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69)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69화(69/190)
【069화 – 아버지의 비밀창고】
「Welcome to Belfast」
뉴캐슬어폰타인에서 벨파스트까지 비행시간은 한 시간 조금 더 걸렸다.
체크아웃 시간은 도시 간 연결 공항이라 그런지 십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버스 터미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득 도심항공교통(UAM)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어쩌면 정말 한 20년, 30년 뒤에는 하늘을 나는 택시가 세계 도시 위에 가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레넌 셀프 스토리지는 공항에서 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운전 방향도 다른 데 택시를 탈까 하다가 차를 빌렸다.
예전의 나였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행동.
근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적당한 전기 렌터카를 빌려 과감하게 고속도로로 나왔다.
오른쪽에 있는 운전석이 살짝 어색했지만, 운전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로는 막히지 않았고, 운전이 재미있어질 때쯤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Brennan’s Self Storage」
벨파스트시(市) 서쪽 외곽에 자리한 브레넌 셀프 스토리지는 생각보다 외진 곳에 있는 사설 보관 창고였다.
하얀색 바탕에 초록색 글씨로 큼지막하게 쓴 간판이 입구에 걸려있어 찾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간판 밑에 붙은 글자들이었다.
「Business Closed
Now Evacuating」
‘영업을 그만한다고? 창고 빼는 중?’
나는 입구 중앙에 있는 사무실 앞에 차를 대고 건물로 들어갔다.
“Hi, may I help you?”
(안녕하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카운터 뒤에 앉아있던 젊은 여자가 나를 맞이했다.
명찰을 달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3주 전, 통화했던 시얼샤 브레넌 양이었다.
잊기 어려운 아이리시 엑센트와 목소리의 주인공.
“안녕하세요. 저는 범상 한이라고 합니다. 3주 전에 우리 통화했었죠.”
“오, 한! 정말 왔군요! 하이, 내가 시얼샤에요. 당신이랑 통화한. 당신이 이렇게 와줘서 너무 반갑네요!”
이상하리만큼 그녀는 나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사실 당신의 아버지를 찾고 있었죠. 편지는 혹시나 해서 보내본 건데, 와우- 정말 당신이 와주었군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이제는 정말 끝낼 수 있겠네요.”
“끝낸다고요? 뭘요?”
“네, 여길 닫을 생각이에요. 전화로도 얘기했는데, 나는 지금 아버지의 이 셀프 스토리지를 폐업하려는 중이에요. 근데, 변호사 말이 우리 아버지가 당신 아버지와 체결한 계약이 일종의 종신 계약 같이 되어 있어서, 당신 아버지가 렌트한 창고의 소유권이 당신 아버지에게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더군요.”
“소유권이 우리 아버지에게 있다고요?”
“우리 변호사 말이요. 당신 아버지가 미스터 유일 한 맞죠?”
“네.”
너무나도 기이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아일랜드 소도시 외곽에 이런 창고를 렌트한 것도 물론 기이하지만, 진짜 기이한 일은 우리 아버지는 영국은커녕 해외에 나가보신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오기 전 엄마한테 들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그 계약서를 제가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에요.”
“잠시만요.”
시얼샤 브레넌 양은 캐비넷에서 오래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재빨리 훑어 내려가는데, 특별한 것은 없었다.
계약서 내용은 흔히 쓰이는 창고 대여 계약서 문구처럼 보였다.
다만, 비고란에 대여 기간이 “100년”이라고 되어 있는 점은 특이했다.
그제야 왜 그녀의 변호사가 사실상 소유권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조언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것 이외도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여기 보니까 100년 사용료를 금으로 지급했다고 되어 있네요?”
내 지적에 시얼샤 브레넌 양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진짜 금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파운드 스털링인지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아, 물론, 뭐가 됐든 계약만 해지해 주면, 남은 기간은 보상해 드릴 거예요.”
그녀는 통화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다만, 너무 많은 정보라서 내가 와서 얘기하자고 했다.
수화기를 통해 듣는 그녀의 아이리시 억양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이제야 그녀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왜 편지 내용이 마치 오랜 고객을 찾는 것 같았는지도 이해가 갔다.
얼마 전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이 스토리지 사업장을 물려받았고, 계속 영업할 의사가 없어 팔거나 재개발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미스 브레넌.”
“시얼샤라고 불러줘요. 미스 브레넌은 우리 엄마예요.”
“오케이, 시얼샤, 나는 이 계약을 해지해 줄 수가 없어요. 적어도 당장은요.”
“그게 무슨 말이죠? 이제 와서 이 창고를 쓰기라도 할 거라는 건가요?”
“시얼샤, 내 말을 좀 들어봐 줄래요. 우리 아버지는 아주 오래전에 행방불명이 되셨어요.”
