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35)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35화(35/190)
【035화 – 두 세계를 오가며 산다는 것】
해가 생기고, 달이 생기고, 구름이 나타났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그 물을 받아 수질검사를 맡겼다.
먹어도 되는 물이란다. 신기할 정도로 깨끗하다고.
약산성이 어쩌고, 무기성분이 어쩌고, 검사결과지에 뭐가 많이 쓰여있었지만,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염분이었다.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극소량. 그러나, 분명 소금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나와 있었다.
“다 됐다! 예-!”
모 아나운서가 나온 방송 프로그램에서 봤다.
제법 큰 가정용 간이수영장.
하나 샀다.
이제 비만 내리면 된다.
당연히 그분처럼 물놀이하려고 산 건 아니다.
비가 가끔씩 내려도 여전히 물은 이곳에서 귀한 물질.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뿐.
빗물을 모아둘 것이 필요해서 구매했다.
투두두둑-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잠시 뒤 하늘에서 굵은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금세 차오르기 시작한 간이수영장.
더 큰 걸 살 걸 그랬다.
‘하긴 하나 더 사면 되지, 뭐’
금 한 돈을 넣고 맨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깜깜한 한 평의 땅이 전부였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백 평 조금 모자란 별장이 되었다.
비록 별장이라고 부르기에는 판잣집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도, 이게 어디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암흑 공간에서 스탠드 켜놓고 책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 그래, 시절.
시절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나저나 나는 이곳에 얼마나 살았을까?’
처음부터 지낸 시간을 다 합치면 3년쯤 될까?
일단 2년은 넘는다.
날짜와 시각을 기록하는 일지를 보관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2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시간.
‘이곳에서 보낸 시간만큼 나는 더 빨리 늙고 있는 걸까?’
얼마 전, 정 대리님이 회사 내규상 건강검진 결과가 필요하다고 해서 병원에 가 검진을 받았다.
받는 김에 신체 나이도 여쭈어봤다.
결과는 이십 대 후반.
장기들도 건강했다.
그것만으로 <아공간에서 보낸 시간 동안은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라는 가설을 진실로 확정할 순 없겠지만, 일단 안심은 됐다.
‘그런데 왜 나는 이곳에서도 먹고 자고 싸는 걸까?’
최대 1년이라는 시간을 바깥세상에 한 번도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지내봤다.
머리카락이나 수염, 손발톱 모두 자라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 외 분비물들은 또 다 나왔다.
‘이 안에서는 기계 같은 신체가 되는 건가? ‘작동’하기 위해서 섭취와 수면, 배설 정도만 필요한?’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지만, 애초에 이런 공간의 존재가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일단은 그렇게 가정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 안의 ‘나’만 그렇다는 것이었다.
식물들을 가지고 들어온 날, 개미 한 마리가 딸려 들어왔다.
그렇게밖에 추측할 수 없었다. 그전까지 날파리 하나 없었던 공간이었으니까.
사실 동물을 가지고 들어오는 데에 망설임이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살짝 두렵기도 했고. 같이 들어왔다가 내 몸의 DNA가 동물의 DNA가 섞여서 이상한 생명체가 탄생하는 꿈도 꾼 적도 있었다.
식물이 자란다는 사실에서 어쩌면 아공간 속 흙에 이미 미생물이 살고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해 볼 수는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곳은 아공간이다. 현실의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마법 같은 세상.
아무튼 그렇게 우연히 들어온 첫 생명체를 나는 통 안에 넣고 관찰했다.
이름도 지어줬다.
이곳의 다른 규칙들이 녀석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했다.
내가 나가면 (아공간의 다른 것들처럼) 녀석은 멈추고 내가 들어오면 녀석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였다.
개미의 수명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찾아봤다.
국내에서 서식하는 한국홍가슴개미의 경우, 일개미는 몇 달에서 오래는 2년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베르나르는 이곳에 들어온 지 8개월 만에 죽었다.
1년 동안 바깥세상에 나가지 않기를 실험하는 도중이었다.
