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59)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59화(59/190)
【059화 – 2년 차 아닌 2년 차 어쏘의 협상】
띵-
법무법인 광종의 빌딩.
신호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음에도 백인찬은 그 자리에 서 있다.
이제 곧 시작될 회의 생각에 문이 열린 줄도 인지하지 못했다.
“변호사님, 가시죠.”
“응? 아, 그래, 가자고.”
오늘은 윤상호와 한범상 둘 다 데리고 왔다.
윤상호가 귀띔하여 준 뒤에야, 백인찬은 문이 열린 것을 보곤 발을 내디뎠다.
긴장했다. 이미 내부 회의를 충분히 하고 오기는 했지만, 그리고 한범상에 대한 믿음이 있기는 했지만,
2년 차 어쏘 변호사의 분석에 의지하고 편히 있기에는 시니어 파트너 어깨 위에 1,140억 원의 무게는 묵직했다.
“한 변호사.”
“네, 변호사님.”
“저쪽에서 말하는 게 아닌 거 같으면, 그때, 그때 치고 나와. 내 눈치 보지 말고.”
“예.”
“오늘 협상이 결렬돼도 상관없으니까, 쫄지 말고. 클럽들하고는 내가 미리 얘기 다 해놨으니까.”
“네, 변호사님.”
“자, 그럼 들어갈까?”
범상에게 당부하는 말이었지만,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 하는 것 같다.
좀처럼 확신이 서질 않는 백인찬은 광종 기업법무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변호사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됐다.
···
DIP 파이낸싱을 제안한 SC 케인,
현진상선 회생절차의 관리인을 대리하는 광종,
채권자들을 대리하는 김앤강.
단순하게 보면 셋 다 원하는 것은 같다.
현진상선의 기사회생.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각자 목표의 전제 조건일 뿐, 실상은 다 다른 것을 원한다.
SC 케인은 최대한 높은 이자를 최대한 단기간에 원금과 함께 회수하기를 원한다. 그 이후에는 현진상선이 망해도 상관없다.
광종은 현진가(家)에 현진상선의 운영권이 넘어가도록 세팅해야 한다. 기존에 발행된 주식소각과 신주 발행이 최우선 관심사다.
김앤강은 자신들이 대리하는 채권자 의뢰인들의 권리 보호가 목표. 위 두 파티의 목표 달성을 위해 채권자들의 권리가 유린당해서는 안 된다.
어찌 됐든 전제되어야 할 조건은 현진상선을 파산시키지 않고 회생시켜야 하는 것.
재미있는 상황이다.
각자의 목표를 위해선 셋 다 죽어가는 회사를 살려야 하는 건 맞는데, 그 과정에서 누가 얼마만큼 희생할 것이냐가 오늘 협상의 관건이었다.
“그렇게 나오면 저희는 더 이상 협상할 이유가 없어요. 현진상선에 DIP 파이낸싱을 제공하지 않을 겁니다!”
데이비드 창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본회의 시작 전 사전 미팅에서 거만하게 웃으며 고개를 젖혔던 그의 모습은 회의 시작하고 30분 만에 사라졌다.
“그건 SC 케인 측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저희 채권자들도 SC 케인의 비합리적인 제안을 받아들여 가면서까지 회사를 회생시킬 마음이 없습니다.”
범상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아니, 이 어린 친구가 왜 자꾸 끼어드는 거지?’
2년 차 어쏘, 그것도 외국 변호사의 회의 주도에 당황한 것은 데이비드 창뿐만이 아니었다.
노태규 역시 당황스러웠다. ‘이게 뭡니까, 백 변호사님’이라는 시선으로 백인찬을 계속 바라봤지만, 백인찬은 ‘뭐? 우리 어쏘가 나 대신 말하고 있잖아.’라는 표정이 돌아올 뿐이었다.
와서 당당하게(?) 백기를 들 거로 생각했는데.
대안이 있다면서 역제안을 해왔다.
이러면, 곤란했다.
노태규는 이미 사전 협의가 된 데이비드 창의 편을 들었다.
“백 변호사님, SC 케인 말고는 DIP 파이낸싱을 제공해 주겠다고 관심을 보인 다른 투자 회사는 없습니다. 여기서 SC 케인이 발을 빼면, 그때는 정말 파산밖에 길이 없습니다.”
“아니요. 그건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대답하고 나오는 2년 차 어쏘.
노태규는 ‘자네는 좀 가만히 있지’라는 눈빛으로 범상을 노려봤다.
하지만, 2년 차 어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SC 케인이 이렇게 빨리 관심을 보여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아직 회생절차 초기 단계이고 좀 더 상세한 재무 보고가 들어갈 2차 관리인 리포트가 나가면, 다른 투자 회사들에서 관심을 보일 만한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
이젠 아예 드러내놓고 기분이 상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데이비드 창이 끼어들었다.
