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53)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53화(53/190)
【053화 – 흔들리지 않는】
진원 그룹 신기성 전무와의 회의는 바로 다음 날 잡혔다.
회사로 와줄 수 있냐는 요청을 거절하고, 김앤강 사무실로 불렀다.
“신 전무님,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양호락은 시작부터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양 변호사님,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법무팀 실수입니다. 현지 법인 일 처리가 워낙 엉성한 데다가 자료정리도 중구난방으로 되어 있고 하다 보니, 제출되지 말아야 할 서류가 제출됐네요.”
“그렇다고 해도 저희한테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어야죠.”
“저도 여기 계신 이 변호사님한테 연락받고 임 이사랑 확인한 뒤에야 알았습니다. 신 사장이 개인적 친분을 통해 한 투자였는데, 딱히 현명한 결정은 아니어서, 그래서 나한테도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은데···뭐, 그래도 신 사장이 뒤로 리베이트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확인했습니다.”
능청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신기성.
그런 그를 양호락은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신의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찾아온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도 이런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100% 신뢰는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변호사마저 속이려 드는 의뢰인은 많다.
그래서 이득이 뭐냐고?
예를 들면, 그럴 수 있다.
신기성은 조금 전 신 사장이 빚을 탕감해 주는 대신, 뒤로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상대방 측에 주장했다가 만약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변호사는 아주 곤란한 위치에 서게 된다.
물론 의뢰인이 허위 정보를 준 것이니, 형사처벌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김앤강 같은 로펌이 그런 것도 몰랐냐는 비난을 피할 순 없다.
반대로 말하면, 김앤강 같은 로펌이 검토했는데, 설마 범죄 은폐를 도왔겠냐는 선입견을 이용해 먹으려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기성 전무가 표면적으로는 신 사장 편에 선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의 아우와 여동생을 위해서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본래 경영권분쟁이란 그런 것이다. 경영권 유지 혹은 박탈에 필요한 지분을 모으기 위해 벌이는 암투.
모두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뿐.
애초에 필리핀 법인을 파산시키는 이유가 지분 계산을 신 사장에 유리하게 하려고 하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신 사장의 횡령이나 배임을 은폐하려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면, 우호 지분이 반대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만약 그러한 결과가 초래됐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김앤강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뒤로 쏙 빠지려는 것이 신기성 개인의 속셈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뭐가 진실이든, 양호락은 기분이 좋진 않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으면 사임하겠습니다.”
신기성은 협박조의 말투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양호락에게 인상을 썼다.
양호락은 똑같은 표정을 되돌려준다.
등에 태웠다고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라고 대꾸한 신기성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
방으로 돌아온 양호락은 한범상을 떠올렸다.
제법이다. 언젠가는 찾아냈을 실수였어도, 2년 차 어쏘가 제일 먼저 발견했다는 건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한두 달 뒤에 발견했다면 체면 못 차릴 상황을 맞닥뜨릴 뻔했다.
‘내가 너무 얕봤나?’
백인찬과 최재민이 왜 한범상을 높게 평가했는지 이제는 이해가 간다.
검사 경력 포함해 법조 경력 27년이다. 양호락도 보는 눈이 있다. 비록 한 사건이지만, 떡잎만으로도 이게 얼마나 크게 자랄 나무인지 정도는 감이 온다.
다만, 그가 놀란 건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담이 있는 놈이네.’
다른 놈들 같았으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당장이라도 숨고 싶었을 상황이었다.
심장이 쿵쿵거렸을 거고 위장이 울렁거렸을 거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음부터 내가 부르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게.
가장 자존심 상하는 부분을 건드렸다고 생각했는데···
그일 있은 바로 다음 날, 한범상은 제 발로 찾아왔다.
그러곤 기록에서 찾아낸 의뢰인의 치부를 내밀었다.
애초에 자기가 그런 상황을 만든 것만 아니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양호락은 오늘 미팅에 한범상을 데리고 나가고 싶은 충동심이 들었다.
비록 신기성 같은 인물을 이용해서 한범상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반대의 상황 역시 충분히 볼만한 광경이 되었을 테니까.
양호락은 슬쩍 봤던 한범상의 이력서를 다시 클릭했다.
