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73)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73화(173/190)
【173화 – 도시의 새 주인】
이곳에도 태양이 있었다.
구름도 있었다.
고층 빌딩이 빽빽한 거리에는 가로수도 있었고, 자동차도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미국의 어느 도시 같았다.
마치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도시에 외계인이 빔을 쏴서 그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일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 것 같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나는 안고 있던 나비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도시’를 탐험했다.
처음에는 거리만을 돌아다녔다.
전기가 공급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상하수도가 작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는 한 시간 정도만 돌아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세 시간이 넘어 있었다.
하늘에 있던 해가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배도 고팠지만, 조만간 어두워질 듯싶어 다시 쇼핑몰로 돌아왔다.
창고의 문을 통해 내 아공간으로 돌아왔다.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딱히 위험한 것과 마주하지 않았지만.
내 아공간 속 태양은 하늘 한가운데 있었다.
두 아공간의 시차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
두 번째 탐험은 18시간 뒤에 진행했다.
세 번째 탐험은 두 번째 탐험이 끝난 시각에서 24시간 뒤에 진행했고,
네 번째 탐험은 세 번째 탐험이 끝난 시각에서 12시간 뒤에 진행했으며,
다섯 번째 탐험은 네 번째 탐험이 끝난 시각에서 48시간 뒤에 진행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을 들락날락하며 두 아공간의 시차가 해 뜨는 시각을 기준으로 6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날씨는 비슷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나의 아공간 쪽이 한 시간 정도 긴듯했다.
그쪽 아공간에도 계절이 있는지는 좀 더 지내봐야 했다.
다섯 번의 탐험 동안 알아낸 정보는 시차와 날씨만이 아니었다.
차를 몰아봤고,
‘도시’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보았고,
마트의 음식을 테스트해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외의 동물과 마주쳤다.
독수리였다.
노란색 부리의 하얀 머리를 가진 흰머리수리.
마치 이곳이 자기 땅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녀석은 건물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봤다.
혹시나 나비를 노리는 것인가 해서 순간 긴장했다.
라이플총을 드는 사이 날아가 버렸다.
「이곳에도 동물이 산다.」
두 번째 탐험에서 돌아올 때는 마트에 진열되어 있던 식음료품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과일, 육류, 통조림, 시리얼, 냉동 제품을 각각 가지고 왔다.
그것들을 숲에서 생포한 동물들에게 먹여봤다.
이상 징후가 있는지 없는지를 관찰했다.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먹고 변신한 실험체는 없었다.
죽은 동물도 없었다.
세 번째 탐험에서도 식음료품들을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현실 세상의 사설 식품연구소에 맡겨 성분을 확인했다.
과일은 과일이었고, 육류는 육류였다.
가공식품들은 해당 식품들을 제조하는 업체들의 성분 표시와 동일했다.
‘도시’에서 가져온 식음료품들 테스트는 그 뒤로도 계속 반복했다.
제품을 바꿔가며 확인했고, 다른 마트에서 가지고 온 것도 확인했다.
직접 섭취해 본 것은 서른 번째 탐험에서 돌아온 다음이었다.
「나는 살아있다.」
마트에서 식음료품들을 가져오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사실은 신선식품들이 부패한다는 점이었다.
분명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신선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상해갔다.
사실 초반에 매우 조심스럽게 탐험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트의 진열되어 있던 신선식품들 때문이었다.
신선식품들은 집안의 온기와 같지 않은가. 이제 막 타고 내린 차의 엔진과도 같은.
신선식품들이 진열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며칠 전까지 그곳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방증해 준다고 여겼다.
이런 도시 자체를 혼자 세울 수 없기에 여러 명이 존재할 가능성도 열어두었고,
사람들이 아니라면 인간과 유사한 다른 지능 생명체들이 존재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신선식품이 진열되어 있다는 건 그 사람들이 혹은 생명체들이 그곳에 다녀간 시간이 짧음을 말해준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극도로 조심히 다녔다.
거의 숨어 다니다시피 하며 움직였다.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마트의 신선식품들이 부패하는데도 누가 나타나 치우지 않았다.