“오- 저런. 미안해요. 몰랐어요.”
“괜찮아요. 오래전 일이니까. 그런데, 나는 오늘에서야 아버지가 이곳에 창고를 대여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건 법적으로 엄연한 유산입니다. 한국법상 자식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으면 세금을 내야 해요. 내가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 창고를 상속받아 처분하려면, 저는 먼저 한국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고, 그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서류를 내야 해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
“그래서, 말인데, 이건 어떨까요? 이 계약서 사본과 계약 해지 시, 당신이 하려는 보상액을 알려준다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절차를 마치고 돌아올게요. 그러면, 그때 계약을 해지해 줄게요.”
“그게 얼마나 걸릴지 알려줄 수 있나요?”
“짧으면 석 달, 길면 반년 정도.”
사실은 핑계였다.
출국 기록도 없는 아버지에게 이런 해외 재산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한다는 말인가.
계약서를 가져가서 세금을 내겠다고 하면 국세청이 뭐라고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일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실종선고를 받아 사망 간주가 된 경우이기에 사망시점이 문젯거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걱정되는 일은 사실 어머니였다.
어머니에게는 또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나는 오늘 알게 된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릴 생각이 없었다.
단지,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
“최대한 빨리 처리해서 돌아오도록 노력할게요.”
“알았어요. 그렇게 해주면 정말 좋겠어요. 솔직히 비즈니스도 안 되고, 인수하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나도 팔고 싶거든요.”
“네, 이해해요.”
“고마워요, 한. 이해해 줘서.”
그렇게 그녀를 설득한 나는,
“시얼샤, 괜찮으면 아버지의 창고를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에요. 37번 창고예요. 뒤쪽에 있으니까 차를 몰고 가는 게 편할 거예요.”
“고마워요. 아, 시얼샤.”
“뭐 더 필요한 거라도 있어요?”
“창고에 자물쇠가 잠겨있나요?”
“그럼요. 사용 중인 모든 창고에는 자물쇠가 잠겨있죠.”
“혹시 스페어키가 있을까요?”
“셀프 스토리지를 사용해 본 적이 없군요. 그런 건 없어요. 창고 대여자가 직접 와서 채우는 거니까.”
“그렇군요. 흠··· 혹시 그럼 자물쇠 절단기 같은 게 있을까요? 나도 오늘 알게 된 사실이라서, 열쇠 같은 건 없거든요.”
그녀는 대답 대신 방긋 웃었다. 그러곤 카운터 아래에서 대형 절단기를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렸다.
“당신 아버지와는 달리 돈을 안 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와우- 크네요.”
“쓰고 돌아갈 때 돌려줘요.”
“고마워요. 그럴게요.”
나는 그녀에게서 받은 대형 절단기를 들고 렌터카로 향했다.
아버지가 대여한 창고는 오피스 뒤 북쪽 동 맨 끝에 자리했다.
···
“으으으-”
캉!
두꺼운 자물쇠 고리가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났지만,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얼샤의 말대로 폐업을 준비 중인 사설 스토리지였다.
나 말고 이용자는 없었다.
나는 절단된 자물쇠를 풀고 철로 된 문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드르륵 체인 감기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올라갔다.
그리고 보였다.
‘그래, 여기일 것 같았어!’
내 예상이 맞았다.
아공간 속 <빨간 문>을 통해 연결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벽 한 가운데 네온 빨강의 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70화
신선대전
김앤강 기업법무팀 시니어 파트너 양호락은 퇴근 후 삼청동에 있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방음이 잘 되는 조용한 방들이 있는 곳이었다.
“변호사님, 오셨습니까.”
인사를 건네는 진원그룹 신기성 전무의 첫 표정에서 눈치챘다, 아쉬운 게 있어서 이리로 불렀다는 것을.
양호락은 모르는 척,
“죄송합니다. 나오는 길에 꼭 받아야 하는 전화가 들어와서.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 아닙니다. 김 이사, 양 변호사님도 오셨으니까, 이제 음식이랑 술 들여오라고 해.”
“예.”
법무팀 김동민 이사도 함께 온 걸 보니, 접대가 확실했다.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를 굳이 한국식으로 풀이한다면, ‘을’과 ‘갑’이라 볼 수 있다.
사건을 의뢰하는 ‘갑’과 그 사건을 받아 처리하는 ‘을’.
보통은 사건을 달라고 접대해야 하는 쪽이 로펌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따금 일어난다.
그 이유는 그가 소속된 곳이 김앤강이기 때문에 그렇다.
“변호사님, 한잔 받으시죠. 이게 얼마 만이죠? 올 초에 식사 한번 한 것이 다 인가요? 아이고, 변호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을 더 썼어야 했는데, 이게 ‘집안일’이다 보니까 정신이 없어서···.”
