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74)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74화(174/190)
【174화 – 다가오고 있다】
뉴욕,
맨해튼,
화이트 앤 체이스와 미팅을 끝내고, 재민과 범상은 새로 이사 올 오피스를 방문했다.
“어때? 괜찮지?”
화이트 앤 체이스 사무실에서 100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다.
6번가 1300번지 11층.
“좋네요.”
“저기 코너로 센트럴 파크도 보여.”
워낙 고층 빌딩이 많은 곳이라, 11층에서 보인다고 해 봤자, 나무 몇 그루가 고작이지만, 그 풍경이 월 몇천만 원짜리 뷰.
드디어 ‘빅 리그’에 입성하는 대한민국의 김앤강이다.
이 ‘아메리카의 대로’에 뉴욕 빅 로펌들의 사무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 꽤 비쌀 것 같은데···저희 이거 감당할 수 있나요?”
“무슨 소리야? 나는 한 변만 믿고 질렀는데. 잘 부탁해.”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다.
아람코, 삼전, 알파빗. 범상이 모셔(?) 온 클라이언트들이 없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 또 부담을 주고 그러세요.”
“부담? 무슨 부담? 그냥 늘 하던 대로만 해달라는 건데. 여기가 한 변이 쓰게 될 방이야.”
범상은 김앤강 뉴욕사무실의 또 다른 코너에 있다.
‘코너’라고는 하지만, 한 층을 전부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건물 전체를 두고 보면 가운데에 있는 방이다.
아메리카의 대로가 내려다보인다.
“좋네요.”
“좋지? 도 변은 바로 옆 방이야.”
“아, 진짜요? 저쪽 코너가 아니고요?”
“응. 지난주에 와서 먼저 골랐어. 51가 쪽으로 붙은 코너 방을 주려고 했더니, 해가 안 들 것 같다고, 이쪽으로 하겠대.”
맞는 말이다.
51가 쪽보다는 이쪽이 방향은 좋다.
하지만 방이 작아진다.
정말 방향 때문만일까?
“그러면 도 변호사님이 이 코너 방을 써야 할 것 같은데요. 어찌 됐든 저보다 김앤강에 먼저 들어오셨으니까···.”
“싫대.”
“네?”
“안 그래도, 나도 그렇게 물었는데, 싫대. 어차피 진짜 코너도 아니고, 자기는 작은 방이 더 좋대. 아, 그리고, 그 말도 덧붙였다.”
“무슨 말이요?”
“큰 방 쓰는 사람들이 돈 더 많이 벌어와야 한다고.”
범상은 안다. 그것이 빈말이었음을.
절대 얹혀 가는 걸 좋아할 여자가 아님을.
“갑자기 그냥 코리아타운 근처에 있는 지금 오피스가 더 마음은 편할 것 같은 느낌이···.”
“왜 그래? 약한 모습을 보이고. 한 변답지 않게.”
최재민은 든든한 최애의 어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을 이었다.
“잘 부탁해, 한 변-.”
“아- 좀 무거운데···.”
같이 보낸 세월이 어느덧 6년이다.
많이 친해졌다.
“아참, 스프링 브레이크에 뭐 할 거야? 한국 가나?”
“아니요.”
“하긴, 지겹지? 나도 하도 왔다 갔다 했더니 비행기 타기가 싫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와이프랑 애들이 이번에 며칠 들어오는데, 한 변만 괜찮으면 우리가 보스턴으로 올라가서 같이 식사나 할까, 했지. 어때?”
“죄송합니다.”
“왜? 어디 가?”
“네.”
“어디?”
“다란이요.”
“다란? 다란이 어디···아! 사우디 다란? 아람코 본사?”
“네.”
“출장?”
“안 그래도, 이걸 출장이라고 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요. 아니라고 하자니, 가서 일 이야기를 할 듯싶고. 그렇다고 출장이라고 하자니, 저쪽에서 비용을 다 댄다고 해서요.”
잠깐 할 말을 잇지 못하는 재민.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흠- 그러면 그냥 사적으로 가는 거라고 봐야지. 영업이지, 뭐. 주말에 클라이언트랑 골프 치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있다가 오는 거야?”
