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31)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31화(31/190)
【031화 – 실험, 친구 그리고 구름】
토요일 오후,
기중이가 놀러 왔다.
“어이.”
“왔냐?”
“웬 선글라스?”
“응? 아- 눈이 부셔서.”
“눈이 부셔? 야, 구름 꼈어.”
깜빡했다, 여긴 현실 세계라는 걸.
아공간으로 뭘 좀 옮기느라고 왔다 갔다 했더니 헷갈렸다. 아공간 안은 지금 환하다 못해 희다.
“그렇네. 어디 갔다 와?”
“응. 와이프랑 하율이 장모님 댁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 흐흐흐흐.”
“아주 신이 나셨어.”
“얼마 만에 자유냐. 밤새 <발게3> 하다 자야지. 야, 오늘은 니가 술 먹자고 해도 나의 앤써는 ‘노’다.”
“너나 마음 바뀌어서 새벽에 문자하지 마라.”
“네버.”
“그거 재밌냐?”
“뭐? 발더스 게이트? 완전. 평 장난 아니야.”
“안 그래도 다들 재밌다고 하더라. 그거 인터넷 연결 없이도 되냐?”
“솔플 모드는 필요 없을걸. 근데, 대한민국에서 누가 인터넷 없이 하냐.”
나.
“오케이.”
“왜? 너도 하게?”
“고민 중이야. 하도 재미있다고들 하길래. 지금 하고 있는 <젤다> 깨고 나면 그거나 해볼까 해서.”
“젤다? 왕눈?”
“아니. 시간의 오카리나.”
“옛날 거?”
“응.”
“아, 그거 고티(GOTY)지.”
고티, Game Of The Year의 줄임말.
‘그해 최고의 게임’이라는 뜻으로 게임 시상식의 최고 명예로운 상.
닌텐도 N64로 발매된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1998년 제3회 일본 게임 대상 수상작이자, 게임 어워드 탄생 전 가장 명망 높았던 AIAS(인터액티브 예술 과학 아카데미)과 BAFTA(영국 영화 텔레비젼 예술 아카데미)에서 고티의 명예를 안은 작품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고 있다.”
정말로.
“레트로 게임에서 헤어나 오질 못하고 있구먼.”
업데이트도 필요 없고, 전력 수요도 적기에.
“밥 먹고 갈래?”
“아니, 가서 먹을래. 지금 너랑 한가하게 밥 먹을 시간이 없다. 집이 비었다.”
“그렇게 집에 가고 싶으면, 왜 왔냐? 그냥 가지.”
“이거 주려고.”
전에 주문한 골드바.
“오, 땡큐.”
“내가 땡큐지. 우리 아버지가 그냥 신났다. 네 덕에 아주 훌륭하신 고객 라인이 생겼다고.”
“야, 내가 얼마나 산다고. 니네 가게 한 달 매출에 1%도 안 될 텐데.”
“김앤강 변호사님들이시잖아. 우리 아버지가 또 ‘사’자 들어가는 사람들은 무지 좋아하시지 않냐. 오죽 하면 너 만나러 간다고 하면 가게도 자기가 보신다고 하시는 분인데. 아무튼 ‘조만간 금값이 또 좀 떨어질 것 같으니까, 금테크들 하시려면 기회라고 홍보 좀 해줘라.’라고 우리 아빠가 너한테 전하랬다.”
“아주 유용한 정보군. 알았어.”
“그럼, 나 갈게.”
“진짜 그냥 가는 거야?”
“고럼. 페이룬이 날 기다린다.”
“그래, 가라.”
“야, 근데 여기 오랜만에 올라와 보는데, 뭐가 또 많아졌다. 저건 화단이냐?”
“응. 뭐 좀 키워 보려고.”
“저기 벽돌들은 또 뭐고?”
“뭐 좀 지어 보려고.”
“너···시간이 많구나?”
응.
“미혼이잖냐.”
“크으- 부럽다. 간다.”
기중이가 돌아간 뒤, 나는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아공간으로 향했다.
하려던 일이 있다.
···
추가로 금 열 돈을 금고에 넣었다.
열 평이 늘어났다.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화덕을 위한 공간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는데.
기중이 녀석이 주고 간 열 돈 덕에 필요했던 여유가 생겼다.
배수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방울토마토 묘목을 가지고 들어와 이곳 흙에 심어봤다.
밖에서 물을 가지고 들어와 줘야 하는 것이 조금 번거로웠지만, 성공한다면 식량 조달 문제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실험이었다.
실험은 대성공했다.
열매가 나기까지 두 달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한 달 만에 초록색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렸다.
생각보다 물 공급도 어렵지 않았다.
장마철, 대야에 빗물을 받아 사용했더니, 따로 비용이 들거나 하지도 않았다.
달리고 나서 2주일 만에 붉어진 토마토는 달았다.
