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66)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66화(66/190)
【066화 – 이래저래 아쉽게 만드는 남자】
그 자리에 신기성 전무가 올 줄을 전혀 몰랐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다행인 건 나만 깜짝 놀란 게 아니었다는 것.
코너스톤 CFO 개리 터커가 신기성 전무는 도대체 누군지, 왜 그 자리에 있는지를 물어봤을 때까지만 해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 역시 나만큼이나 신기성 전무의 참석이 못마땅하다는 건 눈치챘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할 거야?’라는 표정으로 날 봤을 땐 짜릿하기까지 했다.
「이런 영광을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 나가서 베도 된다는 주군의 명령처럼.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신기성 전무에게 퇴장을 요청했다.
-나가 주시죠.
사적인 감정 하나 없이.
···거짓말이다. 한 5% 정도? ···그래, 한 10% 정도 담아 말했다.
이 생태계는 이런 곳이다.
사건에 따라 관계가 변한다.
이번 사건에서는 클라이언트가 되었어도 나중에 다른 사건에서는 상대가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신기성 전무에게 고맙다.
그날 그가 나가라고 해주었기에 이 사건을 맡는 데에 사소한 껄끄러움조차 없게 된 것이니까.
물론 그날 진원그룹 경영권분쟁 미팅에 참석했어도 문젯거리가 될 것은 없었다.
그 사건과 이 사건은 별개의 건이고, 엄밀히 말하면 회사도 달랐으니까.
게다가 더 중요한 건 현재 코너스톤은 시스템 교통 관리회사로 진원테크놀로지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랬다면 어제 그 자리에서 그에게 당당하게 나가달라고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랬다면 개리 터커는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 분명했다.
중요한 것을 배웠다.
언젠가 파트너가 된다면 훨씬 더 큰 그림을 보고 운신해야 한다는 교훈을.
똑똑-
“변호사님.”
“방에 있었네.”
“네.”
“메신저가 꺼져 있길래. 내 메시지 못 봤지?”
“메시지요? 아, 죄송합니다. 메신저가 꺼져 있었네요. 전화를 주셨으면 제가···.”
“아냐. 나도 밑에 누가 와서 겸사겸사 내려왔어.”
18층에서 공유찬 변호사님이 내려오셨다.
현진 UAM 컨소시엄 관련이었다.
“다른 건 아니고, 코너스톤 측 담당자한테서 메일이 왔는데, UAM 컨소시엄의 시스템 교통 관리회사로 LKT하고 세계시스템 두 회사를 우선 협상자로 접촉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어. 전달 못 받았지?”
“네.”
“사무실 층이 다르니까 이게 좀 불편하기는 하네. 일단은 내가 IT팀에 한 변호사가 파이낸스팀 서버에 액세스할 수 있게 승인 요청해 놓았어. 그거 해결되면 메일들 다 들어갈 거야. 우리 팀이 보안이 좀 더 까다로워, 민감한 사건들이 많아서.”
“네.”
“메일 본 다음에 현진모터스 측에 어떻게 제안서 넣을지 김 변호사님께서 회의하자고 하시니까. 다 검토하면 나한테 메시지 하나만 남겨.”
“예,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알았어? 코너스톤이 LKT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미팅이 끝나고 돌아올 때, 한 변이 그렇게 말했잖아. 왠지 진원테크는 반대하고 LKT를 추천할 것 같다고.”
코너스톤이 준 초기 자료에 있었다.
LKT나 세계시스템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코너스톤은 태한 컨소시엄을 경쟁상대로 보고 있었고, 그들처럼 텔레콤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었으면 하는 의사가 엿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리고 개리 터커는 의사 결정에 적극적인 투자자였다.
그가 골드만삭스 투자 부분 대표에서 코너스톤 CFO로 이직하면서 <이코노믹스>와 한 인터뷰를 보면, 자기는 개발사에 끌려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게 자신의 성공 비결이라고까지 언급했다.
정보들을 맞춰보면 대충 몇 회사로 추려볼 수 있었고, 그중 다른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는 국내 텔레콤 회사는 LKT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추측해 본 것이었다.
“다른 경쟁 컨소시엄들이 텔레콤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맺었길래, 그냥 한번 추측해 봤어요.”
