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58)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58화(58/190)
【058화 – 유레카!】
아공간 세계,
호수 옆.
너무 안에만 있었더니 답답했다.
노트북을 들고 호숫가로 나왔다.
커다란 파라솔 아래서,
등이 긴 캠핑 의자에 앉아 작은 낚시용 접이식 의자에 발을 올렸더니 해변에 온 느낌마저 든다.
한동안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던 나는 다시 노트북을 켰다.
그나마 다행이다.
극비서류라고 해서 옛날처럼 서류 뭉치로 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자서류로 건네줬다.
하지만, 다행인 건 딱 그거 하나였다.
이 안에서 지금 몇 주째 현진상선의 회계자료들을 보고 있는데, 이 많은 숫자들이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냥 무작정 보다 보면 이해할 수 있겠지’ 했는데···
회계자료들이랑 책이랑은 완전히 달랐다.
무언가를 설명해 주는 책은 친절하지만, 회계자료들은 그렇지 않았다.
혹시라도 옆으로 깔아놓고 문제지점이나 패턴 같은 게 보일까 해서 몇몇 서류는 전체를 프린트해 벽에 붙여놓고도 봤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설명서가 필요했다.
회계 관련 서적들을 구입해서 들어왔다.
온라인 강의들도 다운받아 봤다.
젠장,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3년간 로스쿨을 다니며 배운 기초지식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의 법률 실무를 공부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가 연 매출 7조짜리 기업의 10년 치 원 회계장부들을 검토한 뒤, 기업에 향후 2년간 미화 2억 2천만 달러를 6회에 걸쳐 지급했을 경우, 과연 어떤 재정 상태가 되었을지를 예측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레벨의 일이었다.
특허분쟁 사건들을 했을 때처럼 가이드가 필요했다.
이건 왜 이래서 같고, 저건 왜 저래서 다르고.
“Tangential Flow Filtration과 Cross Flow Filtration은 사실상 동일한 작동 공정이고, 차이가 있다면 Diafiltration 버퍼교환과 Concentration 농축이 나뉘는 것일 뿐이며···” 등등등.
전문가들이 변호사들에게 사건 관련 기술 등을 설명해 주는 가이드.
‘극비 자료이니 들고 가서 회계팀에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런 가이드를 어디서 찾냐? 후우—’
한숨.
다시 답답해진 나는 호수를 바라봤다.
여전히 고요하다.
한쪽으로 설치된 낚싯대들.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아봤다.
‘정말 물고기가 저 안에 살기는 사는 거야?’
실내 낚시터에서는 분명 잘 잡혔는데.
너무 잡히지 않아, 아예 고정해 놨다.
낚싯대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상관없다. 비싼 거 아니다.
차라리 잃어버렸으면 좋겠다. 그건 단단히 고정한 낚싯대를 끌고 들어갈 만한 물고기가 저 안에 산다는 방증이니까.
제발 한 마리만 잡아봤으면···
“야옹-”
“놀리냐?”
“야옹-”
“너도 그때 그 피라미 한 마리가 전부잖아.”
“야옹-”
“솔직히 말해 봐, 너 그거 호수에서 잡아 온 게 아니지? 어디 다른 데서 난 거지?”
숫자를 너무 많이 봤다.
제정신이 아니다.
허벅지 위에 노트북은 점점 더 뜨거워지는데, 보기는 싫다. 치울 수도 없고.
머릿속이 모르는 것들로 복잡하다.
나비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5분을 보낸 나는 다시 호수를 봤다.
그 순간!
“아!”
나의 뇌 공간 안 어딘 가에 숨어있던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데이비드 창!”
초등학교 시절, 위대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던 중, 왕이 내준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는 “유레카!”라고 외치며 나체로 뛰쳐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믿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옷을 입지 않은 사실을 망각한단 말이야.
애들용으로 각색된 이야기라고 여겼다.
쿵! 쿵! 쿵!
“그래, 마침 잘 내려왔다. 밥···어머! 얘!”
“엄마, 나 지금 잠깐 회···.”
“얘 좀 봐! 아무리 집이라도 그렇지, 너는 왜 빤스만 입고 돌아다니니! 구두는 또 왜 신었고?”
큰일 날 뻔했다.
감옥 갈 뻔했다.
나는 이제 믿는다.
아르키메데스가 그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발가벗고 뛰어갔다는 사실을.
“이 모래는 또 뭐고? 얘, 너 요새 위에서 뭐하는 거니?”
일요일이었다.
-*-
로스쿨을 나와 로펌에 갓 들어온 신임 변호사들은 번역이나 검토 같은 일을 싫어한다.
-우리가 이런 일이나 하려고 3년 동안 그 비싼 학비를 주고 로스쿨을 다닌 거 아니잖아! 대학교 4년에 3년이라고!
사실 이러는 건 신임 변호사들뿐만 아니다.
대학을 나와 취직한 사회 초년생들도 비슷한 마음이다.
-내가 이런 하찮은 일이나 하려고 대학을 나온 줄 아십니까.
웃기는 비교이기는 하지만, 이미 무공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주인공이 절대 고수에게 한 수 배우러 가면 꼭 나오는 장면이 있다.
절대 고수는 물 긷는 것부터 시작해, 정권 찌르기, 발차기, 오래 버티기 등 기초부터 다시 가르친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도제식 교육 방법.