나는 곧바로 달려가 토마토 묘목을 몇 개를 더 구매하고, 키우기 쉽다는 상추, 파, 깻잎, 오이도 사 왔다.
모두 성공했다.
어찌나 잘 자라던지, 실컷 먹고 나서도 남아돌아 냉장 보관을 해야 할 정도였다.
농사짓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내가 키운 식량을 수확하는 기분은 또 다른 희열감을 주었다.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사 먹는 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스타듀 벨리> 게임을 직접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채소들이 맛있다고 느껴졌다.
당장 닭 몇 마리를 사와 가축까지 키우고 싶은 욕구가 불끈 솟아올랐다.
참았다.
당연히 아직은 무리.
하지만, 나중에 공간을 조금 더 키우고 만약 이곳에 담수가 생긴다면···
‘아공간 속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순간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이라고 생각했었다.
빛도, 물도 없는 공간이 무한대로 늘어나봤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는 않으니까.
그런 공간이 넓어지면, 그만큼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기에 마냥 늘릴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빛이 생겼다.
‘태양’이 나타났다.
빛은 아공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단순히 시야를 밝게 해준 것만이 아니었다.
막대한 에너지원이 생긴 것.
전기 소비를 반 이상 줄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충전을 할 수 있게 되어 사실상 이제 전기는 아공간에서 자급이 가능해졌다. (태양광 충전 배터리가 있다고 전제할 때.)
그뿐만이 아니었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물론 불편함도 따라왔다.
해를 가려야 하는 일, 더워진 온도 등 바뀐 변화에 적응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태양’의 출현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하더라도 대환영할 사건이었다.
벽을 올렸고, 기둥을 세웠고, 그 위에 지붕을 얹었다.
누가 보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집’을 만들었다.
실내와 실외, 공간을 구분했다.
토마토, 오이, 감자 등을 키우는 작은 텃밭을 마련했고, 인분을 퇴비로 만들어 주는 컴포스트 간이화장실도 설치했다.
그리고 지금 막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까지 완성했다.
‘이 정도면 다 된 것 같은데. 불 한번 피워볼까?’
조금 있으면 밤이다.
이곳은 이제 단순히 크기만 늘어나는 공간이 아니다.
30평이 넘어가자, 흙이 나왔다.
그러고 나서 하루를 보내자, 해가 나왔다.
그리고 얼마 전. 또 하나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국제중재팀 사건과 특허팀 사건이 같이 들어오는 바람에 한 달간을 이곳에서 생활했던 날,
‘달’이 나타났다.
‘그래도 첫날인데, 소소하게라도 바비큐를 해 먹어야겠지?’
이번에는 좀 더 긴 실험을 해볼 생각이다.
나가지 않고 이 공간 안에서 24시간 동안 있었더니, ‘해’가 나타났다.
나가지 않고 이 공간 안에서 30일 동안 있었더니, ‘달’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나가지 않고 이 공간 안에서 12달 동안 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그보다 더 짧은, 그러니까 예를 들면, 석 달 만에도 뭔가 일어날 수 있고.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해봐야지.’
뭐가 됐든, 이번엔 한 번도 나가지 않고 1년을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서 들어왔다.
식량, 물, 나무, 석탄 등등.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가능한 한 오래 있어 볼 생각이다.
할 거리들은 많다.
해보지 않은 게임들도 아직 많고, 읽어도 읽어도 재미있는 만화책도 많다.
디트로이트 서점에서 사 온 법률 서적들과 사무실에서 복사해 온 사건 기록들까지 포함하면, 심심할 일은 없을 듯싶다.
난 혼자서도 잘 논다.
‘1년이라···그럼, 일단 하다만 <젤다>부터 끝내볼까?’
.
.
.
생각보다 실험은 어려웠다.
잠깐씩이라도 중간중간 나갈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성공했다.
결과는?
하늘에 ‘구름’이 생겼다.
투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띠리링- 띠리링-
-왜?
“뭐하냐?”
-뭘 하긴 뭘 해? 방금 말해주고 왔구먼. 방금 발더스 게이트 켰다.
“야, 그러지 말고 나가자.”
-어딜?
“바다 보러 가자. 내가 회 살게.”
-지금?
“응.”
-둘이?
“응.”
-갑자기 바다는 왜? 야, 나 정말 오랜만에 집에 혼자 있는 거야.
미안하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사람과 교류하는 거야.
“보고 싶다, 친구야!”
-야, 다음에 가자.
“가자, 친구야!”
-아이, 나 맥주랑 과자까지 세팅 다 해 놨다고!
“그래? ···알았다. 쩝···.”
-···.
“···.”
-하아······어디? 을왕리?
“어디든 너와 함께라면.”
-이 새끼가 좀 전에 미혼이 어쩌고저쩌고 자랑질하더니만, 너 외롭지?! 사내새끼가 청승맞게 바다는···연애해, 이 새끼야.