그가 말한 ‘집안일’이라는 현재 진행형인 진원그룹 경영권분쟁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의 말투로 봐서는 ‘집안일’ 때문에 오늘 자리를 마련한 것 같지 않았다. 적어도 현재 양호락 파트에서 맡고 있는 경영권분쟁 사건 관련해서 질의나 불만이 있어서 부른 것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그런데도,
“아, 근데 그 필리핀 법인 건은 언제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미 다 설명한 부분을 괜스레 다시 묻는다.
능구렁이 같은 양반. 마치 ‘집안일’ 때문에 이 자리를 만든 것처럼 변죽부터 때리고 들어오더니, 진짜 목적은 식사가 끝나갈 때쯤 되어서야 꺼냈다.
“아, 근데, 변호사님도 참, 그 변호사가 강태산 변호사님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친구면 미리 언질을 좀 주시지···그랬으면 제가 그날 그렇게 실례를 하지 않았을 텐데···.”
“그 변호사요?”
“한범상 변호사 말입니다.”
‘아하, 그 일 때문에 불렀구나.’
양호락도 대충 상황을 알고 있었다.
한범상이 코너스톤-현진 미팅에서 신기성 전무에게 나가라고 한 사실까지 상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원그룹이 현진 UAM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고, 파이낸스팀에서 코너스톤을 대리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범상이 김창균 변호사가 이끄는 파이낸스팀 로스터에 포함되었다는 소식도 며칠 전에 들었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땐 양호락도 놀랐다. 파이낸스팀은 강태산 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쪽에 계시는 ‘신선’ 남영수는, 굳이 선을 긋자면, 오히려 자기가 모시는 ‘신선’ 이정후와 친한 쪽이었다.
“아- 한 변호사요.”
양호락의 입에서 ‘한 변호사’라는 이름이 나오자, 두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신기성.
캐가고 싶은 정보가 많은 눈빛이다.
“그나저나, 한 변호사는 강태산 변호사님하고 무슨 관계인 건가요?”
운을 뗐다고 바로 정곡을 찌르고 들어온다.
그런 거에 넘어갈 양호락이 아니다.
“관계는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냥 추천만 하신 거고, 인재채용팀에서 검토해서 채용한 걸로 들었습니다.”
“그래도 강 변호사님께서 추천하신 변호사면 뭔가 있겠죠. 그런 거 안 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있다고 해도 누구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시는 분도 아니죠.”
내부에서는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관계일 지라도 외부 사람에게 나불대지는 않는다.
그러면 꼴이 우스워진다.
패권을 두고 싸우고 있어도 지켜야 하는 것은 같다.
<김앤강>이라는 이름.
“어디서 들으니까, 강태산 변호사님의 숨겨둔 아들이라고 하던데···.”
“···.”
신기성의 실눈이 뱀처럼 가늘어진다.
양호락은 입을 꾹 다문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상대를 바라봤다.
선을 넘지 말라는 뜻.
“하긴, 헛소리겠죠. 그런 삼류 아침 드라마 같은 일이 김앤강에서 일어날 리가···하하,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
의중을 읽은 신기성은 바로 한 발을 뺐다.
하지만, 말에 박은 가시는 숨기지 않는다.
‘근데 만약 그게 진짜라면, 니네도 콧대만 높았지, 삼류 로펌이라는 걸 인정하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양호락은 말없이 미소로 대응했다.
신기성은 그 뒤로도 계속 말을 돌려가며 한범상에 관해 물어봤고, 양호락은 적당히 할 말, 안 할 말 가려가며 대꾸했다.
짜증은 내지 않는다. 낼 수 없다.
아쉬운 것이 있어서 상황이 이런 것일 뿐, 여전히 ‘갑’은 신기성이고 양호락은 ‘을’이다.
결국 지루한 공방을 깬 것은,
똑똑 드르륵-
“식사들 다 하셨으면 후식 내올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가게 직원이었다.
밥맛 없는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별로 챙긴 게 없는 신기성은 후식까지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
“양 변호사님, 다음번에는 한 변호사하고 다 같이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때 양 변호사님하고 한 미팅에서 제가 실례를 한 것도 있고, 사과도 할 겸. 부탁드리겠습니다, 양 변호사님. 자리를 한 번 만들어 주시죠.”
부탁 아닌 부탁을 남겼다.
양호락은 기분이 좋지 않다.
결국 목적은 한범상.
부탁드리겠다는 극존칭의 표현을 썼지만, 한편으로는 ‘네가 만든 자리에서 발생한 일이니까 네가 책임져’라는 것처럼 들린다.
신기성도 눈치챈 것이다, 양호락이 그날 한범상을 일부러 데리고 미팅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네, 알겠습니다.”
양호락은 정중히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