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49)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49화(49/190)
【049화 – 이래저래 신경 쓰이게 만드는 남자】
점심시간,
최재민은 같은 팀 시니어 파트너 성일용에게 같이 식사하기를 청했다.
한범상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성일용과 함께 사무실 근처 중식당으로 간 최재민은 주문한 식사와 요리가 다 나오자, 은근슬쩍 주제를 한범상으로 돌렸다.
“아, 근데, 아까 회의하려고 했는데, 한범상이 양호락 변호사님 방에 불려 갔다고 하더라고요.”
“응? 양 변호사 방에?”
‘왜지?’라는 성일용의 표정이 금세 ‘아!’라는 표정으로 바뀐다.
의외지만 짐작 가는 데가 있다는 반응.
최재민은 놓치지 않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뭐 아시는 거 있으세요?”
“LJH가 한번 일 시켜보라고 한 거겠지.”
역시.
“이정후 변호사님요?”
“아니면 양 프로가 그 친구를 부를 이유가 뭐가 있어? 위에서 시켰으니까 부르는 거겠지.”
여기까지는 최재민도 대충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호락 시니어 파트너가 이끄는 국내 기업법무팀 내 파트는 외국 변호사를 쓸 일이 없다.
“근데, 양호락 변호사님이 한 변호사에게 시킬 만한 일이 있나요? 거기는 주로 삼전 그룹 일만 하는데.”
삼전 그룹 일이라고 했지만, 사실상은 삼전 그룹 재벌가의 일을 주로 하는 팀이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지만.
“시키려고 하면 뭐든 못하겠어.”
“그렇기는 한데···.”
양호락 변호사는 기업법무팀 내에서 기업지배구조 및 경영권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파트의 수장이었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은 80% 이상이 국내 변호사들.
물론 해당 파트에도 외국 변호사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외국 로펌에서 적어도 7, 8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변호사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외국 변호사들은, 같은 파트 내에 있다고는 하나, 독자적으로 일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했다. 민감한 정보를 다루기에 외부 로펌에 문의하기 전,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진짜 외국법 자문사들이었다.
그렇다는 건, 한범상 같은 국내 국제법률대학원 출신 신입 외국 변호사는 낄 자리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BIC(해상팀 백인찬 변호사)가 너무 띄워줬어.”
“그렇기는 하죠.”
연봉 재협상 끝난 어쏘 변호사의 연봉을 또 올려주자고 했으니···
그런 전례가 있었다고 하나, 흔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를 쏟아부은 격이 됐다. 가뜩이나 ‘낙하산’ 이미지 때문에 우호적인 시선보다는 적대적인 시선이 아직은 많은 2년 차 어쏘에게 말이다.
“지난번에 식사했을 때 느꼈는데, 노태규 변호사 일도 그렇고, LJH 심기가 별로인 것 같아.”
“한범상한테요?”
“아니, 뭐 그런 걸 밖으로 드러내는 양반은 아닌데, 그냥 느낌이. 불편하겠지. 최 프로는 안 그러겠어?”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어찌 됐든 사무실 내에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니까. 노태규 변호사님이 나가기 전에 이정후 변호사님을 찾았다는 거.”
“딱히 한범상한테 심기가 별로라기보다는 한범상을 건드리면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한 거겠지.”
“누구 반응이요?”
“누구 반응이겠어?”
최재민은 가지고 있던 의문이 대충 풀렸다.
‘BIC의 반응이 궁금해서 아니다. 빅 마운틴의 반응이 궁금한 거지.‘
현재 하늘에 가장 가까운 ‘신선’ 이정후.
그에게 있어 ‘산’은 밟고 올라서야 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중원’에 내려보낸 인물이니, 시작부터 탐탁지 않았을 게 뻔하다.
다만, 겉 포장이 변변치 않아서 무시하고 있었을 텐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신경이 쓰기 시작한 게 분명하다.