음식들은 그대로 계속 썩어갔다.
이주일이 지났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음식들은 썩은 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첫 탐험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썩은 음식에 벌레가 꼬이기 시작했다.
목격한 현상을 토대로 나는 가설 하나를 세웠다.
「누군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공간에 들어온 이후로는 이곳에 온 적이 없다.」
그 뒤에 내가 한 실험은 일부러 흔적을 남겨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물건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든지, 바닥에 기름을 뿌려 놓아 본다는지 등 사소한 것으로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건물 외 벽에 페인트칠을 해봤다.
총을 쏘고 자리에서 벗어나 누가 오는가 관찰했다.
풍선을 날려보기도 했고,
불을 피우기도 했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존재를 계속 테스트해 봤지만, 적어도 내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게 된 이후에는 들어오지 않은 듯했다.
일단, 문이 통하는 건물에 있는 마트에서 부패하고 있는 음식들을 치웠다.
냄새도 냄새지만, 벌레나 쥐 등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곤란했기에.
그리고 문을 걸어 잠갔다.
밤을 지내볼 시도였다.
‘혹시 밤에만 나타나는 것들이 있을까?’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가 있다.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밤에만 나타나는 괴물들을 상대로 뉴욕 맨해튼에서 혼자 생존하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거리의 상태를 봤을 때는 그럴 것 같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 만반의 준비(?)를 한 뒤 밤을 지새봤다.
꼭 인간 형태의 괴물이라는 법이 없으니까, 살짝 불안하기는 했다.
여차하면 창고로 달려가 ‘나의 아공간’으로 넘어가려고 벽에 라펠까지 준비했다.
혹시라도 그것들(?)에게 쫓길 상황에 대비해 곳곳에 함정도 설치했다.
삼일 밤을 관찰했다.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로는 조금 더 과감하게 움직였다.
물론 그렇다고 막 다닌 것은 아니었다.
숲을 탐험할 때 하는 것처럼 중간중간 안전 쉘터들을 만들어 놓고, 비상식량 및 무기들을 그곳에 준비해 두었다.
지도를 만들었고, 비상시 사용할 세이프 루트들을 확보했다.
솔직히 재미있었다.
아공간의 자연이 지루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도시는 또 다른 것이었다.
심지어 전기가 있는 도시라니.
100% 아니 99% 안전만 확보되면 해보고 싶은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쇼핑몰에 게임숍이 있었다.
그리고 도로에는,
“할리 데이비드슨!”
팻보이가 있었다.
당장 달려가 타보고 싶었지만, 일단 자제했다.
가장 안전해 보이는 험비 지프차를 골라 그것으로 도시 탐험을 계속했다.
도시 끝까지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큰 도시였다.
한 시간을 달렸는데도 끝이 나오지를 않는다.
더 달려볼지 고민하다가, 다시 베이스(창고가 있는 쇼핑몰)로 돌아왔다.
대신 근처에서 가장 큰 빌딩을 찾아 올라갔다.
“와!”
올라가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73층짜리 그 건물이 그곳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그리고 발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꼭대기 층에서는 도시의 가장자리를 볼 수 있었다.
‘끝이 있다.’
분명 엄청나게 큰 도시였으나, 끝은 존재했다.
한쪽 너머에는 ‘숲’이 있었고, 다른 쪽은 바다인지 호수인지 모르겠지만 큰물과 닿아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방향 멀리로는 산이 보였다.
그 광경을 한참을 바라본 나는 건물에서 내려와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물가로 달렸다.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려 도착한 물가.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짠 내가 났다.
「바다였다.」
무열이 형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어쩌면 형이 상상한 것처럼 이곳은 정말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도시’일지도.
이곳의 주인이었던 그가 죽고 내가 들어온 것일 수도.
아니면, 그는 죽지 않았고, 단지 들어오고 있지 않은 것일지도.
그것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고인이 되신 게이트웨이 대표의 형님이 만들어 놓은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아닐 것 같다.
