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29)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29화(29/190)
【029화 – 진득한 성격】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한 최재민은 방으로 들어가기 전 기록부터 찾았다.
“김 과장, 효경 신건 기록 좀 찾아줘.”
“H345-0812 사건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거. 아, 그리고 당직 비서들한테 말해. 퇴근 전에 사건 기록들 꼭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라고. 어제 찾았는데, 없었어.”
“네, 주의시키겠습니다.”
비서에게 그렇게 말하고 들어갔는데, 방안 책상 위에 찾고 있는 사건 기록이 놓여있다.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됐어. 여기 있네.”
딸깍.
수화기를 내려놓는 재민의 시야에 노란 포스트잇이 들어왔다.
「최 변호사님,
한 변호사가 이미 판례 리서치를 다 해놔서,
그냥 올려놓고 퇴근합니다.
(아, 저도 검토는 했습니다.
추가할 점 찾지 못했습니다.)
-도하영-」
“뭔 소리야, 이건?”
재민은 포스트잇을 무시하고 기록을 펼쳤다.
오전 열한 시에 클라이언트 미팅. 빨리 검토하고 추가로 찾아볼 게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한가하게 어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볼 시간 따위 없다.
그런데, 기록을 열자마자 포스트잇이 하나 더 붙어있다.
「최 변호사님,
한 변호사가 어제저녁 회의 전에
저한테 준 의견서인데
제가 식사하고 돌아오면서
미쳐 못 봤습니다.
혹시 내일 미팅에 도움이 되실까 해서
넣어두었습니다.
-도하영-」
재민은 귀찮은 듯 포스트잇을 떼버리고는 기록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누가, 언제 작성했는지 따위의 정보는 중요하지 않다.
클라이언트는 자기 사건이 늦게 들어왔건, 먼저 들어왔건 관심 없다.
늦게 보내줬어도 자기 사건을 제일 우선으로 처리해 주길 바란다.
-죄송합니다. 지금 먼저 받은 케이스 중에 바쁜 사건이 있어서요. 내일은 힘들고 모레 회의하면 안 될까요?
-네? 지금 내일 미팅이 곤란하시단 건가요?
자기 사건이 뒤로 밀리는 걸 좋아하는 의뢰인은 없다. 설사, 그것이 순번대로 처리한 것이라도 말이다.
앞에서는 불평하지 않아도 절대 이해해 주지 않는다. 이해하는 척할 뿐. 아니, 앞에서도 대놓고 불평하는 클라이언트가 태반이다.
당연히 클라이언트끼리 서로 소통해서 변호사 스케줄을 조정해 주는 일도 없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
로펌은 서비스업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고객이 필요한 순간에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으면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김앤강이다.
대한민국 최고 로펌.
몸이 두 개가 필요하면 쪼개서라도 해내고, 시간이 부족하면 멈춰서라도 해내야 한다.
그런 정신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띠리링- 띠리링-
오전 10시.
검토를 끝낸 재민은 장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변호사님.
“10분 뒤에 출발.”
-네, 알겠습니다.
나가기 전, 재민의 눈에 떼버린 하영의 포스트잇이 다시 한번 들어왔다.
-*-
내부 미팅 두 개에 이메일 세 개.
출근부터 정신없이 달렸다.
드디어 난 짬.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려 돌아온 그녀는 메신저를 확인했다.
재민과 석훈이 효경 미팅에서 방금 돌아온 듯했다.
하영은 어젯밤 찰스 H 바에서 나눈 범상과 대화를 떠올렸다.
「“왜 최 변호사님한테 말하지 않으셨어요? 리서치 다 해놓으셨는데.”
“말한다고 달라졌을까요? 이미 화가 많이 나셨던데.”
“오해하신 거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정말 이상한 사람.
사건을 할 때는 똑 부러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답답한 면이 있다.
지난번 변 마이클 때도 그러더니.
억울한 건 참지 못하는 도하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안 억울하세요?”
“네. 딱히.”
“진짜?”
“기분이 좋지는 않죠. 근데, 도 변호사님은 그런 경험 없으세요? 차근차근 제대로 설명해도 화내는 사람들을 상대해 본 경험.”
“네?”
“아, 최 변호사님이 그런 분이라는 건 아니에요. 그런 상황들이 있잖아요.”
