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3)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3화(3/190)
【003화 – 아공간을 숨긴 신입 변호사】
얼마 전, 리크루트팀 팀장을 맡고 있는 선배 변호사 양성규가 이력서 하나를 던져주며 말했다.
“도 변호사, 면접 한 명 봐야겠어.”
신임 변호사 채용 기간도 아니었고 자리가 비어서 충원 공고를 낸 것도 아니었다.
상시 지원 제도가 있기는 했어도 그건 3~4년 차 이상의 경력자들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런 경력자들은 주로 지원을 통해 뽑는다기보다는 해당 경력자를 원하는 팀에서 스카우트해 왔기에 대뜸 면접을 봐야 한다는 팀장의 말이 의아했다.
“네? 면접이요?”
“응.”
설명을 기대했지만, 팀장은 말이 짧았다.
그래서 던져준 이력서를 쓱 훑어봤다.
“이게 뭔가요? 일반 직원을 뽑는 거면 직원 인사팀에서 면접을 봐야지, 왜 리크루트팀에서 보나요?”
“외국 변호사직 지원자야. 거기 학력 안 보여?”
봤다. 그래서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
고등학교 중퇴. 들어본 적도 없는 대학. 게다가 국내에 소재한 국제법률 로스쿨 졸업.
워싱턴DC 변호사 자격증이 있기는 하지만···
“봤으니까 묻는 겁니다. 제대로 설명해 주셔야지요. 정말 이게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거는 아니시겠죠?”
대한민국 1위 로펌 <김앤강>.
매출 기준으로 전 세계 50위 안에 드는 로펌이고,
단일 사무실 기준 변호사 수로는 전 세계 30위 안에 들며,
신입 변호사 급여만 놓고 봤을 때는 전 세계 10위 안에 든다.
미국법 변호사의 경우, T14 로스쿨 (TOP 14위 미국 법과대학원) 출신이 아니라면 정말 특출난 경력이 있지 않은 한 면접은커녕 서류도 검토하지 않는다.
“나도 몰라. 위에서 보라고 지시가 내려왔어.”
어쩐지···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위에서요? 위 누구요?”
대한민국에서 세습이 안 되는 곳이 딱 한 군데가 있다.
바로 로펌이다.
대기업도 되고, 교회도 되고, 심지어 병원도 된다.
병원은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아들이 의사면 된다.
아들이 변호사면 로펌도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 그래도 로펌은 안 된다.
변호사 네댓 명 모여 차린 ‘구멍가게’ 법무법인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삼십 명 이상 모여 만든 사무실의 대표변호사가 자기 자식에게 세습하려 하면 100% 쪼개진다.
그런 곳에서 인사 청탁?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물론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정·재계 유명 인사들의 자식들이 간혹 연줄을 타고 들어온다.
하지만 실력이 없으면 1~2년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T14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미국변호사협회에서 공인하는 199개 미국 로스쿨 중 하나를 졸업하기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국내 국제법률대학원을 나온 ‘낙하산’이라니.
말도 안 됐다.
그래서 물었다.
“알면? 니가 어쩌려고? 가서 따지게?”
이 정도면 따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대답하려는 순간, 선배 변호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을 언급했다.
“강 변호사님.”
“네?”
“강 변호사님이 추천한 사람이라고.”
“강 변호사님이라고 하면···.”
“우리 회사에서 이런 폭탄급 낙하산을 떨굴 수 있는 ‘강 변호사님’이 몇이나 돼?”
한 분밖에 없으시다.
“강태산 변호사님이요?”
“응.”
“그런 분이 아니시잖아요.”
“그러니까 아무 소리를 못 했지.”
<김앤강>의 창립 파트너, 강태산 변호사님.
80년대 일이다. 미국 투자기업으로부터 천억 원대 소송 의뢰가 김앤강에 들어왔다. 상대는 강태산 변호사님에게 주로 소송을 맡기는 국내 대기업.
그렇다고 해도 국내 기업과 전속 자문 계약서가 체결되어 있던 것도 아니고, 그 전에 소송 의뢰가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강태산 변호사님은 국내 대기업과의 의리를 지키고 미국 기업의 의뢰를 거절했다.
당시 환율이 달러당 대략 700원이었고, GDP는 5배 넘게 차이가 났다. 실질경제성장률을 고려하면 경제 규모가 20배 넘게 차이 났던 시절이었다.
미국 기업 쪽을 변호했으면 소송비용으로 국내 기업보다 10배 이상을 청구할 수 있었을 사건이었다.
순전히 의리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게 추측이지만, 그때 사무실이 깨질뻔했다고 들었다.
얼마나 고집이 센 분인지 알 수 있는 일화.
2000년대 이후에는 경영에도 일절 관여 안 하시고 본인 사건만 하시는 분.
