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32)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32화(32/190)
【032화 –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곳】
“지금 저쪽 주장은 성아제약의 바이오시밀러 ‘PL15’가 제조공정과 살균 공정 등에 17개 부분에 있어서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저희가 보내드린 US 특허 번호랑 해당 특허 기술 상세 목록 검토하셨죠?”
“검토했습니다. 검토했는데요. 이거 억지예요, 변호사님. 리젠 쪽에서 주장하는 제조공정 특허 침해 부분은 Flt 1 수용체 키메릭 폴리펩타이드 수정 제조공정인데, 공정 자체는 특별할 게 별로 없습니다. 이미 다른 약 제조공정에도 쓰이고 있는 방법이고.”
“리젠 파마 쪽에서 보내온 의견서에 따르면, VEGF 안타고니스트 Flt 1 수용체 개선은 자기네가 독창적으로 개발한 제조 방법이고, 성아제약이 제출한 품목허가신청에 명시된 해당 길항제 제조 방법이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동일한 것은 맞는데요. 저희가 보냈을 때는 리젠 쪽에서 FDA 퍼플북에 해당 제조 과정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
그런 시간이 있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났는데, 막상 그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는 정말이지 멈춰있는 것처럼 느리게 흘러간.
성아제약과의 미팅이 그랬다.
정신없이 뭘 적었는데, 막상 뭘 적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정욱진 변호사님이 내게 물었다.
“정리할 수 있겠어요?”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도 물었던 질문.
그때는 망설임 없이 ‘네, 잘 듣고 기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목소리에 그만한 자신감이 실리지 않는다.
“예, 해보겠습니다.”
기록을 꼼꼼하게 봤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술적인 부분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하니,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어렵죠?”
다행히도 나보다 두 살 많은 정욱진 변호사님은 친절하셨다.
“네.”
“하다가 어려우면 찾아와요.”
“고맙습니다.”
그래서 용기 내서 물었다.
“변호사님은 조금 전 회의 내용이 다 이해 가시나요?”
확인하고 싶어서 한 질문이 아니었다. 다음 질문이 어색하지 않게 긍정적 대답을 기대하고 먼저 던져본 것이었다.
그런데.
“아니요.”
반대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
“저걸 어떻게 다 이해해요.”
“아, 근데 아까 미팅에서 질문하시는 거 보면 다 아시는 것 같던데.”
“그래 보였어요? 저기 저분들,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서 박사학위 받으시고도 10년 이상씩 일하신 분들이에요. 이해 못 해요. 이해했으면 아까 미팅에서 해답을 드릴 수 있었죠. 사건 끝날 때쯤 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6년 전쯤 처음 들어본 단어. 국내 대기업들이 21세기 새로운 먹거리라며 너도나도 자회사를 세워 상장한다는 기사에서 봤다.
그때도 그냥 그런 게 있나 보다 흘려들었다.
로스쿨에 들어가서 좀 더 정확한 정의를 배울 수 있었다.
바이오시밀러란, 특허 보호 기간이 끝난 기존 바이오 의약품과 등등한 혹은 매우 유사한 의약품으로 오리지널의 효과 및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일컫는다.
성아제약의 분쟁은, 성아제약이 출시하려는 바이오시밀러 제품에 대해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인 리젠 파마가 특허 침해라며 출시를 막으려 하는 것이었다.
특허가 완료된 의약품인데 무슨 특허 침해가 있냐고?
이걸 설명하려면 또 다른 개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제너릭(generic)이다.
제너릭은 인공화합물을 조합해 만드는 기존 합성의약품과 똑같은 성분·구조를 가진 복제품이고,
바이오시밀러는 세포 배양, 유전자 재조합 등 생물학적 공정을 통해 만드는 바이오의약품과 등등한(혹은 매우 유사한) 성분·구조를 가진 유사품이다.
둘 다 특허 보호 기간이 완료되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의약품을 기반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법적인 측면에서는 다르다.
전자는 성분구조가 완벽하게 같기에 제조생산 공정 방식을 비교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후자는 그렇지 않다. 동등한 성분구조라 할지라도 제조생산 공정 방식이 다르고, 세포 배양 추출이라든지, 재조합 방식 자체에 특허가 남아있을 수 있기에 단순히 의약품의 성분에 대한 특허 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함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약 자체는 특허가 끝났어도 그 약을 만드는 방식에 대한 특허는 살아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아공간에서 1년간 있으면서 특허(patent)를 포함해 지식재산권을 전반적으로 공부했다.
방대했다.
상표권 분쟁에서부터 저작권, 산업재산권···
특허법, 저작권법, 실용신안법, 디자인법, 발명보호법···
1883년 산업재산권의 국제적 보호에 관한 파리 협약, 1995년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 2000년 특허출원 절차의 간소화 및 특허 비용 절감에 대한 특허법 국제조약 특허법 조약···
바이오시밀러 관련 분쟁에 관해서도 공부했다.
성아제약 기록도 꼼꼼하게 읽었다.
비슷한 사건도 찾아보았다.
많지는 않았다.
애초에 바이오시밀러라는 개념 자체가 탄생한 지가 몇십 년 되지 않고 관련법과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십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많은 분쟁이 현재 진행형이고 답은 구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정욱진 변호사님의 대답이 솔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걸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해당 분야에서 10년, 20년씩 공부한 이공계 천재들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하는 개발을.
막막했다.
과연 내가 10년, 20년을 아공간에서 그것만 판다고 한들 올곧이 이해할 수 있을까? 황반변성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아플리버셉트와 동등한 성분구조를 갖는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제조법을.
