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71)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71화(171/190)
【171화 –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센터게이트빌딩 19층,
기업법무팀 사무실.
심란하다.
갑자기 상황이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양호락은 엘리베이터에서 비서팀 직원들을 마주쳤다.
머리가 복잡해 조용한 아침을 기대하고 나왔는데.
출근길부터 정신이 사납다.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소란이야?”
“대표님 집무실을 센터게이트빌딩으로 옮기신다고 해서요. 인테리어 업체랑 IT팀이 오전에 위 22층 공간을 점검한다고···.”
“대표님 집무실? 어느 분?”
“김한 대표님이요.”
“사직빌딩에 있는 김한 대표님의 집무실을 22층으로 옮긴다고?”
“네.”
양호락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 둘 중 누구의 집무실을 옮긴다고 했어도 놀랄만한 일이었지만, 지시한 대표가 김한이라고 하니 더 충격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
이미 복잡한 머릿속이 더 뒤죽박죽된다.
여러 질문이 추가로 떠올랐지만, 양호락은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비서팀 직원에게 물어봤자, 나오지 않을 답들이었다.
‘김한 대표님이 사직빌딩을 떠나신다고?!’
‘떠나서 센터게이트빌딩 22층으로 오신다고?!’
‘그렇다는 말은 다시 사무실에 나오시겠다는 건가?!’
그 순간, 지난주 최재민이 찾아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이재와의 합병은 물 건너갈 겁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양 변호사님, 조심하십시오. 같이 끌어내려 가지 않으시려면, 이제부터라도 거리를 두는 것이 좋으실 겁니다.”
“뭐가 어째?”」
건방지게 찾아와서는 대뜸 그런 말을 하길래, 제정신이 아닌 줄 알았다.
제 뜻대로 안 될 듯싶으니 막 질러대는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최재민의 말대로 이재와의 합병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이정후가 “무기한 연기”라는 표현을 썼지만, 양호락도 안다. 이렇게 코앞까지 진행된 일이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말은 엎어졌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그의 추측이 사실임을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그날 이후로 이정후는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있다.
이재의 석윤재 대표로부터 빗발치듯 전화가 들어오는데, 전화도 받지 않는다.
개인 비서는 병가를 내셨다고만 할 뿐이었다.
‘김한 변호사님이 사직빌딩을 떠나신다고?!’
사직빌딩은 김앤강의 시작이다.
반세기 넘게 지켜온 전통이나 다름없다.
그런 의미가 있는 공간을 떠나 센터게이트빌딩으로 오신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너무 커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최재민이 그놈은 이것도 알고 있었나? 그 정도로···.’
고작 몇 년 전엔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재롱이나 떨던 놈이었는데.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양호락은 한참 동안 책상 위 전화기를 바라봤다.
평소 같았으면 망설임 없이 당장 올라오라고 전화를 돌렸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섣불리 부르지 못하겠다.
어느새, 너무 커졌다.
“최재민이···”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변호사님. 김근용 실장입니다.
김근용 비서실장? 김한 대표님의?
“네.”
-다름이 아니라, 양 변호사님께 연락을 드리라고 해서요. 이번 주 언제 시간 되실 때, 대표님께서 성북동으로 한번 찾아오시라고 하십니다.
하늘의 부름.
마냥 기대되는 호출은 아니다.
양호락은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
서초동,
법무법인 이재 사무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했길래, 일이 이렇게 되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
“그게 갑자기···.”
합병이 틀어졌다.
배신당했던 선배를 어렵게 다시 믿었는데.
또 뒤통수를 맞았다.
석윤재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는 무슨 갑자기야! 그따위 말도 안 되는 변명 계속할 거야? 설마 오 대표가 1, 2주일 만에 마음이 변했겠어! 내가 게이트웨이 일을 신경 쓰라고 몇 번을 말했어!”
“죄송합니다.”
분풀이할 곳이 필요했다.
석윤재는 후배 이철훈을 세워놓고 소리쳤다.
“당장 가서 무릎을 꿇든, 읍소를 하든 해서 돌려놔. 오 대표를 설득해.”
