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56)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56화(56/190)
【056화 – 낚시】
[백인찬: 현진상선 회생 관리인 리포트 나온 거 봤지? 다들 검토했나? 검토했으면, 이따가 2시쯤에 내부 회의 좀 하자고.] [윤상호: 예, 변호사님.] [송윤지: 네.] [한범상: 넵]현진상선이 회생절차를 개시한 지 반년이 넘어갔다. 본격적인 절차의 시작이었다.
1시 50분, 범상은 센터게이트 빌딩 11층 해상팀 회의실로 향했다.
범상이 도착했을 땐, 해상팀 주니어 파트너 윤상호 변호사가 이미 들어와 앉아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왔어.”
해상팀 회의실은 크지도 작지도 않다.
스무 명쯤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 한쪽으로는 해상법 관련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있고, 반대편으로 어탁 한 점이 걸려있다.
“한 변, 요새 낚시 다닌다면서?”
“어, 어떻게 아셨어요?”
“도 변이 그러던데, 한 변이 요새 낚시에 빠졌다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여러 번 본 그림인데, 낚시를 시작하고 나서 보니, 저만한 물고기를 낚싯대 하나로 잡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지 체감된다.
“네,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그게 미치는 거라니까. 민물? 바다?”
“호수 낚시요.”
“호수 낚시? 아, 낚시터 다니는구나? 그렇지, 그게 초보들한테는 손맛도 쉽게 볼 수 있고 재미있지. 카하- 신기하게 그게 참 재미있어, 가만히 앉아서 물고기가 물기만을 기다리는 건데. 안 그래?”
“네.”
상호는 허공으로 낚싯줄을 던지는 시늉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잘 잡히는 날에는 채는 재미로 하고, 안 잡히는 날에는 또 안 잡히는 대로 기다리는 맛에 하고. 다 묘미가 있어요.”
“윤 변호사님도 낚시 다니세요?”
“한때 다녔었지.”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는 말. 그리워하는 표정이다.
“이게 중독이라니까. 카지노 슬롯머신하고 원리가 똑같아. 정말 한 번만 당기고 간다고 했다가 막상 앉으면 결국 다 비울 때까지 못 일어나. 그게 그렇거든, 안 되는 날에는 ‘아, 진짜 한 마리만 낚고 가자.’ 이런 심정으로 몇 시간씩 찌만 보고 있는데, 막상 한 마리 낚잖아? 그럼, 또 ‘아, 이제 시작이구나!’ 하면서 몇 시간이고 더 있게 돼. 그게 그럴 수밖에 없어.”
“그래도 낚시는 잡은 물고기가 남잖아요. 슬롯머신은 돈만 잃고 아무것도 안 남는데.”
“시간을 잃잖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시간을.”
순간 범상은 뜨끔했다.
“신혼 때 빠져가지고 한 3년 미친 듯이 다니다가 이혼당할 뻔하고 그만뒀어. 흐흐흐. 그때가 좋았지. 근데, 신선놀음인 거는 맞아. 이왕 시작했으니까, 하지 말라고는 못 하겠는데, 시간이 돈인 변호사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취미야. 적당히 해보고 낚싯대들 처분해. 그러다 장가 못 간다.”
“아···네.”
“근데, 또 꼭 나쁜 점만 있지는 않아요, 이게.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이 낚시만 한 게 없거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니까.”
범상은 선배의 말을 들으며 그의 뒤에 걸린 어탁을 다시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근사하다.
상호는 후배가 경청하는 줄만 알고 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물 위에 가만히 떠 있는 찌를 보고 있으면 별생각이 다 든다. 최근 고민거리부터 꿈, 욕망, 돈, 후회,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한두 시간을 골머리 아프게 보내고 나면, 이제 아무 생각이 안 나. 뭔가 해탈한 거 같아. 괜찮아. 머리도 안 아프고. 근데, 그 순간 찌가 쏙! 들어가고 한 마리를 낚잖아? 그럼, 또 잊어버렸던 사념들이 다 돌아와. 그러면 또 떡밥을 끼워서 찌를 던져놓고 다시 시작하는 거지. 그렇게 또 한두 시간 기다리면서 다 잊어버리고. 그렇게 나만의 세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딱 생각 하나가 남아. 그게 바로 자기가 원하는 거야.”