소속 변호사들의 90%가 새 사무실로 옮겨왔는데, 아직도 옛날 빌딩에 남아계셔 젊은 변호사 중에는 그분이 여전히 ‘근무 중’이라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왜?’
“정말이에요? 이 사람을 강태산 변호사님께서 추천하신 게.”
“추천하신 게 아니래.”
“그럼요?”
“뽑으라고 했대.”
“네에?”
“정확하게 얘기하면 ‘일 한번 시켜봐’였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인사 청탁이냐고 강력하게 따졌을 거다. 정히 뽑고 싶으면 직접 뽑으시라고. 괜히 리크루트팀 통해서 정식으로 뽑은 것처럼 포장하지 말고.
도대기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왜 팀장이 말을 짧게 했는지 이제 이해가 갔다.
<김앤강>의 ‘강’이 ‘내려보낸’ 자였다.
똑똑-
“들어와.”
“변호사님, 시키신 일 관련해서 보고드릴 게 있는데 지금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그 모든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건 너무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넘어섰다.
도대기는 한범상의 ‘낙하’가 못마땅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켰다.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킨 일이 아니었다.
한 6개월간 그딴 일만 시키면 ‘알아서 그만둔다고 하겠지?’ 생각이었다.
그런데···
“뭐? 벌써 다했다고?”
말도 안 되는 대답이 돌아왔다.
“네.”
도대기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생겼다.
“한범상 씨.”
“예.”
“여기가 우스워?”
“네? 아, 아니요.”
“아무리 급한 번역이라도 chatGPT 같은 거 돌려서 대충 해 온 거를 다했다고 하면 안 되는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을 돌려보기는 했지만, 원문 그대로를 chatGPT에 붙여서 번역한 것은 아닙니다.”
도대기는 한범상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말인가.
자그마치 600페이지 분량의 서류이다. 그것도 무슨 애들 동화책이 아닌 판결문과 중재문을 포함한 법률 서류.
전문 번역업체도 최소 2주가 걸릴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사흘 만에 끝냈다고?
“한범상 씨.”
“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게 어떤 부류인 줄 알아?”
“···.”
“능력도 없는 사람이 인맥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거. 근데, 그것보다 더 혐오하는 건 그런 사람이 능력있는 것처럼 보이겠다고 사기 치는 거.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내가 말했듯이, 중요한 소송에 증거자료로 낼 서류고 상대방 변호사가 꼼꼼하게 확인할 것들이니까, 대충 AI 돌려서 번역하면 안 됩니다. 다시 해 와.”
도대기는 범상이 올린 USB 메모리스틱을 툭 치며 명령했다.
범상은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메모리스틱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돌아서려던 범상은 집었던 메모리스틱을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사라졌던 주름이 도대기의 미간에 돌아왔다.
“AI 돌려서 대충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번 검토해 주시고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뭐라고?”
“AI 돌려서 대충 번역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것 봐라.’ 도대기의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AI 돌려서 대충 번역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가 봐라?’ 하하- 그렇게 안 봤는데, 한범상 씨 뻔뻔한 구석이 있었네. 하긴 그러니까···.”
“···.”
“알았어. 놓고 가. 대신, 만약에 AI 돌려서 대충 번역한 게 발견되거나, 수준 미달이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알아둬.”
“···.”
“난 분명히 기회를 줬어.”
“···네.”
‘낙하산’이든 뭐든 일단 사람을 들였으니, 한 6개월은 잡일이나 시키면서 그냥 두려고 했다.
그런데 이딴 식이면 얘기가 다르다.
도대기는 한범상이 놓고 간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고 판결문 원본과 번역문을 대조하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본래 이런 일은 밑에 담당 변호사에게 시킨다.
하지만, 트집을 잡으려면 정확하게 알아야 했기에 직접 검토했다.
10분··· 20분··· 30분···
몇 분이면 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오타는커녕 한 문장도 어색함이 없다.
‘chatGPT 번역 기능이 그사이에 이렇게나 또 발전했나?’
도대기는 자신의 의문을 확인하기 위해 chatGPT에 원문을 복사해 붙인 뒤, 번역해달라는 명령을 넣었다.
그러곤 한범상의 번역문과 대조해 봤다.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관성 있게 번역되어야 하는 부분이나 번역이 까다로운 영미법 법률 문구들도 chatGPT와 다르게 되어 있었다.
‘뭐야. 정말 이걸 본인이 한 거라고?’
띠리링- 띠리링-
-도 변호사, 왜?
“변호사님, 저번에 필요하시다는 번역 있지 않습니까?”
-응.
“그거 초안이 나왔는데, 담당 변호사가 누군가요? 검수 좀 해보라고 하게요.”
-벌써? 어떻게?
“네. 뭐, 완벽한 거는 아니고요.”