왜 죽었을까? 노화라고 결론지었다.
다음에는 마트에서 산 물고기 한 마리를 어항에 넣어 가지고 들어왔다.
하프문베타라는 품종인데 작아서 큰 어항이 필요 없고, 폐호흡이 가능해 물만 자주 갈아주면 여과기 없이도 키울 수 있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
제일 작고, 제일 건강해 보이는 놈으로 업어왔다.
평균 수명 2년. 여전히 잘살고 있다.
녀석(이름: 블루) 덕에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나’ 말고는 다른 동물 역시 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토마토, 오이 등이 작물이 자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유튜브에서 닭장 만드는 법을 찾아 만든 후, 암탉 세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1호, 2호, 3호.
무정란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꼬르륵-
텃밭을 가꾸고, 닭장을 치우고, 집안 이곳저곳 손 볼 것들을 보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비는 멈췄다.
불을 피우고 수조(수영장)에 찬 물을 냄비에 담아 올렸다.
그렇게 물이 끓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한 시간.
꼬르르르륵-
짜파게티 두 봉을 까서 투하.
예전에 본 영화 중에 <김씨 표류기>라는 영화가 있다. 자살하려다 한강 밤섬에 갇힌(?) 남자가 짜장 라면이 먹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문득 그 영화가 떠올랐다.
그에 비하면 나는 천국에 와 있다.
내 팬트리에는 짜파게티, 진라면, 불닭, 참깨라면 등 없는 게 없다.
물이 끓는 데까지 오래 걸려서 그렇지, 일단 끓기 시작하면 끝이나 다름없다.
꼬들꼬들 잘 삶아진 면에서 물을 뺀 뒤 가루 소스를 넣어 비빈다. 준비해 둔 오이채를 올려서 한 젓가락.
후루루룩-
‘아— 맛있다.’
이 기분은 아무도 모른다.
아공간에서 끓여 먹는 짜파게티의 맛.
톡! 촤아악- 톡! 촤아악-
먹으면서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렸다.
기름을 두른 뒤, 달걀 두 개를 깨 올렸다.
지글지글지글-
적당히 잘 읽은 반숙 후라이 두 장을 반쯤 먹은 짜파게티 위에.
“아— 미쳤다!”
이번에는 국룰이라는 파김치를 싸서 먹는다.
아작아작.
쇼트 따위 틀어놓지 않고 오로지 음식을 즐긴다.
정수리에서 생긴 땀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왔다.
여름이었다.
-*-
김앤강,
국제중재팀 탕비실.
“안녕하세요, 도 변호사님!”
‘도대체 이 남자는 뭐지?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이제 화요일이다.
마치 한 일주일쯤 휴가를 다녀오고 난 뒤 집에서 한 사흘 쉰 사람 같은 이 에너지는 도대체 무엇이냐 말이냐.
“안녕하세요.”
하영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솔직히 그녀도 어디 가서 에너지로는 뒤처지지 않는 사람인데, 이 남자는 압도적이다.
“밖이 엄청 춥네요.”
“그래도 오늘은 좀 따뜻해진 거 아닌가요? 어제보다 낫던데.”
“아! 그렇죠! 제가 전기장판 안에 너무 오래 있다가 보니··· 하하하!”
“좋은 일 있으세요?”
“딱히 없는데. 왜요?”
“너무 즐거워 보여서요.”
“아- 그냥, 좋잖아요.”
하영은 이 남자가 뿜어대는 이 에너지가 좋다.
뭔가 특별하다.
“솔직히 말해봐요. 한 변호사님 일중독이죠? 회사 나오는 거 좋아하시죠?”
“일중독인 거까지는 모르겠는데, 재미있어요. 그리고 이제 고작 한 1년 넘게 다녔을 뿐이지만, 저는 좋습니다.”
“회사가?”
“회사가. 도 변호사님은 싫으세요?”
“아니요. 저도 좋아요. 그래도 어디 가서 그렇게 말하면 다들 싫어할걸요?”
“그렇겠죠?”
“싫어하더라고요.”