“그걸 그 짧은 시간에 추측했다고?”
“네, 뭐···.”
“감이 좋단 말이야. 아무튼, 좋고. 언제 술 한번 같이해.”
“네.”
할 말을 마친 공유찬은 나가려다 말고 돌아섰다. 방금 생각난 아이디어였다.
“아- 한 변.”
“네.”
“그냥 묻는 건데, 혹시 17층으로 옮길 생각은 없어?”
“17층이요?”
“방 하나 남는 게 있어서, 한 변이 온다고 하면 그 방 정리하라고 하게.”
파이낸스팀이 사용하는 센터게이트빌딩의 제일 세련된 17층과 18층.
“아, 제안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근데, 국제중재팀 사건도 하고 있고, 해상이랑 특허팀 사건도 하려면 지금 이 방이 더 편해서요. 불편하시지 않게 부르면 재깍재깍 뛰어 올라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럼. 편할 때로 해. 맘 바뀌면 언제든 말해.”
“감사합니다.”
“메일 보고 메시지 줘.”
“넵.”
배운 게 있다.
큰 그림을 보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지금은 여기가 내 자리다.
···
“인기가 좋네요.”
공유찬이 나가고 살짝 열려있던 방문 사이로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들으셨어요?”
옆방 도하영.
“그럼, 이제 파이낸스팀 사건도 받는 거예요?”
“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근데, 일단은 아마 현진 UAM 컨소시엄 관련 일만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그건 약간 자랑 같은데.”
“네? 아, 아닌데.”
자연스럽게 다가온 하영은 들고 있던 물건을 범상의 책상 위에 놓았다. 고급스러운 포장지에는 <100% Wild Caught, Smoked Salmon Jerky>라고 적혀있다.
“혹시 이런 거 좋아하세요?”
“뭔데요?”
“새몬 저키(Salmon Jerky, 훈제 연어포)요. 캐나다에 사시는 이모가 보내주셨는데, 맛이 괜찮아서··· 혹시 연어 안 좋아하세요?”
“없어서 못 먹죠.”
“네?”
“매우 좋아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낚시 좋아한다고 하셔서.”
“네, 주시면 맛있게 먹겠습니다.”
범상의 두 눈이 반짝거리자, 그제야 하영도 웃는다.
붉은 입술 사이로 드러난 가지런한 치아가 참 예쁘다.
“···.”
“···.”
“뭐 더 하실 말씀이라도···?”
“네? 아, 아니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자연스러웠는데, 순간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사실 연어 저키는 애피타이저였고, 물어볼 것이 하나 더 있었던 하영이었다.
그런데,
“변호사님, 이거 택배를 제가 대신 받았는데, 여기다 놓으면 될까요?”
비서가 들어오는 바람에 아쉽게도 하영은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냥 저를 부르시지, 왜 무겁게···.”
“그럼, 여기다 놓을게요.”
“네.”
낑낑거리며 들어온 비서의 손에는 제법 큰 상자가 들려있었다. 빈 의자 위에 놓는 모양새를 보니, 무게도 꽤 나가 보인다.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비서가 나간 뒤, 하영은 상자를 보며 물었다.
은근히 택배를 많이 시키는 남자다.
“이건 또 뭐예요?”
“수중 드론이요.”
“수중 드론이요?”
“네, 헤헤.”
천진난만하게 웃는 남자는 마치 산타에게서 온 선물처럼 상자를 뜯기 시작했다.
“수중 드론은 왜···?”
“낚시할 때 도움이 좀 될까 해서요.”
아이 같은 그 모습이 귀엽다.
근데, 낚시하는 데 수중 드론까지 구매하는 남자라니···
하영은 물어보려던 것을 끝내 묻지 못하고 돌아나갔다.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67화
아버지의 유산
“···비록 형사법원이 피고에게 형을 선고하지 못하였지만, 이는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랜 세월로 인해 증거가 소멸하고 증인을 찾기가 어려워서 일 뿐입니다.
피고는 오래전 원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그로 인해 원고의 인생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천천히 곪아왔습니다.
이는 그 어떠한 배상으로도 회복될 수 없는 손해이고 상처입니다.
