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9)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9화(19/190)
【019화 – 진화하는 공간】
“일찍 왔네.”
“남은 일은 집에서 하려고. 골드바는?”
“여기, 스무 돈. 보증서는 안에 있다.”
“고맙다.”
“내가 고맙지. 신규 고객 유치까지 해주는데. 밥은 먹었냐?”
매번 금테크할 목적으로 산다고 할 순 없었다.
집에 금방을 차릴 것도 아니고.
기중이에겐 로펌에 있는 변호사 중에서 금에 관심이 많은 변호사가 있다고 얘기했다. 대신 사주는 거라고 하며 부탁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핑곗거리가 됐다.
“먹었지.”
“한잔할래? 바쁘냐?”
“한잔 정도는 콜.”
“가자.”
“제수씨한테 먼저 연락 안 해도 되고?”
“니가 일찍 와줘서 땡큐다. 한 시간만 먹고 들어가지 뭐.”
“어차피 술 먹고 들어가면 걸릴 텐데?”
“한 병은 괜찮아. 들어가기 전에 구강청결제 하나 때리고 가면 돼. 뭐 먹을래? 치킨? 족발?”
“뭐든 오케이.”
“그나저나 그건 뭐냐?”
“손에 든 거?”
“아, 이거. 신발.”
기중이와는 술 대신 PC방에 갔다.
한 시간 동안 정신없이 마시고 굳이 안 먹은 척 구강청결제까지 쓰고 들어갈 바에는 PC방이 나은 선택이었다.
옥탑방에 돌아와, 해야 할 일도 있었고.
롤(LOL) 두 판하고 헤어져 돌아왔다.
돌아오니 엄마도 가게에서 돌아와 계셨다.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 잠깐이지만, 내 얘기도 하고 엄마 얘기도 들어주고 난 뒤, 옥탑방으로 올라왔다.
먼저 깔끔하게 씻었다.
그러고 나서 기중이로부터 받은 금 20돈과 새로 산 신발을 들고 아버지의 아공간으로 입장했다.
달라진 아공간 속으로.
···
「얼마 전까지 아공간 속 땅의 크기는 스물네 평이었다.
책과 문서들이 많아져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전에 받아 두었던 금 10돈을 들고 들어갔다. 사방으로 10평 더 늘어날 거라는 기대와 함께.
그런데 다른 일이 벌어졌다. 30평이 된 땅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고 대신 한쪽 벽으로 문이 하나 생겼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살짝 두렵기는 했어도 솔직히 기대가 좀 더 컸던 게 사실이었다.
‘새로운 세계로 연결된 문일까?’
‘아니면 드라마 <도깨비>처럼 어디로든 연결되는 문?’
하지만, 떨리는 맘으로 문을 열었을 땐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세계가 나타나지도 않았고 공간이동 통로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문이 사라졌다.
문을 열었더니 문이 사라진 것이었다.
‘뭐지 이건?’
처음에는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바닥을 보고서야 알았다.
맨 처음 들어왔을 때, 이곳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불빛이 없는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늘어나는지 알아내는 데에만 몇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하나둘 익숙해진 공간 안으로 조명을 가지고 들어오고, 배터리를 가지고 들어오고, 가구를 가지고 들어오고···
점차 내 공간으로 만들어 갔다.
그 외 이곳에서의 존재 기록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했다.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들어온 순간의 바깥세상 시각을 잠시 망각하고 아공간에서 잠을 자고 나왔는데, 나와보니 새벽 한 시였다.
생활 리듬을 꼬이게 하지 않으려면 양 공간에서 달리 흘러가는 시간의 추적이 필수였다.
그런 비슷한 목적으로 한 또 다른 일은 바닥 중앙에 십자 모양으로 야광 테이프를 붙인 일이었다.
공간의 크기가 사방으로 넓어진다.
처음에는 늘어나는 것이 눈에 확실히 보였다. 하지만, 스무 평이 넘어가기 시작하니 한 돈만큼 늘어나는 건 티가 나지도 않았다.
바닥 중앙에 십자 모양으로 붙여놓은 야광 테이프를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계산하기도 쉽고.
