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2)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2화(2/190)
【002화 – 시간이 흐르지 않는 방】
“참나- 아무튼 요새 애들은 왜 하나같이 다들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
“왜요? 또 누가 대들었어요?”
“근성이 없어, 근성이. 일을 하려고 하질 않아.”
“요새 애들이 다 그렇죠, 뭐. 새해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올해 공휴일은 며칠 있나 세고 있는 애들인데.”
대한민국 최고 변호사 사무실인 김앤강의 고민도 다른 회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점심시간, 회사의 중진 파트너 변호사들은 젊은 변호사들에 대한 불만을 반찬 삼아 씹어댔다.
“우리 회사도 다른 거는 몰라도 신입 변호사들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해.”
“하잖아요.”
“아니, 그런 형식적인 거 말고. 애들 정신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말이야. 도 변호사, 도 변호사는 어떻게 생각해? 도 변호사가 양 변호사님한테 한번 건의해 봐.”
선배 변호사의 말에 리크루트팀(인사채용팀)에 있는 도대기는 씩 웃었다.
두 가지의 의미였다. 하나는 선배 변호사의 불만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뜻이었고, 다른 하나는 분명 똑같은 대화를 자신들 위 선배들도 했을 거라는 자조적인 뜻이 담겨있었다.
“왜요? 누가 마음에 안 드시는데요?”
“다. 하나 같이 다.”
사법시험 제도에서 로스쿨 제도로 바뀌고, 매년 배출되는 신임 변호사 수 1,500명이 넘어가면서 로펌들 인사 채용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연수원 성적만 보면 됐다. 똑똑하기로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애들끼리 모아놓고 경쟁시킨 곳에서 성적순으로 위에 있는 놈들만 데려가면, 인성이야 어떤지 몰라도 빡센 로펌 업무를 견딜 수 있는 자질이 있는 거 하나는 증명된 것이었으니까.
지금은 아니다. 변호사시험이야 일개 시험일 뿐이고 로스쿨 성적 역시 절대적 기준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인재 채용 프로세스가 훨씬 더 복잡해졌다. 그건 비단 김앤강뿐만 그런 게 아니고 대한민국 대형 로펌들이 전부 그렇게 진화했다.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자기소개서, 서면 샘플, 교수 추천서, 자격증 등 패키지 전체를 꼼꼼하게 살핀다. 그리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선별한 로스쿨 재학생들을 인턴으로 뽑아 1, 2개월 가까이 지켜본 뒤, 다시 한번 내부 평가를 통해 최종 면담자들을 선정하고, 거기서 또 적게는 한두 번, 많게는 서너 번까지 인터뷰를 진행한 뒤에야 같이 일할 신입 변호사를 채용한다.
솔직히 예전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연수원 성적순으로 법원이 데려가고, 검찰이 데려가고 나면 그다음 김앤강이었으니까. 운이 좋으면 그 나이 또래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연봉을 미끼로 1, 2등도 데려올 수 있었고. 그러면 사람들은 ‘와- 김앤강의 인재 수준이 법원이나 검찰 위에 있구나’라는 홍보 효과도 있었고.
변호사시험 1등부터 10등을 다 데려온다 한들 요샌 누구 하나 관심 없다.
당연히 예전엔 인사 채용 전담팀도 없었다.
경영 담당 파트너 변호사가 연수원 성적순으로 면접대상자를 뽑은 뒤, 면접을 통해 정말 아닐 것 같은 애들만 걸러내면 되었다.
지금은 아니다. 리크루트팀이라고 아예 상시 부서가 따로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봐야 하는 지원 서류들, 인턴십 관리, 면접 스케줄링, 거기에 신입 오리엔테이션까지 일년내내 일이 산더미다.
다 좋다. 그렇게 해서라도 빡센 로펌 업무를 견뎌낼 수 있는 인재들만 뽑을 수 있다면.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매우 비효율적으로 변해버렸다.
“세상이 변했잖아요.”
“아, 그래 좋아. 물가 오르고, 다 올라서 대형 로펌 변호사들도 강남에 아파트 사기가 쉽지 않게 된 거. 근데, 그게 어디 변호사들만 그래? 다 그래.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 로펌에 들어왔으면 기회가 생긴 거잖아. 그럼, 열심히 해서 위로 올라가려고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러려고 쌔빠지게 공부한 거 아닌가? 아니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변호사 되는 세상인 거야?”
“내년에 배출되는 변호사 수가 1,800명이 넘을 거라는 소리도 있던데요.”
“하아- 미국처럼 되겠네. 왜 그런 말이 있잖아. 뉴욕 길거리에 돌멩이를 던지면 일곱 번 중 한 번은 변호사 머리에 맞을 거라고. 이게 맞는 건지, 쯧쯧.”
선배 변호사들의 대화에 김앤강 리크루트팀 도대기 변호사는 다시 한번 씩 웃었다.
신입 시절 지분 파트너 변호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때는 말이야, 100명 뽑았어.”
이제 막 변호사가 된 신임들도 나중에 비슷한 말을 하겠지.
“그러니까, 인턴 때부터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보여줘야 해. 지금처럼 어르고 달래지 말고. 마음에 준비가 된 놈들만 들어올 수 있게.”
“그랬다가는 요새 애들 지원 안 할 것 같은데.”