“네, 다란이랑 수도 리야드 이렇게 두 곳에 있다가 올 것 같아요.”
“길게 가네. 아무튼 잘 부탁해요, 한범상 변호사님. 아람코가 어디 가지 않게.”
범상의 어깨에 얹혀 있는 재민의 팔이 그를 힘차게 잡아당긴다.
-*-
보스턴,
비컨 힐 아파트.
하영은 오늘도 범상의 아파트에 있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통화 중인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남자친구는 지금 MG 사(社)의 제너럴 카운슬 토마스 뮐러랑 통화 중이다.
“토마스, 지난번에 저한테 말씀하신 것 있잖아요, 아람코와 논의해 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이번 스프링 브레이크에 사우디, 다란에 가게 될 것 같은데, 만약에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번에 갔을 때 제가 먼저 언급을 해도 될까요?”
MG의 제너럴 카운슬 토마스 뮐러.
이 사람과의 인연도 근 6년이다.
김앤강 입사하고 첫 해외 출장이었던 미시간, 디트로이트 협상에서 만났었다.
-오! 그런 기회가 생겼다고? 알았어. 내가 우리 회사 개발팀 디렉터랑 이야기를 해볼게. 마지막으로 내가 듣기로는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을 때가 거의 다 되었다고 하기는 했어.
첫 만남에서도 느꼈지만, 그냥 판례들만 들여다보는 변호사가 아닌 분이다.
경영에 관심이 많고, 나이가 칠순을 넘었음에도 사장직을 노리고 있다.
단순히 회사에 분쟁이 생겼을 때만 나서는 양반이 아니다.
적극적이고 지략적이다.
“네. 그러면 알아보고 연락해 주세요. 자세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제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자료를 주시면 더 좋을 것 같기는 해요.”
-물론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허튼소리 같을 뿐이야.
여전히 감도 좋고 건강하시다.
범상은 지난번 포드와의 협상 때 토마스 뮐러 이사의 도움을 받았었다.
당시 토마스는 포드의 전기 배터리 수급 상황에 대해 범상에게 귀띔해 주었고, 덕분에 범상은 포드가 미국 정부의 중국 제재를 피해 값싼 배터리를 수입할 방안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찾고 있다는 정보가 아닌 구체적인 숫자들을 알게 되었다.
내부정보였다.
포드의 내부정보를 토마스 뮐러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까지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법정에서 쓸 자료도 아니었다.
범상은 자료를 토대로 포드가 원하는 것과 삼전이 원하는 것을 매칭해줄 수 있었다.
물론 범상이 없었어도 둘이 연결될 수는 있었다.
아마도 서로 눈치 게임을 하느라 수개월이 걸렸을 것이다.
범상은 월매출 몇천억 원씩 되는 두 회사의 수개월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아껴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어려우시면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회는 이번만 있는 건 아닐 것 같아요.”
비즈니스에 공짜는 없다.
그렇게 유용한 정보는 당연히 무상이 아니다.
지략적인 토마스 뮐러 이사는 범상에게 자료 제공의 대가로 하나를 부탁했다.
그가 아람코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였다.
앤디 나세르도 있었지만, 감이 좋은 그는 범상을 통해서 접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을 때, 마침 먼저 부탁을 해온 한범상이었다.
-아니야. 이번이 좋은 타이밍인 것 같아. 내가 개발팀 디렉터하고 이야기하고 내일 중으로 연락해 줄게.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개발팀 자료를 자네한테 보내주려면, 이제는 정식으로 수임 계약서를 체결해야 할 듯싶은데.
“네. 그건 김앤강 뉴욕 오피스로 보내주시면 돼요. 아니면, 저한테 보내주시면, 제가 토스하겠습니다.”
-오케이. 그건 뭐 문제없겠지. 형식적인 것일 뿐이니까.
“네.”
-그래, 그럼. 내일 또 전화하지.
“네, 기다리겠습니다.”