“아— 네.”
“그래서, 한 변은 요새 고민거리가 뭐야?”
“고민거리요?”
“없어? 없으면 요새 가장 원하는 게 뭐야?”
가장 원하는 거?
“변호사님, 저 정도 되는 대어를 잡으려면 오래 걸리겠죠?”
“응?”
범상은 어탁 속 물고기를 가리켰다.
덜컥.
“자, 다들 왔나? 한 변도 왔어? 아, 왔네. 회의할까?”
때마침, 백인찬 변호사와 송은지 변호사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
회사도 죽는다.
진 빚들을 갚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그 상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태어난 회사는 더 이상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면, 자연인처럼 회사도 죽는다.
권리와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만, 자연인(自然人)이 아닌 법인(法人)은 인간처럼 그냥 죽을 수 없다.
법원에서 ‘죽음’을 선고·인정해야만 한다.
해산(解散)이라고 해서 ‘자살’도 할 수 있다.
해산하기로 결정한 법인은 청산(淸算)이라는 절차를 통해 법인에 남아있는 자산을 처분하여 빚들을 다 갚은 후 소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 자산은 충분 하나 앞으로 사업 전망이 좋지 않다거나 운영 의사가 없을 경우, 스스로 채무를 정리하고 남은 재산을 주주들이 나눠 가질 때 이용하는 절차이다.
사적 절차이지만 역시나 끝에는 법원의 등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비유한다면, 파산(破散)은 법원이 주도하는 ‘죽음’이라 볼 수 있다.
법인의 채무가 자산을 초과하여, 기존 자산을 다 처리해도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법원이 직접 나서서 자산 처분을 관장하고 채권의 순서를 매겨 정리해 주는 절차이다.
왜 그렇게 하냐고?
채권자들이 무작위로 달려들어 100원에 처분할 수 있는 채무자의 자산을 자기만 빨리 변제받겠다고 50원에 처분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채권자가 공평하게, 일부분이라도 변제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적 절차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심플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옵션에 ‘회생’이라는 절차가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변수와 이해 충돌이 생기기 시작한다.
기업회생절차(企業回生節次)란, 글자 그대로 죽어가는 회사를 도로 살려내는 것.
법원이 강제적으로 채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채무를 탕감해 주고, 변제를 유예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구제 방법을 통해 죽을 회사를 살려놓는 절차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회사를 살리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다들 관리인 리포트 봤어?”
“네.”
“어떤 거 같아?”
누구는 법인을 그냥 죽였으면 한다.
또 누구는 법인을 살렸으면 한다.
죽였으면 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어떤 채권자는 우선권이 있어서 남은 자산을 한꺼번에 처분하면 곧바로 변제받을 수 있기에 복잡하게 살려서 조금씩 변제받는 계획보다는 파산을 지지한다.
다른 채권자는 우선권이 없어 현 상태로 파산시키는 것보다는 조금 더 살려뒀다가 파산했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살려야 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부자 부친이 죽으면 그 밑에 자식들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청을 높이듯이, 기업이 크면 클수록 파산·회생절차 역시 여러 이해관계가 섞이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 모든 시작점이 바로 관리인의 리포트이다.
회사가 회생할 수 있는지 아니면 파산으로 가야 하는지, 그 의견이 담겨있는 리포트.
법원은 관리인이 리포트에 개진한 의견을 보고 결정할 수밖에 없다.
현진상선 회생절차에서 선임된 관리인은 회사의 재무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파산해야 한다는 의견을 리포트에 적었다.
“겁주는 거 같지 않아?”
“그런 거 같기도 한데···.”
“회생절차 신청 석달 전에도 선박을 매입했는데, 청산가치가 더 높다는 거는 선뜻 이해가 안 가는데.”
청산가치란, 현시점에서 기업의 영업을 중단하고 자산을 처분했을 시 기업의 가치를 화폐적 수치로 환산해 놓은 것을 말한다.
