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61)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61화(61/190)
【061화 – 한 발, 한 발 더 높은 곳으로】
슈웅-
골프채의 머리가 커다란 호를 그리고 내려와서는,
딱!
티(T) 위에 올려진 오돌토돌한 공을 세차게 때렸다.
작고 단단한 공이 하늘 위로 치솟는다.
“나이스샷!”
“공 좋은데. 양 프로, 살살 쳐.”
양호락은 방금 자신이 휘두른 스윙이 마음에 든다.
푸른 하늘로 죽 날아가는 공. 자신의 커리어도 그렇게 올라가면 좋겠다.
육십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오르고 싶은 곳이 있다.
“엄살떨지 말고, 빨리 쳐.”
“도대체 여름 동안 얼마나 치러 다닌 거야.”
양호락은 오랜만에 동기들과 필드에 나왔다.
골프가 오랜만인 건 아니다. 저번 주에도 클라이언트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김앤강 기업법무 경영권분쟁팀 시니어 파트너인 그에게 골프는 업무의 연장선과도 같다.
스윙- 딱!
그건 그의 연수원 동기들도 마찬가지.
법무법인 세양의 은행·파이낸스팀 파트너인 동기가 친 공 역시 멋진 각도로 날아간다.
“나이스샷!”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로펌들의 시니어 파트너들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미 하늘에 오른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더 높은 곳이 보인다.
“아, 맞다. 이번에도 김앤강에서 한 건 했다며?”
카트에서 내려 공들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는 도중, 동기 중 한 명이 해상팀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 건?”
“현진상선 회생 말이야. 김앤강 해상팀 작품이라던데.”
‘해상팀 작품?’
해상팀이 다수의 현진상선 채권자를 대리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건 모르는 양호락이었다. 더 높이 오르는 데 필요한 것들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클라이언트한테 들었어. KBD은행의 김 상무라고 프로젝트 파이낸싱 관련해서 우리가 자문해 주는 팀이 있는데, KBD은행도 현진상선에 대출채권이 있었던 모양이었더라고. 거기에 선박 해운 투자팀이 따로 있거든.”
회생계획안이 통과되려면 크게 세 그룹의 투표를 거쳐야 한다.
하나는 주주들이고, 다른 하나들은 우선순위 채권자들, 마지막 하나는 일반채권자들이다.
보통 회생절차에 들어갈 정도면 부채가 자본을 초과한 상태라 주주들의 투표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면, 우선순위 채권자들과 일반채권자들 두 그룹의 투표로 사실상 운명이 정해지는 것.
이때 우선순위 채권자들은 대개 부동산이나 선박 등 큰 자산을 담보로 거액의 돈을 대출 해준 은행권들이다.
현진상선은 국내 2위, 세계 9의 해운회사였다. 그 정도 규모의 기업이면, 국내 대형 은행 둘 중 하나는 발 하나 정도 걸쳐있게 된다.
KBD은행도 그중 하나였고, KBD은행을 클라이언트로 둔 동기는 종종 만나는 담당자로부터 회생절차의 뒷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광종이 SC 케인을 앞세워서 정리한 뒤에 현진 그룹이 들어오려고 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됐나 봐. 소문에 의하면, 현진가(家)하고 SC 케인하고 백 딜(back deal, 뒷거래)이 있었는데, 김앤강 해상팀이 태클을 걸어서 틀어졌다는 것 같던데. 양 프로는 뭐 들은 거 없어?”
들은 거 없다.
양호락이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다른 동기가 질문을 받았다.
“나도 들었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갔다면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뭐 그냥 채권단 투표로만 결정되는 일이야? 한때는 연 매출 7조까지 했던 회사였는데. 듣기에는 광종이 정부랑 언론 쪽에도 힘을 많이 썼대.”
맞다. 중소기업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사업을 영유하고 있는 대기업이다. 정부의 지지 없이는 쉽게 성사될 일이 아니다.
그걸 몰라서 질문한 게 아니었다.
양호락이 궁금한 건 누가 ‘왕서방’이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서방이 누군데? 홍콩 SC 케인?”
“SC 케인이라는 말도 있고, 누구는 또 진짜 승자는 김앤강이라고도 하고.”
“우리 사무실?”
“사실상 승자는 늘 김앤강인 거 아니야? 백인찬 변호사님이 채권단 투표 때 거의 뭐 주도하다시피 하셨다고 들었어. 김앤강에서 낸 분석보고서가 거의 그대로 채택됐다던데.”
김앤강에서 낸 분석보고서가 채택됐다는 말에 양호락의 고개가 돌아간다. 의아한 일이다.
기업법무팀의 경영권분쟁 파트를 맡고 있지만, 회생절차에 대해서는 그 역시 잘 안다. 그가 종종 쓰는 도구와 같은 절차였으니까.
‘해상팀에서 분석보고서를 냈다고? 그만한 인력이 없었을 텐데···. 회계팀이 투입됐나?’
그 정도 규모의 일이라면 관심을 두지 않아도 그의 귀에도 들어왔을 법한데···
들어 본 적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 추리해 보는 사이, 동기들은 이제 김앤강의 권력 구도로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그쪽 이야기가 더 재미있으니까.