원고가 원하는 것은, 이제라도 피고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원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주는 것이나, 법으로는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어, 이렇게 위자료를 청구하오니, 재판장님께서는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재판이 끝났다.
퇴정하기 전, 강태산은 법정 안을 둘러봤다.
만족스러웠다, 자신의 마지막 재판이 이런 작은 법정인 것이.
“바로 올라가실 건가요?”
“그럴 거 있나? 이제 바쁜 것도 없는데. 자네 뭐 바쁜 일 있어?”
“아니요. 제가 그런 게 있을 리가요.”
“그럼,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제대로 된 남도 김치나 맛보고 가지.”
“네, 변호사님.”
나이 일흔일곱, 변호사 생활 47년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할 거야? 아직 은퇴하기는 나이가 젊잖아.”
“변호사님, 저도 내일모레면 환갑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어?”
“네.”
“세월 참···그래도 일해야지. 100세 시대에 환갑이면 아직 창창할 나이인데.”
강태산은 운전석에 앉은 김욱현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미안해서 그러는 것이었다.
지난 25년간 개인 운전사처럼 일했던 욱현이었다.
이제 그가 은퇴하면 욱현은 갈 데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거는 생각해 봤고?”
“네. 말씀은 감사하지만, 변호사님이 은퇴하시면, 저도 나가는 게 이치에 맞는 것 같습니다.”
강태산은 자신이 은퇴해도 욱현이 원한다면 계속 회사에 다닐 수 있도록 사무실에 말해두었다.
하지만, 욱현은 거절했다. 25년간 강태산만을 태우고 다닌 그였다.
김앤강에서 월급을 받았지만, 사실상 강태산의 개인 운전사였다.
“이치에 맞기는···하면 하는 거지. 갈 데도 없잖아.”
“교회에 아는 장로님이 아파트 경비 자리를 소개해 준다고 했어요.”
“아파트 경비?”
“네.”
목소리에 확신이 없다.
허튼 말이라도 거짓말을 하는 친구는 아니니, 소개를 받기는 받은 모양.
하기가 싫거나 확정적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오래전 일이라도 범죄 전과가 있는 김욱현이었다.
“김 차장.”
“네, 변호사님.”
“김 차장만 괜찮으면 계속 내 운전 좀 해주고 다닐 테야?”
“···.”
“병원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은퇴해도 사무실에 이것저것 심부름해야 할 일도 있을 거고. 욱현이 자네만 괜찮다면, 그래 주면 나야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변호사님···.”
“생각해 보고 말해줘. 급할 거 없으니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전히 일이 필요한 그였고, 일을 하고 싶은 그였다. 그리고 그것이 지난 25년간 자신에게 은인과 같았던 강태산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김욱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우리 좀 더 보고 살자고.”
“네.”
간암이란다.
의사 말이 완치될 수 있다고는 하나,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죽음의 선고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것도 운명일까?
27년 전, 목숨을 구해준 은인의 자식을 만났는데, 하필이면 이렇게 또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순간이라니.
“아, 변호사님.”
“왜?”
“한범상 변호사님이 잘하고 계시는 거 같습니다.”
“그래? 근데,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아?”
“이 차장이라고 파이낸스팀 변호사님들이 타는 차량을 운전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운전하다가 변호사님들이 한범상 변호사님에 관해 하는 말을 들은 모양입니다.”
경영에서 손 뗀 지 20년이 넘었지만, 사무실 이곳저곳에 귀가 있는 강태산이었다.
그도 듣고 있다. 한범상에 대해서.
“자네도 궁금해? 내가 왜 그 친구를 찾았는지?”
“아니요. 제가 알아야 하는 거면 말씀해 주시겠지요. 궁금하지 않습니다.”
2년 전, 우연히 병원에서 마주친 한범상을 찾아준 사람이 김욱현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무엇 때문에 한범상을 찾는 건지 묻지 않았다.
강태산이 김욱현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사실이다. 김욱현은 이유가 궁금해서 한범상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었다.
강태산이 한범상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듣고 싶어 할지 싶어 꺼낸 말이었다.
“언젠간 얘기해주어야겠지.”
한범상에게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김욱현에게도 말해둘지 모르겠다.
우연히 병원에서 본 그를 왜 찾았는지를,
27년 전 그의 부친 한유일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