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33)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33화(33/190)
【033화 –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없을 때】
휘익-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뒷덜미를 간지럽히며 날아갔다.
시원하다.
이제 이곳, 아공간 안에서도 바람이 분다.
보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 하늘을 바라봤다.
파랗다.
구름 한두 점.
멍하니 그것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니, 피곤해지려 했던 눈이 다시 생생해진다.
그런 김에 일어나 스트레칭도 했다.
딱히 찌뿌둥한 곳은 없었지만, 상쾌해지는 기분.
근데, 사실 눈도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다.
그저 그 하얀 반점들 떠 있는 연파랑 하늘을 보고 있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을 뿐.
나는 다시 성아제약 바이오시밀러 PL15 제조공정 설명서를 집어 들었다.
-*-
김앤강,
센터게이트 빌딩 15층.
“정 변호사, 넥젠 파일 좀 봤어?”
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던 함익철은 욱진의 방에 들렀다.
“네, 검토했습니다.”
“나는 도통 이슈가 뭔지 모르겠네. 정 변호사는 이해가 가? 그래서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게 뭐야? 게임을 영원히 운영하라는 거야? 아니면 자기한테 캐릭터를 달라는 거야?””
“네, 조금은.”
게임 회사가 오래된 온라인 게임의 서버를 완전히 닫겠다고 발표했다.
수익률 저하가 그 원인이었다.
남아있는 이용자 중에서 몇십 명이 서버 폐지는 계약 위반이자 자신들의 가상재산 침해라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익철은 도무지 이런 소송이 왜 제기될 수 있는지조차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 나는 봐도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것 같은데.”
“대부분은 그렇기는 한데, 의뢰인이 게임 관련해서 NFT를 발행한 점은 조금 걸리긴 합니다.”
“그래, 그건 또 뭐야?”
“NFT요?”
“NFT가 뭔지는 아는데, 그게 게임플레이나 캐릭터하고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니잖아? 그 부분 읽을 때, 난 좀 뜬금없던데.”
“논리적으로 잘 쓴 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장 변호사가 설명해 줄 수 있어? 아니면, 김 고문님이랑 미팅 한번 가질까.”
“아무래도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려면 고문님이랑 미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장 변이 김성희 고문한테 스케줄 어떻게 되시냐고 물어보고 내일이나 모레 오전으로 해서 미팅 잡아. 그전에 상대방 변호사한테서 온 준비서면 요약해서 첨부 서류랑 보내드리고.”
“네, 알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함익철은 돌아서 나가려다 문득 또 하나가 생각났다.
“아, 성아제약 건.”
“네.”
“회의록 잘 봤어. 정리 잘했던데. 한 변호사가 한 거야?”
“네.”
대답하는 욱진의 표정이 마냥 시원하지는 않다.
“왜?”
“아닙니다. 아, 성아제약에서 답변 보내왔습니다. PL15 제조공정 관련해서 리젠 측에서 지적하고 있는 특허 침해 부분과 관련해서요.”
“그래? 벌써? 빠르네.”
“조금 조급한 것 같더라고요. 조 이사님하고 통화했는데, 리젠 측에서 합의 얘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거는 아니고 오프-더-레코드로.”
“그건 좋은 사인 같은데?”
“그렇다고 저도 생각했는데···성아제약에서 보낸 이번 의견서를 보면, 여전히 차별점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그렇다고 진보성 없는 상용기술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도 못하고 있어서요.”
“그래서 조급한 거야?”
“제가 받은 느낌은 그렇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그것도 김해찬 변리사님하고 미팅 잡자고. 우리끼리 봐 봤자, 장님 코끼리 만지기밖에 더 돼?”
“네.”
“성아제약하고 다음 미팅은 언제지?”
“다음 주 월요일이요.”
“앞당겨졌네? 목요일 아니었어?”
“옮길 수 있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사무실에서지?”
“네.”
“흠.”
“바쁘신가요? 미룰까요?”
“아니야, 아니야. 참석해야지. 저번 미팅도 빠졌는데.”
일정이 좀 빠듯하다.
“그럼, 김해찬 변리사님하고는 금요일 오전에 미팅 잡을까요?”
“그게 좋겠네.”
“그렇게 일정 잡고 메신저로 확인 드리겠습니다.”
“굿. 그리고, 한 변호사한테 관련 리서치 좀 시켜. 특허 기간 만료된 지 얼마 안 된 의약품이라 패턴 서브젝트 매터 관련해서 판례는 없어도, 공정 자체 관련해서는 있을 수 있으니까.”
“아···.”
“왜?”
“한 변호사가 휴가를 썼더라고요.”
“휴가?”
뜻밖의 보고에 의아해진 파트너 변호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시니어 어쏘는 그의 기분을 충분히 공감했다.
“네.”
“언제까지?”
“이번 주말까지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휴가를 갔다고? 입사한 지 이제 고작 1년밖에 안 된 신입 변이?
“제가 해서 올리겠습니다.”
