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85)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85화(185/190)
【185화 – 혼자만의 폭격】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면 한 변호사님께서 오실 겁니다.”
김앤강의 사무실은 크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넓다는 착각마저 든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만들어 놓은 회의실.
사이즈가 크지는 않아도 고만고만한 일반 중소 로펌들 사무실과는 다르다.
안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한범상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로이 샌더스 변호사님. 한범상이라고 합니다.”
로이 샌더스는 내심 흠칫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이라고는 들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어려 보였다.
애를 상상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수준의 법률의견서를 쓰는 변호사라면 경험이 많은 변호사일 거라 여겼는데···
“만나서 반갑습니다. 카이저 더튼 힐의 로이 샌더스입니다.”
인사는 간략하게 하고 넘어갔다.
상대를 파악하고자 사설을 길게 가져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PIC의 합의 제안을 거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앉기가 무섭게 로이 샌더스는 오늘 방문의 본론을 꺼냈다.
다행히, 상대 역시 예열용 긴 사설이 필요 없는 변호사였다.
“거절했습니다.”
“클레임을 재접수했을 당시에 청구했던 금액, 이십사만 달러 전액을 합의금으로 제안했는데, 거절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그때는 청구 금액이 이십사만 달러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러면, 얼마죠? 카운터 오퍼를 하지 않았다고 들어서.”
“거절하면서 카운터 오퍼는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요구하는 금액은 이미 명확하게 밝혔으니까요.”
“그렇다는 말은···.”
“네, 천만 달러입니다. 소장에 명시한 대로.”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알 수 있다.
젊은 변호사가 센 척하는 게 아니라는 걸.
“천만 달러가 아니면 합의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것은 아닙니다. 합리적인 합의금을 제시해 주신다면, 의뢰인과 상의 후에 포지션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합리적인 합의금이라는 선이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건지 귀띔해 줄 수는 없을까요? 저희는 24만 달러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제안을 한 것이라서요.”
“그것은 변호사님의 의견인가요?”
혹시나 위에 파트너가 따로 있고, 한범상이라는 친구는 그냥 지시받은 대로 움직이는 어쏘인가 하는 의심을 좀 전에 잠깐 했었는데.
“긍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질문이네요. 협상이라는 절차가 원래 저점과 고점을 두고 차이를 좁혀가는 것이라···.”
“그 차이가 너무 크면 시간 낭비일 뿐이라서.”
로이 샌더스는 의심을 지워버렸다.
이 친구가 이 사건의 담당 파트너 변호사다.
“동의합니다. 그러면, 삼십팔만 달러면 합의가 가능할까요?”
뜸 들이지 않고, 스스로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합의금 액수를 꺼냈다.
그런데!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뭐? 가능하지 않다고?’
“그건 의뢰인과 이미 상의를 해보고 하는 말인가요?”
“네.”
로이 샌더스는 의아하다는 감정을 표시했다.
워낙 무표정한 사람이라 잘 보이지는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죠. 제 생각에 삼십팔만 달러는 아주 합리적인 보상금액입니다. 피해 복구 금액, 옆 가게 배상금, 급매로 인한 손해, 병원비에 그간 이자까지. 애초에 청구인이 요구한 금액의 150%가 넘는 액수인데, 논의조차 가능하지 않다고요?”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저희가 요구하는 금액은 오십오만 달러입니다.”
“그중 십칠만 달러는 기저질환 및 노화와 관련된 의료비용이라서 이번 사건과는 관련이 없어요.”
“그것은 그쪽의 주장이고요.”
“소송해 봤자, 그 부분은 인정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저도 말씀드렸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포함하지 않고’ 얘기 드리는 것이라고.”
로이 샌더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앞에 앉아 있는 한범상을 바라봤다.
담담하면서도 단호한 얼굴.
그제야 자신이 오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깔끔하고 세련된 사무실,
법을 잘 아는 변호사,
나이는 어려 보이지만 사실상의 결정권이 있는 파트너.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말이 통할 거로 판단했다.
그가 홀로 찾아온 이유도 순조로운 협상의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서였고.
그런데 아니었다.
앞에 있는 변호사는 합의할 마음이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 부분까지 합의금 책정에 산정하지 않으면 협상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네.”
“그럼, 합의는 힘들 것 같군요.”
“그럴 것 같네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로이 샌더스는 기분이 좋지 않다.