선배의 솔직한 대답은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1년 만에 숙련된 특허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하고 공부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런 미팅에 들어왔을 때 이해는 할 수 있거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엿보였는지, 묻지도 못하고 있는 순간, 정욱진 변호사님은 내가 하려던 질문의 대답을 해주셨다.
“특허분쟁이 원래 그래요. 이해할 수 없는 걸 해결해야 하는 일. 본질은 그거예요.”
‘이해할 수 없는 걸 어떻게 해결하지?’
나는 더 묻지 못한 채, 무거워진 마음만을 갖고 사무실로 돌아와야 했다.
-*-
똑똑-
광화문 센터게이트 빌딩 15층,
미팅에서 돌아온 정욱진은 김앤강 특허팀 주니어 파트너 함익철의 방을 노크했다.
“다녀왔습니다.”
“어땠어? 뭐래?”
“테크닉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다른 공정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공정이 사실상 같다고는 인정했습니다. 다만, 퍼플북에 기재된 내용이 아니라서 이번에 특허 침해 가능성을 제기하기 전까지 자기네는 리젠 파마가 그 같은 공정을 이용한 사실을 알지 못했고 독창적으로 고안해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이오시밀러를 제조 판매하려면 매우 복잡한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똑같은 성분구조를 가진 제너릭이 아니기에,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처럼 임상실험도 거쳐야 하고 특허청의 깐깐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진짜 까다로운 것은 따로 있다.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와 사전 협의를 통해 해당 바이오시밀러가 자신들의 제품에 남아있는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는 절차이다.
바이오시밀러 제조사는 자신들이 생산하려는 바이오시밀러의 제조와 관련된 기밀들을 항목별로 정리해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에 보내고, 그러면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는 이를 검토한 뒤 자신들의 의견을 바이오시밀러 제조사에 넘긴다.
이 과정이 흡사 앞뒤로 스텝을 밟아가며 밀고 당기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특허 댄스(Patent Dance)’라는 아주 특별한 별명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주장해서는 리젠하고 그 이상 스텝 밟기 어려울 것 같은데.”
“저도 그래 보이기는 하는데, 일단 어떤 부분이 다른 공정에서 흔히 이용되는 부분이고, 어떤 부분이 이번 PL15 제조공정에서 특별한 건지 구체적으로 비교 대조해달라고 했습니다.”
“잘했어. 보고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기존 특허 공정 자체와 어떻게 해서든 차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 같네. 이제 와서 해당 제조공정 부분을 수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까다로운데, 이미 나와 있는 치료제와 유사한 제품을 왜 만들려는 걸까?
이유는 하나다.
돈.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바이오시밀러 제조업체들 역시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이미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기존 치료제의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랜 기간 수없이 많은 시도와 실패를 통해 개발된 것이고, 그렇게 어렵고 확신 없는 과정을 통해 얻은 지식이기에 특허권을 인정·보호해 주는 것이니까.
그런 특허가 풀렸으니, 이미 효과가 있는 것도 확인했고, 해당 치료제의 유사품을 개발하는 데에는 그만한 시간과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고, 마케팅만 잘하면 기존의 ‘비싼’ 오리지널 치료제보다 흥행하게 할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기존 오리지널보다 부작용을 줄이거나 미세하게나마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고.
그럼 당연히 더 잘 팔릴 건 뻔하고.
왜 21세기의 먹거리라며 대기업들이 뛰어드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반면,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는 당연히 눈에 불을 켜고 침해 요소를 찾으려고 할 수밖에.
특허분쟁 전문 변호사는 그 사이에서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을 비교·구별하여 의뢰인의 주장을 법적으로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 수고했어. 아참- 그 친구는 어땠어? 한범상.”
“뭐, 똑같죠. 하하. 이쪽 경험 없는 변호사가 첫 미팅 들어가면 짓는 표정.”
“그래?”
“그래도 자세는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오는데 묻더라고요. 어떻게 그걸 다 이해하시냐고.”
“그래서 뭐라고 해줬어?”
“이해 못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뭐래?”
“막막해하던데요.”
그렇다.
제아무리 똑똑한 놈이라고 해도, 문과는 문과일 뿐.
이공계열 머리는 다르다.
“여기가 정말 리걸마인드가 필요한 곳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없을 때
리걸마인드 관련해서 하버드 로스쿨 학장 토마스 리드 파웰이라는 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네가 어떤 것과 관련이 있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하여 그것과 관련된 점을 생각하지 않은 채 생각할 수 있다면, 너는 리걸마인드를 가졌다.」
(If you can think about something that is related to something else without thinking about the thing to which it is related, then you have a legal mind.)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
똑똑-
“아, 도 변호사님, 한 변호사님 휴가 내셨어요.”
한범상 변호사의 방문을 노크하는 도하영에게 비서가 설명했다.
“휴가요?”
“네.”
소송을 다루는 국내 변호사들은 주로 법원이 쉬는 여름에 휴가를 간다.
그에 비해 외국 변호사들은 휴가 쓰는 것이 자유롭다.
그렇다고 한들 이 어정쩡한 11월에?
“아, 휴가 가셨구나···.”
“네.”
도하영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네, 알겠습니다···혹시 뭐 댁에 무슨 일이 있거나 그런 거는 아니죠?”
“그것까지는 저도···혹시 급한 일이 있으세요?”
“그건 아니고···.”
“어디 해외로 나가시는 건 아니고 댁에 계실 거라고, 언제든 전화하셔도 된다고 하셨어요. 일하실 건 가봐요. 가방에 사무실 서류랑 책들 엄청 챙겨가셨어요.”
“아, 네. 알겠어요. 고마워요, 정 대리님.”
하영은 범상의 빈 의자를 한번 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