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37)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37화(37/190)
【037화 – 노변을 위한 로펌은 없다】
몇 주 뒤,
김앤강 해상팀.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 퇴근하려던 윤상호는 시니어 파트너 백인찬의 방을 두드렸다.
똑똑-
“퇴근 안 하세요?”
“먼저 가. 두 시 전에 끝내기 힘들 것 같으니까.”
이 사람과 같이 일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대화를 몇 번이나 했을까.
수백 번쯤 되는 것 같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의 콧등에 걸쳐있는 안경알의 두께와 머리칼 색뿐.
“식사는 하셨어요?”
“에이- 괜찮았는데, 방금 윤 변이 물으니까 또 밥 생각이 나잖아.”
안 했다. 분명 또 한 세 시쯤 먹은 칼국수 한 그릇이 고작일 게 뻔하다.
“가시죠. 저도 먹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집에 가는 거 아니었어?”
“이 시간에 밥 차려달라고 했다가는 요새 세상에 욕먹습니다.”
“윤 변, 와이프하고 사이좋은 거 아니었어?”
“이럴 때 알아서 밖에서 먹고 오니까 사이가 좋은 거죠.”
“그런 거야?”
“네.”
후배랑 말하다 보니 생각이 끊어졌다.
백인찬은 문 위에 걸린 벽시계를 쳐다봤다. 세월에 테두리가 빛바랬지만, 여전히 잘 돌아간다.
쓰고 있던 항소 이유서를 세이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먹고 하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뭐 드시겠습니까?”
“이 시간에 고를게 있어?”
“없죠. 순대국밥 괜찮으세요?”
“좋지.”
두툼한 코트에 털 달린 방한 모자까지 챙긴 백인찬은 후배 윤상호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영락없는 할아버지 모습이다.
“요새 날씨가 추워.”
“예.”
“소주 한잔할까?”
“내일 아침까지 끝내야 하는 서면이 있는 거 아니세요?”
“내일 아침까지잖아. 두 시에 갈 거 네 시에 가면 되지.”
“아, 제가 괜히 식사를 하자고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반병씩만 하자고, 반병씩만.”
이런 대화도 백번 넘게 했다.
달라진 건, 한 병에서 반병으로 줄었을 뿐.
-*-
며칠 뒤,
김앤강은 현진상선의 회생절차 신청 소식에 들썩거렸다.
가장 정신없는 곳은 따로 있었지만, 국내 소송팀 어쏘들의 관심도 그 소식에 쏠렸다.
“김 변,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현진상선이 회생절차 신청했다는 거.”
“응, 봤어.”
“의외지 않아? 그 정도면 정부에서 살려줄 듯도 싶은데.”
“살려줄 상태가 아닌가 보지.”
“기사 보면 그 정도는 아닌 거 같던데. 주가도 떨어지다가 두 달 전쯤에 채권 발행하고 반등했어.”
“에이- 누가 대한민국 주식 시장을 믿어. 노름판을.”
“하긴. 아무튼 작년에 바닥 찍고 올라간다는 말 듣고 샀으면 지금 땅을 치고 후회했을 듯.”
“얼마나 넣으려고 했는데?”
“한 세 장?”
“삼억?”
“억 같은 소리하고 있네. 삼천.”
“삼천이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인가?”
“아- 이 금수저. ‘천만 원은 돈 같지도 않아 보인다.’ 이거지?”
아직은 실력이 통하는 곳. 로스쿨 체제로 바뀐 뒤부터 부유한 집 자제들이 많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다양한 출신들이 모여있다.
“그나저나 이번에 백 변호사님한테 잘 보여서 해상팀으로 움직여 볼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몰라? 5년 전에 세현해운이 회생절차 신청했을 때, 해상팀에서 소송팀 어쏘들 다 끌어다가 썼잖아.”
“왜?”
“못 들었구나?”
“응.”
“해상팀 클라이언트 중에 ‘클럽’들이라고 큰 해운 전문 보험회사들이 있는데, 거기서 세현해운 회생절차에 신고해야 할 채권들을 백 변호사님한테 전부 몰아줬었대. 근데, 해상팀 인원만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어서 소송팀 변호사 30명이 차출돼서 근 1년간 해상팀 채권 신고부터 소송까지 도왔다고 했다던데.”
“그래?”
