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6)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6화(6/190)
【006화 – 아공간 100】
토요일 오전,
기중이와 함께 국제전자 센터를 찾았다.
“여기 진짜 오랜만이다. 여긴 똑같네. 근데 여긴 왜 오자고 했냐?”
“왜 오자고 했겠냐?”
“설마 너 플스···?”
“그렇지.”
“야- 역시 싱글이 좋구나! 취직했다고 게임기도 막 살 수 있고.”
인생은 정말 예측할 수 없다.
다섯 달 전만 해도 통장에 잔고가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원하는 게임기 정도 살 수 있을 만큼 넉넉해졌다.
“누가 들으면 집에 게임기가 없는 유부남인 줄 알겠네.”
“없어, 플스 5는.”
“야, 플스 4에 닌텐도 스위치에 게이밍 컴퓨터도 있는 새끼가···.”
“그래도 플스 5가 가지고 시푸다궁!”
“‘시푸다궁’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리고 나 플스 5 사러 온 거 아니야.”
“그럼?”
“플스 1.”
“플스 1? 플스 1은 왜?”
“파이널 판타지 7 원작을 해보려고.”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플레이스테이션 1부터 5까지 다 구매하고, 구할 수 있으면 슈퍼패미콤도 구하고 싶지만, 그 정도로 넉넉하지는 않다.
다른 것들은 차차 하나씩 꾸려나가기로 마음먹고, 장고 끝에 <파이널 판타지 VII>을 선택했다.
역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중에 최고라고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했지만, 어렸을 적 가장 갖고 싶었던 게임기가 바로 플레이스테이션 1이었다.
행운의 숫자 ‘7’이기도 했고.
“레전드지.”
“너 해봤다고 했던가?”
“나 울었잖아, 게임 하다가.”
“그 정도야?”
“얘기 안 했던가? 세피로스가 사실 자기도 제노바 프로젝트로 탄생한···.”
“그만. 거기까지. 스포하지 마. 내가 직접 플레이할 거니까.”
“그래. 너도 직접 느껴 봐. 강추한다.”
그리고 운도 좋았다.
마침 국전의 한 가게에서 중고 플레이스테이션 One과 파이널 판타지 VII 미개봉 제품을 묶음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구하기 힘든 것들이었기에 기중이를 데리고 후다닥 찾아왔다.
“얼마예요?”
“55만 원.”
“에이- 35만 원.”
“어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가요, 가! 재수 없게.”
“에이- 솔직히 플스 원 기계는 끼워파는 거잖아요. 어차피 파판7 CD는 플스 2에서도 구동되는 건데.”
“가시라고요.”
“그럼, 파판 7 CD만 팔아요, 15만 원에.”
“됐다고요. 안 판다고요.”
“아우- 알았어, 알았어. 20만 원.”
“저기요. 이거 LCD 화면 달려있고 일본판 상태 진짜 좋은 거예요. 구하기 힘들다고요.”
“신상도 아니고 구매 대행으로 스루가야에서 주문하면 5천 엔이면 떡을 치는 거 다 아는데, 무슨··· 아우, 알았어요. 그럼, 다 합쳐서 현금 40만 원. 오케이?”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녀석이 흥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다.
녀석은 중학교 때도 그랬다.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못 하는 숫기 없는 녀석이 국전이나 용산에 게임 CD 구매하러 가면 시장 아줌마들처럼 떠들어댔다.
그래서 데려온 것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55만 원에 올라온 제품을 43만 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너도 대단하다. 12만 원이나 깎고.”
“더 깎을 수 있었는데. 너는 거기서 5만 원짜리를 꺼내 가지고서는. 너는 기본이 안 되어 있어. 이런 데 올 때는 만 원짜리, 천 원짜리 다 따로 챙겨 와야지.”
“알았다. 다음 올 때는 챙겨 오마. 아무튼 고맙다. 덕분에 12만 원 굳었네. 밥은 내가 살게.”
“당연하지. 뭐 먹을까나···.”
