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39)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39화(39/190)
【039화 – 한범상이라는 변수】
“변호사님, 해상팀에서 현진 회생절차에 해외 선사들 대리해서 선임계 제출했다고 하는데요.”
“뭐! 확실해?”
“네, 방금 현진 그룹 법무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보고를 받은 구조조정팀 시니어 파트너 노태규는 미간을 찌푸렸다.
곧바로 이정후가 있는 김앤강의 옛 사무실, 사직빌딩으로 향했다.
똑똑-
“왔어. 들어와.”
“변호사님, 해상팀에서···.”
“숨이나 돌리고 말해, 이 사람아. 차부터 한잔하지.”
이정후는 노태규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조급했던 노태규는 잠시 템포를 멈추고 이정후가 차를 내줄 때까지 기다렸다.
“자, 들어.”
하지만, 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공을 들인 기횐데.
노태규는 찻잔을 받기가 무섭게 하려고 온 이야기를 꺼냈다.
“변호사님, 어떻게 된 건가요? 해상팀에서 채권자들 대리 선임계를 제출했다고 하는데요, 현진상선 회생절차에.”
이정후는 후배의 다급한 얼굴을 슬쩍 한번 보더니,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알고 있다.
후우 후-
쓰릅.
뜸을 들인 선배는 찻잔을 내려놓고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백 프로가 대표님을 찾아갔어.”
“네?”
“다 늙어서 이제는 놓을 줄 알았더니 그 친구가 아직 성질이 남아있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이기는 무슨 말이야, 이 사람아. 백인찬이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지.”
“?”
“김한 변호사님을 찾아가서 나가겠다고 했다는군.”
“!”
이정후의 설명은 길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장담했던 윗분들께서는 일이 틀어지면 멋쩍어하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무슨 계약을 했거나, 돈을 주고받은 건 아니었지만, 이정후를 믿었던 노태규는 짜증 나는 표정을 겨우 숨기고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
똑똑-
“변호사님, 어떻게 되셨나요?”
돌아와 앉기도 전에 같은 팀 후배 변호사가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자기도 민망했는지, 답을 기다리지 않고 해명부터 늘어놓는다.
“그게, 현진 그룹 법무팀에서 계속 연락이 와서요. 오늘이 지나기 전에 빼야 기록을 없앴을 수 있지 않겠냐고···.”
같은 로펌의 다른 팀에서 채권자들을 대리하는 선임계를 제출했다.
사실상 게임 끝이다.
어떻게 손을 써서 선임계를 뺀다고 한들 나중에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윗선의 의지만 있다면야 그 정도 ‘반칙’은 할 수는 김앤강이니까.
하지만, 윗선은 결정했다.
해상팀을 품기로. 백인찬을 품기로.
노태규는 턱이 아플 정도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해상팀을 품는다는 말인가.
그래, 안다. 망할 일이 없는 업계라는 것쯤은. 하지만, 성장이 멈춘 업계다.
경제가 회복해서 해운업이 성황을 이루는 시대가 돌아온다고 해도 해상 분쟁은 이제 대형 로펌에서 주류가 아니다.
특히나 이메일, 화상 통화 등 기술이 좋아져서 전 세계 어디에서든 원격으로 실시간 일 처리가 가능한 세상이 됐다.
분쟁의 준거법이 대부분 영국법인 해상법 분야에서 국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실정이다.
국내 해안에서 일어나는 선박 사고 관련해서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이지만, 그마저도 ‘값싼’ 작은 사무실과 경쟁이 심해져서 이제 김앤강의 해상팀은 공룡이나 다름없다.
백인찬과 그의 팀이 열정 많은 30대 어쏘들처럼 제 몸을 갈아 넣어 일해 겨우 유지하고 있는 비즈니스.
그걸 품는다고?
도대체 ‘박사님’께서 왜 마음을 바꾼 거지?
백인찬 변호사님을 내보내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한진 그룹 법무팀 누구랑 얘기 중이야?”
“박 변호사요.”
“박 변호사한테 일단은 알아보고 있다고 하고. 내가 김 이사님한테 따로 연락하겠다고 전해.”
“네, 알겠습니다.”
후배를 내보낸 노태규는 소송팀 이한율 변호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태규: 이 변호사, 나랑 지금 잠깐 차나 한잔 마셔.] [한율: 그래. 이쪽으로 올 거야?]-*-
김앤강,
해상팀 사무실.
윤상호는 기뻤다.
우러러보는 선배가 싸우고자 하는 후배들의 뜻을 알아줘서.
안 그래도 ‘언제 적 해상팀인데’ 소리까지 들리는 마당에 이렇게 밀리면 정말 몇 년 안에 쪼그라드는 게 아닌가 하는 심정까지 들었다.
동기 중에서 엘리트라는 소리를 듣는 그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다른 팀으로 옮길 수 있는 그였지만, 윤상호는 해상변호사로 남고 싶다.
“아···이게 단가?”
“아니요. 일단 반만 출력한 거고요. 저희 팀 프린터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옆 팀 프린터를 빌려서 하고 있어요. 두 부(部) 뽑는 거 맞죠?”
비서에게 부탁했다.
