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27)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27화(27/190)
【027화 – 올라운더의 길】
치이이이익-
불판 위에 고기 구워지는 소리가 냄새만큼이나 좋다.
범상은 나무해운 무열을 만났다. <해황기>를 보라고 조언해 주었던 그 선배.
“그래서 회사는 좀 어때? 팀은 정해졌어?”
“아직이요.”
“이제 슬슬 정해야 하지 않아? 로펌 들어간 동기한테 들어보니까, 1년 넘게 일했는데도 오라는 팀이 없어서 2, 3년차 때 곤란해하는 경우도 간혹 있더라. 나가는 애도 있고.”
그런 경우가 있다. 자질을 인정받아 들어가기는 했는데, 사건을 주는 파트너 변호사들의 눈에 들지 못해 이 팀, 저 팀 품앗이하듯 일하는 변호사들.
사건이 곧 목숨과도 같은 로펌 변호사들에게는 스트레스받는 상황이다. 언제든 나가야 할지 모르니까.
학연이라는 강력한 매개가 존재하는 국내 변호사들한테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학연, 지연, 혈연,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암암리에 작용하는 것들. 그런 것들은 입사 후에도 유효하다.
드물지만 만약 정말 그런 것 하나 없이 마땅히 오라고 하는 데도 없으면, 십중팔구 국내 소송팀으로 빨려 들어간다. ‘서면 쓰는 기계’들이 늘 부족한 그곳은 국내 변호사들의 블랙홀 같은 곳이다.
“안 그래도 내일쯤 해서 지금 있는 팀의 파트너 변호사님하고 상담 좀 하려고요.”
“지금 국제중재팀에 있다고 했지?”
“네.”
“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아.”
외국 변호사들의 처지는 조금 다르다.
매년 공채 뽑듯 일정 수를 뽑는 국내 변호사와는 달리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뽑는 외국 변호사는 보통 들어갈 때 이미 자리가 정해져 있다.
다른 펌에서 일하다가 특정 파트너의 눈에 들어 스카우트 된 경우는 당연하거니와, 무경력 신입인 경우에도 해당 팀에 공석이 생겼기에 뽑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그렇다.
다만, 그런 경우가 있다.
해당 팀이 필요할 줄 알고 뽑았는데 수요가 없어진 경우,
잘할 줄 알고 뽑았는데 퍼포먼스가 기대 이하인 경우,
딱히 원하는 팀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누가 ‘꽂은’ 경우.
이런 경우, 뽑힌 외국 변호사는 부평초 신세가 되어 월 180시간의 할당을 채우기 위해 이 팀, 저 팀에서 일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도 로펌 내에서 어느 정도 네트워크를 한 외국 변호사나 가능한 일. 대개 그런 상황에 놓인 외국 변호사는 십중팔구 퇴사하게 된다.
물론 어떤 상황이든 예외는 있다.
“그래도 좀 아쉽네. 그래도 난 네가 해상팀에 갔으면, 종종 일로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하긴, 그렇다고 우리가 뭐 김앤강 쓸 형편은 아니지만. 헤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거는 아니에요. 가고 싶은 방향도 생겼고··· 일단 해상팀 백 변호사님한테도 사건 배당해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은 드려놨어요.”
“아, 진짜? 그렇게도 돼?”
“가능은 하더라고요. 중재팀에도 그런 외국 변호사님들이 몇 분 계시더라고요. 백 변호사님께서 사건을 저한테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오- 그럼, 가끔 오다가다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네. 저도 그러기를.”
결국 해답은 경쟁력에 있다.
-*-
다음 날 아침,
국제중재팀 최재민 변호사 사무실.
“변호사님.”
“응.”
“한범상 변호사님 이름을 신건 배당표에 포함했고요. 오늘부터 신건들 들어오면 배당하겠습니다.”
“김 과장, 그거 잠깐 홀드. 뭐 좀 하나 확인할 게 생겼어.”
“홀드요? 네, 알겠습니다.”
“한 변호사 출근했어?”
“네, 출근하셨어요.”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범상을 기다리는 사이, 최재민은 어제저녁 도대기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함 프로가 한범상한테 일을 줬다고? 왜?”
“그러는 최 변은 왜 한 변호사를 그렇게 데려가고 싶어 하는 건데.”
“뭔 소리야. 누가 언제 그렇게 데려가고 싶어 해. 오고 싶어 하니까 받아주는 거지.”
“한 변호사는 하고 싶은 모양이던데.”
“뭘? 거참. 아까부터 왜 이렇게 주어·목적어를 빼놓고 얘기를 하지. 사람 자꾸 묻게.”
“다른 팀 사건들도 해보고 싶어 하는 거 같다고. 함 변호사가 사건 하나 주면서 해보지 않겠냐고 했는데, 한 변호사도 한다고 했어.”」
사실 로펌의 팀 구분은 다분히 임의적이다.
공정거래, 국제중재, 파이낸싱, 인수합병 등, 마치 그러한 전문적 구분이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지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한 변호사가 여러 분야의 사건을 맡을 수 있다.
그렇다고 전문성이 없다는 건 아니다.
의과대학 전문의 과정처럼 해당 분야 전문 변호사 과정 같은 것이 없기에,
어딜 졸업하거나 과정을 이수하면, 정부나 기관이 ‘자, 당신은 오늘부터 00분야 전문 변호사’라고 인정해 주는 시스템이 아니기에,
변호사는 오랜 실무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가야 하는 직업···
똑똑-
“변호사님, 부르셨습니까?”
비서를 통해 호출한 한범상이 찾아왔다.
“어. 거기 잠깐 앉아봐.”
재민은 범상을 앉히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특허팀 함 변호사가 사건을 줬다며?”
