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48)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48화(48/190)
【048화 – 왜 거기 들어갔어?】
“안녕하십니까, 한범상입니다.”
사직빌딩 9층에 자리한 이정후 변호사님의 방은 인상적이었다.
넓고, 고풍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세련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변호사님의 등 위로 펼쳐진 풍경이었다.
벚꽃이 만발한 경복궁의 뜰이 통유리를 통해 한눈에 들어왔다.
방 입구에 서서 그것을 보고 있으니, 마치 대형 8K 스크린에 플레이되는 아름다운 동영상 같아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창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멋졌다.
원근법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었지만, 창을 열고 나가면 바로 다른 세계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사실 내가 있는 센터게이트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광화문 경관도 훌륭하다.
입사 첫날, 그 경관을 보고 ‘아, 여기 계속 다녔으면 좋겠다.’ 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정후 변호사님 방의 경관을 보고 있으니, 그건 시시해 보이기까지 했다.
12층밖에 안 되는 작은 빌딩에 이런 뷰가 숨겨져 있다니.
김앤강에 들어와서 선배 어쏘 변호사들이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경복궁 주위에 빌딩들은 보안상 높게 지을 수 없었다고.
지금은 건축법이 개정되어 센터게이트 같은 고층 빌딩이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청사 같은 정부 건물이나 그럴 수 있었다고.
방주인은 그런 삼엄한 시대에 이런 경관을 가진 방에서 일을 한 변호사.
김앤강 초창기 멤버였던 이정후 변호사님은 입사 후 쭉 이 방을 사용했다고 들었다.
“어디 한 씨야?”
그 큰 방의 중앙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으니, 그가 책상에서 걸어 나왔다.
잠시 후 비서가 들어와 차를 놓고 나갔고.
그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한 첫 질문이 내 본적을 묻는 질문이었다.
“평천(平川)입니다.”
“평천이라···이북인가?”
“네.”
“서른다섯?”
“서른여섯입니다.”
“그러면 부친이 이북 태생은 아닐 거고, 조부님이 이북에서 건너오신 분인가?”
“네.”
“전쟁 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종종 그렇듯, 이정후 변호사님은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먼저 물으셨다.
“아버님은 뭐 하시는 분이신가?”
“안 계십니다.”
“돌아가셨어?”
“제가 어렸을 때 행방불명이 되셨습니다.”
“행방불명? 어쩌다가?”
생각보다 꼬치꼬치 캐물으셨다.
이력서에 있는 내용들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는 듯 하나하나 확인했다.
물론 들어온 지 2년도 안 되는 어쏘 변호사의 이력서 따위를 자세하게 안 보셨을 수도 있지만, 질문들을 봤을 때, 나를 부르시기 전 보신 게 확실했다.
“워낙 어렸을 때 일이라 정확한 정황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사라지셨다고 들었습니다.”
“허어- 참, 사람이 그냥 사라지기가 쉽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리고 그 질문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을 하기 위한 사전 조사일 뿐이었다.
“강태산 변호사님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호구조사를 통해 연결점이 있나 알아보시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고, 혹여 내가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는 점이 있다면 파악해 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은 해줄 수 없었다.
“사이라고 하기에는, 만나 뵌 적도 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이었기에.
“그런데 강 변호사님이 왜 자네를 우리 사무실에 추천했을까?”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대신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떳떳하다는 나의 대답이었다.
10초쯤 침묵이 흘렀다.
이정후 변호사님은 취조를 이어 나갔다.
“그래, 뭐, 그건 내가 강 변호사님한테 여쭤보면 되고. 한 변호사.”
“네.”
“자네 실력이 그렇게 좋아?”
“···.”
“백 프로가 자네 칭찬을 그렇게 하고 다니던데. 최재민이도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고. 특허팀 사건도 받는다지?”
“다들 좋게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니지. 낙하산이라고 좋게 봐주고 자시고 할 양반들이 아니야. 그 반대면 반대였지.”
내용은 칭찬이었지만, 칭찬같이 들리지 않아 감사하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표했다.
“워싱턴 DC 변호사라고?”
“예.”
“왜 뉴욕주 시험을 안 치고?”
