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70)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70화(70/190)
【070화 – 신선대전】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보이차 한 잔만. 진하게 말고, 연하게.”
-네, 알겠습니다.
텁텁하다. 어제 먹었던 술맛이 아직도 입 안에 남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제 나눴던 대화 때문인지.
출근한 양호락은 비서에게 차를 주문했다.
짜증이 난다.
신기성 같은 인물이야 살아오면서 많이 만나봤다.
그가 짜증이 나는 이유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자꾸 들려오는 다른 이름 때문이었다.
“한범상이···.”
이게 무슨 우스운 꼴이란 말인가.
법조 경력 30년이 다 되어가는 판국에 새파란 어쏘 술자리 중매를 서야 한다니.
양호락의 입에서 나지막이 그의 이름이 새어 나왔다.
실력이 있든 없든 그것과는 별개의 일.
아니, 100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하는 신동이 들어왔어도 이런 일은 없다.
결국 원인은 강태산이다. 강태산이 내려보냈다고 하니까 안이고 밖이고 다들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정말이지 낯부끄러워서 원···.”
양호락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작 2년밖에 안 된 어쏘 변호사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도 그렇고, 서로들 데려가려고 호들갑을 떠는 다른 시니어 파트너들도 그렇고.
똑똑-
“들어와.”
양호락은 비서가 주문한 차를 들고 들어올 줄 알았다.
“출근했어.”
아니었다.
이정후였다.
“변호사님. 부르시지, 왜 여기까지 직접···.”
“남 변호사랑 할 얘기가 있어서 오는 길에 먼저 들렀어. 바쁜가?”
“바쁘긴요. 차 하시겠습니까?”
“아니야. 차는 위에 가서 마실게. 삼전 관련해서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네.”
소파 앉기 전, 양호락은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방해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정도 눈치가 있는 비서였지만, 혹시 또 미리 차를 가지고 들어올지 몰라 미리 얘기를 해두는 것이었다.
“양 변호사, 자네 UAM인가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봤어?”
“도심항공교통 프로젝트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거.”
“네, 들어봤습니다. 지금 파이낸스팀에서 현진모터스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투자자 쪽 자문을 맡기로 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잘됐네. 알고 있네.”
“네.”
사실 양호락은 한범상과의 술자리를 주선할 생각이 없었다.
어젯밤 신기성에게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무시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아마도 신기성이 선배 이정후를 찾아갈 것이고, 그럼, 이정후가 위에서 뭐라고 지시를 내릴 수는 있었지만, 적어도 그때까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정후가 어떤 행동을 취할 것 같냐고?
모르겠다.
클라이언트에게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하시는 양반이지만, 끌려다니지 말라는 것이지 클라이언트를 무시하고 내치라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이상하리만큼 한범상에게는 신경을 쓴다.
조인한 지 고작 2년밖에 안 된 애송이한테.
아무리 ‘태산’에서 내려온 놈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곳에 계신 지 35년이나 되시는 터줏대감께서.
근데, 사실은 내심 양호락도 한범상이 이미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인정하지만 않았을 뿐.
“아직은 양 변호사만 알고 있어. 어쩌면 삼전도 뛰어들지도 모르겠어, UAM 사업에.”
그 순간, 양호락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신기성 전무와의 술자리를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남 변호사하고 얘기를 나누시려고···?”
“그런 거는 아니고, 어느 정도 발을 담근 건가, 먼저 좀 알아보려고.”
만약 삼전이 정말 UAM에 뛰어든다면, 이건 김앤강 내부에서도 큰 싸움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노태규가 현진상선 회생을 두고 백인찬과 벌인 경쟁과 비슷한 성격의 일이지만, 그때와는 급이 다른 싸움.
삼전 그룹이다.
지난 10년간 매년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1위 기업.
임직원 수 25만 명에, 국가 법인세의 25%를 내고 있으며, 김앤강 로펌 총매출에 15%를 기여하고 있는 의뢰인.