범상도 좋다. 말이 통하는 동료가 한 명이라도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아니까.
“점심때 약속 있으세요?”
“아니요.”
“그럼, 그 베트남 식당 같이 가실래요?”
“그래요. 열두 시? 열두 시 반?”
“열두 시 반.”
범상을 커피를 들고 탕비실 밖으로 향했다.
한 5일 쉬었더니 일이 너무 하고 싶다.
“그럼, 이따 봐요.”
“넵. 아, 근데, 한 변호사님.”
“네?”
“혹시 어제 퇴근하고 태닝 하셨어요?”
“네? 아니요!”
“얼굴이 좀 까매지신 거 같은데, 아닌가.”
“제 얼굴이요? 어두워 보이나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건강해 보여요. 마치 하와이 한 1주일 다녀온 사람 피부처럼.”
“아···그래요?”
“네.”
“불멍을 해서 그런가? 하하-”
“불멍이요? 불멍에 무슨 얼굴이 타요. 자외선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하하하.”
“그럼, 불에 익은 건가 봐요. 헤헤.”
“그런 건 같지는···근데, 어제 불멍을 했다고요? 어디서요?”
“아, 집이 옥탑이라서···.”
“옥탑에 캠프파이어가 있어요?”
“네, 뭐 작은 거 하나.”
“아, 그렇구나. 우와- 신기하다. 근데, 다른 집에서 신고 안 들어와요?”
“오래 하지는 않고 그냥 잠깐···.”
“오래 하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익었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에둘러대다 보니 말이 꼬인다.
“엄청 뜨겁게 해서 그런가···근데, 도 변호사님은 피부가 진짜 하야세요.”
그렇다고 하영이 무슨 의심을 할 정도로 이상한 건 아니다.
“엄마가 하야세요.”
“그러시구나-”
“와- 가보고 싶다. 집에 캠프파이어가 있다니. 낭만적이네요.”
“뭐, 그렇죠. 단독주택의 장점이죠. 그럼, 점심 때 봬요.”
“네.”
범상은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돌아왔다.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확인해 보니, 정말 탔다.
“이런 건 주의해야겠네.”
두 세계를 오가면 산다는 것은 신경 쓸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나저나 얼굴이 탄다고?’
역시나 신비로운 곳이다. 늙지는 않는데 피부는 또 탄다.
···
띠리링- 띠리링-
“네, 한범상입니다.”
-한 변호사, 잠깐 내 방으로.
드디어 일을 좀 하나 했는데, 최재민이 그를 방으로 불렀다.
“변호사님.”
“들어와. 문 좀 닫고 거기 좀 잠깐 앉아.”
“네.”
“바빠?”
“아니요.”
“바빠도 이게 더 중요할걸?”
“?”
“연봉협상.”
벌써 그렇게 됐다.
연봉협상을 할 때가 됐다.
플렉스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반박 불가다.
현재 대한민국 로펌에 다니고 있는 변호사들은, 국내 변과 외국 변 불문하고, 50년 전 선배 변호사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세계 어느 로펌도 이런 식으로 급여를 협상하지 않는다.
아마도···.
“원래는 성 변호사님이 하시는데, 출장 가셔서 내가 하게 됐어. 괜찮지?”
범상을 자기 방으로 부른 최재민은 먼저 시니어 파트너의 부재를 설명했다.
“네.”
원래는 해당 팀 시니어 파트너의 일이었기에.
“우리 사무실 연봉 인상 체계에 대해서는 좀 아나?”
“아니요.”
평균 신입 변호사 연봉이 1억을 훌쩍 넘는 대형 로펌. 매우 체계적일 거라 예상하지만, 그렇지 않다.
연봉 인상, 휴가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닥치기 전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특히 별산제로 운영되어 팀마다 협상이 따로 진행되는 김앤강에서는 옆 사무실 팀 파트너들이 얼마나 인상해 주었는지, 성과급을 얼마나 뿌렸는지 등에 대해서 다른 팀에 공개되지 않는다.
물론 말들이 돌기는 하지만.