‘백인찬 변호사님은 정말이지 사내 정치를 너무 모른다. 관심이 없는 거겠지. 나처럼 보일 듯 말 듯 해야지, 저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버리면···.’
그렇다고 해도, 바로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이제 고작 1년 반밖에 안 된 어쏘한테.
거기까지는 최재민도 예상하지 못했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에도 전심전력을 다한다고는 하지만···
무서운 분이다. LJH.
“근데, 한범상에 관해 물어보려고 식사하자고 한 거야? 최 변이 한 변호사를 높이 평가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관심이 있었어? 술 한번 했다더니 많이 친해졌나 봐.”
“네? 아니요. 오늘 회의하자고 했는데, 자리에 없어서 조금 짜증 나서요.”
“그래?”
“네. 아, 자꾸 이러면 그냥 해상이나 특허에 보내버리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쩝.”
“진심이야? 물건이라며?”
“물건이기는 한데, 윗분들 시선이 이러면 굳이···.”
빈말이다.
반쯤은.
이정후하고 척을 져가면서 굳이 데리고 있을 마음도, 힘도 최재민에게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신선 위에 태산.
‘정치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백인찬 변호사님. 후배를 키울 때도요.’
그 역시 언젠가는 신선의 자리에 올라가기를 꿈꾼다.
“그나저나 양호락 변호사가 불렀으면 쉽지는 않을 텐데···어때? 최 변이 보기에는. 한범상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모르겠다.
이 김앤강이라는 중원에는 기이한 괴짜들이 많다.
양호락 역시 그중 하나. 공략법을 모르면 깨기 쉽지 않은 보스다.
“알아서 하겠죠, 뭐. 저야 제 사건에만 피해주지 않으면 되니까.”
라고 말했지만, 최재민의 속마음은,
‘그거참, 신경 쓰이게 됐네.’
이었다.
-*-
이정후 변호사가 불러서 그의 방을 찾았더니 뜬금없는 지시가 내려왔다.
“양 프로.”
“네, 변호사님.”
“한범상이라고 알지?”
“강태산 변호사님이 꽂은 친구 말입니까?”
“그 친구 일 좀 시켜봐.”
양호락은 성가셨다.
선배 이정후가 우려하는 것이 뭔지는 알겠는데, 아무리 강태산이 관련된 일이라고 해도 고작 ‘낙하산’ 어쏘 하나 가지고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양호락은 기업법무팀 내 지배구조 및 경영권분쟁 파트를 맡고 있다.
시시한 로펌의 해당 파트가 아니다. 김앤강의 지배구조 및 경영권분쟁 파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은밀한 전쟁을 하는 팀.
물론 법정에도 간다. 때론 여론전도 하고.
다만, 그건 어쩔 수 없을 때에나 최후의 수단으로 하는 것.
기업지배구조 및 경영권분쟁을 법정에서 하는 건 2급 로펌들이나 하는 일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김앤강의 지배구조 및 경영권분쟁 파트.
언론에 알려지면 안 되는 비밀들이 많은 재벌가 멤버들이 그들의 클라이언트들이다.
주목받아 봤자 좋은 게 없다.
여긴 어쏘를 키우는 곳이 아니다.
실력을 증명한 변호사가 비즈니스를 배우러 들어오는 곳이지.
그걸 잘 아는 선배 이정후의 지시였다.
성가셔도 해야 한다.
기업법무팀의 일감은 대부분 그의 인맥으로 들어오는 것이었기에.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잠깐 내 방으로 와.”
이정후의 방에서 돌아온 양호락은 주니어 파트너 이성훈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응. 잠깐 앉아봐.”
로펌에서 누구를 힘들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을 미친 듯이 많이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을 없는 사람처럼 아예 주지 않는 것.
한범상은 이미 다른 여러 팀에서 사건들을 받고 있으니, 후자는 해당이 안 됐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한범상이라고 외국 변호사 하나 오늘 미팅에 참석할 거야. 삼전 그룹 관련 건들 빼고 전달해 놔.”