“백 변호사님이 김앤강에 얼마나 계셨지? 30년? 35년? 이정후 변호사님도 그 정도 되지 않아?”
“두 분이 같은 해에 조인하셨을걸? 아니면, 이 변호사님이 조인하고 바로 다음 해였든지. 맞지, 양 프로?”
“크하- 백 변호사님 살아계시네. 아직도 사건 하면서 후배들하고 치고받으시고.”
“백인찬 변호사님이 원래 그런 분이셨잖아. 내 후배 중 하나가 해상사건도 좀 하는데, 요새도 법정에 나와서 어리바리한 판사들 호통치고 그러신다더라고.”
“해상이야 뭐 평생 하신 거니까 그렇다 쳐도, 도산까지 하실 줄이야···.”
“리먼 때 좀 하셨잖아, 그때 해운회사들 여럿 망해나가서.”
“그거랑 이거랑 같나. 그게 그렇지 않아. 채권단 대리 백날 해 봤자, 관리인, 채무자 측에 서본 적 없으면 모른다니까. 대단하시네. 그 연세에 아직도 공부하시고.”
다른 건 몰라도 그 말은 정확하다.
채권자 측 대리를 많이 해봤다고 해도, 채무자 회사 측에 서서 모든 걸 총괄해 본 적이 없으면, 분석보고서 같은 걸 낼 수가 없다.
‘어떻게 한 거지?’
어찌나 궁금한지, 양호락의 얼굴이 인상을 쓰기 직전이다.
“양 프로, 이러다가 백 변호사님이 치고 올라가는 거 아니야?”
“이 사람아, 회생 사건 하나 했다고, ‘그분들’이 눈썹 하나 까닥하겠어? 백 변호사님은 지분 없지?”
“그냥 하는 말이야. 잊고 있었던 이름인데 요새 자꾸 들려오니까. 아! 그러고 보니, 광종의 담당 변호사가 노태규 변호사였잖아. 뭐야, 양 프로, 혹시 뒤에서 김앤강 기업법무팀이 해상팀을 지원한 거 아니야? 이정후 변호사님이 말 안 듣고 나간 후배한테 본때를 보여주려고. 노태규 변호사가 이정후 변호사님이랑 한바탕하고 나갔다는 소문 사실이지? 그렇지? 하하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가 나가면 배반이라고 본때를 보여주었던 시절.
지금은 굳이 그러지 않는다. 그런 건 2위 이하의 로펌들이나 하는 것이다.
이제는 다들 안다. 경쟁에서 도태해서 나갔다는 것을. 김앤강이 한물가서 나간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별개로 백인찬이 한 일은 인상적이다.
‘이게 김앤강의 저력이다!’라는 것을 나간 변호사에게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에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이니까.
농담이라도 이렇게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원래도 명성이 있는 분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괄목할 만한 일이듯 싶다.
고작 5명 밖에 없는 팀에서 현진상선 회생계획안을 만들었다니···.
아마 ‘김앤강의 신선들’ 귀에도 들어가겠지.
“양 프로, 안 쳐?”
“···.”
“양 프로?”
해상팀 일이라 관심 없었다.
솔직히 사건 자체로만 보면 여전히 관심 둘만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인상적인 성과라 해도 백인찬 하나였다면,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강태산의 낙하산’이 그 팀에 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좀 께름칙하다.
목 어딘가에 걸린 가시처럼.
슈웅-
내리치는 순간, ‘나 당신 일 안 받아’ 했던 녀석의 마지막 표정이 양호락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퍽!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양호락이 내린 친 골프채의 머리가 뒤땅을 치고 튕겨 올랐다.
“아이쿠! 뒤땅이네.”
“양 프로, 괜찮아? 아플 것 같은데.”
“거 내가 뭐라고 그랬어. 살살 치라고 했잖아. 하하하. 엘보 나간 거 아니야?”
평소 같았으면 같이 웃어넘겼겠지만, 그러지 못하겠다.
얼얼한 팔꿈치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도 더 신경 쓰일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참고 있던 짜증이 양호락의 미간에 골을 만든다.
-*-
김앤강,
센터게이트 빌딩 17층,
파이낸스팀 주니어 파트너 공유찬 변호사의 방.
똑똑-
“변호사님, 저를 찾으셨다고···.”
“어, 한 변호사, 들어와. 아니다. 회의실이 낫겠다. 잠깐 회의실로 갈까.”
반갑게 맞이한 공유찬은 범상을 작은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방이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였다.
“차 한잔 마시면서 얘기할까? 뭐 할래? 커피?”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야, 앉아있어. 아메리카노? 믹스?”
“그럼, 아메리카노로.”
김앤강은 참 재미있는 직장이다.
광화문 센터게이트 빌딩의 스물두 개 전(全) 층을 쓰고 있는데, 각기 다른 팀이 사용하는 층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주로 은행이나 투자 회사들을 상대 하는 파이낸스팀이 쓰는 17층과 18층은 어느 층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됐다.