“아, 그전에, 먼저 미안해. 협상이 좀 늦었어.”
“아닙니다.”
연봉협상은 입사일 기준으로 1년이 되기 직전에 한다.
국내 신입 변호사들은 로스쿨 졸업 후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기 매년 같은 시기에 재협상을 하지만, 외국 변호사나 스카우트 되어 들어온 국내 변호사는 그 날짜가 각기 다르다.
늦가을에 들어온 한범상의 1주년은 이미 두 달이 넘었다.
“이게 누가 해야 하는 건지에 혼선이 있었어서 그랬어.”
“네.”
“협상이 늦어지는 바람에 지급되지 못한 인상분은 이번 달 월급에 포함되어서 입금될 거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연봉 재협상은 변호사가 소속된 팀의 파트너가 한다.
팀이 없는 변호사는 리크루트팀에서 한다. 보통 신입의 경우, 대부분 입사 후 1년 뒤에 팀이 정해지기에 리크루트팀 파트너가 첫 번째 재협상을 담당한다.
범상의 케이스는 특별했다. 중간에 국제중재팀에 들어가게 되었고, 며칠 전에는 특허팀에까지 이름이 들어갔다.
한범상 변호사의 연봉 재협상을 어느 팀에서 할 건지에 대한 교통 정리가 조금 늦어졌다.
“이건 다른 팀들도 다 똑같아. 그해 어쏘의 퍼포먼스에 따라 최대 80만 원까지 월급을 올려줘.”
“네.”
“한 변호사는, 뭐 본인도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겠지만, 잘해줬어. 그래서 내가 성 변호사님하고 80만 원 맥스 인상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는데···.”
어쏘의 퍼포먼스.
정의가 되지 않은 모호한 단어를 썼지만, 사실 저 단어의 의미는 따로 있다.
타임.
바로, 시간이다. 어쏘가 ‘그 해 얼마나 많은 빌러블 아워(billable hour, 의뢰인에게 청구 가능한 시간)을 썼느냐’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한 변호사는, 엄밀히 말하면, 중재팀에 들어온 지 1년이 되지는 않았잖아. 그래서 기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나 말들이 좀 있었는데···이건 기억해, 내가 다 올려주는 게 맞다고 강력하게 말씀드렸다는 거.”
최재민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본디 능청스러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지만, 연차가 낮은 어쏘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기록을 보니까, 작년에 들어왔을 때 연봉이 신임 변호사 기준으로 책정되었더라고. 근데 한 변은 신임이 아니잖아? 경력이지.”
“···.”
“그래서 내가 도대기 변호사하고 얘기를 좀 했어, 그 부분을 지금이라도 적용해 주는 게 어떠냐고. 뭐 말들이 많았는데, 결론은 내 말대로 났어. 그래서, 총 160만 원이 인상될 거야.”
최재민의 표정이 그의 속마음을 대변했다.
‘자, 어때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기억하라고, 내가 그렇게 주도한 거야.’
“네, 160만 원이요?”
“물론, 세후.”
“아···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했다. 입사 1년 뒤에, 그것도 법무법인 양아같이 작은 데서 일한 경력을 인정해 줄 줄은.
“괜찮지? 이 정도면 파격적이야. 안 그래?”
“네.”
“기억해. 내가 챙겨주자고 한 거니까.”
“넵.”
“앞으로도 중재팀에서 열심히 일하라고 주는 거고.”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필요할 땐, 속마음을 꼭 드러내는 타입이다.
범상은 협상이 끝난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어디 가?”
“아, 죄송합니다. 말씀이 끝나신 줄 알고···.”
“가려면 가. 나는 하는 김에 성과급 얘기도 같이하려고 했더니.”
“아닙니다.”
“바쁜 사건 있으면 가봐도 되는데. 이 얘기는, 뭐, 내일이나 모레 할까?”
“아닙니다. 그것까지 듣고 나가겠습니다.”
“듣고 싶어?”
“네.”
최재민은 또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것도 내가 성 변호사님한테 건의드린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