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51)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51화(51/190)
【051화 – 아주 비효율적으로 일을 잘하는 남자】
[범상: 변호사님, 진원 그룹 필리핀 법인이 법원에 제출한 회계자료 검토 끝냈습니다. 팀 폴더 안에 코멘트랑 제가 보기에 이상한 점들을 정리한 것 올려놓았습니다.]‘그걸 벌써 끝냈다고? 어제 준 일인데?’
*
[범상: 변호사님, 정리하라고 하신 현재 기업법무팀에서 처리하고 있는 사건들의 리걸 메모들을 전부 작성했습니다. 일단 각 사건 기록에 철했는데, 비서에게 따로 묶어서도 보관하라고 할까요?]‘그 많은 기록들을 다 봤다고? 일주일 만에?’
*
[범상: 변호사님, 추가 번역하라고 주신 것들은 폴더에 올려놨습니다.]‘······.’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꼼꼼하게 해놨다.
굼뜨기는 개뿔.
기업법무팀 주니어 파트너 이성훈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아- 이제 또 뭘 시켜.”
더 줄 일이 없다.
-*-
최재민은 지난 석달 간 양호락 변호사의 팀에서 한범상에게 주는 일들이 뭔지 엿봤다.
그는 양호락이 어떤 인물인지를 안다.
검찰 특별수사부 출신에 소위 말하는 재벌가 변호사.
검사 시절, 선배 앞에서 시건방 떠는 후배 변호사의 뺨을 술자리도 아니고 수사관들 앞에서 후려쳤다는 소문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사람을 테스트하는 데에 있어 선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사람.
몇 년 전, 시니어 파트너들 술자리에 끼게 된 적이 있었다.
쓸만한 재목이라고 성일용 변호사가 데려갔었다.
그 자리엔 이정후와 양호락도 있었다.
최재민은 잘하는 잡기를 선보였다. 노래도 부르고, 농담도 하고, 춤도 추고. ‘재롱’을 떨었다.
분위기는 좋았다.
술자리는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졌다.
사건은 ‘신선’ 이정후 변호사가 먼저 일어나겠다고 하면서 터졌다.
흥에 취한 최재민이 이정후에게 “아- 선배님, 한잔 더하고 가시죠. 이렇게 가시면 배신입니다.” 말한 것 때문이었다.
그렇게 건방지게 한 말도 아니었다. 귀엽게 재롱으로 봐줄 수 있는 멘트였다.
그런데, 이정후와 같이 일어난 양호락이 그를 보며 한마디 했다.
“꼴값 떨지 말고 앉아 있어.”
당황스러웠다.
면박을 당해본 적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이 사십에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때린 것도 아니고, 욕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인격을 한순간에 무너뜨려 버리는 눈빛과 말투였다.
당연히 순간 술집 안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물며 성일용도 입을 다물었다.
그 이유가 이정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등 뒤에서 흘렀다.
그런 인물이 한범상을 불렀다고 하니 신경이 쓰였다.
다른 팀 타임시트는 보지 않는 것이 불문율. 최재민은 그런 불문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양호락 변호사팀에서 나가는 타임시트들을 들춰봤다. 그 정도 짬밥은 된다.
어차피 시니어 파트너가 되면 다 다른 팀 매출을 염탐하고 견제하고 그런다. 물론 안 그런 시니어 파트너도 있지만.
“뭐야, 이거?”
지난 석달 간 양호락 변호사팀에서 한범상에 준 일은 번역, 검수, 기존 기록 메모 작성 같은 일밖에 없었다.
사실, 그게 큰 문젯거리는 아니다.
최재민도 그랬으니까. 도대기도 그랬고.
1~2년 차에게 그런 업무만 주는 건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그것도 일종의 교육이니까. 신입이 잘하면야 곧바로 사건에 투입할 수 있지만, 못하면 당연히 그런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한범상이 쓴 시간들을 전부 ‘빌드 아워스’ 타임시트에서 빼버렸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이것도 그럴 순 있다. 일반적으로 50시간 정도 들여서 처리해야 하는 사건에 어리숙한 어쏘가 자기 공부한 시간까지 포함해 80시간, 100시간씩 써버리면, 그걸 무작정 클라이언트에게 청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경험 있는 파트너는 해당 어쏘의 시간을 청구할 때 뺀다. 그건 당연히 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범상이다!
500페이지 번역하는데 50시간밖에 안 썼다!
‘딱 봐도, 눈치껏 자가 삭감해서 적당히 적은 것 같은데, 이걸 청구서에 뺀다고?’
비단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른 시간들도 청구서에서 다 빼버렸다.
“아이, 진짜, 양아치 새끼.”
순간 욱해서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이럴 거면 왜 데려가 일을 주냐고. 여기서 줄 일도 많은 애한테!”
최재민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사내 정치에 대해서 알 만큼 알고 있는 그다.
양호락이 이정후의 지시를 받았다.
양호락은 이성훈에게 시킨 거고.
눈 밖에 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의도는 한범상을 건드려서 강태산의 반응을 보겠다는 거겠지.
“쩝, 까다롭게 됐네, 진짜.”