“포트리스 캐피탈이나 오크트리 펀드 같은 회사들에 해운업 전문가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홍콩 바클레이 은행도 여전히 DIP 파이낸스 팀을 운영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고요.”
“하아, 정말 모르는 소리하고 있네. 그 사람들이 현진상선에 관심이 보일 것 같습니까?”
“모를 일이죠.”
“와우- 언블리버블!”
두 손을 든 데이비드 창은 영미권 비즈니스맨 특유의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 자리의 가장 어린 ‘2년 차 어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태규가 말을 받았다.
“백 변호사님, 가능성만 가지고 이런 기회를 놓치면 현진상선은 정말 파산절차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채권자들이 진정 원하는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한 푼이라도 더 회수하는 것이 목표이지 않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95% 삭감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이러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92%까지 한번 절충해 보도록 노력하는 건 어떨까요? 미스터 챙, 어떻습니까? 돌아가서 다시 한번 숫자를 분석해 보고 다시 회의를 갖는 건.”
“아니요. 그건 우리가 고민해서 낸 숫자입니다. 우린 돈을 안 내면 그만이에요.”
“미스터 챙. 데이비드.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만 고려해 봐주시는 것 어떻겠습니까?”
“모르겠어요, 앨런. 우리가 분석했을 때는 95%도 어렵게 맞춘 퍼센티지라서···.”
“그래도 채권자들 입장을 고려해서 92% 정도까지는 한번 맞춰볼 수 있지 않을까요?”
“흠······뭐, 유예기간을 조금 늘리고, 플랜을 조금 바꾼다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아, 정말 쉽지 않을 텐데···”
노태규와 데이비드의 쇼를 감상하고 있던 백인찬은,
“한 변호사.”
한범상을 불렀다.
백인찬의 표정이 아까 엘리베이터에서와는 달라졌다.
아까는 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확신이 생겼다.
솔직히 내부 회의 때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설득력 있게 들리기는 했어도 잘 아는 분야도 아니었고, 회계팀에 검증을 받아볼 수도 없었기에 무작정 믿을 순 없었다.
하다못해 수학과라도 나왔으면 모르겠다. 영어학과 나온 2년 차 어쏘 변호사가 분석해 온 회계자료와 전망을 덥석 신뢰하는 게 더 웃긴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설득력 있어도 말이다.
30분 전 회의가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불안했다.
그런데, 한범상이 의견을 낼 때마다 보이는 상대방의 반응을 유심히 보고 있으니, 감이 왔다.
여전히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지 회계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간다. 하지만, 백인찬은 사건에 관한 촉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한범상의 분석과 전망이 맞는 거구나!’
파악 완료.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대가 진짜 거만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백인찬은 한범상에게 힘을 실어줬다.
“한 변호사가 내부 회의용으로 작성한 거 있잖아. 그거 그냥 주지, 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네, 알겠습니다.”
사실은 원래, 회의 끝 무렵 주기로 하고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백인찬과 한범상의 쇼가 시작된다.
한범상 주연,
백인찬 조연.
윤상호 엑스트라.
“한 변호사, 여기.”
“고맙습니다, 윤 변호사님.”
아공간에서 역제안을 바탕으로 작성해 본 회생계획안.
범상은 윤상호가 건넨 서류를 노태규와 데이비드 창 쪽으로 내밀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첫 100페이지는 보내주신 10년간의 회계자료를 검토한 뒤에 저희 쪽에서 분석한 현진상선의 재무 상태입니다. 그건 회의 끝나고 돌아가셔서 검토해 보시면 될 것 같고요. 105페이지부터 시작하는 두 번째 파트로 넘기시면, 2억 2천만 달러의 자금이 6회에 걸쳐 투입될 경우, 현진상선의 회생 가능성을 발틱 익스체인지가 발표한 내년 BDI 예상과 SCFI, CCFI를 모두 고려해서 메릴린치가 내놓은 향후 10년 경제 전망 지표를 대입해서 전망해 봤을 때······.”
한범상의 긴 독백이 이어졌다.
노태규도, 데이비드 창도 그 독백을 끊지 못했다.
노태규는 어느 순간부터 한범상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데이비드 창은 SC 케인 내부용으로 작성한 (광종을 포함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실제 분석·전망과 너무나도 비슷했기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저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마지노선은, 은행권이 가지고 있는 우선순위 담보 채권들을 70%로 삭감하고 나머지 30%에 대한 이자율은 연 2.5%, 지급 유예기간 2년 후 5년 상환, 그리고 구상채권, 손해배상채권 등 일반 순위 채권들은 원금 80% 삭감, 이자는 면제하되, 지급유예 없이 향후 10년간 상환입니다.”
-*-
회의가 끝났다.
