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60)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60화(60/190)
【060화 – 결실 그리고】
법무법인 광종,
노태규의 방.
조금 전 광종 회계 파트 팀장으로부터 김앤강 측 분석·전망 보고서에 대한 코멘트를 들었다.
“노 변호사님, 이거를 반박할 자료를 저희가 만들려면 적어도 석 달은 걸릴 것 같은데요. 반박할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요.”
노태규의 이마에는 지금 열두 시간째 주름이 잡혀있다.
“만들면 만들 수는 있겠는데, SC 케인 측에서 이미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저희 억지로 만들어 내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 거 아닌가요? 법원이 결정권을 갖는다고 해도 돈줄을 쥐고 있는 파티는 SC 케인이니까···.”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지?
노태규는 지난 2주를 하루하루 되돌려 봤다.
도무지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거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백인찬, 그 능구렁이가 신뢰를 깨고 김앤강 회계팀에 넘긴 건가?’
아니란다. 김앤강 회계팀의 아는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 봤다.
물론 다른 팀에 극비로 부탁한 거라서 그가 몰랐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만한 일을 이렇게 긴급으로 처리하려면 적어도 열댓 명이 붙어서 매일 같이 야근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사실 그 질문의 답보다는 대응책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하지만, 자꾸 생각이 그리로 간다.
‘혹시 설마 내 뒤에서 SC 케인을 컨택해서···!!!’
그렇게 오늘의 편이 내일의 상대가 된다.
똑똑-
그의 생각을 끊은 건 비서였다.
“무슨 일이야?”
“변호사님, 변호사님 찾는 전화가 왔는데요.”
“지금 바빠. 나중에 전화하라고 해.”
“현진 그룹의 오경진 전무님이신데, 나중에 다시 전화하라고 할까요?”
오경진 전무라는 비서의 말에 더 이상 찌그러질 데가 없을 것 같던 이마의 주름이 더 깊은 골을 만든다.
받고 싶지 않다.
아직 대응책을 세우지 못했다.
세울 수는 있을까?
“아니야, 지금 받을 테니까, 전화 돌려.”
노태규는 하던 생각을 미루고 전화를 받았다.
받을 수밖에 없다.
현진가 가신(家臣)의 전화였다.
-*-
아공간 세계,
호수.
솔직하게 쓴 시간은 오래된 친구와 같다.
배신하지 않는다.
도저히 짜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던 현진상선의 회계자료들을 무작정 머리에 욱여넣고 뇌가 프로세스해주기만을 기대했다.
그러기를 몇 주.
시간만 낭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가이드’가 생기니, 두서없이 욱여넣었던 자료들이 뇌 안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모르겠으면 일단 단어라도 외우라고.
지금은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니들이 영어를 포기하지만 않고 계속하면, 문법은 언젠가는 이해가 될 것이고 지금 외우는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배열을 찾아갈 것이라고.
정말 그렇게 됐다.
운이 좋기도 했다.
양호락 변호사님이 이끄는 기업법무팀 경영권분쟁 파트 기록 더미에서 찾아낸 ‘가이드’는 족집게 과외 같은 자료였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어려움을 겪던 국내 많은 선사가 자금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손을 벌렸는데, 그중 하나가 홍콩 바클레이 은행이었다.
돈을 빌려주기 전, 회수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타진하기 위해 회계와 시장동향 등 분석·전망은 필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데이비드 창이, 바클레이 은행 수석 분석가 시절, 해운업계에 있는 기업들의 재무제표들을 분석하고 관련 시장지표들을 검토한 것들이라, 이건 뭐 숫자만 바꿔낸 시험문제지 같았다.
“아- 좋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호수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다.
밖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인데, 이 안은 만연한 가을이다.
계절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멀리 보이는 산의 색이 알록달록하다.
‘시험을 잘 치고 왔을 때 기분이 이런 거구나.’
낚싯대 앞, 등받이가 긴 캠핑 의자에 앉아 달콤하게 탄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생각이다.
낚싯대는 장식일···
톡.
“?”
토독······ 쏙!
“어!!”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는데,
물 위의 찌가 ‘쏙’하고 들어가 버린다.
“나비야, 봤어? 나비야? 이 중요한 순간에 얜 또 어디 갔어?”
나는 얼른 고정을 풀고 낚싯대를 잡아 올렸다.
제법 묵직하다.
아닌가?
당기는 힘이 나쁘지 않다. 휘리릭 감겨오는 것 같다가도 힘차게 내뺀다.
손맛이 좋다.
쉬려고 했던 거고 뭐고, 나는 릴을 돌렸다.
그렇게 한 ‘5분쯤? 3분쯤이었나?’ 줄을 리드미컬하게 감아 돌리고 나니, 물 위로 물고기 한 마리가 올라왔다.
생각보다 크기는 작다.
‘한 20cm 정도 될까?’
손맛만 봤을 때는 그 두 배는 될 거로 추측했는데, 작은놈이 힘이 좋다.
비늘이 반짝반짝 햇볕을 반사한다.
예쁘다.
‘송어? 산천어?’
잘 모르겠다.
