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78)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78화(178/190)
【178화 – 밀리언 달러 스크래치】
시니어 파트너와 간략하게 면담을 나눈 마커스는 회의실로 향했다.
앨런 피트 케이스 관련해서 동기이자 상대방 변호사인 마크 스웨인이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카이더 더튼 힐 소송팀 회의실.
“잘 있었어, 마크? 마그네슘을 잘 챙겨 먹고 있나 보네. 얼굴이 좋아 보이네.”
언제나처럼 상대를 깔보는 식의 농담으로 시작하는 마커스 혼비.
그런데, 동기가 여유롭다. 반대편에 앉아있는 마크 스웨인의 얼굴에는 평소답지 않게 능글맞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는 너는 핼쑥해 보인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
“하하하- 오기 전에 한 대 피우고 온 거야? 용기를 얻으려고?”
“너는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한 대 피우나 보지?”
이상할 정도로 기세가 좋다.
패국의 사신처럼 비장한 모습을 하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발랄하기까지 해 보인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마커스 혼비는 협상의 시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합의하자고 찾아온 거야?”
“아니.”
“그러면 왜 왔어? 사건이 없어서 이런 식으로 타임을 쓰려고 온 건가?”
“도발해봤자 소용없어. 합의 안 해줄 거니까.”
“네 클라이언트가 정확히 알기는 아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텍스-프리 백만 달러 합의금 따위는 꿈도 못 꿀 거라는 걸.”
“너는 니가 다 아는 것 같지? 세상에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 있고, 네가 부르기만 하면 네 손에 들어올 것 같지? 틀렸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어. 예를 들면, 네가 잊어버린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가치.”
“오- 마크, 마크, 마크. 뭐 하자는 거야? 네 순진한 클라이언트가 불쌍해지려고까지 하잖아.”
“나는 네가 불쌍해, 마커스.”
“마크, 네가 아직도 모르는 것 같으니까, 동기로서 내가 얘기해줄게. 세상에 모든 것에는 가격이 매겨져 있어. 그건 사실을 넘은 진리야. 우리 변호사들의 임무는 모두가 행복한 딜이 될 수 있도록 흥정하는 것이고.”
마크 스웨인은 동기 마커스를 바라봤다.
학교 다닐 때는 이렇게까지 속물인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닌가. 본성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었나.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본데. 그럼, 네 방식대로 설명해 주지. 마커스, 우리 클라이언트의 존엄성을 사려면, 1억 달러를 내야 할 거야.”
살 수 없다는 이야기.
“대신 용서를 원하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정중히 사과해. 그러면 재판부에 선처를 구하는 편지 정도는 써줄 수 있으니까.”
“그러고 나서 백만 달러를 내라고? 사과도 받고 백만 달러도 받겠다? 그럴 수는 없지. 존엄성을 지키든지, 돈을 받든지. 선택해.”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역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예일대 로스쿨 동기 마크 스웨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크, 후회할 거야. 장담하지. 네 클라이언트가 증언대에 서는 순간, 그녀를 희대의 창녀로 보이게 해줄 테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쪽으로는 재주가 있는 너니까. 물론, 아닐 수도 있고.”
“아니, 절대 그렇게 만들어 주지.”
그의 말을 반박하려던 마크 스웨인은 마커스 혼비의 표정을 보고 그만둔다.
재미있다.
녀석이 흥분해 있다.
보통은 반대인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스웨인은 주제를 돌렸다.
사실 들어올 때부터 그가 히죽거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버네사를 만났다며?”
“!”
예일대 로스쿨 동기 버네사,
도하영.
마크 스웨인은 마커스가 하영에게 호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안다.
마크를 글로리아(수연)와 오래 사귀었었다.
“널 기억도 못했다며?”
“···.”
“하하하- 자존심 좀 상했겠어. 오- 마커스, 마커스, 마커스.”
“할 말 다 했으면 그냥 꺼져.”
“그러는 중이었어. 아, 근데, 그 얘기는 들었어? 버네사의 남자친구가 보스턴에 같이 와 있다는 이야기. 클라이언트가 아람코라지? 이름이 한···”
그 이름을 여기서 또 듣게 될 줄이야.
이번엔 진짜 긁혔다.
하지만, 욕설을 내뱉기 전, 동기 마크 스웨인은 이미 사무실을 나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퍼진 미소가 등 뒤에서도 보이는 것 같았다.
마커스 혼비의 미간에는 굵은 주름이 파였다.
밀리언 달러 스크래치였다.
얼마 전 버네사와의 만남에서도 받았던.
-*-
“네? 카이저 더튼에서 만난 변호사의 이름이 마커스 혼비였다고요?”
비슷한 시각, 보스턴에 있는 범상과 하영도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몰랐네요, 그분이 하영 씨 친구였는지는. 알았으면 인사라도 제대로 했을 텐데.”
“친구요? 아니에요. 수연 언니가 사귀었던 남자친구랑 친구였지, 저는 잘 몰라요.”
“아, 그래요?”
“네.”
“그래도, 얼마 전에 만났다면서요. 봄방학 때 뉴욕에서.”