-완벽할 필요는 없지. 그거 우리 팀 윤수완 변호사한테 시키면 돼.
통화를 끝낸 도대기는 국제통상팀 윤수완 변호사를 사무실로 불러서 한범상이 놓고 간 USB 메모리를 건넸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주고 말았겠지만, 곧바로 검토하고 부족하거나 이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알려달라고 일렀다.
아니, 평소 같았으면 이런 일을 하지도 않았다.
본인 사건도 아닌데 시간 아깝게 미쳤다고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이게 다 낙하산 때문이다.
오기가 생겼다.
자격 없는 자가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으려 들면 어떻게 되는지를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다.
‘앞으로 6개월, 아니 3개월이 지옥이 되게 만들···.’
똑똑-
“들어와.”
“변호사님.”
“어, 그래, 윤 변호사.”
“주신 번역문들 검토했습니다.”
“그냥 전화로 하지. 뭘, 찾아왔어. 그래, 번역문들은 어땠어? 괜찮았어?”
“완벽하던데요. 김 변호사님도 같이 봤는데, 김 변호사님도 궁금해하시던데요. 번역업체 어디 썼는지. 너무 깔끔하게 되어 있다고. 보통, 급행으로 해달라고 하면 엉망으로 해 올 때가 있어서. 고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데, 이번에는 고칠 데 하나 없었어요. 심지어 오타 하나 없었습니다.”
‘뭐라고?’
도대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이건 아까와 같은 성격의 주름이 아니었다.
설마 힘을 숨긴···.
근면, 성실을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도 변호사, 그거 어떻게 했어? 어디 맡긴 거야? 거기 번역업체가 어딘지 좀 알려줘. 번역도 깔끔하고, 법을 아는 사람이 한 거 같던데. 알려주라고, 우리 팀도 이제 거기에다 일 주게.
그러려고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극찬에 극찬이 돌아왔다.
도대기는 직접 번역문들을 검토했다.
고작 번역이지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법률 언어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이 매끄러워 술술 넘어갔다.
게다가 중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는 번역자의 각주까지 달아 표시해 놓았다.
공들여 했다는 것이다.
‘이걸 사흘 만에 혼자 다 해냈다고?’
절대 믿을 수 없었다.
다만, 혼자 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스타일이 일관되었다.
글에도 지문이 있다.
한두 문단이 아닌 몇 장 되는 글에는 글쓴이의 특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무리 번역문이라 할 지라도 자주 쓰는 단어, 문장구조가 드러난다.
600페이지나 되는 서류들을 보고 있으니, 그것들이 한 사람이 했거나 아니면 여럿이 한 뒤 마지막에 한 사람이 꼼꼼하게 수정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움을 받았나?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 누구의?’
자그마치 600페이지다. 책 두 권 분량.
국제통상팀에서 사용하는 번역업체에서 2주 안에 해주겠다고 하면서 제시한 금액이 천만 원이었다.
비싼 금액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그만한 분량의 전문 서류를 급행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 말의 의미는 영어 좀 한다는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밥 한번 사겠다고 하면서 부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chatGPT를 잘 사용할 줄 알면 이렇게까지 가능한 건가?’
꼬르륵-
인공지능 번역기를 활용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던 도대기는 배에서 소리가 났다.
벌써 일곱 시다.
짜증이 났다.
이것 때문에 하루가 다 갔다.
덕분에 chatGPT의 번역 기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는 점을 알아내기는 했어도 한범상의 실력을 검증하겠다고 한나절 동안이나 그러고 있었던 자신에게 현타가 왔다.
도대기는 한범상을 불렀다.
띠리링- 띠리링-
-한범상입니다.
“한범상 씨, 지금 좀 내 방으로 와.”
도대기는 여전히 그가 600페이지나 되는 번역을 혼자 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혼자 하지 않았어.’
과연 이게 이렇게나 집착해야 하는 일이냐고?
법조인들이라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데 매우 오래 걸린다.
“그러니까 그 600페이지를 한범상 씨가 혼자 다 번역했단 말이지?”
“네.”
“영어를 잘하나 봐.”
“그렇지는 않은데, 열심히 했습니다.”
“600페이지 분량의 서류를 보고 타이프만 해도 한나절은 걸릴 거 같은데, 뭐, 혼자 했다고 하니까···자, 그럼, 이것도 부탁해. 이번에는 국어를 영문으로 바꾸는 거. 문제없겠지?”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급한 거는 아닌데, 빨리 주면 좋고. 600페이지를 사흘도 안 돼서 해왔으니까 별문제 없겠네. 그렇지?”
“최대한 빨리 해서 드리겠습니다.”
도대기는 범상의 얼굴을 쳐다봤다.
긴장하거나 다급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번에도 사흘 만에 해 온다면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 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