하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진리는 분명히 있다.
현실에서는 절대 고수가 아닌 악덕 고용주나 선배가 악용하려고 해서 그렇지, 그 안에 있는 진리를 깨달아야지만 절대 고수로 거듭날 수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정 대리님!”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아, 안녕하세요. 굿모닝입니다.”
“네, 변호사님.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네, 혹시 기업법무팀 기록 좀 찾아주실 수 있으세요.”
“기업법무팀이요?”
“네.”
월요일 아침, 범상은 출근하자마자 기업법무팀 자료를 찾았다.
“어떤 건지 알려주시면 찾아다 드릴게요.”
“경영권분쟁팀에서 했던 사건인데요.”
“양호락 변호사님 파트 말씀이신가요?”
“네. 2009년 사건이고 사건 번호가 B177-1204였던 거 같아요. 홍콩 바클레이 은행이 의뢰인이었던가 한 사건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찾아보고 가져다드릴게요.”
기업법무팀 경영권분쟁 파트 주니어 파트너 이성훈 변호사가 시켰던 ‘하찮은’ 업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하찮은’ 업무 중에 범상이 지금 필요한 가이드가 있었다.
“변호사님, 기록이 많은데, 방으로 가져다드릴까요?”
“네! 그래 주세요. 아, 그리고 전자 파일로 된 것도 있죠?”
“있을 텐데, 한번 찾아볼게요. 그쪽 비서분에게 확인해야 하는 거라서.”
“있으면 그것도 하나 USB에 저장해서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DIP 파이낸싱만 전문으로 하는 SC 케인의 대표, 데이비드 창.
그는 이전에 홍콩 바클레이 은행, 파산 대출 전문 파트에서 일했었다.
그가 예전에 분석한 회계자료들과 작성한 보고서들이 김앤강 기업법무팀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여기 놓고 갈게요.”
“네, 그래 주세요. 정 대리님, 고맙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겼는데, 기록을 들춰보니 이때 노태규 변호사도 사건에 참여했었다.
‘노 변호사님도 했었네. 하긴 파트가 달랐어도 같은 기업법무팀이었으니까···아, 여기 있다! 데이비드 창!’
딱 찾던 것이다.
같은 사람이 다른 비슷한 사건에서 낸 분석과 보고서들.
숫자들은 전혀 의미 없겠지만, 가이드로써는 더할 나위 없이 아주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된다.
이제 시간만 있으면 된다.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59화
2년 차 아닌 2년 차 어쏘의 협상
일주일 뒤 목요일,
법무법인 광종 회의실.
“하이, 앨런. 어떻게 지냈어?”
“하이, 데이비드. 굿. 너는?”
“낫 쏘 배드. 헬로우, 제이.”
“헬로우, 미스터 챙.”
김앤강 해상팀과의 미팅이 있기 한 시간 전, DIP 파이낸싱 전문 투자 회사 의 대표 데이비드 창과 그의 수석 분석가가 도착했다.
노태규(영어 이름: 앨런)는 그의 밑에서 오래 일한 주니어 파트너와 함께 그들을 맞이했다.
“그래서, 오늘 미팅은 어떻게 예측해?”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아직까지 추가 자료를 달라고 하지 않은 걸 봐서는 그냥 항복 선언할 것 같아.”
“굿, 굿.”
“물론 황당하게 나올 수도 있는 양반이지만. 그래서 사전 준비가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일찍 오라고 했어.”
“그건 걱정하지 마.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우리가 대비를 해왔으니까.”
노태규의 설명에 데이비드는 자신의 수석 분석가와 시선을 주고받으며 자신만만 표정을 보였다.
데이비드 윙룬 창.
홍콩 바클레이 은행의 투자 파트에서 20년간 재직한 그는 5년 전 퇴사 후 DIP 파이낸싱 전문 투자 회사를 차렸다.
DIP 파이낸싱이란, Debtor-In-Possession(법정 파산 중인 채무자)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투자 기법이다.
파산 중인 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투자라니, 일반인이 듣기에는 뭐 그런 게 있나 싶다.
하지만, 경제가 안 좋을수록 이상한(?) 비즈니스가 성행하기 마련.
신용이 없는 자라고 할지라도 급전이 필요하면 무엇이든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체가 있듯 기업 세계에도 그런 존재들은 있다.
이렇게 얘기하니, 악덕 사채업자들같이 들리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다.
그들 역시 리스크를 안고 그 안에서 돈을 벌려는 것뿐.
그래서 그들이 주로 노리는 회사들은 정말 망할 것 같은 회사가 아니라, 자금을 수혈해 주면 회생할 수 있는 회사들이다.
회생절차에 SC 케인 같은 DIP 투자 전문 회사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이 있다는 걸 의미하기는 했다.
다만, 그렇다고 진짜 산 건은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회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높은 이자를 벌려는 것.
그들이 채무자 회사에 DIP 파이낸싱을 제공하고 받는 이자는 보통 연 15%~30%대. 위험도가 높은 경우, 연 50% 이상을 요구할 때도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위험한 비즈니스다.
“너만 믿을게, 데이비드.”
“노 프라블럼, 앨런.”
베테랑 데이비드 창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에게는 익숙한 자리였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상대였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