“그런 상황이요?”
“제가 아까 변명했으면, 그 자리에서 오해가 풀리고 넘어갔을까요?”
“변명이 아니죠. 한 변호사님이 잘못한 게 없잖아요.”
“고맙습니다.”
“뭐가요?”
“도 변호사님은 알아주셔서요.”」
‘나 원 참. 그게 뭐야! 내가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최 변호사님이 알아야지!’
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기와 다른 사람.
그녀는 따지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남의 일이면 모를까, 자기 일이라면 분명히.
[하영: 변호사님, 효경 미팅 다녀오셨어요?] [석훈: 응] [하영: 분위기 어땠나요?] [석훈: 분위기?] [석훈: 좋았는데. 왜?] [하영: 아, 그래요?] [하영: 어제 미팅 때 분위기가 안 좋았어서] [석훈: 좋았어] [석훈: 한 변이 리서치 잘해놨던데. 메모도 정리 잘해놨고.] [하영: 아! 보셨어요?] [석훈: 응, 차 타고 가면서 최 변호사님이 보여주셔서 읽었어] [석훈: 잘 썼던데. 깔끔하게] [하영: 네] [석훈: 최 변호사님이 한 변이 작성한 메모 바탕으로 정식 의견서 작성하라고 시킬 것 같던데] [하영: 아, 그래요?]그제야 좀 답답했던 것이 풀리는 듯했다.
-*-
기중이는 내 이런 성격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
“야, 너 그거 학폭 트라우마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학폭 피해자 후유증이라고. ‘내가 뭐라고 해 봤자 선생님들은 바뀌지 않는다’ 같은 거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는 정말 답답했으니까.
애들이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힌 거라고 그렇게 해명하고 항변해도 학교는, 선생님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둘이 있을 때 들어주는 것 같았던 선생님들도 시스템의 압박을 받자,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때 어느 정도 깨달은 것 같긴 하다. 이 세상의 이치를.
사람들은 자신이 틀렸음을 지적받는 걸 싫어한다. 설사 그게 오해였어도 말이다.
특히 선생님, 상사, 고객 등 자신이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 이치는 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 오해가 생겼을 때 가장 현명한 방법은 오해가 스스로 풀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부분은 자연스레 풀린다.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은 제외하곤 상식적이다.
만약 스스로 풀리지 않는 오해라면, 시간을 두고, 상대의 화가 사그라든 다음에 해명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피하는 수밖에.
피할 수 없으면 어떡하냐고?
그때는 들이받는 수밖에.
솔직히 억울했다.
예고된 스케줄도 아니었고, 갑자기 잡힌 미팅이었으니까.
시킨 업무를 끝내놓지 못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변호사님의 표정에서 이미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가 읽혔다.
게다가 다른 어쏘들까지 있는 상황. 내가 바락바락 해명하려고 들어봤자, 대드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회의가 끝나고 알았다.
왜 오해가 생겼는지.
당직 비서가 사건 기록을 자기 책상에 두는 바람에 내가 철해놓으라고 지시해 논 리서치 자료들과 메모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이해가 됐다.
변호사님 관점에선 1년차 어쏘가 무리하게 다른 팀 사건을 받는 것처럼 보였을 거고, 그런 모습이 건방지게 보였을 수 있을 테니까.
본인 사건이 뒤로 밀리는 건 못 참는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며칠 안 돼 특허팀 사건으로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충분히 생각하실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제일 바라는 건 자연스레 오해가 풀리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오해를 풀 기회가 오는 것.
왜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지 않는 거냐고 물으면, 음···
그래 어쩌면 기중이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후유증이 없지는 않다.
난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가 많지는 않다.
그래도···
쓰윽-
[재민: 어제 비서가 철을 안 해놓은 거였다면서?] [범상: 효경 신건 말씀이신가요?] [재민: 왜 어제 바로 말 안 했어?] [범상: 저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재민: 그래?] [범상: 네.] [재민: 지금 잠깐 내 방으로 와. 효경 건 관련해서 해줘야 할 게 좀 생겼으니까.] [범상: 넵.]다행인 건 지금 내가 있는 팀의 사람들은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놈은 유니콘이다
띠리링-
“네.”