“예.”
“할 거야?”
“한다고 했습니다.”
“흠,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가 되려는 거 아니었어? 나는 그렇게 알고 받았는데.”
약간 공격적인 말투.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질문 하나를 해도 될까요?”
“해.”
“특허팀 사건을 받으면 더 이상 국제중재팀 사건을 받지 못하나요?”
그런 건 아니다. 모든 건 파트너의 결정에 달려있다.
“나는 다른 팀 사건 때문에 내 사건이 뒤로 밀리는 건 못 참아. 그런 어쏘는 필요 없고.”
그런 걸 참는 파트너는 많지 않다.
하지만, 재민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당장 그의 팀에 있는 어쏘 중에서도 다른 팀 사건들을 받는 변호사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범상은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남과 비교해봤자 의미 없다. ‘쟤 해줬으니 나도 해줘요’가 통하는 데가 아니다.
결국 자기 경쟁력은 자신이 키워야 한다.
대신 담담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그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투와 표정이 어찌나 순수하던지 공격적이었던 재민은 순간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당연한 말을 너무 담담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했다.
한낱 다짐에 설득당할 줄 알고?
“내가 충고 하나 할까? 어디가 더 좋을까, 괜히 이 팀, 저 팀 기웃거리는 건 별로 안 좋아.”
“명심하겠습니다. 근데, 그러려고 함 변호사님의 사건을 하겠다고 한 거는 아니었습니다.”
“그럼?”
“도 변호사님한테 들었습니다, 최 변호사님의 모토가 ‘오는 사건 막지 않고 가는 사건은 잡는다’라고. 스펙도 한참 떨어지고 낙하산인 제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저도 일단은 파트너 변호사님들이 주시는 사건들은 뭐든 가리지 않고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요.”
‘도대기, 이 자식은 쓸데없는 걸 가르쳐주고 있어.’
사실 최재민이 시작부터 국제중재팀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김앤강에 조인했을 땐 ‘서면 쓰는 기계’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소송팀을 탈출해(?) 국제중재팀의 주니어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건 저 모토 때문이었다.
가리지 않고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하나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를 찾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그건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 달려있다.
최재민은 한범상이 방향을 정한 것 같다는 도대기의 말을 이해했다.
전문성보다 범용성을 쫓겠다?
“그게 한 변 생각이라는 거지?”
“예.”
“알았어. 가봐.”
어떤 사건, 어느 시점에 투입돼도 한 명의 몫을 제대로 해줄 수 있는 올라운더(All-rounder).
있다, 그런 변호사들.
당연히 그런 변호사들은 경쟁력이 있다.
국내 로펌에 일하는 외국 변호사에게는 어쩌면 전문성보다 더 경쟁력이 있는 특성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따기 어려운 만큼 올라운더로 인정받는 일 역시 어렵다.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잘 해내지 못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전문가는 연차가 쌓이면 척이라도 할 수 있지, 올라운더는 그런 것도 없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저 그런 변호사가 되기 십상이다.
아니,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변호사 대부분이 그저 그런 변호사가 된다.
정말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 바로 범용성이다.
띠리링- 띠리링-
범상을 돌려보낸 뒤, 재민은 비서 자리에 전화를 걸었다.
-네, 변호사님.
“아까 말한 거 있잖아. 한 변호사 사건 배당 원래대로 진행해.”
-신건 배당하라는 말씀이시죠?
“응.”
사실 바뀔 건 없었다.
그냥 한범상의 생각이 궁금했을 뿐.
혼자 투정 한번 부려본 것이었다.
딸깍.
“그래서 한범상이, 니 계획이 뭔데? 야망이 뭐야?”
전화를 끊은 최재민은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그도 한범상을 궁금해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된다.
그렇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범상에게 야망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일만 시간을 투자해 마스터하고 싶은 100가지> 일들이 있을 뿐.
29. 특허 분쟁 사건 해보기
이행불능
로펌의 사건 배당 방식은 법원의 사건 배당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들어오는 순서대로 배당하는 것이 원칙.
다만, 어려운 사건이 들어왔는데 낮은 연차의 순번이면 그 건은 파트너가 빼서 경험이 많은 연차의 어쏘에게 주기도 한다.
보통 팀에 들어온 작은 소송 사건에는 시니어 파트너 한 명과 주니어 파트너 한 명 그리고 어쏘 한두 명이 붙는 것이 흔하다.
소송액이 크거나 사건이 복잡하면 적게는 대여섯 명에서, 많게는 한도가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변호사들이 붙는다.
예를 들면, 규모가 큰 인수합병이나 합작회사 설립 자문의 경우, 보통 일곱에서 아홉 명의 변호사가 붙는다.
사상자가 몇십 명이 난 사건이라든지, 채권자가 수천 명이나 되는 파산절차의 경우 열댓 명의 변호사가 붙는다.
분쟁 금액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특허 분쟁에는 몇십 명의 변호사 붙기도 한다.
그렇기에 같은 팀 내에 있는 어쏘끼리도 사건마다 매번 다른 합(合)으로 조(組)를 이뤄 사건을 처리한다.
그런 방식으로 여러 사건을 맡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어쏘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생기고,
또 그러다 보면 다른 사건에서 같은 조(組)를 만나기도 한다.
[재민: H345-0812 중회의실로.]주니어 파트너가 사내 메신저로 보낸 메시지.
도하영은 하던 일을 멈추고 리걸 패드(Legal pad, 보통 노란색 바탕에 줄이 쳐진, 위로 넘기는 노트)를 챙겨 중회의실로 향했다.
중회의실이 여럿 있었지만, 최재민 변호사가 사용하는 건 늘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