“해. 왜 안 해? 그래도 우리 사무실 연봉이 다른 로펌들보다 20%나 높은데. 그리고, 애초에 그런 놈들은 받지 않는 게 나아.”
“아니, 왜 이렇게 화가 나셨어요. 정말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이 새끼들이 급한 거라고 번역을 좀 하라고 하니까. 번역은 외주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대꾸를 하잖아.”
“1년 차 애들이요?”
“아니, 3년 차. 1년 차 애들한테는 말도 못 걸겠어. 사무실 들어가면 헤드폰 끼고 있다니까. 참나- 여기가 직장인지 놀이터인지.”
화난 선배가 과장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도대기는 문득 지난주에 면접 본 한범상이 떠올랐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그랬다.
건방진 건 아니었지만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고등학교 중퇴에 별 볼 일 없는 대학, 거기에 솔직히 국내에서는 알아주지도 않는 국제법률 로스쿨. 스펙만 본다면 면접은커녕 감히 사무실에 지원 서류를 넣을 수조차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여유로웠다.
조급해하고 치열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솔직히 도대기는 그를 뽑고 싶지 않았다. 대표변호사가 추천한 인물이었어도 마지막까지 반대했다.
이런 인물을 뽑으면 다른 신입 변호사들 사기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사무실 수준을 심각하게 깎아 먹을 거라고 항변했다.
그래도 뽑으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솔직히 면접도 보기 싫었다. 그럴 바엔 ‘낙하산’ 티가 팍팍 나도록.
하지만 면접을 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어쩔 수 없이 봤다.
그런데, 여유로웠다.
자신이 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도대기는 한범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번역일은 누구 시키셨나요?”
“외주줬어. 다음 주까지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데, 모르겠어. 어쩌면 연기해야 할지도···. 늘 쓰는 외주 업체도 스케줄 맞추기 힘들 것 같다고 징징대네. 특급비용은 특급비용대로 달라고 하면서.”
“몇 페이지인데요?”
“600페이지.”
많다. 책 두 권 분량의 전문 서류를 일주일 만에 번역할 수 있는 업체는 없다. 문서를 여럿으로 쪼개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 전문용어들을 통일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법원 제출 서류를 chatGPT로 돌릴 수도 없고.
“법원에 600페이지 원문을 다 제출하시게요?”
“원래는 관련 부분만 내겠다고 했는데, 상대방 변호사가 민병철이야. 판결문이랑 중재문, 증거서류들까지 전부 제출하래. 다 검토하겠다고.”
“시간 끌기네요.”
“그래서 더 연기하면 안 되는 건데. ‘시간 끌려고? 그딴 하수는 안 통한다, 이놈들아’ 해줘야 하는데 말이야.”
“그렇죠. ···흠, 김 변호사님, 그러면, 사무실 들어가서 저한테 좀 보내주세요.”
“진짜? 도 변호사가 해결해 줄 거야? 어디 번역 잘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해결까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시켜보게요.”
“누구한테?”
한범상한테.
-*-
점심 식사에 돌아온 도대기는 한범상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자리는? 이 대리가 다 세팅해 줬지?”
“네. 이제 막 회사 이메일 계정까지 생성해 줬습니다.”
“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이 대리한테 얘기하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래 채용 기간에 들어왔으면 오리엔테이션을 받았을 텐데, 중간에 들어와서 따로 해줄 수는 없고 업무적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주위 선배들한테 묻든지, 아니면 나한테 와.”
“네.”
“법무법인 경력이 있잖아.”
“네. 법무법인 양아에서 1년 정도 일했습니다.”
“그럼, 경력자니까 금방 적응하겠네. 일단 아직은 같이 일하는 팀이 있는 게 아니니까. 주위에서 주는 일들 가리지 말고 다 경험하고.”
“예.”
“그래서 말인데, 방금 한 변호사 이메일로 서류들 보냈거든. 국제통상팀에서 하는 소송에 제출할 외국 법원 서류들인데, 다음 주까지 번역문 제출해야 한다니까, 검토하고 언제까지 가능한지 퇴근 전에 보고해.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아공간을 숨긴 신입 변호사
「이 안에 있는 동안에는 바깥 세상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 들어갔을 때, 플래시 라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동시에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시각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다음 확인한 사실은 LTE나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점이었다. 기기는 작동하나 통신 신호들이 잡히지 않았다.
공간의 크기를 확인한 후, 집에 굴러다니는 탁상시계를 가지고 다시 들어갔다.
처음에는 십 분 뒤에 나왔고, 두 번째는 한 시간 뒤에 나왔고, 세 번째는 다섯 시간 뒤에 나왔다.
세 번 다 내가 원래 살던 세상에서는 0.01초도 흐르지 않았다.
아공간이 조금 더 익숙해진 뒤, 나름의 준비를 갖춰 들어갔다.
좀 더 오래 있어 봤다. 12시간, 24시간, 그리고 36시간.
결과는 똑같았다. 매번 들어갔던 바로 그 시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일단은 결론지었다.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방’이라고.
‘더 오래 있으면 결과가 달라질까?’
이번에는 좀 더 오랜 시간 있어 볼 생각이다.
할 일도 있고.
“600페이지라··· 열심히 하면 15일쯤 걸릴까?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