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4)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4화(4/190)
【004화 – 근면, 성실을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다녀왔습니다.”
“일찍 왔네.”
“첫 주잖아. 근데 이게 다 뭐야? 엄마, 가게 나가려고?”
퇴근하고 집에 오니, 주방에 겉절이 재료들이 올려져 있었다.
“가만히 놀면 뭐 하니? 일해야지.”
“운동해, 운동. 일 말고. 아직도 어깨 쪽이 불편하다면서.”
“나는 일하는 게 운동하는 거야.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더 쳐져서 하기 싫어져.”
“엄마-”
“알아서 할게. 밥은? 먹었어?”
석달 전 사고가 있었다.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킥보드를 피하다 크게 넘어지셨다. 그 바람에 엉덩이관절과 어깨뼈가 골절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순간적으로 옆으로 피했기 망정이지 부딪혔으면 더 크게 다칠 뻔하셨다.
그 일로 9주간 병원에 입원하고 돌아오셨다.
“먹었어.”
“뭐?”
“아우- 이숙영 여사님, 김앤강이에요. 식사비 나와요.”
“잘 먹고 다녀. 맨날 라면, 햄버거 같은 거만 먹지 말고.”
“잘 먹었어.”
“잘 뭐?”
“해장국 먹었어. 해장국. 됐어?”
엄마가 이렇게 걱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전에 내가 다녔던 사무실에서 밥값 청구한 것을 두고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쉬어. 엄마는 이제부터 겉절이 좀 만들어야 하니까.”
“적당히 해. 무리하지 말고.”
“아이고, 알았어. 아, 근데, 너는 요새 뭘 그렇게 택배로 주문을 하는 거야. 뭐가 또 왔던데.”
“벌써 왔어? 아무튼 우리나라 배송 하나는 진짜 빨라.”
“뭐니?”
“응? 캠핑용 배터리.”
“캠핑용 배터리는 왜? 캠핑 다니게? 잠깐, 너 저번에도 배터리인가 뭔가 샀다고 하지 않았어?”
“응? 아, 그건 반품했어. 이것저것 뭐가 좋은지 알아보는 중이야.”
아니다. 이전에 사둔 것들은 지금 충전 중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1, 2주일씩 있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양의 전기가 필요했다.
얼마 전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 덕에 전기세는 걱정할 필요 없게 되었지만, 배터리가 생각보다 많이 필요했다.
“갑자기 캠핑에는 왜 빠져서 저런 걸 산대? 취직해서 바쁠 거면서.”
“휴가 갈 때 가려고. 휴가 때.”
“근데, 캠핑을 어디 강원도 오지로 가니? 배터리가 왜 그렇게 무거워?”
어차피 어디 멀리 들고 다닐 것도 아니라서 이번에는 큰맘 먹고 용량이 큰 걸로 구매했다. 설명에 따르면 냉장고도 돌릴 수 있었다.
“나 올라갈게. 할 일이 좀 있어서.”
“입은 와이셔츠는 내놔. 바로바로 빨아야 냄새가 안 배니까.”
“거참- 누가 들으면 내 겨드랑이에서 악취라도 나는 줄 알겠네. 주말에 내가 할게.”
“아우- 말 좀 들어. 내놔. 엄마 옥탑방에 올라가기 힘들어. 내놔, 알았지?”
어쩔 수 없다. 자발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매일 아침 올라와서 빨랫감 챙겨가실 분이다.
“알았어요. 알았어.”
“아니, 멀쩡한 방 놔두고 왜 갑자기 거기로 방을 바꿔 가지고, 사람 힘들게.”
출근과 동시에 방을 옮겼다.
엄마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아공간이 바로 옆에 있는 것이 내겐 훨씬 더 효율적이었기에
-*-
옥상에 올라온 나는 재빨리 샤워를 한 뒤 빨랫감들을 내려놓았다.
새로 배달되어 온 배터리를 꺼내 충전을 시작했다.
그러곤, 낮 동안 충천해 놓은 배터리들을 들고 아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매트리스, 책장, 책상, 의자, 그리고 스탠드 여섯 개.
어두운 걸 싫어한다.
스탠드 여섯 개를 휴대용 배터리들에 연결하고 책상에 앉았다.
이젠 제법 내 공간 같다.
석달 전 처음 이 공간을 발견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자, 그럼, 이제 또 시작해 볼까나.”
내가 전에 다녔던 법무법인 양아는, 간판은 법무법인이었지만, 실제론 대표변호사가 일곱 명이 모여 차린 합동사무실이었다.
완벽한 별산제로 각 대표변호사는 사무실 월세랑 비용도 규모대로 나눠 냈다. 그러니, 밑에 데리고 있는 변호사들도 각자 고용했다.
들어가기 전, 선배들부터 안 좋은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사건들은 제법 큰 사건들을 해볼 수 있을 거라는 말에 지원해 들어갔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두 곳밖에 없는 국제법률대학원을 나왔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졸업 후 워싱턴DC 변호사 자격도 얻었지만, 사실 우리 학교 출신 외국법 변호사가 소위 괜찮다는 로펌에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졸업생 대부분은 기업 법무팀으로 들어갔다.