“흠···그래야겠네. 알았어. 그럼, 그것도 좀 수고해 줘.”
“네.”
“그래도 월요일 미팅에는 참석하라고 해.”
“네, 그렇게 전달해 놓겠습니다.”
함익철은 욱진의 방을 나와 자기 방으로 향했다.
‘휴가라···.’ 못 쓸 이유는 없었지만, 굉장히 근면한 친구로 봤는데 너무 섣불리 판단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휴가를 냈다.
조급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조급해지면 더 못하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은 특허 강국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연간 국제 특허출원 수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출원 증가율을 놓고 보면 상위 10개국 중 1위이다.
김앤강의 지식재산팀이 이 중 40% 이상을 대리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왜 김앤강 지식재산팀에 변호사 120명, 변리사 및 기술고문 280명, 그 외 특허 엔지니어, 상표 패러리걸 등을 합해 600명에 달하는 전문가가 모여있는지 납득이 간다.
지식재산팀은 이원으로 돌아간다.
하나는 변리사와 기술고문 주축으로 돌아가는 특허출원, 상표권등록 등을 하는 사무실이고, 다른 하나는 변호사가 주축인 특허, 상표권 분쟁 등을 다루는 사무실이다.
전자는 아예 다른 건물에 사무실이 있을 정도로 독자적으로 운용된다.
물론 특허출원 관련해서도 변호사들의 업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쪽은 사실상 변리사들의 영역이다. 기술적인 분석이 필요한 사무실이고, 제약, 통신, 게임 등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다.
지난 십여 년간 김앤강은 명망 있는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왔다.
후자는 전통적으로 변호사의 영역.
하지만,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지식재산권 보호가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시되고 있는 지금, 변호사들 역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의뢰인에게 맡겨둔 채 법적인 부분만 다뤄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그래서 김앤강 특허팀 변호사들은 사건을 이해하고 분쟁을 해결할 때 같은 사무실에 있는 전문가들의 조력을 받는다. 그리고 그 둘의 협력은 점점 더 중요시될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걸 해결해야 하는 일.」
당연히 전혀 모르는 걸 해결할 수는 없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낫을 놓고 기역을 표절했다고 백날 주장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못해도 적어도 한글에 ‘ㄱ’이라는 자음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논쟁이라는 걸 할 수 있다.
특허분쟁을 다루는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해당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필요한지 등 자세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다.
다만 해당 기술이 기존 기술과 뭐가 비슷한지, 뭐가 다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기술이 내 의뢰인 기술의 어떤 부분과 동일한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내 의뢰인의 기술이 상대방의 기술과 어느 부분에 있어서 구별되는지 설명·주장할 수 있으니까.
「본질은 그거예요.」
특허 변호사가 자기가 다루는 사건의 모든 분야를 이해할 수는 없다.
미국이나 유럽 대형 로펌의 경우, 바이오, IT, 화학 등 분야별로 전문화 해가는 추세이기는 해도, 국내는 아직이다. 클라이언트를 따라간다.
따라서, 특허 변호사들은 생소한 분야일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분쟁의 사실관계를 법률적으로 관점에서 해체하여 비교·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특허 변호사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소송에 가서도 아주 유용하다.
왜냐하면 법원의 판사들 역시 대부분 그 분야에 생소할 것이기 때문에.
“아아아아- 다 읽었다아아아아!”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배워버렸다.
사락사락.
성아제약 바이오시밀러 PL15 제조공정을 드디어 이해했을 때, 아공간의 하늘에서 하얀 결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
시원하다.
-*-
월요일 오후,
성아제약 법무팀과 R&D팀 담당자들이 김앤강 특허팀 사무실을 찾아왔다.
혹시라도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자세한 PPT까지 준비해 왔다.
근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금요일에 김해찬 변리사와 미팅하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복잡한 게 많아졌다.
궁금하신 게 있냐고 묻는 성아제약 담당자의 질문에 함익철과 정욱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박사님, TFF와 CFF를 같이 사용하는 이유는 정제 공정에 있어서 서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주기 때문인 건가요? TFF는 피드 솔루션을 농축 정화에, CFF는 목표 순도를 달성. 맞나요?”
“정확합니다.”
“근데, 리젠 측 주장을 보면, 친화 크로마토그래피 단계에서 사용하는 아플리버셉트 프로틴하고 특별히 결합하는 리간드를 자기네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했고, 해당 리간드를 크로마토그래피 수지에 고정하는 테크닉과 아플리버셉트 세포 배양액에서 선택적으로 채취하는 테크닉이 특별하다고 하는데, 리간드 자체는 몰라도 실험 테크닉들은 상용적인 거 아닌가요? 단백질 용출 과정에서 흔히 쓰이는?”
“네, 맞습니다! 한 변호사님, 잘 아시네요! 생화학과 졸업하셨나요?”
벙찐 정욱진은 범상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봤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자기 입이 살짝 벌어진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 자식 뭐야? 다 알면서 지난번 미팅에서는 왜 모르는 척을 한 거야.’