“한범상이요? 혹시···.”
“맞아. 강태산 변호사 낙하산.”
“아···예, 알겠습니다.”
“일 좀 시켜봐.”
“일이요? 저희 파트 일이요?”
주니어 파트너 이성훈은 양호락의 지시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팀에서 2년도 안 된 외국 변호사한테 줄 수 있는 일이 있나?’
“적당한 거 찾아서 줘.”
“아, 알겠습니다.”
“번역시켜.”
“번역이요?”
“아, 그 진원 그룹의 필리핀 법인 파산 신청 건 관련해서 영어로 번역해야 할 서류들 많잖아.”
“네.”
“그것들 주면 되겠네.”
“아···알겠습니다.”
모호한 지시에 주니어 파트너 이성훈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일을 주라는 건 키워보겠다는 의미인데, 인턴도 아니고 2년 차 어쏘에게 번역일을 주라는 건 딱히 그런 의미가 아닌 듯했다.
물론 긴급한 상황에서 번역을 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진원 그룹 필리핀 법인 파산 신청 건은 그렇게 급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방으로 돌아와 한범상의 아월리 레이트(시간당 요율)를 체크해 보니, 번역을 시킬 만한 급이 아니었다.
시간당 620불짜리 변호사다.
민감한 서류였다면 또 모를까, 어차피 공개될 서류들을 그 급의 변호사에게 번역시켰다가는 나중에 클라이언트가 청구서에서 빼라고 요구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번역 일을 주라고?’
이성훈이 뭘 얼마나 줘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는 상황에,
띠리링- 띠리링-
방금 돌아온 양호락의 방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네, 변호사님.”
-고민하지 말고, 그냥 다 줘.
“네?”
-번역할 서류들을 그 외국 변한테 다 주라고.
‘500페이지나 되는 서류를? 전부 다?’
급한 번역은 아니었다.
다음 달 말까지 제출하면 되니까, 근 두 달 정도 시간이 있다.
하지만, 이걸 굳이 한 사람한테 주라는 건, 그것도 인턴이나 번역사가 아닌 하고 있는 사건들이 있는 변호사한테 주라는 건,
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이유가 하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일로 질식시켜 죽이겠다는 것.
자연스레 ‘왜?’라는 의문이 든다.
대충 짐작이 가기는 한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신경 써야 할 존재인가?’라는 의문이 곧바로 떠오른다.
이성훈은 일단 받은 지시대로 한범상에게 지독한 업무를 하달했다.
당연히 반발하거나 못해낼 거라 예상과 함께.
그러나···
.
.
.
한 달 뒤,
자신의 방을 찾아온 한범상은 여유로운 미소를 방긋 지으며 물었다.
“번역 다 했습니다, 이 변호사님. 출력해서 드릴까요?”
‘다했다고?’
그가 해온 번역을 검토한 이성훈은 친하지는 않지만, 한범상에 대해 잘 알 것 같은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이 변호사, 웬일이야? 바쁘신 분이 나한테 전화를 다 하고.
“선배님, 잘 계시죠?”
법무법인 양아의 고민수. 김앤강에 들어오기 전 한범상이 다녔던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50화
가늠하기가 어렵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한 남자
오백 장이나 되는 번역을 다 해왔다.
기업법무팀 이성훈은 한범상의 타임시트(time sheet, 변호사 업무 시간 기록표)를 체크했다.
‘300시간?’
지난달 쓴 시간의 양에 놀란 것만은 아니었다.
삼백 시간 중에 번역에 쓴 시간이 1/5도 안 된다.
‘50시간 만에 500페이지 번역을 했다고?’
믿을 수가 없다. 20~30년씩 번역만 한 전문가도 그렇게 못 한다.
이성훈은 확신했다, 한범상이 시간을 줄여서 타임시트에 기재했다고.