김앤강 해상팀 변호사들을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노태규는 데이비드 창이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돌아왔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범상의 분석·전망 리포트를 읽고 있는 데이비드 창에게 노태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숙제가 생겼네. 돌아가서 검토하고 내일이나 모레 다시 회의···.”
“아니, 검토할 필요도 없어.”
“?”
“여기 나와 있는 거랑 우리 거랑 다른 게 없으니까.”
“진심이야?”
“마치 바클레이 시절 내가 작성한 거 같네. 참나-”
감탄한 표정으로 말하는 데이비드 창.
노태규는 짜증이 난다.
하지만, 노태규의 신경을 건드린 건 그의 다음 말이었다.
“이러면, 담보 지분 관련해서 우리가 얘기했던 것도 다시 협상해야 할 것 같은데, 앨런.”
노태규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데이비드 창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의 시선을 마주 봤다.
원래 협상이란 이런 것.
닮은 구석은 하나 없었지만, 그 모습에서 노태규는 한범상의 얼굴이 떠올랐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가던 대담한 2년 차 어쏘의 얼굴.
‘도대체 그 녀석은 어디서 나타난 놈이야.’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60화
결실 그리고
서울 회의를 마친 의 대표 데이비드 창은 홍콩에 돌아왔다.
“미팅은 어땠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별로였어.”라고 대답할 순 없다.
공동 파트너 크리스 시몬스의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고민하던 데이비드 창은,
“흥미로웠어.”
라고 대답했다.
“흥미로웠다고? 무슨 대답이 그래? 그래서, 협상이 잘됐다는 거야? 틀어졌다는 거야?”
“계획대로는 안 됐지만, 결과는 잘됐어.”
사실이었다.
결과는 좋다.
홍콩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데이비드 창은 한범상이 작성한 보고서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수석 분석가에게도 한 부 건네 숫자나 지표 등을 이중 점검하게 했다.
분석은 정확했다. 오류 하나 없이.
처음 보고서를 받고 훑어봤을 때도 느꼈는데, 자세히 보고 나니 느낌은 확신으로 변한다.
이건 그가 바클레이 은행 투자 파트에 있었을 때 사용했던 분석 기법과 같은 양식이다.
‘어떻게 한 거지?’
물론 투자 분석가들이 쓰는 방법이 다들 비슷하기는 하다.
그래도 자기들만의 시그니처 공식이 있다. 예를 들면, 해운의 경우,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를 해운시장 전망에 고려할 때는 이전 5년씩 계산식에 넣지 않고 2년만 넣는다는지 하는 그런 것들이다.
같은 지표라도 기간을 어떻게 하느냐, 퍼센티지를 어떻게 책정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니까.
신기했다.
너무나 자기가 한 것 같아서.
그래서 그렇게 대답했다.
흥미롭다고.
하지만, 비단 자기가 한 것 같아서 결과까지 좋다고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좋았다.
아주 똑똑한 전략이었다.
회의할 때는 마치 SC 케인의 분석이 틀렸고 제안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처럼 반박했다.
SC 케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DIP 투자 회사가 들어올 것처럼 배짱을 부렸다.
하지만, 막상 카운터 오퍼(counter offer, 역제안)가 담긴 김앤강 측 분석·전망 보고서를 뜯어보면, SC 케인은 잃을 게 없었다.
SC 케인이 애초에 요구하고 있는 연이율 23.8%와 5년 후 엑시트 플랜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회의에선 세게 나왔지만, 돈을 들고 있는 SC 케인이 ‘갑’이라는 걸 명확하게 알고 있는 역제안이었다.
「너희들의 요구 사항은 하나도 안 건드렸어. 그러니까 이제 우리 편에 서서 관리인을 설득하는 걸 도와줘.」
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었다.
회생절차에서 보통 칼자루는 관리인이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법무법인 광종과 협업했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회생절차는 공적인 절차. 최종 결정권은 법원에 있다.
관리인이 이렇게 찌르라고 칼자루의 방향을 정해줄 수는 있어도, 결국 찌를 것이냐 말 것이냐는 법원이 결정한다.
그런데, 채권자단에 이렇게 똑똑한 전략가가 있다면, 칼자루를 내줘야 할 판국이다.
SC 케인의 입장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데이비드 창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김앤강의 역제안을 받아들이기로.
“잘 됐나 보네, 표정이 좋은 걸 보니.”
“응.”
어제의 상대가 오늘의 편이 된다.
“아, 이따 저녁때 개리를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 한국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다고 하던데. 한국에 대해서는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아니까.”
“개리? 혹시, 골드만삭스의 개리 터커?”
“응. 얼마 전에 골드만삭스는 나왔고. 지금 싱가포르 투자 회사에 들어갔어.”
“아, 그래? 그러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