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77)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77화(177/190)
【177화 – 체급 차이】
보스턴,
비컨 힐 아파트.
범상이 도착했을 때, 하영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띠리링- 띠리링-
씻고 아공간으로 향하려는 찰나, 앤드류 나세르로부터 전화가 들어왔다.
“헤이, 앤디.”
-내가 너무 늦게 걸었나? 뉴욕? 보스턴?
“보스턴.”
-오늘 카이저 더튼하고 미팅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다녀왔어.”
-뉴욕에서 미팅하고 보스턴으로 넘어간 거야? 플래시가 따로 없네. 그래서, 미팅은 어땠어?
범상은 이미 앤드류에게 자신의 의견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변호사들끼리 미팅이 그렇지, 뭐. 내가 보낸 메일 못 봤어?”
-봤어. 보고, 확인할 것 하고 오마르 사예드와 가깝게 지냈던 직원들이랑도 얘기를 좀 하고 하느라, 늦었어.
제법 긴 이메일이었다,
오마르 사건 관련해서 범상의 의견이 담긴.
-카이저 더튼의 담당 변호사에게도 네 의견을 전달했어? 마커스 혼비라고 했나?
“못 했어. 내가 생각하는 전략하고는 너무 방향이 달라서···. 얘기를 꺼내보기는 했는데, 관심이 전혀 없는 것 같더라고.”
-안 그래도, 네가 보내준 의견을 검토한 후에 아람코 US의 새뮤엘이라고 그쪽에 일을 맡긴 친구랑 대화를 좀 나눠봤는데, 고집이 있는 변호사 같던데.
“응. 변호사로서 고집이 있는 건 장단점이 있는 거니까.”
-그렇기는 한데···한,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래?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딱히 바라는 것 없는데.”
앤드류 나세르는 범상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의 전략이 마음에 든다.
다만, 그가 관리했던 일이 아니라서, 그 역시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지 망설임이 있다.
-사실 다란에서 부사장님이 언급하셨을 때만 해도 그렇게 깊게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네 의견서를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어. 아람코 US에 있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좀 나눠보니까, 멀리 봤을 때는, 한, 너의 전략이 나은 것 같아. 오마르 사예드 일을 이렇게 지금 덮는 게 어쩌면 리스크를 키우는 일일 수도 있겠어. 그래서 말인데, 나한테 보내준 이메일을 정식 의견서로 만들어 보내줄 수 있어?
“그건 어렵지 않지.”
-그럼 보내줘. 그걸 가지고 내가 아람코 US 대표랑 얘기를 해볼 테니까.
“알았어. 바로 보내줄게. 그런데 말이야, 앤디.”
-응?
“거기 이메일에도 짧게 썼는데, 종국에는 오마르 사예드가 하고 있던 일을 차질 없게 이어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을 것 같아.”
-봤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 부분에 있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필요하면 연락 줘. 바로 달려갈 테니까.”
-플래시처럼?
그것보다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아무튼 의견서를 보내주면 내가 내부적으로 얘기하고 난 뒤에 다시 연락할게.
“알았어.”
-그럼, 나중에 또 통화하자고.
“그래.”
딸깍.
오마르 사예드는 아람코 US에서 로비를 담당하는 임원이었다.
사우디 아람코의 미국 내 사업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는 정치인을 지지하고, 장애가 되는 정책은 통과되지 않도록 방안을 찾는 인물.
그런 그가 여비서를 성추행했다.
추잡스러운 일이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사건.
변호사는 그런 일도 맡아야 한다.
마치 의사가 죽어가는 범죄자를 살려야 하는 것처럼.
그 나라의 합법적 시민은 정당하게 변호 받을 권리가 있기에.
카이저 더튼은 이런 소송에 경험이 많은 로펌이었다.
그래서 딱히 훈수를 둘 의도는 없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아무런 말 없이 나올 수는 없었다.
카이저 더튼은 속전속결로 합의를 본 후에 조용히 무마시키려는 전략을 구상 중이었다.
해당 사건만 본다면 하나의 합리적인 전략.
다만, 언제나처럼 범상은 좀 더 큰 그림을 살폈다.
카이저 더튼의 방식으로 합의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러한 의견을 담아 앤디 나세르에게 메일을 보냈다.