간혹 파트너 변호사에게 능력 있어 보이려고 시간을 줄여서 쓰는 경우가 있다.
특정 업무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 능률 없어 보일까 봐 그렇게 한다.
물론 많이 써도 되는 큰 사건들을 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시간을 얼마나 썼냐가 다음 해 연봉 협상과 성과급에 직결되는데, 줄여 쓰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시간을 많이 쓰기에 눈치 보이는 사건들을 할 때만 그리한다.
예를 들면, 파트너 변호사가 공들여 영업해 온 새로운 클라이언트라든지, 아니면 기존 의뢰인으로부터 법률 비용이 너무 비싸게 나왔다고 심한 컴플레인트가 들어온 직후라든지.
보통 비용 청구의 중요함을 깨닫기 시작하는 시니어급 어쏘들이 케이스를 봐 가면서 눈치껏 자가 삭감을 한다.
그것 역시 파트너급으로 올라가려면, 할 줄 알아야 하는 전술이기에.
디 아트 오브 빌링(The Art of Billing).
‘근데, 한범상이 왜?’
이성훈이 보기엔, 그럴 이유가 없다.
이제 고작 2년 차인 데다가, 사건을 주겠다고 하는 다른 팀들도 많은데 굳이 기업법무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설마 양호락 변호사님에게 잘 보이려고?’
질문에 답을 유추해 보기 전, 이성훈은 한범상의 지난 일 년간의 타임시트를 확인했다.
‘뭐! 월평균 300시간? 이걸 싸인해 내보낼 파트너가 어디 있다고!’
로펌에는 두 개의 타임시트가 존재한다.
하나는, ‘빌러블 아워스’가 기재되는 내부용 타임시트이고,
다른 하나는, ‘빌드 아워스’가 기재되는 클라이언트용 타임시트이다.
빌러블 아워스(billable hours)란, 청구가 가능한 시간이라 하여 각 변호사가 해당 사건을 검토·처리하면서 쓴 시간을 말한다.
빌드 아워스(billed hours)란, 그중에서 클라이언트에게 실제 청구된 시간을 지칭한다.
두 개가 다르냐고?
다르다.
파트너 변호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바로, 데리고 있는 어쏘 변호사들이 사건에 쓴 시간들을 검토하여, 그중 청구할 것과 청구하지 않을 것을 추려내는 일이다.
즉, ‘빌러블 아워스’가 기재된 타임시트에서 적당히 쳐낼 것들을 쳐낸 이후 클라이언트에게 청구하는 일.
이때 의뢰인에게 발송되는 청구서에 붙는 타임시트를 ‘빌드 아워스’라고 한다.
왜 그렇게 하냐고?
클라이언트의 관점에서 보면 그 답은 어렵지 않다.
세상에 비싼 청구서를 좋아하는 클라이언트는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쏘 교육 비용이 자기한테 전가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사실 클라이언트들도 안다.
그 비용 역시 결국 자기들이 떠안게 되는 것을. 그게 시스템인 것을.
다만, 너무 대놓고 그렇게 하는 것 같으면 화가 나게 되고, 화가 나면 컴플레인트를 건다.
컴플레인트를 제기했는데도 차도가 없는 것 같으면, 그 클라이언트는 다른 로펌을 찾는다.
즉, 빌링(billing, 청구서)에 대한 컴플레인트는 일종의 경고다.
「적당히 해. 안 그러면 니들한테 더는 일 안 줘.」라는 경고.
진짜 무서운 건, 작은 경고조차 하지 않고, 로펌을 바꾸어 버리는 의뢰인들이다.
그래서, 파트너들은 그렇게 말한다.
로펌 파트너에게 가장 필요한 스킬은 바로 ‘아트 오브 빌링’이라고.
빌링의 기법,
빌링의 예술,
마치 손자의 병법처럼 로펌 파트너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전술과 같은 것.