“그래서? 안 가?”
-간다, 가!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가자는데, 가야지. 가자!
멋진 놈.
이런 친구 하나 있는 사실만으로도 난 성공한 게 아닐까?
-*-
광화문 센터게이트 빌딩 15층,
금요일 오후,
지식재산권 분쟁팀 주니어 파트너 함익철은 시니어 어쏘 변호사 정욱진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응. 바이오젠 신약 USPTO 섹션 101 리젝션 관련해서 피셔에서 의견서 왔어?”
“네, 들어왔습니다.”
“방금 들어왔습니다.”
“뭐래?”
“아무래도 USPTO 이그재미너가 패턴터빌리티 관련해서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고 의견 줬습니다.”
“근거는?”
“미연방법원이 앨리스 케이스에서 판시된···.”
“원천적인 거 말고. 최근 판례 중에 비슷한 건이 있어?”
“네, 있습니다. 베링거 인겔하임 v. 미리엄 파마 2022년 연방법원 항소심 판례를 보내왔습니다.”
USPTO, 섹션 101 리젝션, 패턴터빌리티, 앨리스 케이스···
시작부터 전문용어가 쏟아져나온다.
“베링거 인겔하임? 페턴트 서브젝트 매터는?”
“DPP4 억제제에 대한 반응 때문에 당뇨 치료에 효과가 있는 메트포르민을 사용할 수 없는 특정 환자군에 효과가 있는 치료법입니다.”
“1심 판결 그라운드는?”
“자연현상 이용한 발견일 뿐, 단순히 기존 치료제들의 배율을 조절한 것만 가지고는 패턴터빌리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걸 항소심에서 뒤집었다는 거야? 이유는?”
“설사 단순히 기존 치료제들의 배율을 조절한 것일지라도 특정 질병을 앓는 환자 중에서도 예외적 반응을 보이는 특정 환자군을 위한 기존에 없던 치료법이라면 특허권 자격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도움이 되겠네. 맞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그거 바탕으로 의뢰인에게 소송해 보자고 의견 주고, 하겠다고 하면 피셔에 연락해서 제소 준비해달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김앤강에서 변호사 수가 가장 많은 팀은 (국내) 소송팀이고, 외국 변호사가 가장 많은 팀은 국제중재팀이다.
하지만, 김앤강에서 가장 큰 팀은 바로, 지식재산권을 다루는 특허팀이다.
변호사: 117명,
변리사 및 기술고문: 284명,
특허 엔지니어, 상표 패러리걸, 그 외 직원: 191명.
수십 개의 팀, 총직원 수 4,000명이 넘는 조직에서 600명이 소속된 부서.
그러나, 특허팀이 ‘가장 큰’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가는 건 소속 인원 때문만은 아니다.
김앤강의 1조 5천억 원 연매출액에서 1/3, 즉 6천억 원을 담당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팀’이라는 명칭보다 ‘그룹’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린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 정 변.”
“네, 변호사님.”
“다음 주 월요일에 성아제약 미팅 있지?”
“네, 유 이사님이랑 R&D 담당자랑 세 시에 성아제약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내가 급한 건이 생겨서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음, 저쪽에서 다섯이 참석한다고 했는데, 혼자면 모양새가 좀 안 좋을 것 같으니까···한 변호사한테 물어보고, 시간이 되면 같이 가.”
“한 변호사라고 하시면···.”
“한범상 변호사.”
“내가 배당한 거 봤지?”
“네.”
“생각보다 이쪽에 대한 이해력이 있는 거 같아. 회의 끝나면 리포트 작성을 시켜봐.”
“아···할 수 있을까요?”
“시켜야 늘지.”
“네, 알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곳
변호사들에게 실력 있는 변호사가 되는 데 꼭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의 아홉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리걸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리걸마인드(legal mind).
직역하면, ‘법률적 사고방식’쯤 되는 이 단어는 사전에도 정의가 없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면 다양한 설명이 나온다.
‘논리적 사고’를 그럴싸하게 부르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부터, ‘어떠한 문제상황을 접했을 때, 그 사실관계를 법리적으로 판단한 뒤 논리적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사고체계’라는 꽤 구체적인 설명까지.
그래서 리걸마인드가 도대체 무엇인 거지?
로스쿨 입학 이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은 이 단어의 의미를 솔직히 나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누가 물으면 나도 위와 같이 설명해 줄 수는 있다.
‘주어진 상황의 사실관계를 분석한 후 관련된 판례와 법리를 적용하여 합법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해 내는 사고방식입니다!’라고.
하지만, 그렇게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이해(理解), 즉 진정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 변호사, 갈까요?”
“네, 변호사님.”
월요일 오전, 나는 특허팀 시니어 어쏘 정욱진 변호사님을 따라 성아제약 미팅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