“언니가 효경인더스트리 사건에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서 누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나갔는데, 거기서 봤어요. 학교 다닐 때 몇 번 같이 어울리기는 했는데, 친하지는 않았어요.”
그랬다.
예일대 로스쿨 시절, 하영은 마커스 혼비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더더욱.
“잘생겼던데···.”
“누가요?”
“마커스 혼비 그 친구.”
“그래요?”
“아니에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언니도 그런 소리를 하던데.”
“잘생겼어요. 금발벽안의 미남.”
“네?”
“아, 그러니까, 제 말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백인 미남 스타일이라고···.”
“그런 스타일 좋아해요?”
“예? 아니요! 제가 왜 남자를···저는 여자를 좋아하죠!”
“아- 그렇구나. 한 변호사님은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네에? 당연하잖아요. 그러니까 도 변호사님을···. 도 변호사님은 남자를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아닌데.”
“??”
“나는 한범상을 좋아하는 건데.”
한 방 먹었다.
···
“근데, 상황이 살짝 껄끄럽게 된 건가.”
“왜요?”
“마커스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우리가 가져오게 된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려서요.”
“의견이 달랐다면서요. 아람코는 범상 씨 의견을 선호했고.”
“그렇기는 한데···.”
“그럼 된 거 아닌가? 설마 껄끄럽게 됐다고 말한 게 저 때문이에요?”
“음···네. 앨런 앤 폴의 수연 언니라는 분하고 또 같이 만나게 될지 모르고, 그러면···.”
“딱히 또 만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게 있나? 그걸 껄끄러워하면 그 사람이 웃긴 사람 같은데요.”
하영의 반응에 범상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녀에게는 얼굴만 아는 정도의 동창이었을 뿐.
-*-
퍽!
마크 스웨인과 미팅을 마치고 방에 돌아온 마커스 혼비는 책상 귀퉁이를 발로 찼다.
자존심에 금이 갔다.
‘하필이면 그 자식이 남자친구라니···.’
얼마 전, 마커스 혼비는 도하영(버네사)을 만났다.
학창 시절 마커스는 하영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음습하게 혼자 흠모해 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마음 한구석으로 늘 궁금했던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가 미국에 왔다는 소식을 글로리아(수현)로부터 듣고는 기회가 오겠구나, 기대를 가졌다.
그러던 중, 마침, 그녀가 맡았다는 사건의 FBI 조사 관련해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생겨 그것을 빌미로 자연스럽게 만남 주선을 요청했다.
당연히 자신을 기억할 줄 알았다.
가깝게 지낸 것은 아니었어도 와인 앤 치즈 등 파티에서 대화도 나눈 적이 있고 마크, 글로리아와 함께 같이 어울렸던 적도 있었기에.
그런데,
「“마커스 셸비? 마커스 셸비 맞지?”」
그녀는 성(姓)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다.
7년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나고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진짜 근사한 남자야. 못 하는 게 없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가 아람코 부사장이 보낸 변호사였다.
그 남자친구는 마커스에게,
「“전후 상황을 자세하게 파악해서 무엇이 아람코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인지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한 뒤에 합의를 진행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라고, 말했다.
쿵!
책상 귀퉁이를 발로 찬 것만으로는 모자랐던 그는 이번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자존심이 상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일도 사랑도 모두 빼앗긴 기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멍청한 짓까지 할 생각은 없었던 그였다.
진짜 믿었다. 상황이 꼬여 아람코가 사건을 들고 다시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그때 확실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누가 옳았는지, 누가 더 잘난 남자인지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기다리던 그런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한 달도 채 지나기도 전에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났고,
아람코는 한범상의 조언대로 오마르 사예드의 범죄를 감추는 대신 사과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네트워크
아공간 속 도시에는 내가 아는 현대 세상의 편리시설들이 다 존재했다.
없는 것은 단 하나, 인터넷뿐이었다.
「도시 전체를 아공간 안으로 가지도 들어온 것이다.」
라는 가설을 확인해 보기 위해 미국의 주요 도시들과 비교해 봤다.
아공간 속 도시는 그것들을 닮았으면서도 닮지 않았다.
미국으로 한정한 이유는 도시의 간판들이 대부분 영문으로 되어 있고, 미국에만 존재하는 상점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캐나다와 영국, 호주의 유명 대도시까지 비교해 봤지만, 내가 사는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도시였다.
더 흥미로운 점은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같은 대도시의 상징적인 건물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누군가가 이 안에 이 도시를 지었다」라는 가설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보다 ‘어떻게’라는 질문의 답이 더 궁금했다.
‘그렇다는 말은 내 아공간에도 이런 것들을 지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나는 꾸준히 그리고 안전하게 도시를 탐험했다.
여전히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막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조금씩, 천천히 영역을 넓혀갔다.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 확인한 구역과 확인할 구역을 체크해 나갔다.
쇼핑몰, 학교, 병원, 공원 등등.
정말이지 그 도시에는 다 있었다.
사람들만 빼고는.
그렇게 한 구역씩을 탐험하다가 아주 유용한 건물을 발견했다.
“캐피톨 빌딩?”
미국 국회의사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