연어과처럼 생긴 거 같은데, 한눈에 봐서는 모르겠다.
처음 잡은 물고기.
솔직히 잡으면 먹을 수 있는 것인지부터 검사를 맡겨보려고 했는데.
막상 잡고 보니, 죽이기 싫다.
예전에 나비가 잡아 온 것은 너무 작아 검사를 맡겨볼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기는 한데···
아, 갈등이 생긴다.
첫 물고기. 의미가 있지 않은가.
어탁을 해볼···
“야옹-”
내가 첫 물고기를 보며 감상에 빠져있을 때, 사라졌던 나비가 돌아왔다.
“야, 너는 어디 갔었어. 이 중요한 순간에. 야, 봐봐. 이 아름다운 자태를. 너무 예쁘지 않······!!!”
펄떡펄떡 펄떡펄떡.
말문이 막혀버렸다.
녀석의 발 앞에는 족히 5자는 되어 보이는 물고기가 펄떡거리고 있었기에.
물고 있던 걸 떨어뜨린 모양이다.
비늘에 이빨 자국이 나 있다.
예쁘기도 내 거보다 더 예쁘다.
몸통 한가운데 은은하게 나 있는 무지개색 줄이 햇볕을 받자, 알록달록 영롱한 색을 낸다.
어탁은 개뿔.
졌다.
“야옹-”
녀석은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나를 거만한(?) 표정으로 슬쩍 보고는 왼쪽 앞발부터 물기를 털기 시작했다.
“야! 저기 가서 털어! 물 튀잖아!”
오른 앞발, 왼쪽 뒷발, 오른쪽 뒷발.
고양이 주제에 ‘사우스포(South Paw)’라 이거냐.
녀석은 천천히 물기를 꼼꼼하게 털어낸 뒤, 우아한 걸음으로 녀석의 자리에 가 앉았다.
‘못된 기지배, 이런 걸 잡을 수 있었으면 진작에 들어가서 잡아 오지.’
“안 해! 나 낚시 안 해!”
“···.”
“니가 해. 니가 하면 되겠네. 가서 몇 마리만 더 잡아 와. 얼른.”
“···.”
‘이 자식이··· 말하는 거 다 보고 있으면서 못 듣는 척은.’
어떨 때는 입술을 읽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내 마음을 잘 아는 녀석이다.
“얼른 가라니까. 네 사룟값이 얼만 줄 알아?”
녀석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우아한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 멋진 꼬리를 든 채 내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가 하며 몸을 비볐다.
“야옹-”
졌다.
완패다.
여우 같은 기지배.
‘아, 근데, 언제 저렇게 커졌지?’
고 몇 달 사이에 많이 컸다.
-*-
나비와 범상, 둘 다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것처럼, 그날 법무법인 광종에서 열렸던 협상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 뒤,
김앤강 해상팀 회의실.
[백인찬: 다들 잠깐만 회의실에 모이지. 잠깐이면 되니까 바로들 모이라고.]백인찬의 메시지를 받은 해상팀 변호사들은 회의실로 향했다.
2층 위 국제중재팀 사무실에 방이 있는 범상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들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인상을 찌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야, 죄송할 거 없어. 오케이, 그럼 한 변호사까지 왔으니까, 시작할까? 일단, 좋은 소식. 방금 광종의 노태규 변호사한테 연락이 왔어. 우리가 낸 카운터 오퍼를 받아들이기로.”
2주 안에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현진상선이 곧 망할 것처럼 종주먹을 대던 광종은 김앤강이 낸 리포트를 검토하는 데에만 한 달을 끌었다.
“수정 없이요?”
“응, 수정 없이.”
그래도, 수를 찾지 못했다.
결국은 고개를 숙였다.
그들 역시 원하는 걸 얻었다.
현진상선은 회생할 것이다.
하지만, 경영권을 얻으려면 현진가(家)는 꽤 큰 자금을 넣어야 할 것이다. 채권자들의 피로 무혈입성하려던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승자와 패자는 정해졌다.
한 달 만에 맺어진 결실.
“자자, 그래도 회생 계획 승인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우리 할 일들을 하자고. 분쟁이 있는 클레임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하지만, 결실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물고기’가 범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상팀 회의에 참석하느라 자리에 없는 사이, 누가 그의 방을 다녀갔다.
“여기가 한범상 변호사 방인가?”
“네.”
“자리에 없네? 한 변호사는 어디 갔나?”
“네, 해상팀 회의가 있어서 방금 내려가셨어요.”
“아, 그래?”
“돌아오시면 찾으셨다고 전해드릴까요?”
“아니야. 내가 메신저에 남길게.”
“네, 알겠습니다.”
[공유찬: 한범상 변호사, 나 파이낸스팀 공유찬 변호사인데, 이 메시지 보면 답 좀 줘.]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61화
한 발, 한 발 더 높은 곳으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찾아올 무렵, 관리인이 제출한 회생계획안이 채권단 투표를 통과했다.
법원은 가결된 계획안을 승인했고, 현진상선은 드디어 회생(回生)으로의 첫 발걸음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