“점심은 대충 먹고 저녁에 크게 쏠게.”
“뭐! 대충 먹자···저녁? 어디 또 갈 데 있어?”
“응.”
“어디?”
“캠핑 용구점.”
녀석과 함께 온 이유는 대신 흥정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살 게 좀 많아서였다.
“너 그래서 나더러 밴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구나.”
“오마에 눈치가 빠르군.”
“사스가 나를 짐꾼으로 쓰려고···.”
“한우 사줄게.”
“변호사님, 어디로 모실까요?”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어렸을 때는 아주 왜소했다. 말수도 없었고.
아버지는 없었고 어머니는 바빴고.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그저 운이 없었는지, 종종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괴롭힘을 당해본 사람들은 안다.
자꾸 위축된다. 그러면 또 그런 애들만 찾아다니는 아이들 눈에 띄게 된다.
표적이 되었다.
기중이는 그런 우울한 내 학창 시절의 유일한 친구였다.
고등학교 자퇴 후 대학에 들어가서는 사람 사귀는 법도 배우고 많이 나아졌지만, 기중이만큼 친한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다.
만약 아버지의 아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날이 온다면, 무조건 그 녀석이 1번일 것이다.
“야, 어디 무인도로 캠핑 가냐? 간이화장실은 왜 사냐? 요새 캠프장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
“다 쓸 데가 있다.”
“그나저나 갑자기 웬 캠핑? 그 사이에 여친 생겼냐?”
“여친 생겼으면 내가 플스 1을 사겠니?”
“아, 그렇지. 그럼, 왜?”
“옥탑에도 놓고 쓰려고.”
“옥탑? 아, 맞다. 너 옥탑으로 옮겼다고 했지. 그 앞에 놓으려고? 그거 괜찮네. 나중에 바비큐도 해 먹고. 오- 그렇구나. 근데, 그렇다고 해도 간이화장실은 오버 아니냐?”
“너한테 쓰라고 할 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자, 대충 다 산 거 같다. 가자.”
아공간에서는 통신 신호만 잡히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전기선을 가지고 들어가 봤다. 중간에 전기선이 끊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전기가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수도꼭지에 연결한 호스를 들고 들어가 봤다.
물 역시 흐르지 않았다.
아공간에서는 내가 사는 세상의 신호나 전기, 물을 끌어다가 사용할 수 없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시간이 멈추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내가 아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현실 세상의 시간은 멈추니까.
그렇다면 현실 세상의 통신 신호나 전기, 물 역시 흐르지 않는 것이겠지.
불편했지만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몇 시간을 아공간 안에 있다가 나와도 밖에 놓아둔 음식은 상하지 않았다. 상하기는커녕 여전히 따뜻했다.
햄버거, 치킨, 떡볶이 등 이것저것 음식을 사다가 쟁여놓고 배가 고프면 나와서 하나씩 들고 들어갔다.
냉장고가 따로 필요 없었다.
‘아공간 속에서의 일만 시간’은 그렇게 가능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은 아쉬웠지만, 필수 자원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
그러나, 전기와 물은 아공간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으려면 꼭 필요한 자원들이었다.
전기 수급이 좀 더 까다로울 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일 년 치 전기와 물을 사용해 보니 물이 좀 더 수급하기 까다로운 자원이었다.
전기는 태양광 패널로 넉넉하게 수급할 수 있었지만, 물은 그럴 수 없었다.
한번은 엄마가 그렇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너는 나이도 젊은 애가 밤에 왜 이렇게 화장실을 가니? 전립선에 문제 있는 거 아니니?”
밤에는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 아공간에 있다가 나오는 이유는 보통 화장실을 쓰기 위해서인데, 하필이면 그게 새벽 시간이었다.
나는 아공간 속에서 몇 시간마다 나와 화장실을 쓰는 건데, 엄마가 느끼기에는 내가 일 분에 한 번씩 화장실 물을 내리는 걸로 들렸던 것이었다.