그런데 아공간 바닥의 크기가 30평이 된 이후로는 커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서른한 돈을 가지고 들어가든, 서른둘, 셋, 네 돈을 가지고 들어가든 똑같았다.
의문스러운 문만 생겨났을 뿐.
그래서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문이 사라졌다.
그리고 공간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에게- 고작 이거야?’
솔직히 살짝 실망스러웠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했었는데···
사람의 심리란 참 웃긴다. 처음에는 그저 한 돈에 한 평만큼 공간이 늘어나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막상 새로운 것이 나타나니, 두려움과 동시에 기대감이 생겼던 것이었다.
남아있는 3돈을 들고 들어갔다.
바닥 중앙에 붙여놓은 야광 테이프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다시 ‘한 돈에 한 평’으로 돌아갔다.
사방으로 늘어난 땅의 크기가 총 34평, 그러니까, 3평만큼 더 넓어져 있었다.
그런데 또 하나 새로운 점이 있었다.
‘응? 이건 뭐지? 질감이 다른데?’
30평 이후에 커진 공간의 바닥은 그 질감이 기존의 바닥과는 달랐다.
까슬까슬했고 입자가 있었다.
퍼올 릴 수 있었다.
“흙?”
나는 그것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색이나 촉감은 분명 흙이었다.
처음으로 아공간의 물질을 현실 세계로 갖고 나온 순간이었다.
옥탑에 나뒹구는 빈 화분 하나를 가지고 들어가 공간의 흙을 담아 나왔다.
그다음엔 주방에서 어머니가 사다 놓은 대파 하나를 가져왔다.
줄기를 잘라내고 뿌리를 그 화분에 심었다.
진짜 흙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적당히 물을 뿌리고 양지바른 곳에 놓아두었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하루 만에 대파 뿌리에서 새 줄기가 자라났다.
흙이었다.
30평 이후에 늘어나는 공간은 알 수 없는 딱딱한 재질의 바닥이 아닌 흙바닥이었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흙바닥.
‘그럼, 그 문은 뭐였지? 일종의 배리어 같은 것이었을까?’
‘스테이지1에서 스테이지2로 넘어가는 관문 같은 거? 그럼, 스테이지3도 있는 걸까?’
‘이렇게 구분해 놓은 이유는 뭐지? 왜 흙바닥?’
아공간이 익숙해질 때쯤 변화가 일어났다.
시시한 듯했지만 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
퇴근 후 기중이에게 받은 금 20돈을 들고 들어갔다.
아공간에 20평이 추가된다.
이제 총 54평. 30평의 기존 바닥에 24평의 흙바닥.
넓다. 기존 생활 바닥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흙바닥이 생긴 거라 효율성은 떨어졌지만, 간이 화장실이나 배터리를 밖으로 빼면 기존 바닥의 공간이 확실히 여유로워질 듯싶다.
나는 재배치를 시작했다.
며칠 전에 배달 시켜놓은 칸막이도 설치했다.
기존 생활 바닥과 흙바닥 경계에 인공 벽을 만들었다.
천장이 뚫려있지만, 벽이 생기니 또 느낌이 다르다.
문도 만들었다.
칸막이들 사이에 틈을 만들어 놓고 양옆으로 야광 스티커를 붙였다.
그러곤 새로 산 신발을 그 앞에 놓았다.
이제 이곳에도 안과 밖이 생겼다.
생각보다 재배치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공간이 넓어지는 데에는 장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공간이 넓어지니 당장 조명이 부족했다.
화장실이나 소음이 있는 것들을 밖으로 빼도 그것들을 이용하러 갈 때는 조명이 필요했다.
어두운 공간들이 생겨났다.
결국 한 돈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공간이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채워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물론 당장 채워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카직, 차하아아아아-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뚜껑을 땄다.
청량한 기포소리가 올라왔다.
아까는 별로 안 당겼는데 몸을 써서 그런가, 맥주가 달다.
한 캔을 눈 깜짝할 사이에 비우고,
카직, 차하아아아아-
두 번째 캔을 땄다.
벽이 생겨서 그런가? 아니면 그만큼 멀어져서 그런가.
확실히 소음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화장실이 분리된 공간으로 빠진 것도 만족스러웠다.
이런 소소한 행복이 주는 만족감이 때로는 더 큰···
‘잠깐만 화장실?’
