.”
“아빠가 엄마한테 특별한 문이나 공간에 대해 말한 적 없어?”
생각해 보니 정작 나는 이 질문을 엄마에게 한 적이 없었다.
조심스러웠었다.
이젠 괜찮을 것 같았다.
옥탑방으로 올라가기 전,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얘는 뜬금없이 갑자기 뭔 소리야.”
“없어?”
“무슨 문?”
아빠는 엄마에게 말해주지 않은 듯했다.
“아니야.”
“얘가 싱겁기는. 올라가 씻고 자.”
“네. 엄마도 잘 자.”
왜 말해주지 않으셨을까?
-*-
아공간 속 동쪽의 숲,
거대한 나무 안 회색문.
열리지 않는 이 문을 열기 위해 나는 금을 가지고 들어와 보기도 했고, 은을 가지고 들어와 보기도 했다.
당연히 아는 주문들은 다 외쳐 봤다.
‘열려라, 참깨!’
‘열려라, 아공간의 문!’
‘문신이시여, 렛미인.’
소용없었다.
가만히 나무 안을 둘러봤다.
문득, 성인 서너 명이 서 있어도 충분한 텅 빈 나무 속 공간이 마치 아버지 서재에 있는 비밀 금고처럼 느껴졌다.
처음 아공간의 문을 발견했을 때처럼 무언가를 바치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금을 가지고 들어와 봤고,
그게 통하지 않아 다음엔 은, 동, 백금 등 귀금속을 가지고 들어와 봤다.
한 손에 공물(?)을 들고 문고리를 돌려보기도 했다.
아무런 힌트가 없는 상태에서 내 상상력이 닿는 것들은 다 해본 듯싶다.
「“그래서 회색 문을 여셨나요?”
“네? 아···네, 열었다고는 했어요. 무슨 맹약인지 서약인지를 해야 한다나 뭐라나. 아무튼 공간의 주인과 계약하고 열었다면서 신이나 했어요.」
‘맹약? 공간의 주인과 계약?’
힌트가 생겼다.
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방법이 떠올랐다.
지금 나는 그것을 해보려고 다시 이 안에 들어왔다.
작은 칼로 손바닥을 그었다.
얕게 그은 상처 위로 붉은 피가 올라왔다.
상처가 따끔거리기 전, 피가 흐르는 손으로 회색문의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철컥-
열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문이 열렸다.
처음 마주하는 공간.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도 이 문을 마주하셨을까?
그랬다면, 열고 들어가셨을까?
언제나처럼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나는 회색문의 반대편 공간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여기는······’
마트?
“트레이더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