“응. 지금 유학 중인 이충현 변호사님도 그때 해상팀으로 간 거잖아. 원래는 소송팀이었는데.”
“아, 몰랐네. 이 변호사님이 원래 소송팀이었구나. 아, 근데, 생각보다 해상팀이 잘나가네.”
“잘나가네? 그 팀 생각보다 알짜야. 거기 변호사님들 아월리 레이트(hourly rate, 변호사 시간당 요율) 보면 몰라? 높아.”
“높기는 하던데, 팀이 크지는 않잖아. 내가 아는 선배는 이제 김앤강 해상팀 전망이 별로 안 좋다고 그랬는데.”
“뭐, 멀리 보면 그렇기는 하지.”
“해운업계 자체가 다운이라고 하더라고. 예전에 우리나라가 못 살았을 때는 해운이 먹여 살렸는데, 지금은 뭐 딱히 그렇지도 않고. 게다가 기술이 좋아져서 요새는 변호사들이 할 일이 별로 없대.”
“그래?”
“뭐 그렇다고 당장 망할 일이야 없겠지만, 이렇게 하나둘 파산하는 거 자체가 먹거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거 아니야?”
“흠.”
“무엇보다도, 내 생각에는, 팀이 안 큰다는 거 자체가 ‘위’에서도 별로 관심 없는 분야라는 방증 같은데.”
“나는 백 변호사님 성격이 그래서 그런 줄 알았지. 워낙 유명하시니까.”
“백 변호사님 성격도 한몫하는 거겠지. 아무리 백 변호사님이 꼬장을 부리셔도 ‘위’에서 키울 마음이 있었으면, 진작에 세컨드 팀을 만들었거나 수장을 바꾸지 않았을까?”
“에이- 그래도 백인찬 변호사님 파워가 있는데, 그렇게 못할걸? 거의 초창기 때부터 계셨던 분이잖아.”
“못 하는 게 어디 있어. 초장기 때 계셨던 분 중에 내쫓기신 분이 한둘이 아닌데.”
듣고 보니 또 그렇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업계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근데, 좀 의외네.”
“뭐가?”
“왜 구조조정팀에서 안 맡았을까?”
“현진상선은 대서양 쓰잖아. 이번에 회생절차 신청도 거기서 했다던데.”
“그렇기는 한데, 노태규 변호사님이 내가 알기로는 야망이 크신 분인데, 알았으면, 분명 빼앗아 왔을 것 같은데···.”
어느 직장에서나 일보다 사내 정치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 있다.
소송팀 어쏘 변호사의 의문은 근거 있었고, 실제로 구조조정팀 파트너 변호사 노태규가 빼앗아 왔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가 나지 않았을 뿐.
-*-
국내 2위 선사가 대한민국 파산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어젯밤부터 백인찬의 전화기는 쉬지 않고 울려댔다.
징징- 징징-
-하와 유 두잉, 미스터 백? 소식 들었습니까?
“아임 파인, 앨리스테어. 땡큐 포 애스킹. 물론, 들었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겠어.”
.
-하이, 챈, 현진 관련해서 새로운 업데이트 없어?
“하이, 산드로. 지금 윤이 알아보고 있어. 내일쯤이면 관련 상황에 대해서 리포트를 보내줄 수 있을 거야.”
.
-미스터 백, 아직도 취합 중이기는 한데, 대충 계산했을 때, 현진 상대로 우리 멤버들 가지고 있는 채권액이 총 미화 삼천팔백만 달러 정도 돼.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지금 내가 너한테서 가장 필요한 답은 하나야. 너희 팀에서 핸들할 수 있겠어?
“물론이지. 샘, 걱정하지 않아도 돼. 5년 전에도 아무 문제 없었잖아.”
해운업계의 구조는 독특하다.
해운회사의 규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얼마만큼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느냐 하는 프레이트 스페이스(freight space), 바로 선복(船腹)이다.
선복을 늘리려면 당연히 배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작정 배를 건조해서 소유할 순 없다. 경제가 안 좋을 때, 유지비가 많이 드는 배들을 많이 소유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해운회사들은 리스크를 분배하기 위해, 상대 해운회사의 배를 빌려다 쓰기도 하고, 내 배를 빌려주기도 한다.
그러면 많은 선복이 필요할 때 손쉽게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경제가 좋을 때는 다들 선복을 늘리고 싶어 하기에 배를 빌리는 값(용선료)이 올라간다.