아버지 행방불명, 어머니 분식집, 고등학교 중퇴, 그저 그런 대학교, 서명대 로스쿨.
‘곱게 자라지 않았다는 건가.’
양호락이 좋아하는 말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
그 역시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공부했다.
용은 개천에서 나는 법이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강태산과 한범상이 무슨 관계인지 이제는 그도 궁금하다.
-*-
[재민: 한 변, 오늘 바빠?] [재민: 끝나고 뭐해? 괜찮으면 간단하게 한잔 어때?] [범상: 좋습니다.]퇴근 후, 국제중재팀 최재민은 범상과 근처 일본식 선술집을 찾았다.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쳐져 있어 이야기하기가 좋은 곳이었다.
“요새 어때? 바쁘지?”
“괜찮은데요.”
“괜찮다고? 괜찮은 것 같지 않은데.”
“진짜 괜찮은데···.”
“하아- 보기보다 체력이 좋아. 어떻게 매달 그렇게 시간을 쓰고도 이렇게 멀쩡해 보이지? 한 변, 뭐 먹어? 집에 숨겨놓은 웅담이라도 있어?”
“웅담이요?”
“비법이 뭐야? 좋은 거 있으면 같이 좀 먹자.”
“가끔 어머니가 공진단을 주시기는 하는데요. 좀 드릴까요?”
언제나처럼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한 재민은 술병을 반쯤 비웠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한 변호사, 그나저나 양호락 변호사 일은 어떻게 맡게 된 거야? 양 변호사님이 불렀어?”
“네.”
“갑자기? 기업법무팀 일을 받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네.”
“싫다고 하지 그랬어?”
“변호사님께서 이정후 변호사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하라면서요. 무서운 분이라고.”
“내가? 언제?”
“저번에, 송도에서 골프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범상의 말에 최재민은 택시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상기했다.
술에 많이 취했었다.
기억이 나기는 한다.
“그거야. 백 변호사님 하도 난리를 치셔서, 위에서도 이제 한 변호사를 보고 있을 거니까, 행동거지를 살피라는 의미였지.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맡아가면서 혹사당할 것까지야 없어. 그런 말이 아니었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한 변, 한 변도 이제 감이 오겠지만, 여기가 다 각자 방 닫고 주어진 사건만 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으면 옆 방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라요.”
“네.”
“힘들 때는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내야 위에서도 안다고. 꾹 참고 하는 게 능사는 아니야.”
“알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한 변은 진짜 속내가 뭐야?”
“그냥, 잘하고 싶습니다. 여태껏 뭘 잘했던 적이 별로 없어서···.”
없다. 누군가에게 잘한다고 칭찬 받아본 적이. 평생 없는 건 아니지만, 요새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다.
“잘했던 적이 없다고?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진짠데.”
“진짜라고? 그래? 그러니까, 진짜 궁금해지네. 한 변 같이 실력 좋은 변호사가 왜 서명대 로스쿨을 나왔는지. 아, 서명대 로스쿨을 비하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겪어본 한 변호사는 충분히 더 이름 있는 로스쿨에 입학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앞뒤가 안 맞아져서 그렇지. 오늘은 그렇고, 언제 한번 날 잡아서 툭 까놓고 제대로 한번 얘기해 보자고. 어때?”
“좋습니다.”
최재민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양 변호사님은 어때? 무섭지? 그 양반 절대 호락호락한 양반이 아니야.”
“네, 그러신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도 괜찮다고?”
“뭐, 말투가 좀 날카롭기는 하시더라고요. 근데, 더한 분도 만나봐서···.”
“양호락 변호사님보다 더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다고?”
만나봤다.
아무 이유 없이 때렸던 놈.
내가 맞을 짓을 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반문하던 선생님.
합의 안 해주겠다니까 우리 엄마한테 오히려 삿대질하던 그놈의 부모.
단순히 학폭뿐만이 아니다.
엄마 가게 와서 술 달라고 진상짓을 떨어 넣고는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니 위생 위반으로 신고를 넣은 손님.
학폭 당한 애들은 다 이유가 있던데라며 MT에서 다짜고짜 그냥 비꼬던 대학교 선배.
어머니 사고로 휴가를 쓰겠다고 하니 변호사가 노동법 운운하면서 휴일 다 챙겨 먹을 생각이면 송무팀 직원을 하지, 변호사 명함은 뭐 하러 달고 다니냐고 핀잔을 줬던 전 파트너 변호사,
등등등.