띠리링- 띠리링-
앤디와 통화를 마친 범상은 MG 사(社)의 제너럴 카운슬 토마스 뮐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헬로.
“헬로, 토마스. 제가 너무 늦은 시각에 전화한 건가요?”
-무슨 소리야? 이제 여덟 시밖에 안 됐는데. 나를 늙은이 취급하는 거야?
“하하, 그런 거는 아니고요. 퇴근하셨다면, 내일 다시 전화를 드리려고 물었어요.”
-운이 좋네. 아직 회사거든. 회사가 아니었어도 받았겠지만. 무슨 일이야? 아, 그전에 이 말부터 하지. 앤디로부터 전화를 받았어. 다란에서 우리 쪽 제안에 설명을 아주 잘해주었다고?
“아람코 부사장님께서 관심이 많았어요. 덕분에 프레젠테이션은 수월했고요. 조만간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파트너십과 관련해서 좀 더 자세한 협의를 하자고 할 것 같아요.”
-기대할게. 언제나 기대 이상을 해주는 자네지만 말이야.
하나씩 쌓아 올린 경력은 커다란 신뢰를 만든다.
범상이 해결한 사건들을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었어도 6년 전 디트로이트 회의 때부터 시작된 관계는 이제 더 견고해졌다.
“무엇을 좀 여쭤보려고 연락드렸어요.”
-무엇이든,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거라면.
“로비 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좀 있어서요.”
-로비?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알아야 하는 부분.
···
철컥-
하영이 엑스트라 키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범상은 이미 통화를 마치고 그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 이 냄새는 설마···!”
“잘 다녀왔어요? 힘들었죠.”
“네- 갑자기 교수님이 뭘 부탁하시는 바람에···근데 이 냄새 삼계탕 맞죠?”
얼마 전부터 경복궁 <토속촌> 삼계탕을 먹고 싶어 했던 그녀였다.
“얼른 씻고 와요. 준비해 놓을 테니까.”
“맛있겠다! 나 손만 씻고 와도 돼요? 점심부터 하나도 못 먹었어요.”
“그래요.”
화장실로 후다닥 달려간 하영은 정말 손만 씻고 돌아왔다.
배가 진짜 고픈 모양이다.
평소 같았으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앉았을 텐데.
어느새 탁자에 앉아 양손에 수저를 들고 있다.
범상은 닭 한 마리가 담긴 뚝배기를 하영 앞에 놓았다.
“어머! 뭐예요? 뚝배기도 샀어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어서.”
“흐음- 냄새가 너무 좋은데요? 먼저 먹어봐도 돼요?”
“당연히.”
하영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먼저 떠먹어 본다.
그런데, 익숙한 그 맛이다.
들깨와 땅콩 등 견과류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어?! 이거 토속촌 삼계탕이랑 맛이 똑같은데!”
똑같겠죠. 거기서 포장해 왔으니까.
“뭐지? 왜 똑같은 거지?”
“맛있어요?”
“네! 너무!”
“다행이네요.”
“이거, 범상 씨가 만든 거예요?”
“그럼, 내가 한국에 가서 포장이라도 해왔을까 봐요?”
“그럴 수는 없다는 걸 아는데···맛이 너무 똑같아요. 어떻게 했어요?”
“유튜브에 나와 있더라고요.”
“아무리 레시피가 나와 있어도 이렇게 만들기 쉽지 않잖아요! 쉬운 요리도 아니고, 삼계탕인데···이거 정말 범상 씨가 만든 거예요?”
좀 찔리지만.
“네.”
“와- 너무 맛있다! 범상 씨!”
“왜요?”
“요리를 잘하는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예요, 정말!”
“맛있어요?”
“네!”
“먹고 싶었던 거 맞죠?”
“네! 엄청.”
그럼, 됐어요.
“아- 행복해.”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머핀 하나에 커피 두 잔밖에 없었던 하영은 그 뒤로 삼계탕을 다 먹을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맛있어서. 감동해서. 행복해서.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고 난 후에야 그녀는 범상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좋았어요.
“아, 맞다. 한 변님 오늘 뉴욕 사무실에 갔다 왔지. 뭐, 특별한 일 있었어요? 요새 학교 일이 너무 바빠서 무슨 일로 간 건지도 못 물어봤네.”