최재민은 그날 밤 술자리에서 양호락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이 떠올렸다.
양호락도 지독한 인물이지만, 최재민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그날 일.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띠리링- 띠리링-
-네, 윤상호 변호사님 사무실입니다.
“어, 나 국제중재팀 최재민인데, 윤 변호사님 자리에 계시나?”
-네, 자리에 계십니다. 연결해 드릴까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내려갈게.”
최재민은 양호락을 상대할 힘이 없다.
최재민은 백인찬을 이용할 생각이다.
요새 다시 물이 오르신 그분.
‘근데, 이상하네. 한범상이 이 자식은 요새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거지?’
-*-
한범상과 기업법무팀 관련하여 상의할 게 있다면서 최재민이 찾아왔다.
“웬만하면 이런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라면서 꺼낸 이야기는 살짝 민감한 주제였다.
다른 팀 운영과 빌링에 관한 이야기.
그래서, 처음에는 꺼렸다.
하지만, 최재민의 말에 따르면, 한범상이 어디에다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윤상호는 한범상이 마음에 들었다.
진득하게 군소리 없이 일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의리도 있어 보여 좋다.
그런 남자들의 특징이 위에서 누르면 참을 수 있는 때까지 참았다가 터지는 거라는 걸 잘 안다.
자신도 그런 성격이니까.
고민 끝에 윤상호는 최재민에게 들은 말을 조심스럽게 백인찬에게 전했다.
“뭐라고?! 일을 했는데, 청구를 안 해? 그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누가 시켰다고? 양호락?”
윤상호에게 문제를 들은 백인찬의 두꺼운 얼굴 피부가 굵은 굴곡들을 만들었다.
최재민의 계획대로 백인찬은 시간 낭비함 없이 곧바로 양호락의 방을 찾았다.
···
“양 변호사 방에 있지?”
“네? 아, 계시기는 하는데 지금 통화 중이···!”
비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 백인찬은 노크와 함께 양호락의 방문을 열었다.
똑똑-
“양 변호사.”
양호락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방금 들어온 사람을 노려봤다.
양호락은 인상은 풀었다.
풀 수밖에 없다.
백인찬이다.
어떤 인간도 무섭지 않은 그였지만,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호랑이’다.
“통화 중이었어? 알았어.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끝나면 얘기해.”
라고 말한 백인찬이 문을 닫고 나갔다.
‘밖에서 기다린다고? 참나.’
이건 끊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양호락은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지. 여기 내 방이잖아.’
양호락은 다시 자리에 앉아, 밖에 있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인찬 변호사를 안으로 안내하라는 말과 함께 차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호랑이’가 들어왔다.
“백 변호사님이 무슨 일로 제 방에···.”
“짧게 얘기할게. 한 변호사 말이야. 바빠.”
“네?”
“바쁘다고. 해상 일 하느라고. 번역 같은 일 시킬 거면 자꾸 부르지 마.”
참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양호락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어쏘 하나 때문에 백 변호사님이 저한테까지 찾아오셔서 이러시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일단 차 오면, 얘기를 들어보고···”
“차 내오지 말라고 했어. 같은 사무실 변호사끼리 얘기하는데, 뭐 차를 내와. 먹고 싶으면 그냥 내 방에서 마시면 되지.”
정말이지 상대하기 힘든 존재다.
모시는 이정후 변호사와 같은 기수였기에 얌전히 상대하려던 양호락은 표정을 바꿨다.
그가 ‘호랑이’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두려운 건 아니다.
“변호사님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시니 당혹스러운데요.”
“뭐가?”
“지금 저희 팀 운영에 관여하시는 건가요?”
“누가 언제?”
“그게 아니면 이러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혹시, 한범상이 변호사님한테 찾아가 저희 팀 일 받기 싫다고 했나요?”
“그건 아니야.”
“그러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정후 변호사님이 자질이 있는 친구 같다면서 일 좀 시켜보라고 하시길래, 제 방식대로 테스트를 해보고 있는 건데요. 정말 쓸만한 재목인지 아닌지. 그런데 변호사님이 이렇게 나오시니, 살짝 당황스럽습니다.”
“자네는 어쏘 테스트를 그렇게 해?”
“네.”
“재벌가 일들을 많이 해서 그런 거야? 아니면 아직도 특수부 시절 쿠세가 남아있는 거야? 하는 짓이 왜 그래?”
“제가 하는 짓이 어때서 그러신가요?”
“로펌 변호사답게 굴어. 양아치같이 그러지 말고.”
양호락 이마의 주름이 깊어진다.
김앤강의 ‘신선들’ 중에서도 자기한테 이렇게까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선배들은 많지 않다.
“제 방식이 백 변호사님을 언짢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만, 이건 저와 한 변호사의 문제인 거 같은데요. 백 변호사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제가 얘기해 보겠습니다.”
“얘기하고 자시고 할 거 없어. 테스트는 내가 다 했으니까, 기업법무팀에서 줄 일 없으면 관심 꺼.”
“그거야···”
“이정후 변호사가 뭐라고 하면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 내가 얘기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양호락은 더 이상 할 대꾸가 없었다.