양호락 변호사는 이유라도 있지.
저들은 이유도 없었다.
“아, 궁금하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고작 서른다섯밖에 안 된 사람이 무슨 다 살아본 사람처럼 이렇게 처연해?”
“서른여섯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무튼 언제 한번 제대로 얘기 한번 하자고.”
“넵.”
“아, 그리고, 하고 싶었던 분야가 아니라면, 양 변호사님 일은 적당한 선에서 거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한 변이 결정할 사안이지만,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나한테 말해. 내가 사건들 잘 겹치게 조정해 줄 테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네. 고맙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그래, 내가 한 변을 신경 쓴다니까. 내가 말했잖아. 그래서, 빅 마운틴하고는 정말 무슨 사이야?”
“빅 마운틴이요?”
“빅 마운틴. KTS. 강태산 변호사님.”
-*-
같은 시각,
양호락은 이정후와 함께 효자동 골목에 위치한 한정식 식당에서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신기성 전무가 전화했어.”
이정후가 마신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신 전무가 기분이 나쁘긴 했나 보네요. 변호사님한테까지 전화한 거 보면.”
“잘했어. 어설픈 고삐 질에 흔들리면 안 돼.”
“까딱하면 그럴 뻔했습니다.”
“돈 준다고 갑질하려 드는 게 사람 심리지. 내가 신 사장한테 직접 전화할까?”
“아닙니다. 정신 차렸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
“네.”
양호락은 선배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아, 그나저나, 한범상이는 어떻게 하고 있어? 어때? 자네가 보기에도 쓸만한 놈 같아?”
“이성훈 변호사가 일을 시켜보고 있는데, 아직은 딱히 뭐라고 말씀드릴 만한 건 없습니다.”
“오래 버티네?”
“시작도 안 했는데요, 뭐.”
“그런가? 하하. 너무 또 누르지 말고. 2년도 안 된 친군데.”
“네, 지난 몇 달은 제가 좀 바빠서 직접 못 봤는데, 앞으론 두고 좀 보겠습니다.”
“그래. 그러라고. ”
“근데, 변호사님.”
“응?”
“강태산 변호사님은 여전히 아무 말 없으신가요?”
“없어. 안 하는 행동을 했길래, 바뀌었나 했더니. 똑같아. 미동도 없어.”
‘미동도 없다라···.’
미동도 없다는 이정후의 말에 양호락은 왠지 모르게 한범상이 떠올랐다.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54화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만은 아닌
로펌이라는 조직은 일반 회사와는 다르다.
이제 막 들어온 무경험 신입에게 커다란 방을 주고 비서를 딸려준다. 20년, 30년 된 선배들과 팀이 되어 같이 일해볼 수도 있고, 사건에 관해서라면 동등한(?) 선상에서 서서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
실제로 어디, 어디 로펌에서 17년 차 파트너가 3년 차 어쏘가 올린 서면에 빨간 줄로 수정할 주장을 표시해 놓자, 해당 어쏘가 들이받았다는 (끝까지 바꾸지 않았다는) 얘기도 간간이 들려온다.
검찰이나 법원도 그렇지 않냐고?
조금 다르다.
물론 둘 다 법상으로는 검사나 판사 개개인의 독립권을 보장해 주고 있다.
하지만, 어디 감히 3년 차 검사가 17년 차 부장검사의 의견에 토를 단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 있어서 법원은 로펌과 비슷하다. 합의부 같은 경우, 이제 갓 임관한 법관이 몇십 년 된 법관과 팀을 이뤄 합의(?)를 통해 판결하니까.
하지만, 로펌이 법원과도 다르고, 검찰과도 다르고, 일반 회사와도 다른 가장 특별한 이유는 바로,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지금 다른 팀에 받은 사건들 때문에 일정이 겹쳐서 이번 사건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주는 일을 거절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아, 그래? 뭐, 그러면 할 수 없지. 알았어.”
“네.”
어느 조직에서 들어온 지 2년도 안 된 부하가 위에서 주는 일을 거절할 수 있을까?
없다.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범상은 나갈 생각이 없다.
하지만, 기업법무팀의 사건을 정중히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