반대말로는 존속가치가 있다. 존속가치란, 기업이 지속적으로 영업한다고 했을 시 향후 몇 년 뒤 기업의 화폐적 가치이다.
두 개를 비교해 무엇이 높냐에 따라 회생절차로 계속 갈 것인지, 아니면 회생절차를 폐지하고 파산절차로 갈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도 회사채를 발행해서 조달한 돈으로 매입한 거라서 논란이 있습니다.”
“나도 아는데, 그렇게 생각 없이 경영했을까?”
“이대로 계속 달리다가는 꼬꾸라질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하고 비슷한 거 아닐까요? 멈추려고 하는 순간 고꾸라질 거니까.”
“그래도 그 상태에서 액셀을 밟지는 않잖아. 아니, 뭐, 청산가치가 진짜 높은 거면 높은 건데, 현진 그룹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는 아닌가 해서 말이야.”
현진상선은 ‘현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현진 그룹과는 별개의 법인이다. 지분이 있기는 하나, 경영권을 가지고 있을 만큼은 아니다.
한때는 현진 그룹 내에 간판 같았던 현진상선은 현진가의 큰형이 죽고 형수가 그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현진가(家)와 멀어졌다.
현진가(家)에서 현진상선을 되찾아 오고 싶어 한다는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업계에 떠도는 말이었다.
백인찬은 그게 마음에 걸린다.
“아무것도 못 먹는 건가 해서 덥석 물었다가, 아닌 거면 곤란하단 말이지.”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57화
1,140억 원의 무게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한 투자은행이 뉴욕 법원에 파산신청을 한다.
한때는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이었던 거대한 금융회사로 해당 은행의 파산신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파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환율 기준, 무려 700조 원 상당의 파산은 세계 경제의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비단 월스트리트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주식시장들은 곤두박질쳤고, 환율은 미친 날뛰었고, 기름 등 원자잿값은 폭등했다.
해당 은행의 이름은 리먼 브러더스였고, 사건은, 그 당시를 살았던 성인들은 뉴스에서 한 번쯤 들어봤었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혹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라 불렸던 일이다.
미국의 부동산 폭락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세계 최대의 경제폭락이었으니, 대한민국 역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다만, 돌이켜봤을 때,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 인수를 최종시점까지 고려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식은땀이 흐르게 한다.
그랬어도 대한민국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직간접인 피해를 본 회사만 수백, 수천.
그 물결 효과로 직장과 가정을 잃은 사람들은 수백, 수천만.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직원 수 수천 명이 넘는 큰 회사들이 무너졌다.
그중에는 전 세계에서 선복 규모로 30위 안에 드는 국내 해운회사들도 있었다.
그런 암흑기를 겪어본 김앤강 해상팀은 국제 도산에 경험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예측하고 알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많기에 이 과정이 얼마나 더 터무니없는지 잘 안다.
회생 사건은 그런 것이다.
죽어야 할 것을 살리는 일.
말이 되지 않는다.
“SC 케인이 제안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은행권이 가지고 있는 우선순위 담보 채권들을 75%로 삭감하고 나머지 25%에 대한 이자율은 연 2.2%, 지급 유예기간 2년 후 5년 상환, 그리고 구상채권, 손해배상채권 등 일반 순위 채권들은 원금 95% 삭감, 이자 면제, 지급유예 2년 후 10년간 상환을 조건으로, 미화 2억 2천만 달러를 회생 계획 승인 이후 2년간, 여섯 차례의 인스톨먼트로 지급하겠다는 겁니다.”
관리인과 현진 측의 설명으로 들으러 온 자리.
채권단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한 백인찬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다짜고짜 원금 95%를 삭감하라니···
도둑놈들이 따로 없다.
하지만, 원래 회생이 이렇다.
리먼 사태 때 회생한 선박회사 중 하나는 98% 삭감이었다. 남은 2%도 10년 뒤에 갚는 조건이었다.
터무니없지만,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백인찬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네, 백 변호사님.”
“그러면 발행된 주식들은 어떻게 할 건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해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