-변호사님, 커크랜드 마일로 변호사님이 전화하셨는데, 연결할까요.
“연결해.”
-그럼, 연결하겠습니다.
타이밍 좋다. 마침 해당 사건 파일을 보고 있었는데.
재민은 폴더에서 범상이 작성한 의견서를 클릭했다.
-와썹, 제이.
“헤이, 마일로.”
마일로 캠벨, 현 뉴욕 커크랜드 앤 앨리스(Kirkland & Alice) 국제 상거래 변호사.
재민은 그를 시카고 대학 로스쿨 석사 시절에 만났다.
미국 연방법이나 뉴욕주법 관련해서 자문이 필요할 때 연락하는 친구이다.
“보내 준 의견서는 검토했어?”
-아니, 아직. 그냥 점심으로 뭐 먹어야 할지 궁금해서 전화했어. 최근 여기 맨해튼에 돼지 곰탕이 들어왔지, 뭐야. 오늘은 비빔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저스트 키딩! 당연히 검토했지! 설마 정말 점심 메뉴나 물어보려고 내가 전화했겠어, 제이?
늘 이렇게 실없는 농담으로 시작하지만, 믿을 만한 변호사다.
영미계 변호사들 특징이 회의할 때는 직설적이다가도 사건 승률을 물어보면 모호하게 에둘러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마일로 캠벨은 그러지 않는다.
사흘 전, 재민은 그에게 효경-어라이즌 머티리얼 사건 관련해서 세컨드 오피니언(Second opinion)을 구했다.
-같은 의견이야.
“승소율 90%라는 것에 대해서도?”
-음. 대충은. 조금 깐깐한 클라이언트한테 보여주는 거면 85%? 80%? 보수적으로 쓸 거 같기는 해.
“하지만, 솔직한 의견은 90%?”
-응. 의견서에 잘 인용되어 있던데, <살람 에어 v. 라탐 항공 그룹> 2020년 웨일스 하이 코트 판결이랑 2021년 <윌밍턴 트러스> 케이스, 둘 다 보면 코비드 팬데믹도 영미법상 계약이행 불능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어. 미국 정부의 중국 제재는 성질이 다르기는 해도, 계약상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프러스트레이션 주장을 하기 어려울 거야.
“영미법상 그 정도로 확고한 포지션이면, 어라이즌이 호간한테서 받은 조언도 별반 다르지 않겠네.”
-그럴 거야. 듣기 좋으라고 진짜 보수적으로 의견서를 써줬다고 해도, 한 70% 정도. 뭐가 됐든, 손해액의 10%만 깎을 수 있어도 이익이니까 건드려 보는 거 같은데.
“땡큐.”
-어떡해? 정식으로 의견서 써서 보낼까?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해. 빨리 회답해 줘서 고마워, 마일로.”
-누구 부탁인데. 근데, 서운해, 제이.
“뭐가?”
-나를 세컨드로 부리고 말이야. 우리가 그런 사이였어? 의견서는 어디서 받은 거야? 베이커 매켄지? DLA?
세컨드 오피니언(Second opinion),
한 전문가로부터 받은 의견을 검증하기 위해 같은 분야 다른 전문가에게 두 번째 의견을 받는 행위.
병원 A에서 진단받고, 병원 B에 가서 재검받을 때 이와 같은 표현을 쓴다.
보통은 늘 가던 변호사가 준 의견이 신뢰 가지 않을 때 혹은 정말 신중을 기해야 할 때, 다른 로펌 변호사에게 세컨드 오피니언을 구한다.
하지만, 재민이 마일로 캠벨에게 구한 거는 다른 로펌의 변호사가 쓴 의견서가 아니었다.
같은 팀 1년차가 쓴 의견서였다.
“내부 의견서야.”
-응?
“우리 로펌 미국 변호사가 낸 의견이라고.”
-왓? 너희 미국 변호사가 쓴 거라고? 뭐야? 이제 뉴욕에 사무실이라도 내려고?
“오버하기는. 가서 돼지 곰탕이나 먹어.”
-고마워. 아주 심각한 고민이었는데.
“나중에 또 얘기해.”
-차우.
통화를 마친 재민은 두 가지 결심했다.
하나는 범상이 쓴 의견서대로 사건을 진행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