알람 신호
-바이오젠 신약 관련 미팅
“‘DPP-4’라는 억제제가 아니고 ‘DPP-4 억제제’입니다. 그러니까, DPP-4가 GLP-1을 빠르게 분해하는 효소이고, DPP-4 억제제는 해당 효소를 억제함으로써 GLP-1의 작용 기간을 늘려주어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고 동시에 췌장의 글루카곤 분비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죠. 그것이 결과적으로 체내 혈당을 내려주고요. 제가 이해한 게 맞습니까, 박사님?”
“네, 맞습니다, 한 변호사님.”
···
-SG 디스플레이 OLED 특허 침해 관련 미팅
“금속 착물 Alq3가 OLED 장치의 발광 특성을 조절 향상하는 것이고, Ir(ppy)3 도펀트가 발광 레이어에 추가되어 디스플레이의 밝기와 선명도를 향상하는데, US 패턴트 번호 8,227,903에서 보호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해당 도펀트를 최상화 하기 위해 귀사에서 개발한 호스트 머티리얼의 제작 방식이라는 말씀인 거죠?”
“한 변호사님이 디스플레이 관련해서 좀 아시네요. 이러면, 설명해 드리기가 훨씬 쉬워지겠는데요.”
“상대방에서 침해한 것은 귀사의 카바졸 베이스 호스트 머티리얼의 분자설계이고요?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기능 원자단인 알콕시 그룹의 설계를 모방했다는 것이죠?”
“네, 정확하십니다.”
···
변호사 대다수가 그렇게 말한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몰라도 된다’, ‘사안을 법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리걸마인드만 있으면 된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
이미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로펌에서는 특허팀에 산업 분야마다 전문 변호사를 따로 양성하고 있다.
아예 관련 학과 출신만 뽑는다.
결국 앞으로 지식재산권 분야는 더 거대해질 것이고,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불과 20년, 3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기술이 상용화될 것이고, 법은 결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 분야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다.
전문성.
그러한 전문성을 법밖에 공부한 게 없는 변호사가 가질 수 있으려면?
끝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수밖에.
함익철의 생각은 그렇다.
“한 변호사, 이쪽은 어떻게 알아? 문과 아니었어?”
“영어학과 나왔습니다.”
“그래, 이력서에서 그렇게 봤는데. 너무 잘 알아서, 아니겠지만, 부전공이나 취미 삼아 생화학 과목들을 들었나 했네.”
“아닙니다.”
“그럼, 원래부터 좀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었어?”
“아니요. 처음에 봤는데 너무 이해가 안 가서 휴가 내고 공부했습니다.”
“휴가 내고 공부를 했다고? 이 케이스들을 다?”
“네. 이해가 안 가면 사고가 멈추는 성향이라서요.”
이해가 안 가면 사고가 멈추는 성향이라서 휴가까지 내고 공부를 했다고?
근데 고작 1주일 휴가 내서 공부했는데, 저 케이스들을 다 이해했다고?
함익철은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한 변호사, 혹시 게임에 대해서 좀 알아?”
“게임이요?”
“응, 넥젠에서 출시한 <아켈로니아>라고 대규모 대중 접속 온라인 역할 게임인가 하는 건데, 인기가 없어서 회사에서 서버 서비스 중단 결정을 내렸어.”
“아, 네, 압니다.”
“알아?”
“네, 게임도 알고, 소송 내용 관련해서는 기사로 봤습니다.”
“그래? 잘됐네. 그 사건을 정 변호사랑 하고 있는데, 한 변도 같이 하지.”
“네, 알겠습니다.”
···
일주일 뒤,
<아켈로니아> 서버 폐지 관련 넥젠 미팅.
“그래서 뭐 좀 찾아본 거 있어, 한 변호사?
“2012년에 NG 소프트가 발매한 <타이탄들의 도시>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2년간에 베타 서비스 끝에 정식 발매했는데, 마블과 IP 분쟁이 생기면서 처음부터 난항을 겪다가 결국에는 재정 악화를 이후로 3년 만에 서버를 폐지했는데, 유저들이 캘리포니아 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 소송에서 제기됐던 이슈 중 하나가 유저들의 키운 캐릭터와 수집한 아이템들의 가상재산권을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인데, 당시에는 NFT라는 개념이 없을 때라 현 넥젠 소송 이슈와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관련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 판례가 있었어?”
“네, 해당 판례에서 법원이 계약 조항상의 이유로 집단소송을 기각하면서도 가상재산권을 인정해 주는 듯한 부분이 있어서 약간은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해당 판례의 메모는 작성했어?”
“네, 여기 있습니다.”
“수고했어. 근데, 같이 있는 이건 뭐야? <글리치> 케이스?”
“아, 그건 다른 사건인데, 해당 이슈로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고, 다만 미 증권법 위반으로 간 소송에서 해당 이슈가 잠깐 다뤄져서 그냥 참고용으로 넣어놨습니다.”
함익철은 한범상을 응시했다.
예전 도대기를 보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이놈도 괴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