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36)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36화(36/190)
【036화 – 플렉스】
국내 로펌들은 미국 로펌들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굳이 역사를 따지자면야 미국의 로펌들도 영국에서 시작한 공동 변호사 사무실 형태에서 시작한 거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로펌 역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더 경쟁적, 자본주의적으로 변했다.
변호사 수나 사무실 수로 따지면 탑 10위 안에 영국계 국제 로펌들이 더 많다. 그러나, 변호사 한 명당 수익 기준으로 하면 뉴욕의 빅로(BigLaw, 대형 로펌)들이 압살한다.
어쏘 변호사들의 연봉도 마찬가지다. 뉴욕의 대형 로펌들이 영국계보다 훨씬 높다.
심지어 소위 ‘매직 서클 로펌’이라고 불리는 런던에서 가장 명망 높은 대형 로펌의 신임 변호사 연봉보다 런던에 진출한 뉴욕 빅로들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까지 더 높은 급여를 준다.
이는 영국의 변호사 자격 취득 과정과 미국의 변호사 자격 취득 과정이 달라서 차이가 나는 것도 있지만, 비단 그 이유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히 과시하기 위해 돈을 많이 주는 고용주는 없다.
돈을 많이 준다는 건 그만큼 뽑아내겠다는 의지.
당연히 뉴욕 대형 로펌 내 경쟁 역시 그 어느 곳보다 악명높다.
국내 로펌들은 그러한 미국 로펌들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굳이 역사를 따지자면야 국내 최초 변호사 공동 사무실은 따로 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대형 로펌들의 관습은 모두 김앤강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봉 체계도, 성과급 기준도, 그리고 치열한 경쟁도.
“그래서 얼마가 올랐다고?”
며칠 뒤, 퇴근길,
범상은 기중이네 금은방에 들렀다.
“많이 올랐어.”
“그래서, 얼마?”
연봉 얘기는 친구끼리도 하지 말라고 한다.
범상과 기중은 그런 것을 초월한 사이다.
우울한 학창 시절, 서로를 형제 삼아 견뎌냈다.
범상의 어머니가 다쳤을 때, 백수인 범상에게 큰 금액이 담긴 흰 봉투를 건네준 기중이었다.
“금 다섯 돈 가격 정도.”
“와- 대박.”
“뭔 줄 알고, 대박이래?”
“응, 몰라. 로펌을 다녀 봤어야 알지. 근데, 많이 올려준 거 아니냐?”
“맞다. 많이 올려줬다.”
“와우- 너 회사에서 인정받는 변호사구나! 야, 쏴!”
“안 그래도 그래서 왔다. 자.”
범상은 금색 보자기로 싼 한우 세트와 그보다는 작은 상자 하나를 유리장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냐?”
“한우다.”
“한우?”
“가서 제수씨랑 하율이랑 먹어.”
“와! 이 비싼 백화점 한우 세트를! 변호사 친구 좋네! 연봉 올랐다고 이런 것도 얻어먹고.”
“그리고, 이건 아버님, 어머님 가져다 드려.”
“이건 또 뭔데?”
“공진단이다. 울 엄마 거 주문하면서 하나 더 주문했어. 울 엄마 사고 나셨을 때 드셨던 한의원에서 시킨 건데, 엄마는 좋다고 하더라.”
“오 땡큐우! 가져다드릴게! 울 아버지 이런 거 엄청 좋아시는데. 땡큐, 땡큐. 야, 근데, 금 다섯 돈어치 올랐는데, 이러면 우리 집에 다 주는 거 아니냐? 한우 좀 나눠 가져가.”
“야, 됐어.”
“진짜 괜찮겠어? 여기 등심 몇 덩어리가 안 가져갈래? 가서 어머니랑 구워 먹어.”
“야, 됐어. 많으면 부모님께도 좀 드리든지 그건 니가 알아서 하고.”
집에는 이미 배달시켰다.
“오올- 플렉스.”
“그럼, 나 간다.”