그것이 바로 ‘디 아트 오브 빌링(The Art of Billing)’이다.
그렇기에 파트너 승격을 목전에 둔 시니어 어쏘들이 눈치껏 자신의 타임을 삭감할 때가 생기는 것이다.
파트너 변호사에게 자신이 쓴 시간은 검토할 필요 없이 100% 청구해도 클라이언트에게 경고 따위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파트너가 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 물론 지나치게 줄여도 안 된다. 그건 과한 것보다 못하다.
근데, 안다고 해도 자신이 실제 쓴 시간을 줄이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그래서 ‘아트 오브 빌링’이 어려운 것이다.
‘뭐야? 다 청구됐잖아!’
한범상 타임 관련 각 팀에서 발행한 청구서를 확인한 이성훈은 입이 벌어졌다.
월평균 300시간 모두 꽉꽉 채워 청구됐다.
해상팀 파트너도, 국제중재팀 파트너도, 특허분쟁팀 파트너도 한범상이 자신들의 사건에 쓴 시간에서 1분도 빼지 않고 전부 청구했다.
(사실, 별산제 로펌에서 경영진급이 아니면 다른 팀 청구서를 볼 수 없다. 민감한 자료이기에. 하지만, 이성훈은 티가 나지 않게 살짝 훔쳐볼 수 있는 짬밥이 찬 주니어 파트너였다.)
‘300시간을 전부 다?!’
타임 관련해서 로펌 변호사들 사이엔 암묵적인 룰이 하나 있다.
한 달에 맥스로 청구할 수 있는 시간은 300시간.
정말 긴박하게 흘러가는 프로젝트나 복잡한 사건의 경우, 300시간을 초과해 350시간까지 청구할 때도 있지만, 그건 정말 극히 드문 케이스이고, 그런 경우에도 최대 한두 달이다.
그 같은 업무량을 버텨낼 수 있는 몸을 가진 인간은 없으니까.
거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어쏘가 1년간 월평균 300시간을 꼬박꼬박 썼다면 그건 허위 기재일 확률이 높았고, 그런 타임시트는 파트너들에 의해 가차 없이 칼질을 당했어야 했다.
그런데, 한범상이 쓴 300시간은 1분도 삭감되지 않은 채 그대로 청구되었다.
백인찬, 최재민, 함익철이 모두 OK 했다는 의미였다.
“뭐야, 정말 다들 강태산 라인에 서기로 마음먹은 거야?”
너무 기가 찬 나머지, 입 밖으로 생각이 튀어나왔다.
그 말을 귀로 들으니, 허무맹랑한 의심이라 것이 명확해진다.
백인찬, 최재민, 함익철이다.
누구 라인을 타겠다고 실력이 안 되는 ‘낙하산’ 어쏘가 허위로 기재한 타임까지 모두 인가할 인물들이 절대 아니다.
그나마 그중에선 최재민이 그럴 가능성이 높았지만, 최재민은 멍청하지 않다. 그딴 짓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게다가 한 명도 아니고 세 명 전부가···
한 시간가량을 이 문제로 고민하는 바람에 머리만 복잡해졌다.
그렇다고 저 세 명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당신 팀 청구서를 몰래 봤다고 털어놓는 꼴이니.
모르는 척 은근슬쩍 물어보려고 해도, 백인찬은 무섭고, 최재민은 눈치가 백단이고, 함익철은 꽉 막혔다.
‘도대기 변호사님한테 물어볼까?’
제일 많이 알고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셋 하고 다 친한 그도 부담스러운 건 매한가지.
어쩌면 이럴 때는 외부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범상의 이력서를 보던 이성훈은 동문 고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이 변호사, 웬일이야? 바쁘신 분이 나한테 전화를 다 하고.
“선배님, 잘 계시죠? 오늘이나 내일 저녁에 식사 어떠세요?”
-좋지. 어디서?
“일식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