그러므로 그것을 예측하고 미리 배를 빌리거나, 반대로 경제가 안 좋을 것을 예상해 배를 빌려주거나 하는 사업 역시 선박회사들의 큰 비즈니스 중 하나이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보험이다.
배 사고 하나만 나도 튼튼했던 회사가 휘청일 수 있을 정도의 피해액이 발생할 수 있다.
유조선이 충돌했다든가, 탱크 같은 군용물자를 싣고 가던 로로(RO-RO)선이 좌초했든가 하면 실제 피해액이 조 단위를 넘을 때도 있다.
이런 규모의 사고 피해액을 대신 보상해 주겠다고 하는 일반 보험회사는 없다.
책임제한이니 뭐니 하는 손해액을 줄여주는 법적 장치가 있다고 해도 일반 보험회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
그래서 해상보험회사는 선박회사들이 출자해서 만드는 일종의 조합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한 선박 보험회사를 ‘클럽’이라고 부르고 조합원 선박회사들을 ‘멤버’라고 부른다.
즉, ‘멤버’ 선박회사들은 ‘클럽’ 보험회사에 매년 어마어마한 보험료를 내며 서로의 사고를 대비하는 구조이다.
이 클럽들의 사무 중 하나가 멤버 간에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법률 비용을 내는 것이지만, 단순히 멤버가 변호사 비용을 청구하면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말했듯이, 클럽은 조합 형태의 보험회사. 청구 가능하다고 변호사 비용을 ‘함부로’ 쓰지 않았음을 감시한다.
따라서, 이같이 큰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는 멤버가 아닌 클럽이 직접 나서는 것이 관행이고, 무엇보다도 신뢰가 중요한 클럽의 1순위 선호 변호사는 업계 탑티어 김앤강 해상팀의 백인찬이었다.
[인찬: 윤 변호사. 송 변호사. 5분 뒤에 회의실에서 현진상선 관련해서 회의 좀 할까.]같은 팀 후배 변호사들에게 메신저로 회의를 통보한 백인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걸패드를 챙겨 나가려는 순간.
똑똑-
“백 변호사.”
“이 프로가 내 방엔 웬일이야?”
이정후가 들어왔다.
“바빠?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어, 바쁜데. 현진상선이 회생을 신청했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할 얘기가 있어.”
백인찬의 미간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장의 마지막 어쏘
「“김앤강에는 일곱 명의 신선이 있다고들 하지.”
헌법학 종강 파티, 취기가 오르자, 입담 좋은 교수님께서 오래된 무협지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듯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신선이요?”
“김한이라는 하늘 아래 강태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있고, 그 산을 밟고 올라 하늘에 오르려는 일곱 명의 신선.”
김앤강을 창립한 두 변호사와 그다음으로 조인한 후배 변호사들의 권력 암투를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한 구석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너무 흥미로웠다.
아직 살지 못한 로스쿨생들에게는 김앤강이란 그런 곳이었다.
무협지의 중원과 같은 곳.
“교수님, 더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근데, 잔이 비었네?”
교수님께선 그 뒤로 한 시간가량 김앤강의 역사와 사건들을 맛깔스럽게 풀어주셨고, 그 자리에 있던 로스쿨생들은 ‘언젠가 나도 그곳에서 살아봤으면’하는 바람으로 귀를 기울였다.
웃긴 건, 그 교수님은 김앤강은커녕 변호사로 일한 적도 없으셨던 분이라는 점이었다.
“그 일곱 분이 신선이면 다른 파트너 변호사님들은 무엇인가요?”
“다른 파트너들? 다 미생이지 뭐.”
“네에? 에이- 그래도 파트너들이시잖아요. 20년 넘게 계신 분들도 계시지 않나요? 아무리 그래도, 그분들까지 함부로 할 수는 없지 않나요, 교수님?”
“그건 김앤강이라는 데가 어떤 곳인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 날고 기어도 하늘 아래 신선이고, 신선 아래 인간일 뿐이야.”
그때는 그냥 재미있는 야사쯤으로 들었다.
김앤강에 들어와서 알았다.
재미있게 하시려고 하늘이니 신선이니 하는 비유를 드셨지만, 그날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뭐, 신선들에 대적할 만한 영웅호걸들이 없는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