그래서 옥탑에 화단을 만들까도 생각해 봤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지린내로 온 집이 진동하겠지.
일단 임시방편으로 이동식 간이화장실을 설비해 놓을 생각이었다.
‘큰 볼일’은 어쩔 수 없어도 ‘작은 일’은 모아서 처리하면 어느 정도 물을 아낄 수 있을 테니까.
쉽지는 않은 문제였다.
다행인 건 금전적이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앤강 연봉은 얼마나 되냐?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초봉도 어마어마하던데.”
“많이 주더라.”
“얼마나?”
“한 장.”
“한 장? 일억?”
“아니, 천만 원.”
“엥? 천만 원? 고작?”
“한 달에 인마.”
“아! 그렇지. 한 달에! 그럼, 월급이 천만 원?”
“아니, 실수령이 천만 원.”
“헉!”
대한민국 최고 로펌 김앤강은 보수도 최고였다.
전에 있던 법무법인 양아도 중소 로펌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들었는데,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연봉이 두 배 넘게 올랐다.
“야, 그래서 말인데, 네 말대로 금 좀 더 사두려고.”
“금?”
“대신 정가 받아라. 안 그러면 다른 데 가서 산다.”
“실수령이 천만 원인 변호사면 얘기가 달라지지. 정가 무조건 받아야지. 얼마나? 이번에도 다섯 돈?”
“아니, 열 돈.”
나가라는 거야? 아니면 엘리트라는 거야?
언젠가 취직한 로스쿨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야, 대한민국 로펌에서 우리 같이 인맥도 없고 학벌도 없는 생짜 외국 변호사가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는 딱 두 개야. 국제 중재 아니면 해상.”
그 선배 말의 취지는 그거였다.
외국 변호사(외국법 자문사)가 대한민국 로펌에 필요한 이유는 딱 하나인데, 그 이유는 한국 변호사들이 해외 클라이언트나 상대방과 소통하는 데에 보조 역할이 필요해서라는 것.
즉, 대한민국 로펌에서 외국 변호사는 허울만 변호사일 뿐 한국 변호사의 통신 보좌관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조언이었지만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특히 부푼 마음으로 국제법률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한테는 더욱이.
그 자리에 같이 있던 한 후배는 선배의 말이 언짢았던 모양이었다. 로펌이 바보도 아니고 그럴 거면 뭐 하러 비싼 외국 변호사를 고용하겠냐고 그냥 동시통역사나 번역사를 썼지 않았겠냐라며 따지듯 되물었다. 그러자, 선배는 웃으며,
“그 비용은 로펌이 내는 게 아니야. 클라이언트가 내는 거지.”
라고 짧게 대답하곤 더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었다.
법무법인 양아에 들어가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게 요구되는 일은 대부분 한국 변호사의 통역이나 법률 서류 번역뿐이었는데, 양아는 내가 쓴 시간을 클라이언트에 변호사가 쓴 시간으로 청구하면서 대우는 한국 변호사에 턱없이 못 미치게 해주었다. 연봉 체계 자체가 달랐다.
즉, 싸게 쓰면서 비싸게 청구하는 꼴이었다고나 할까.
뭐, 그렇다고 내 역할에 불만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었으니까.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이 아닌 워싱턴DC 변호사 자격을 딴 내가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으면 워싱턴DC로 이주해야 하는 것이 맞으니까.
“한 변호사.”
늘 ‘한범상 씨’라고 부르던 도대기 변호사님이 드디어 ‘변호사’라는 호칭을 붙여주셨다.
그러곤,
“다음 주부터는 해상팀 사무실로 출근해. 어디 있는지는 알지?”
번역이 아닌 지시를 처음으로 내려주셨다.
“찾아보겠습니다!”
전혀 모르는 분야.
그래도 기대됐다. 그때 그 선배가 말한 ‘대한민국 로펌에서 생짜 외국 변호사가 인정받을 수 있는 두 분야’ 중 하나였기에.
‘해상팀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