워낙 무표정한 사람이라 잘 보이지는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법정에서 뵙겠습니다.”
“네, 그러죠.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로이 샌더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의를 갖춰 그를 배웅하기 위해 한범상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하다.
천만 달러라는 금액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액수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기대해서도 안 되는 금액이다.
‘법을 잘 아는 변호사로 봤는데···.’
로이 샌더스는 회의실을 나서기 전, 하나를 더 질문했다.
“좀 전에 합의할 생각은 있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러면 어느 정도를 예상하고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한범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오늘 변호사님께서 찾아오셔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니까,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백만 달러 정도만 되어도 저희 의뢰인이 많이 흔들릴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은, 천만 달러를 다 준다고 해도 PIC 인슈어런스가 잃을 것들에 비하면 적다는 생각입니다.”
-*-
카이저 더튼 힐 빌딩,
보험팀 시니어 파트너 사무실.
김앤강에서 돌아온 로이 샌더스는 그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제 개인적인 의견은, 천만 달러를 다 준다고 해도 PIC 인슈어런스가 잃을 것들에 비하면 적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협박인가?’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에 꺼내서 협상 테이블에 올렸을 것이다.
이 사건 관련해서 PIC 인슈어런스에 준 서류들을 다 검토해 봤지만, 천만 달러짜리 비리는 없었다.
성폭력이나 인종차별 같은 걸 PIC가 의도적으로 감췄다면 또 모를까.
아니, 감췄다고 해도 천만 달러는 무리다.
무엇보다도 그런 걸 발견했다면, 발견했다고 밝히고 협상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일단 공개되면 더러운 비밀은 값이 떨어지는 것이니까.
그게 아니라, 곤욕스럽게 만들 게 애초 목표였다면 경찰에 먼저 신고했겠지.
허튼소리를 할 친구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찜찜했지만, 그가 아는 경험과 상식으로는 그건 엄포일 뿐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로이, 그래서, 상대방 변호사는 만나봤어? 원하는 게 얼마래?
“상황이 좋지 않아요, 이사님.”
-왜? 설마 백만 달러 같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달라는 건 아니겠지?
“그거의 열 배가 적정하다고 생각한답니다.”
-정신이 나간 친구구먼.
“근데, 혹시 이 사건 관련해서 저희 쪽에 주지 않은 자료가 있습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게······.”
로이 샌더스는 한범상과 나누고 온 대화를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PIC 인슈어런스의 법무이사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진짜 이상한 놈이네. 그런 거 없어.
“헛소리할 친구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설사 있다고 해도 그런 걸 자네한테 안 보여줄 이유가 없잖아.
맞다.
그래서 진짜 이상하다.
-느낌이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기 위해서 그냥 던진 거 같은데.
“뭐가 됐든, 그렇게 말한 걸로 봤을 때, 언론 플레이를 할 것 같아요.”
-하라고 해. 금액이 터무니 없으니까, 며칠간 이곳저곳에서 떠들어 대겠지. 근데, 그것 말고 뭐 할 게 있겠어. 한 일주일 말들 하다가 잠잠해질 것이 뻔해. 알잖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진행할까요? 소송 준비할까요?”
-해줘. 그리고, 앞으로 합의 얘기는 꺼내지 마.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는 강경하게 나가자고. 압박해서 저쪽에서 합의 얘기를 먼저 꺼내게 만들자고. 잘 알잖아.
잘 안다.
시간을 끌고 쪼들리게 해서 조바심이 나게 만드는 전략.
돈이 급한 청구인들에게 효과적인.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로이 샌더스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곧바로 밑에 주니어 파트너를 불러 지시들을 내렸다.
답변서를 준비하라고 시켰고, 청구인 박재홍과 윤금자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청구 명세를 꼼꼼하게 검토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소송 각하 명령을 구하는 신청서 작성도 지시했고, 소송 외 제삼자들에게 보낼 소환장들을 신청하라 했다.
프리볼러스 리티게이션 주장과 함께 천만 달러에 대한 보증장을 제출해야 한다는 명령도 같이 준비시켰다.
“신청서들 잘 준비해서 한꺼번에 나갈 수 있게 해.”
“네, 샌더스 변호사님.”
순수하게 법적으로만 봤을 때는 상대방이 유리했지만, 로이 샌더스는 자신이 있었다.
이런 게임을 오래 해온 그였다.
폭격을 퍼부을 계획.