탁! 틱.
조르륵-
공유찬이 옆에 비치된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에 에스프레소 캡슐을 넣고 버튼을 누르자, 물소리와 함께 진한 커피 향이 금세 회의실 안으로 채웠다.
좋다.
다른 층 사무실에도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이 구비되어 있기는 한데, 이렇게 멋스럽게 회의실에 전시된 것은 처음 봤다.
공유찬이 커피를 내리고 있는 동안, 범상은 회의실 안을 둘러봤다.
벽에 걸린 근사한 그림에 고급 수제 쿠키까지.
확실히 다른 부류의 클라이언트가 오는 사무실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한 변호사 얘기는 들었어.”
“제 얘기요?”
“응, 백 변호사님이 그러시던데, 일 잘한다고.”
“아- 네. 과찬입니다.”
“아니. 내가 그분을 아는데, 누굴 과찬하고 할 분이 아니야. 그분한테 인정받은 거면 대단한 거지.”
흔히, 파이낸스라 하면, 어떤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고 운영, 관리하는 일을 말한다.
벤처사업, 부동산, 선박 등등 목적물은 다양하다.
파이낸스팀에는 선박금융 파트가 따로 있었다. 당연히 해상 쪽과 관련이 있었고, 공유찬은 같은 팀 선박금융 파트의 파트너 변호사의 입을 통해 한범상에 대해 들었다.
하지만, 그래서 이렇게 부른 건 아니었다.
“한 변호사, 혹시 개리 터커를 알아?”
“개리 터커요? 아니요. 그분이 누구신가요?”
“얼마 전까지 골드만삭스의 수석 애널리스트였는데, 최근에 <코너스톤 그룹>이라고 싱가포르 프라이빗 펀드 회사 CFO로 취임한 분. 몰라?”
“네.”
“모른다고? 그분은 한 변호사를 아는 것 같던데.”
“네? 저를요? 저는 조금 전에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 그런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그래? 흠···.”
한범상의 대답에 공유찬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왜 그러신가요?”
“아니, 우리가 이번에 <코너스톤 그룹>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법률 자문을 하게 될 것 같은데, 그쪽에서 한 변호사 이름을 언급해서 말이야.”
“제 이름을요?”
“응, 개리 터커가.”
영문을 모르겠는 건 한범상도 마찬가지. 범상도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래? 그럼, 뭐, 만나서 들어 보면 되겠지. 한 변호사, 다음 주에 스케줄이 어떻게 돼? 개리 터커랑 그 팀이 다음 주에 싱가포르에서 오기로 했거든. 미팅에 같이 들어가자고. 그래서 불렀어.”
“네, 알겠습니다.”
-*-
같은 시간,
진원 그룹 대표실.
<코너스톤 그룹>이 다음 주에 한국에 들어온다는 보고를 들은 신기성은 조카의 방을 찾았다.
“전무님 오셨습니까.”
“신 대표, 다음 주에 개리 터커가 온다고 하네. 아직 참여할 자리가 남아있을지 몰라.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미팅을 잡자고.”
신기성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미팅 자리에서 한범상을 다시 마주치게 될 줄은.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62화
범상은 공부 중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줄여서 PF,
사업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운용하는 일.
진정한 PF 변호사는 무대장치감독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무대에 올라갈 공연의 내용을 몰라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무대 위 장치들뿐만이 아니라,
공연 내내 연기자들 머리 위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무거운 조명들,
수십 명이 넘는 연기자들의 힘찬 발 구름을 견뎌내야 하는 무대 밑기둥들,
장면마다 추가되는 소품들 하나하나, 연결고리의 나사 하나하나까지 챙겨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변호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미스터 터커, 다음 주 수요일 오전 10에 김앤강 파이낸스팀하고 미팅 확정했습니다.”
“미팅 전에 검토하라고 기본 소개자료들 보내줬지?”
“예, 보내줬습니다.”
“오케이.”
“법무법인 세양 파이낸스팀하고의 미팅은 오후 2시쯤에 잡으면 될까요?”
“그렇게 늦게 잡을 필요 뭐 있어. 세양의 사무실이 김앤강 빌딩에서 멀어?”
“아니요. 멀지 않습니다. 차로 30분이면 갑니다.”
“그럼, 두 번째 미팅은 한 11시쯤 잡아. 변호사 미팅이 길 필요 없지. 30분이면 충분해.”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싱가포르 투자회사 <코너스톤 그룹>의 새로운 CFO(Chief Finance Office, 채무총괄자) 개리 터커는 로컬 로펌의 이름 따위에 구애받는 초짜가 아니다.
시시한 스톡 브로커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이 업계에서만 23년.
그가 전 세계에 올린 ‘공연’들만 수십 개다.
같이 일할만한 변호사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데에 30분이면 충분하다.
“현진 그룹 구태현 대표하고의 식사는 그날 저녁이지? 그쪽 TF 팀 미팅은 다음 날 오전이고.”
“네, 그렇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일정 확인해.”
“예, 알겠습니다, 미스터 터커.”
한국에서만 처음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