들어온 클레임(claim, 채권) 서류들을 다 출력해서 가져다 달라고.
이렇게 많이 들어올 때는 이편이 검토하기가 편하기에.
이래야 분량에 대한 감(感)도 오고.
그런데,
“이게 반이라고?”
“네.”
많다. 5년 전 세현해운 때보다도 더.
살짝 걱정된다.
익숙한 분쟁들이니 시간이 많으면야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회생절차 내 클레임 신고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짧은 데드라인에 맞춰 신고해야 하고 기일도 촘촘히 잡힌다.
말은 이충현 변호사가 돌아오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 정도 양일 줄 몰랐다.
윤상호는 걱정이 많이 되기 시작했다.
국내 소송팀에서 어쏘들을 끌어다 쓰면 되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그들도 대부분 해상법에 대해서는 문외한 ‘초보들’일 것이기에 절차 초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윤상호는 소송팀에서 5년 전 세현해운 사건을 했던 어쏘들 중 한두 명이라도 보내주기를 희망할 뿐이다.
똑똑-
“변호사님.”
“한 변. 왔어?”
“이건가요?”
“응. 좀 많지?”
“많네요.”
많지. 그런데, 많다고 하는 사람의 표정이 어째···
“근데, 이게 다가 아니고. 반 정도야. 어떻게, 최재민 변호사한테 말은 해봤어?”
“네.”
“뭐라고 해?”
“본인 사건에 차질만 안 되게 하면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그래? 하고 있는 최 변호사 사건이 많아?”
“네.”
쌓여있는 서류들을 보면서 무심코 하는 대답.
서류들을 눈대중으로 세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너무 많아서 난감해하는 표정은 아니다.
담담하다.
뭐지?
“한 변호사가 해줄 일은 채권자별로 정리한 뒤에 클레임 종류대로 구분해 주면 돼.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여유작작함은.
“이 서류들 제가 집으로 가져가도 될까요?”
“응, 가져가도 돼. 한 변호사 주라고 한 부(部) 더 만든 거니까.”
“고맙습니다.”
“근데, 집? 집에 가져가게?”
해상팀 주니어 파트너 윤상호는 범상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
이미 판이 다 짜인 게임, 새로운 플레이어가 그 안에 들어가 자기 영역을 만들려면, 누군가가 죽거나 누군가의 영역을 빼앗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국내 변호사 업계가 그렇다.
정년퇴임이 없는 변호사들. 70살이 넘는 원로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고 60대 노장들이 큰 기업들을 다 차지하고 있는 곳에서 이제 막 시니어 파트너를 단 노태규 같은 50대는 손발톱을 드러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내가 현진 그룹을 클라이언트로 만들려고 어떻게 공을 들인 건데!’
노태규는 그냥 물러설 수 없다.
사실상 위에서 해상팀의 손을 들어줬을망정 그 결정이 얼마나 멍청한 결정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10년 뒤, 김앤강에 남아있을 수 있다.
시니어 파트너가 되었다고 경쟁이 끝나는 곳이 아니다.
“해상팀에 어쏘들을 보내지 말라고? 에이- 그건 곤란하지.”
노태규의 노골적인 요청에 소송팀 시니어 파트너 이한율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노태규와는 동향 출신에 같은 대학 동기. 그렇다고 해도 이런 부탁은 들어주기 곤란하다.
“보내지 말라는 게 아니야. 그냥 보내는 시늉만 하라는 거야.”
“응?”
“대충 1, 2년 차들 열댓 명 뽑아서 보내라는 거야. 어차피 소송팀도 바쁘잖아. 세현 때도 보니까 위에서 따로 챙겨주는 것도 없더구먼.”
“그렇기는 한데···고 변호사님이 백 변호사님하고 친해서, 내가 딱히 뭐라고 결정하기가···.”
고중석 변호사, 소송팀의 수장, 또 다른 ‘신선.’
“고 변호사님은 이제 어쏘들 운용하는 거 별 관심 없으시잖아. 이 변호사가 다 꾸리고 있는 거고. 이 변호사가 하자는 대로 하실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이 변.”
“흠···알았어. 근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힘겨루기를 할 필요가 있어?”
“현진 그룹이야. 이거 못하면 어차피 나가야 해.”
“뭘 또 그렇게까지···.”
친한 동기의 일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한율은 공감했다.
국내 2위 해운회사의 회생 사건을 경쟁 로펌에서 빼앗아 왔는데, 위에서 밀어주지 않는다? 자기가 그 상황이었다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김앤강이라는 중원에 등장한 새로운 호걸
제대로 쓴 시간은 친한 친구와의 우정과도 같다.
쌓일수록 편해진다.
현진상선 회생 사건에 신고를 요청한 손해배상 채권들.
많았다.
하지만 어렵지는 않다.
비슷한 종류의 채권들이 많았고, 속도가 붙기 시작하니 오고 간 메일만 몇 개 봐도 대충 채권이 뭔지 감이 왔다.
“흠흠흐-”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변태가 된 걸까?’
쌓여있는 많은 서류를 보고 있는데 살짝 짜릿하다.
이걸 다 끝냈을 때 들 그 만족감을 생각하니···
진짜 재미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