‘흙? 흙이면, 묻으면, 분해될까?’
‘미생물이 없어서 안 될까? 잠깐 식물이 자랐잖아.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분해가 안 된다고 해도 배수는 되지 않을까?’
순간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설레게 하는 것들이었다.
냄새 문제 때문에 당장은 실험해 볼 생각이 없지만, 만약 물이 빠진다면, 그건 큰 변화였다. 오수처리를 해결할 방법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다 만약 분해까지 된다면,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다.
카직. 차하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세 번째 캔을 땄다.
신이 났다.
실험해 보고 싶은 것들이 마구 떠올랐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잠을 잘 생각은 아니었는데···
눈을 떠보니 일곱 시간이 지나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24시간을 머물고 같은 시간대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현실로 돌아갔을 때 신체리듬이 깨지지 않을 테니까.
회사에서 가져온 서류들을 봤다.
남는 시간에는 책들을 분류했다.
작은 도서관 같다 보니 분류가 필수였다. 게다가 환한 조명 아래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정리 정돈을 잘해두어야 했다.
아직은 식별 목록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더 쌓이기 시작하면 해야 할 일이었다.
신기하게 이곳에는 늘 할 거리가 있다.
재미있다.
일하다가 지치면 오락하고, 오락하다 흥미가 떨어지면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러다 막히면 책보고.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이곳에 있으면 일을 해도 충전이 되는 느낌이었다.
현생을 풀 에너지로 살 수 있는 충전소.
시계를 봤다.
아공간에 들어온 지 24시간이 되기 4분 전.
나는 쓰레기들을 챙겨 문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
“!!”
어디선가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것은 인공적인 조명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빛이 아니었다.
마치 여명(黎明)과 같은 빛이었다.
“해?”
-*-
늦은 시각, 김앤강 사무실,
호출을 받은 최재민은 시니어 파트너의 방을 찾았다.
“최 프로.”
국제중재팀 시니어 파트너 성일용은 심각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봤다.
“네, 변호사님.”
“문제가 생겼어.”
회사는 직원들 간의 미묘한 관계에 개입하지 않는다.
로펌도 마찬가지다.
지들끼리 왕따를 하든, 연애를 하든, 일만 제대로 해온다면 말이다.
“뭐 때문에 그러시나요?”
“하이- 이 새끼가 끝내 사고를 치네.”
주니어 파트너 변호사 중 하나가 여자 어쏘 변호사와 바람이 났다.
로펌도 사람 사는 곳이다. 이런 일이 간혹 일어난다.
“이태오 이 자식이 도망갔어.”
“네?”
“도망갔다고. 전화기도 꺼 넣고 신입 변이랑 도망쳤어! 아무래도 어디 외국으로 뜬 거 같아.”
“아···”
“아니, 지가 무슨 영화 주인공이야? 마흔 살이나 처먹어서는, 쯧쯧. 이씨- 아무튼, 최 프로, 이 변호사가 하던 건 중에 KLS에너지 건이 하나 있는데, 그거 지금 급해. 최 프로가 좀 맡아 줘야겠어.”
긴박한 상황 속 긴박하지 않은 한 명
의학 드라마에는 있고, 법정 드라마에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긴박함이다.
뭐, 억지로 만들기는 하지만.
-전 변, 응급 사건이야!
-상태는?
-디스트릭에서 유죄 판결 났고, 보험회사에는 페이아웃 중단하고 구상권 청구 들어가겠대.
-넥스트 히어링은?
-한 시간 뒤.
-판사는?
-로욜라 젠슨.
-젠장! 하필이면 연기 안 해주기로 악명 높은 그 여자 법정이라니···
-가능하겠어?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하비는? 하비는 지금 어디 있어!
현실에서 이런 대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건 아니다.
데드라인을 1년 뒤라고 미리 고지했어도 그 안에 처리하기 힘든 양의 업무가 던져진다면, 그건 응급인 것이다.
1년간의 응급 상황.
근데 만약 그런 사건이 서너 개가 동시에 들어온다면?
들어온다. 수십 건이 들어올 때도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진 않지만, 그렇다고 느긋한 곳은 아니다.
로펌이라는 곳은 늘 시간에 쫓기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