“그래, 들어가 쉬어. 잘 먹을게.”
맛있는 것이 내 입으로 들어갈 때 진짜 행복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행복할 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으로 맛있는 것이 들어갈 때가 아닐까.
-*-
범상의 집.
“다녀왔습니다.”
“일찍 왔네.”
“엄마야말로 일찍 왔네?”
“재료가 똑 떨어져서 일찍 닫고 왔어.”
“그랬구나.”
“밥은?”
“지금이 몇 신데, 밥을 안 먹어. 당연 먹었지.”
“너 저번 로펌에서는 안 먹고 다녀서 살이 쪽 빠졌잖아. 맨날 감기 걸리고. 그러니까 자꾸 물어보는 거지.”
“잘 먹고 다닙니다요. 걱정 마세요, 어머니. 나 올라갈게.”
“아, 범상아.”
“응?”
옥탑으로 올라가는 아들을 엄마가 붙잡았다.
“저것들은 또 뭐야? 가게 있는데, 자꾸 직접 사인해야 한다고 해서, 선아 엄마한테 맡기고 올라왔네. 너는 뭘 자꾸 시켜.”
“어, 벌써 왔네? 나한테는 집엔 주말에나 배송될 거라고 했는데.”
“너 정말 돈 잘 아끼고 있는 거야? 아무리 월 천만 원씩 들어온다고 해도 이렇게 쓰면 안 돼. 우리 아들 안 그랬는데. 또 뭐 캠핑이니 뭔지 하는 그거니? 캠핑도 안 가는 애가 뭘 그렇게 사대기만 해.”
잘됐다.
안 그래도 내가 집에 없을 때 자꾸 택배가 와서 눈치 보였는데.
작은 것들은 그래도 회사로 보내면 되는데, 덩치가 있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보니, 엄마 눈치가 보였는데.
“엄마, 그러면 후회할 텐데.”
“뭘 후회해? 후회는 니가 해. 네가 번 돈이니까 엄마가 간섭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낭비하면, 너, 언제 한번 카드 명세서 내놓으라고 할 거야. 그랬는데 만약 이상한 거···.”
“아이고, 어머니, 그 택배 온 거나 풀어보시고 말씀하시지.”
“응?”
“택배 풀어보셔.”
엄마는 그제야 택배 상자를 열어보셨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엄마 한약이지.”
“내 한약?”
“엄마, 거기 공진단이 좋다면서.”
“좋기는 한데, 이 비싼 거를···.”
“그리고 거기 그 상자는 한우야.”
“한우? 어머, 백화점 한우네? 얘! 고기가 먹고 싶으면 엄마한테 얘기를 하지. <김씨네 정육점>에서 사면 횡성에서 올라온 거 이거 반 가격에 살 수 있는 거를 뭐 하러 백화점에서···.”
“엄마는 참, 가격표도 붙어있지 않는데, 뭘 반 가격에 사?”
“백화점 거잖아. 백화점은 비싸.”
“기중이네 줄 거 우리 것도 조금 샀어.”
“기중이네도 줬어? 잘했네.”
“응, 방금 오던 길에 기중이 가게에 들러서 주고 왔어.”
“잘했네. 안 그래도 연초에 뭐라도 선물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얘, 그럼, 기중이네 거만 사지 왜 우리는 것까지 샀어?”
“엄마랑 같이 먹으려고 샀지. 뭘 왜 사?”
“그럼, 그냥 말하지.”
“그럼, 그냥 돈으로 달라고 하게?”
“그래. 돈으로 줘. 엄마가 더 좋은 거 사다 해줄게.”
“알았어, 자, 여기.”
“이건 또 뭔데?”
“돈으로 달라며?”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엄마의 손에 천만 원이라는 돈을 쥐여드려 봤다.
“어머! 얘, 이렇게 큰돈을 나한테 줘도 되니?”
구글 검색창에 뉴욕 대형 로펌들 연봉을 검색하면, 꽤 자세하게 나온다.