“이미 여러 번 전화도 하고, 찾아도 갔는데···.”
“그럼, 또 찾아가! 집에 가서 빌어! 아니면, 오 대표 형님 산소에 가서 49재라도 드리든가!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면 클라이언트가 녹음하는 것도 모르고 있어!”
합병이 틀어진 것도 환장할 노릇인데, 클라이언트까지 빼앗긴 것이었다.
사실 합병만 아니었으면, LK든 알파빗이든 어느 쪽을 상대로든 긴 협상을 진행하면서 짭짤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케이스였다.
이정후의 부탁만 아니었어도···
석윤재의 속에서는 불이 나는 중이다.
“변호사님, 그것보다는 이정후 변호사님한테 말씀드려서···.”
쾅!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내가 이 변한테 말하는 거잖아!”
책상을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액자가 쓰러졌다.
“···.”
솔직히 이철훈은 억울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김앤강에 놀아난 선배의 분풀이를 당하는 것이 좋지 않다.
양쪽 턱이 뿔룩 튀어나온다. 어금니를 물었다.
후배의 시뻘게진 얼굴.
석윤재는 그제야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김한이 아니다. 그가 설립한 이재였지만, 십 년밖에 안 된 로펌이 김앤강처럼 이름값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후배들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다.
속 안에 불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석윤재는 삼켜야 했다.
“어찌 됐든 말프랙티스 같은 말이 나오면 곤란해지니까, 그건 막아야 할 것 아니야.”
“···.”
“오 대표를 찾아가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밀린 법률 비용은 청구하지 않는 걸로 해서 좋게 마무리라도 해.”
“···네.”
불만 가득한 후배는 볼멘 목소리로 대답하곤 돌아나갔다.
석윤재는 뻣뻣해진 뒷목을 붙잡았다.
일이 왜 이렇게 됐지?
석윤재는 휴대전화기를 꺼내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에게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받지 않는다.
‘쓰레기 같은 인간! 일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숨어버려?’
지난주, 김한 대표와의 미팅을 좀 미뤄야겠다고 이정후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냐는 질문에 내부적으로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그렇다고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를 믿었다.
그 뒤에 게이트웨이의 오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변호사 수임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알파빗하고 협상하겠다고.
상황이 이상해졌음을 직감했다. 곧바로 이정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제야 인정하는 그였다.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단다. 합병이 미뤄질 수 있을 것 같단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따졌다.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이정후는 거절했다. 잠시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성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연락이 닿질 않는다.
목소리가 이상하기는 했는데.
생전 그런 사람이 아님에도 혼이 나간 사람처럼 버벅거렸다.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메시지를 두 번이나 들은 석윤재는 양호락의 번호를 눌렀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
[양호락: 변호사님, 지금 미팅 중입니다. 나중에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이것들이 진짜 날 가지고 놀아!”
결국에는 분노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렇게 되면 합병 취소는 기정사실이다.
만약 이정후가 뒤통수를 친 것이 아니고 정말로 김앤강 내부에서 그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하나는 확실했다.
이정후는 끝났다.
‘하늘’이 그를 버린 것이었다.
뭐가 됐든 석윤재는 용서할 수 없다.
설사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이정후의 고의가 아니고 김한의 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띠리링- 띠리링-
-석 변호사님, 전화 많이 기다렸습니다.
“그랬어?”
-아이, 또 왜 그러십니까? 서운하게.
“이 사람아, 내가 언제 자네하고 한 약속 깬 적 있어?”
-없죠. 그러니까 많이 기다렸죠. 그럼, 드디어 한 꼭지 주시는 겁니까?
“어- 뭐, 만나서 얘기하자고. 오늘 저녁에 어때? 늘 보는 거기서.”
-저요 좋죠. 그럼, 저번처럼 아홉 시에 거기서 뵐까요?
“그러자고.”
-네, 그럼, 아홉 시에 거기서 뵙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따 봐.”
-네, 들어가십시오.
딸깍.
석윤재는 시사·경제지 <머니저널>의 잘 아는 김용배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전쟁은 끝나고 있었지만, 다른 누군가의 전쟁은 시작되고 있었다.