“저희 학교를 나와서 바로 칠 수 있는 변호사 시험은 워싱턴 DC 주밖에 없습니다. 뉴욕주나 다른 주 시험을 치려면 이수해야 하는 과정이 더 있습니다.”
“어디 나왔다고 했지?”
“서명대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그래, 그렇다고 했지. 왜 거기에 들어갔어?”
한 달 전, 최재민 변호사님이 취중에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
하지만 질문하는 사람의 마음은 180도 다른 것이었다.
“제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됐습니다.”
객관적 사실을 말했다.
오해하지 마라. 난 내가 나온 학교가 자랑스럽다.
비록 듣보라고 놀림 받고 업계에서 무시당해도, 나를 받아줘서 감사하다.
“솔직하네. 그거 마음에 드네.”
역시나 칭찬 같지 않은 칭찬.
내가 사회 경험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김앤강에 조인하기 전 다녔던 법무법인 양아에서 제법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상대해 봤다.
지랄 같은 상사 고민수 변호사부터 안하무인 의뢰인들, 상대방들까지.
사회 초년생으로서 정말 놀랐던 사실은 학벌, 출신, 나이에 상관없이 무례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갑질, 을질, 병질. 정말이지 어떻게 저런 말들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나 봤다.
내가 말하는 거는 그날 이정후 변호사님이 내게 했던 말들 수준이 아니다. 그날 이정후 변호사님은 그래도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춰주셨다고 난 생각한다.
“한 변호사가 잘한다고 해서, 내가 양호락 변호사한테 한번 일 좀 줘보라고 했어.”
“네.”
“잘해 봐.”
“네.”
“이제 나가 봐.”
“네.”
다만, 한 삼십 분 정도 그분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내가 느꼈던 점은, 그분이 충분히 그 선을 넘을 수 있는 분 같다는 것이었다.
그 인상적인 방을 나가면서 그날 택시 안에서 최재민 변호사님이 해준 충고가 떠올랐다.
「여기서 살아남고 싶으면 웬만하면 그분의 눈밖에는 나지 않도록 해. 무서운 분이시니까.」
근데 이걸 어쩐다.
이미 눈 밖에 난 듯한데.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49화
이래저래 신경 쓰이게 만드는 남자
쓰윽-
모니터 왼쪽 구석에 띄워놓은 메신저 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재민: SJ 솔루션 사건. 5분 뒤. 회의실]주니어 파트너의 집합 명령을 받은 도하영은 하던 일을 멈추고 폴더에서 해당 사건의 메모를 찾았다.
출력 버튼을 누른 뒤, 리걸 패드와 필기구를 챙겨 방을 나섰다.
한범상과 같이하는 사건.
하영은 공용프린터가 있는 곳으로 가기 전 옆방을 지나쳤다.
회의실에 같이 들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범상이 자리에 없다.
‘벌써 갔나?’
하영은 서둘러 출력한 메모를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
그런데, 회의실에도 범상은 없었다.
‘화장실에 간 건가? 메시지를 못 받은 건가?’
기다리며 추측을 해보고 있는데, 최재민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범상의 행방을 자신에게 물을 줄 알고 기다렸다.
하지만, 주니어 파트너는 곧바로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할까? 어제 담당자하고 통화해 보라는 건 해봤어?”
“네? 아, 네. 근데, 아직 한 변호사가 안 왔는데요.”
최재민의 메시지는 분명히 자신과 범상에게 동시에 보낸 것이었다.
하영은 그냥 시작해 버린 재민의 의도가 궁금하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범상의 부재가 더 궁금한 것일 수도.
“한 변호사, 다른 미팅 중이야. 도 변이 끝나고 브리핑해 줘.”
“다른 미팅이요?”
“응. 메시지 답이 없길래 비서하고 확인했더니, 기업법무팀 양호락 변호사님이 불러서 갔다네. 뭐, 중요한 거 아니니까, 그냥 우리끼리하고 도 변이 업데이트해 줘.”
“···.”
‘기업법무팀? 거긴 주니어 어쏘급 외국 변호사가 없는데, 거기를 왜?’
“도 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최 변호사님은 또 왜 이렇게 나이스해지신 거지?’
가뜩이나 범상에 관한 일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신경이 자꾸 가는데, 그의 주위에는 그녀가 모르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더 신경이 쓰이게 만든다.
그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