백인찬은 마치 선전포고처럼 할 말만 하고는 나가버렸다.
화가 정수리까지 난 양호락은 이성훈을 방으로 불렀다.
“이 변호사더러 내 방으로 오라고 해.”
-네, 변호사님.
30초도 안 돼, 한범상에게 일을 주던 주니어 파트너 이성훈이 방으로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변호사님?”
“한범상이 일 주라는 거는 어떻게 되고 있어?”
“아, 그거요.”
“왜 보고가 없어?”
없을 수밖에.
“아, 그게···잘하고 있어서요.”
“뭐라고?”
“일을 잘합니다, 변호사님.”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52화
곱게 자라지 않은 남자
곱게 자란 것들은 모른다.
세상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력?’
실력 좋은 놈들 많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한 놈들만 간다는 국립대학교의 로스쿨에서만 매년 150명의 변호사가 쏟아져나온다.
상위 3개 대학으로 범위를 넓히면 매년 400명이다.
TV에 나오는 경연프로그램에서 한 사회자가 그러더라, 대한민국에는 왜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냐고, 매년 대회를 여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매년 실력 좋은 참가자들이 쏟아져 나오냐고.
실력 좋은 변호사들도 그렇다.
매년 쏟아진다.
담 있는 놈들이 없지.
“일을 잘합니다, 변호사님.”
한범상이 일을 잘한다는 보고에 양호락은 주니어 파트너 이성훈을 한심한 듯 쳐다봤다.
고작 번역, 자료조사 같은 일을 시켜보고 잘한다고 칭찬하는 주니어 파트너가 한심했다.
이놈도 실력은 좋다. 물러터져서 그렇지.
“그래서, 너도 데리고 오고 싶어졌어?”
양호락은 이성훈을 쿡 찔렀다.
이럴 때는 이런 말 한마디가 직방이다.
“아닙니다.”
정신을 차린다.
곱게 자란 양반들이 세상이 만만해 보여서 혹은 정말 실수로 범죄를 저지르고 검찰에 올 때가 있다.
그들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국가가 자신에게 예의를 갖춰줄 거라고 착각한다.
그런 양반들에게 가장 효과 좋은 방법은 범죄자답게 취급해 주는 것이다.
팔짱 끼고 앉아서 변호사니, 인권이니 운운하던 양반들이 곧바로 다리를 오므리고 고개를 숙인다.
‘낙하산’이면 ‘낙하산’답게 취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니까, 마치 자기가 정당하게 이곳에 들어온 것처럼 고개를 들고 김앤강 변호사 흉내를 내는 것이다.
다들 예의를 갖춰주니까,
고작 번역, 조사 같은 일 따위 시켜보고 이렇게 잘한다고 칭찬해 주니까,
자기가 정말 잘하는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뭐? 자기가 테스트를 다 했다고?’
늙은 호랑이가 동굴 안에 혼자 오래 있었더니 감(感)이 떨어졌다.
남의 사건에 돈 대주는 해외의 대형 선박 보험회사들만 상대하다 보니 세상 클라이언트들이 그들같이 다 나이스한 줄 안다.
연말에 대한민국 3대 대기업 법무팀 이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올해 회사 매출이 떨어졌으니 법률비용 청구 금액을 반으로 깎으라고 ‘명령’했다. 어휘만 ‘부탁’이었지만 말투나 목소리는 분명히 ‘명령’이었다.
그러고는 며칠 뒤, 같은 팀 과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년에는 회사가 괜찮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올해 자기네 팀 연말 회식은 어느 호텔 레스토랑에서 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인원하고 메뉴까지 짚어줬다. 코스 B로 드시고들 싶다고.
‘양아치?’
편하게 사건만 하니까, 정말 이 로펌 전체가 자기네 팀처럼 돌아가는 줄 알고 있다.
왜 매년 사이즈가 커지는 로펌에서 자기네 팀만 쪼그라들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도 없겠지.
해상팀은 백인찬이 없으면 끝이다.
하지만, 김앤강은 해상팀이 없어도 끝이 아니다.
양호락은 백인찬이 한심했다.
후배 양성 하나 제대로 못 해 팀이 그 모양 그 꼴이 났으면서 밑으로 30명이 넘게 데리고 있는 자신한테 찾아와 한범상을 두둔하다니. 국내 법정에는 서지도 못하는 2년 차 외국 변호사를 말이다.
“한심하기는···.”
“네?”
“아니야. 그래서 일을 잘한다고?”
“아···음···빠릿빠릿합니다. 실수는 없고요.”
“그래? 그럼, 다른 일도 줘봐.”
“다른 일···이요?”
“뭐가 있을까? 아, 진원 그룹 필리핀 법인 관련해서 번역하고 있었지?”
“예.”
“신 전무하고의 미팅이 모레던가?”
“예.”
“그래, 그럼. 그날 미팅에 참석하라고 해.”
“신 전무님하고 하는 미팅에요? 아···네, 알겠습니다.”
‘테스트를 다 했다고?’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그렇게 끼고 앉아서 케이지 밖이 어떤 곳인지 보여준 적도 없으면서 테스트는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