-*-
같은 시각,
광화문의 한 스타벅스.
“왔으면 그냥 사무실에서 보지. 왜 굳이 여기로 나오라고 한 거야?”
“공항 가기 전에 잠깐 들른 거야, 도 변 보고 가려고.”
도대기는 최재민을 만났다.
“그러니까, 할 말이 있으면 사무실에서 보면 되잖아. 누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야?”
“아니. 그냥, 가기 전에 이 집 커피나 마시고 가려고.”
“여기 스타벅스야.”
“달라. 미국 스벅이랑 한국 스벅이랑.”
최재민의 농담에 도대기는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싱거운 농담이나 하고 있고.
하지만, 이 모습에 그를 무시하면 크게 당할 것이다.
도대기는 잘 안다. 승부사 최재민의 본모습을.
“저번에도 그렇고, 도 변이 강태산 변호사님한테 말씀드린 거지?”
“뭘?”
“왜 또 아닌 척하고 그래? 저번에 에퀴티 파트너 미팅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다 알고 계시던데. 도 변이 ‘빅 마운틴’의 작은 새였어?”
“왜 내가 작은 새지?”
“비유잖아, 비유. 그리고 실제 작잖아.”
“뭐가?”
“에이, 알면서···흐흐흐.”
“···.”
키는 도대기가 최재민보다 살짝 크다.
“아이참, 얼굴이. 얼굴이 작잖아. 도 변 집안이 원래 다 그런가? 도하영 변호사도 얼굴이 욧따만해서는···도 변? 도 프로, 어디가?”
“쓸데없는 농담이나 하려고 보자고 한 거면, 가.”
“아- 알았어. 앉아, 앉아. 참나- 한고비 넘겨서 좀 웃자고 한 걸 가지고···. 도 변도 알지? 어쏘들한테 도 변은 인기가 없는 거.”
한고비 넘겼다.
도대기도 동의한다.
사무실을 나가야 할 뻔했으니까.
“이 변호사님 출근 안 하신다는 소식은 들었지?”
“응, 들었어. 아프시겠지···.”
“김한 변호사님이 이번 주에 에퀴티 파트너들을 소집했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
“응.”
“그나저나, 도 변은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듣는 거야? 어디 사무실 작은 새들의 모임이라도 있어?”
“왜 끼워 줘?”
“그럼 나는 큰 새를 하면 안 될까?”
같이 있으니, 자꾸 물든다. 평소 하지 않는 농담까지 하게 되고.
“듣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쏘리.”
최재민은 입술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얼마나 가 있었다고 아메리칸 제스처는.
도대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지분 조정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야.”
지분 조정이라는 말에 최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빠르기는 하지만, 예상했다.
표정이 진지해진다.
말투에 장난기는 남아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다 뺏으시려는 거 아니야.”
“그리고 대표님 방을 센터게이트빌딩으로 옮길 거래.”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뭐? 진짜?”
“오늘 아침에 인테리어 업자가 다녀갔어.”
최재민은 잠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럼, 이제 사무실에 나오신다는 건가?”
“모르지.”
“하아- ‘스카이’가 다시 출근하기 시작하면 사무실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그럼, 컴백하든가.”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다행이네. 미국 사무실이 있어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나눈 대화였지만, 도대기와 최재민 둘 다 앞으로 사무실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걸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이다.
“한 변호사는?”
“어제 들어갔어.”
“왜 같이 안 가고?”
“먼저 들어가겠대. 아, 근데, 둘이 요새 분위기가 좀 이상하던데.”
“둘?”
“응, 한 변이랑 도하영 변호사.”
한 변이랑 우리 하영이랑?
“혹시 조카한테 무슨 얘기 못 들었어?”
타인의 공간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
잠시 잊고 있던, 아직 풀지 못한 아공간의 비밀들이 나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당신을 찾아달라고,
어디선가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까톡-
[이무열: 범상아, 나 3월 초쯤에 뉴욕에 갈 일이 생길 것 같은데, 혹시 시간 되면 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