사실 내 목표도 기업 법무팀이었다. 당연히 삼전 같은 데는 못 들어가도 해상기업이나 물산 회사는 곧 잘 취직이 됐다.
하지만, 그래도 어렵게 변호사가 되었는데, 힘들더라도 1~2년 정도는 로펌에서 일해보는 게 나중에는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지원했고 입사하게 되었다.
나를 고용한 분은 대형 로펌 출신 파트너 변호사였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사건은 많았다.
일은 힘들었다.
업무 양도 양이었지만 더 고된 것은 사람이었다.
때리지만 않았을 뿐, 인신공격이나 언어폭력은 충분히 고소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실력을 두고 뭐라고 하는 건 당연했고, 툭하면 왜 내가 학폭에 시달렸는지 알겠다고 하면서 신경을 건드렸다.
심지어는 엄마까지 언급하길래 선은 넘지 말라고 경고했더니, 그때부터는 잡일까지 시키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 참았다. 1년만 채우고 퇴직금 받고 나와서 다른 곳에 취직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와중 엄마가 사고를 당하셨다.
간호인을 구할 때까지만 한 1주일 정도 휴가를 쓸 수 있겠냐고 했는데, 그럴 거면 관두라고 해서 사표를 쓰고 나왔다.
한 달 모자란 1년이었다.
비록 퇴직금도 못 받고 나왔지만, 로펌이 어떤 곳인지 경험할 수 있었다.
학생 때 착각하는 거 하나가 취직하면 결승선에 도달했고 경쟁이 끝난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진짜 살벌한 경쟁은 취직 이후에 시작된다.
법무법인 양아의 고민수 변호사는 인성은 쓰레기 같은 고용주였어도 실력은 있는 변호사였다. 그의 밑에서 일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대형 로펌에서 나와 그런 사무실에서 클라이언트를 빼앗기지 않고 버텨내려면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고 영업해야 하는지를 봤다.
사회에서는 모든 게 결과로 평가된다는 것도. 학교와 달리 나에게 요구되는 결과를 내는 데 있어 모든 수단과 방법이 허용된다는 것을.
“이번에는 그래도 300페이지네.”
학창 시절, 국·영·수 중에 뭘 제일 잘했냐고 물으면 내 답은 영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영미권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들만큼 하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지난번 600페이지를 번역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아버지의 아공간에서 700시간을 있었다. 중간중간 화장실이나 음식을 먹으려고 나갔다 온 시간을 제외하고 말이다.
덕분에 영어가 많이 늘었다.
“240시간 만에 끝내 보자! 아자!”
법무법인 양아의 문을 닫고 나온 내 눈앞에 다른 문이 열렸다.
잘릴 때 잘리더라도 최선을 다해 결과를 내볼 생각이다.
-*-
김앤강 법률사무소,
도대기 변호사의 방.
똑똑-
“네.”
“변호사님, 보고드릴 게 있는데, 지금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300페이지 추가 번역을 맡긴 지 이틀 뒤, ‘낙하산’은 USB 메모리스틱을 들고 찾아왔다.
‘설마 벌써 또 다했다고?’
“무슨 일이야?”
“맡기신 번역 서류 가지고 왔습니다.”
‘뭐라고?!’
도대기는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한범상을 쳐다봤다. 검사 시절 버릇. 거짓이 있나, 없나 확인하려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피하지 않고 마주 보는 ‘낙하산’ 신입 변호사의 두 눈은 그러한 자신의 공격적인 시선을 여유로운 자신감으로 받아치고 있었다.
‘이 놈은 정체가 뭐지?’
일만 시간의 법칙
법무법인 양아를 나온 지 석달이 조금 안 됐을 때였다.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한범상 변호사님 휴대폰인가요?
“네, 제가 한범상인데요.”
김앤강 법률사무소로부터 전화가 한 통 왔다.
-면접 일정을 잡으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모레 두 시에 시간 괜찮으신가요?
대뜸 면접 일정을 잡겠다는 연락이었다.
이상했다. 이상할 수밖에. 일반적으로 지금은 신임 변호사 지원 기간도 아니었고 (물론 외국법 변호사는 상시 지원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지원 서류를 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네? 면접이요?”
-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김앤강에 지원 서류를 낸 적이 없는데요. 아니, 변호사를 뽑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요.”
-아···서명대학교 법률대학원 졸업하시고 작년에 워싱턴DC 변호사 자격 취득하신 한범상 변호사님이 아니신가요?
“그건 제가 맞는데···.”
-저는 리크루트팀 비서라서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받은 지시 사안은 한 변호사님께 전화해서 면접 스케줄 잡으라는 것이었거든요. 그럼···혹시 면접 제의를 거절하신다는 말씀인 건가요?
김앤강에서 온 면접 제의를 거절한다고?
착오였든 아니었든 그걸 거절할 정도로 멍청한 변호사가 세상에 있을까?
설사 면접에서 밑천이 들통날지언정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아니요. 가겠습니다. 모레 두시라고 하셨나요?”
게다가 어차피 놀고 있는 상황,
나는 기쁜 마음으로 면접을 수락했고, 면접 당일 내가 가진 제일 비싼 정장을 입고 김앤강의 광화문 사무실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