질려서 항복은 선언하게 만들 것이다.
“상대방은 어차피 프로 보노라서 감당할 수 없을 거야. 그래도 시작부터 숨을 쉴 수 없게 압박해야 해. 그리고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하고.”
“네.”
로이 샌더스는 경험이 많은 변호사였다.
다만, 한범상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뿐.
그들이 폭격을 시작하기도 전, 폭격이 먼저 날아왔다.
.
.
.
이틀 뒤.
카이저 더튼 힐 사무실.
“변호사님, 김앤강에서 디스커버리에 제출해달라고 서류 목록을 보내왔는데요.”
“벌써? 그런데?”
“PIC 인슈어런스 클레임 핸들링팀 지난 10년간 기록들을 다 달라고 왔습니다.”
“뭐?!!”
블립을 경험하다
“뭘 달라고 했다고?”
카이저 더튼 힐의 로이 샌더스는 자기 귀를 믿지 못했다.
어쏘 변호사에게 다시 물었다.
“PIC 인슈어런스에서 지난 10년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클레임들 기록을 전부 달라고 했습니다.”
귀는 멀쩡했다.
처음부터 똑바로 들었다.
“10년간의 기록을 다 달라고 했다고?”
“예.”
뭘 하자는 거지?
10년 치 기록을 다 보겠다고?
고작 몇십만 달러짜리 누수 사건 하나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정말 천만 달러를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20년이 넘는 경력의 로이 샌더스였지만, 이런 황당한 요구는 처음이다.
“어떻게 할까요?”
성가시기는 해도 주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PIC에 연락해 10년 치 기록을 달라고 하면 된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는 그것들을 상대방 측에 전달하기 전에 전부 검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최소한 변호사 열 명이 붙어서 석달은 검토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몇십만 달러짜리 클레임 하나에?’
경제적으로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검토 중에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을 발견하게 되면 일이 더 성가시게 된다.
그것을 기록에서 뺄지 아니면 적당하게 다른 식으로 포장해야 할지,
포장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손을 대야 할지···.
로이 샌더스의 눈앞에서 계산기가 돌아갔다.
법률 비용만 수십만, 아니 수백만 달러가 나갈 일이 되어버린다.
당연히 클라이언트가 허락할 일이 아니다.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게임을 하려는 거지?’
로이 샌더스는 한범상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정확하게 눈치챘다.
파크스 클린 세탁소와같이 억울한 사례가 있는지를 찾아보려는 의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모래밭에 잃어버린 반지를 찾는 것과 다름없다.
설사 고성능 금속탐지기가 있다고 해도 지루하고 시간 소모가 막대한 일.
“거절할까요?”
하나의 방법.
어차피 시간을 끌면 금전적으로 급한 청구인은 더 다급해질 것일 거고, 그러한 의뢰인의 조급함은 변호사에게 압박을 가할 테니까.
하지만···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으면, 저쪽은 법원에 제출 명령을 신청할 것이다.
그러면 이쪽이 왜 주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불필요하다.’, ‘방대하다.’ 등의 설명으로 시간을 끌 수는 있으나, 그러면 저쪽은 또 이쪽이 감추려는 게 있다는 식으로 반박하고 나올 것이고.
그랬을 때, 만약 이 증거공개를 두고 끝까지 간다면 어떻게 될까?
PIC 인슈어런스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재판부에 줄 것이 당연했다.
없는 것을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보관하는 기록을 달라고 하는 것일 뿐이기에.
법원에서 제출 명령을 내릴 확률이 높다.
즉, 끝까지 가게 되면 어차피 줘야 할 자료들.
로이 샌더스는 고민해 본다.
어떤 것이 더 유리할까?
시간을 끄는 것? 아니면, 불리한 인상을 기피하는 것.
“아니. 그냥 줘.”
두세 달 시간을 끌겠다고 그런 불필요한 인상을 재판부에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범상이 바로 그러한 결과를 노리고 이런 전략을 썼다고 판단했다.
절대로 10년 치 기록을 전부 검토하기 위해서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PIC에 연락해서 10년 치 기록을 준비해달라고 하겠습니다.”
“10년 치 말고 30년 치를 준비해달라고 해.”
“30년 치요?”
“그리고, 지급 거절한 것들만 추려내지 말고, 클레임 받은 거 전부.”
“클레임 전부를요?”
“그쪽 사무실에 서류 폭탄을 던져버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