딸깍-
토마스 뮐러와 통화를 마친 범상은 휴대폰을 옆 탁자 위에 놓고, 전화가 오기 전 대화하고 있던 여자친구에게 다가갔다.
“미안해요.”
하영은 사과할 필요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MG 사(社)의 의뢰를 따내신 거예요?”
“아···이걸 따냈다고 하는 표현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의뢰를 맡기겠다고 하네요.”
“우리가 아니라 한 변님에게인 것 같은데.”
“저한테 맡기는 게 우리한테 맡기는 거 아닌가요?”
범상은 하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칼 냄새를 맡았다.
전화가 오기 전에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그녀가 먼저 말해주기를 희망하며 나비가 자주 하는 플러팅을 시전했다.
“아, 그래서, 아쉽지만, 다란에는 같이 못 갈 것 같아요.”
통했다.
그녀와 나누고 있던 대화가 기억났다.
봄방학 스케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쉬워요?”
“당연히.”
하영은 뺄 수 없는 별도의 스케줄이 있었다.
효경인더스트리-듀혼 분쟁을 해결하면서 그녀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었다.
앨런 앤 폴의 선배 수연.
그녀와의 약속이 봄방학 주에 잡혀있다.
단순한 식사 약속은 아니었다.
“도움을 줬던 카이저 더튼의 변호사를 함께 만나기로 해서 뺄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사과할 일 아닌데.”
“대신, 공항에 나갈게요? 몇 시 비행기로 도착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싫어요. 나갈 건데요-”
“아···앤디한테 물어볼게요. 전세기라서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
“와- 한 변님은 이제 전세기를 타고 다니는 변호사시네. 갑자기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지?”
“왜 그래요, 또. 아까는 최 변호사님이 그러시더니, 하영 씨까지.”
“최 변호사님이 뭐라고 하셨는데요?”
“그냥, 뭐, 아람코 잘 부탁한다···삼전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한 변호사님.”
“진짜, 그만 해요.”
“아! 그럼, 이제 연봉 협상도 한 변님이랑 해야 하는 건가?”
“아, 진짜.”
범상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진짜로 짜증이 난 것은 아니었다.
하영은 비록 흉내라도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이 좋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담담하고 차분한 그가 자기 앞에서나마 편해지면 좋겠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하영은 범상의 품으로 들어갔다.
“뭐지, 이건?”
“좋아.”
“?”
“···자기가 화낼 때.”
“그건 좀 변태적인···.”
“몰랐어요? 나 마조 성향이 있는데.”
“어?!”
“하하하하- 놀랐어요?”
모든 것이 그저 좋을 때.
“그럼, 나는 새디 성향을 키워야 하는 건가?”
그들에게는 또 다른 빌런이 찾아오고 있었다.
마커스 혼비
그런 말이 있다.
맨해튼 상공에서 돌을 떨어뜨리면 7분 1이 확률로 변호사의 머리에 떨어질 거라는.
또 그런 말도 있다.
맨해튼에서 길을 잃은 당신이 괜찮은 커피숍을 찾을 확률보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을 확률이 높을 거라는.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 망정, 둘 다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미국 변호사 협회에 등록된 약 1,300,000명의 변호사 중 15%인 200,000명이 뉴욕시에서 일하고 있고,
매출 규모 기준으로 전 세계 100위 안에 드는 국제 로펌들의 70%의 사무실이 모여있는 곳.
「변호사들의 도시, 뉴욕.」
“흰색 구두의 변호사들” <카이저 더튼 힐>은 그곳의 터줏대감이었다.
“미스 슬레인, 당신은 성적 취향이 어떤 사람입니까?”
<카이저 더튼 힐>의 소송팀 변호사 마커스 혼비는 만지작거리고 있던 하얀색 만년필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21세기가 시작되고도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 흰색 구두를 신고 법정에 나타나는 <카이저 더튼 힐> 변호사는 없지만, 그곳 변호사들은 전부 ‘Kaiser’라고 새겨진 하얀색 만년필을 지니고 다녔다.
그의 신문에 인상을 찌푸린 사람은 비단 증인석에 앉아있는 로라 슬레인뿐만이 아니었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상대방 변호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의를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