평생을 한국에서 사셨던 분이 지을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솔직히 미국에 산 사람이라고 해도 이걸 혼자 만들 수는 없다.
마법을 사용했거나,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한 미래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이걸 만든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는 건가?’
마법은 내가 알 수 없고,
미래 기술이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지 않을까?
아공간의 문은 크기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도시만큼 커질 수도 있는 것일까?
잠깐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설마 사람들은 들어오지 않고 건물과 물건들만 이동되는 건가?
공간의 주인 이외에 사람은 들어올 수 없으니까?
회색(이었던) 문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건가?
그게 아니면, 나중에 나타난 것일까?
이곳이 ‘타인의 아공간’이라면, 왜 나한테 나타난 거지?
아직 열리지 않은 ‘회색문’들이 정말 있을까?
만약 이곳이 ‘타인의 아공간’이라면, 분명히 이곳 어딘 가에도 그가 살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으면 ‘그’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살던 세계로 갈 수 있지···
답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
가정에 가정만 계속할 수 있을 뿐이었다.
멀리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해의 노을을 보고 있으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해진다.
나는 차를 타고 베이스로 돌아왔다.
창고의 문을 통해 나의 아공간으로 향했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보스턴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
보스턴,
비컨 힐 아파트.
“물은?”
“응?”
“물 가지러 간 거 아니었어요?”
“아, 마셨어.”
나는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 시트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했다.
그녀의 살갗이.
“아- 좋아. 풀냄새.”
그녀는 내 몸에 코를 대고 맡았다.
“그만. 간지러워.”
“좋은 걸 어떡해!”
“하하- 간지러워.”
나는 그녀가 그녀의 뾰쪽한 코로 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양팔을 잡고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순전히 그 이유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응?”
“어떻게 그래요?”
“뭐가?”
“마치 한 달쯤 어디 여행 갔다가 온 사람처럼 나를 보고 있잖아요.”
“그건···.”
사실이니까?
“흠흠- 어, 뭐지? 바다 냄새도 나는 것 같지, 왜?”
어?!
“땀 냄새가 아니고?”
“뭐든 좋아. ···또 안아줄래요?”
다가오고 있다
봄방학이 다가오면 로스쿨 학생들은 분주해진다.
추웠던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놀러 갈 생각에 싱숭생숭해지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석달 뒤에 시작될 여름 인턴십 신청 기간이 끝나기 때문이다.
“로라, 이번 썸머 인턴십 확정했어?”
“아니, 아직.”
“어디에 지원했어?”
“커크랜드, 애덤 앤 와킨스, 스캐든, 다들 지원하는 펌들은 다 넣었지.”
“뉴욕?”
“응.”
하버드 로스쿨이라고 다를 바 없다.
취업률 99%의 하버드 로스쿨 학생들이라도 좀 더 큰, 좀 더 좋은 로펌에 들어가고 싶은 공붓벌레들이기에 그들 역시 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눈에 띄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너는, 나디아? 너는 이미 확정됐지?”
“나도 아직.”
“진짜?!”
“지원서는 겨울방학 끝나고 바로 넣었는데, 아직 안 왔어.”
로스쿨은 직업 학교이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들어오는 곳.
그리고, 변호사 커리어의 시작은 3년 후 졸업 시점이 아닌 1학년이 끝나고 바로 시작되는 여름방학 인턴십에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에 넣었는데? 너는 당연히 확정되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오겠지, 뭐. 오면, 어디를 제일 가고 싶은데?”
“사실 나는 한 군데밖에 지원하지 않았어.”
“진짜? 한 군데밖에? ”
“응.”
비공식 동기생 선정 ‘올해 하버드 로스쿨 신입생 중 제일 성공할 것 같은 학생 1위’인 나디아 역시 아직 인턴십 확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에 로라는 살짝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도, 한 군데밖에 지원하지 않다는 말은 좀 의아하다.
“어디? 어디에 지원했는데?”
‘어디든 그녀 정도면 당연히 들어가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원한 로펌 이름을 말해주었을 때는 그녀가 왜 다소 불안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카이저 더튼 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