>설리반 크롬웰 – 1년 차 – 215,000달러
>커크랜드 – 1년 차 – 215,000달러
>존스 데이 – 1년 차 – 225,000달러
···
어떤 곳은 2년 차 연봉도 아예 공시하고, 연간 빌러블 아워를 몇 시간 이상 채우면 단계별로 얼마의 성과급으로 추가로 지급하는지까지 명시해 놓는 로펌도 있다.
미국 로펌을 모델로 하는 국내 대형 로펌의 연봉이나 성과급 체계 역시 그들의 것들과 비슷하다.
구글에 치면 나올 정도로 투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어디가 얼마 주는 정도는 로스쿨생들에게 구전으로 잘 알려졌다.
그런데, 미국 로펌과도 다른 국내 로펌만의 독특한 문화가 하나 있다.
그런 바로, 급여 액수를 협상할 때 ‘세후(after tax)’라는 말은 쓴다는 점이다.
「세금은 난 모르겠고,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기준으로 정합시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변호사스러운’ 협상법이 아닌가.
그 돈 좋아하는 미국 변호사들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발상.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또한 김앤강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감사해야 한다.
이 같은 좋은 문화를 정착 시켜준 선배님들에게.
성과급이 나왔다.
많이.
세후로 계산되어.
이전 다섯 달 치 월급과 비슷한 금액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아공간에 평수를 좀 더 늘려도 될 것 같다.
노변을 위한 로펌은 없다
“변호사님, 한잔 올리겠습니다.”
“아, 그래.”
대한민국 2위, 전 세계 9위 선박회사가 극비리에 파산 신청을 준비 중이다.
구조조정팀 파트너 노태규는 이정후 변호사와 식사 자리를 가졌다.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이 뭐야? 밥 먹기 전에 해. 그래야 편히 먹지.”
“아이-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변호사님을 모시고 식사한 지가 또 좀 된 거 같아서···선배님, 여기 도미솥밥 좋아하시잖아요?”
라고 말하는 노태규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정후. 김앤강 기업법무팀의 수장인 그는 법정에 나가지 않은 지 오래됐다.
하지만, 김앤강 내에서 ‘김’과 ‘강’을 제외하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늘 나오는 일곱 이름 중의 하나이다.
언젠가 빈자리가 될 ‘그 자리’를 노리고 있는 사람 중 한 명.
식사가 끝날 무렵, 노태규는 본론을 꺼냈다.
“변호사님.”
“왜?”
“현진상선이 조만간 회생 신청을 할 것 같습니다.”
현진상선의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문은 몇 개월 전부터 들려왔다.
채권 발행한 지 한 달도 안 됐다. 회생절차 신청을 준비하는 사실이 선뜻 믿기 어렵지만, 노태규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확정 사실이나 다름없다.
“파장이 적지 않겠네. 현진 정도면 정부에서 살려줄 듯도 싶기도 한데···.”
“지금 상태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정도야?”
“재무만 두고 보면 회생절차 가지 않고도 재기 가능성이 있는데, 내부적으로도 경영권을 두고 다툼이 있어서요. 은행권에서도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해요.”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 가문에서 떨어져나온 현진상선.
몇십 년째 경영권을 두고 다툼 중인 상황.
본가 측은 이번 경영 악화를 현진상선 경영권 회수의 기회로 엿보고 있었다.
“그래? 조 변호사한테 물어봐야겠네, 은행권 분위기는 어떤지.”
“조 변호사도 비슷한 얘기를 할 겁니다.”
노태규가 관심이 있는 것은 경영권 분쟁이 아니었다.
“그래서? 노 프로가 원하는 게 뭔데?”
사실 이정후는 이미 알고 있다. 현진상선이 회생절차를 신청할 것 같다는 말을 꺼냈을 때 눈치챘다.
그건 노태규도 마찬가지. 이정후가 눈치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란 원래 그런 법.
서로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척 누가 잘 연기하느냐가 중요하다.
“변호사님이 좀 도와주십시오. 백 변호사님 좀 잘 설득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