“딱히 없었어요.”
특별한 일 같은 건.
지금, 이 순간에 얘기해야 할 만큼.
-*-
일주일 뒤,
카이저 더튼 힐 사무실.
며칠 전, 마커스 혼비는 아람코 US의 새뮤엘 존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오마르 사건 관련해서 내부적으로 카이저 더튼의 전략을 재검토 중이니 잠시만 진행을 보류해 달라는 지시였다.
새뮤엘 존스가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뻔했다.
그 한국인 변호사가 찾아와 미팅을 하고 돌아간 지 사흘 만에 내려온 요청이었다.
그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분명했다.
“피해자와 속전속결로 합의하는 데에는 분명 메리트가 있습니다. 다만, 기록을 보니까, 이런 사건이 이번 한 번만이 아닌 것 같던데. 전후 상황을 자세하게 파악해서 무엇이 아람코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인지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한 뒤에 합의를 진행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그가 미팅에서 했던 말이었다.
‘지가 뭘 안다고. 뉴욕주 변호 자격은커녕 미국 법정에 서 본 적도 없으면서.’
미팅 당시에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사흘 만에 클라이언트로부터 저런 지시가 들어온 것이었다.
마커스 혼비는 자존심이 상했다.
‘외국인 변호사’의 조언 따위에 흔들려 카이저 더튼 소송팀의 파트너인 자신의 의견을 보류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거절했다.
자신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고.
만약 다른 변호사한테 가려면 지금이라도 가라고.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후회할 거라고.
콧대를 세웠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똑똑-
“혼비 변호사님?”
“왜?”
어쏘 변호사가 들어왔다.
“아람코 US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너한테?”
“네···.”
“뭐래?”
“그게···오마르 사건 수임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
‘하룻강아지’ 마커스 혼비는 한범상의 체급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밀리언 달러 스크래치
카이저 더튼 힐 사무실.
소송팀 시니어 파트너 패트릭 베넷은 주니어 파트너 마커스 혼비를 불렀다.
오마르 사건 관련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된 거야?”
“저희 전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수임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그런 징조가 처음부터 있었어?”
“세컨드 오피니언을 구했는데, 그쪽으로 간 듯합니다.”
패트릭 베넷은 마커스 혼비를 신임했다.
본인 실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일 처리가 빠르고 말재주가 있는 후배였다.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다음 레벨로 올라갈 수 있는 친구라 여겼다.
여태까지는.
“괜찮은 거야?”
“다시 돌아올 겁니다.”
“확신해?”
“옙.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피해자랑 조속히 합의하지 않으면, 상황이 더 꼬이게 될 게 뻔합니다.”
“클라이언트 담당자에게 분명하게 설명했어?”
“네.”
“그런데도 세컨드 오피니언 쪽으로 기울었단 말이지?”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그랬지?
“아람코 부사장하고 친분이 있는 변호사인 모양인데, 아무래도 사건을 빼 가려고 일부러 우리와 상충하는 의견을 제시한 것 같아요.”
“상충하는 의견? 그럼, 피해자랑 합의하지 말고 소송으로 가자고 말했다고?”
“그때 사무실로 찾아와서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종합해 보면, 그러자는 걸 겁니다.”
“만나서 얘기를 나눴다고?”
“네.”
패트릭 베넷은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그럴 수 있다.
변호사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으니까.
사내 정치가 개입되면 누가 봐도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다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데 클라이언트가 하자는 데로 하지 않은 이유는 돌아올 거라는 자신이 있어서라는 말이지?”
마커스 혼비가 자존심을 내세울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넵. 아랍계 남자 상사 대 스무 살 백인 여성이에요. 미국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소송이에요. 판결로 가면 100%로 집니다. 상황이 꼬이면 돌아올 겁니다.”
이 사건 하나를 잘 마무리한다고 아람코가 카이저 더튼에 큰일을 주기 시작하지 않을망정, 쓸데없는 걸로 기싸움을 부리다가 사건을 놓치는 허튼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상관없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호기를 부리는 주니어 파트너에게 그래도 주의하라고 잔소리하려던 패트릭 베넷은 그만둔다.
지금까지는 잘해오던 후배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