하지만 그렇다고 파이낸스팀 ‘신선’ 남영수 변호사가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김앤강 로펌 총매출에 15%가 삼전 그룹이라면, 김앤강 로펌 총매출에 60%가 해외기업들이다.
그중 남영수 변호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만만치 않다.
‘정말 그런 대전이 벌어질까?’
아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좌시하지 않을 테니.
하지만, 양호락은 그 순간 목덜미에 느껴지는 묘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비록 2년밖에 안 되는 애송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 강태산의 낙하산이 끼어있는 것이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막혔다.
-*-
같은 시각,
한범상의 방.
똑똑-
“한 변.”
“공 변호사님.”
파이낸스팀 공유찬이 한범상의 방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영국 출장은 어땠어?”
“좋았습니다.”
“일정이 빡셌다고 들었는데, 얼굴 보니 괜찮았던 거 같네.”
“네, 미팅이 많아서 조금 정신이 없기는 했는데, 미팅 자체는 다 좋았습니다.”
“다행이네. 아참- 다른 게 아니고, 한 변 출장간 사이에 LKT 측에서 현진 UAM 컨소시엄에 관심이 있다고, 일단 기밀 유지 약정부터 작성하자고 전화가 왔거든. 그러니까, 오전에 메일들 들어온 거 보고, 오후에 회의 좀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번에 한잔하기로 한 거 오늘 저녁에 어때? 힘든가?”
“아니요. 전 언제든 좋습니다.”
돌아와서 많이 쉬었거든요.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71화
술자리
사무실 근처 주점,
범상은 드디어 파이낸스팀 주니어 파트너 공유찬과 술자리를 가졌다.
어제 약속한 자리가 미뤄져 오늘이 됐다.
음식이 나오기 전, 범상은 먼저 나온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아니야, 아니야. 중요한 일이 생기면 우리끼리 약속은 깨질 수도 있는 거지.”
“그래도, 죄송합니다.”
한국인에게 소주는 참 흔하면서도 귀한 물건이다.
‘밥은 먹었냐?’는 인사처럼 여러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후배는 진심을 담아 술을 따랐다.
쪼로록-
작은 잔이 가득 차게 ‘사과’를 받은 선배는 술병을 건네받아 후배의 잔에 ‘용서’를 따랐다.
쪼로록-
한 잔에 오해가 풀린다.
귀한 매개가 된다.
“그래서, 어제는 양호락 변호사님이 부르셨다고?”
공유찬이 술 한번 먹자고 말한 것은 근 한 달 전이었다.
일이 많다 보니 자꾸 미뤄졌다.
공교롭게도 매번 미루게 되는 쪽이 범상이었다.
그래서 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려고 했다.
근데,
“네.”
기업법무팀 시니어 파트너 양호락의 갑작스러운 호출로 인해 지킬 수 없었다.
“왜? 혹시 양 변호사님하고 잘 아는 사이야?”
“아니요. 그냥 전에 잠깐 기업법무팀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부르신 것 같기도 하고···.”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범상은 말꼬리를 흐렸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어젯밤 일이다.
“거기서도 잘했나 보네. 그래도, 양 변호사님 마음에 들기 쉽지 않다고들 하던데.”
“딱히 그런 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근데, 변호사님은 언제부터 파이낸스 일을 하신 건가요?”
범상은 모호하게 대답하며 주제를 돌렸다.
“나? 나는 그러니까···.”
공유찬은 로펌 내 돌아가는 일에 그렇게 밝지 않은 인물이었다.
범상에 대해서도 이번에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되었지, 그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근데, 나도 사실은 낙하산이야.”
“예?”
음식은 여전히 무소식인데, 벌써 두 번째 병을 오픈했다.
공유찬은 대뜸 고백했다. 취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공진석 판사님이 우리 아버지셔.”
“아···.”
“아! 모르나?”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니야, 아니야. 당연히 모를 수 있지. 알 거라고 생각한 내가 웃긴 거지. 하하하. 몰랐구나? 하하하.”
공유찬의 아버지 공진석은 대법관이셨다.
몇 년 전, 은퇴했고 지금은 법조계 일을 하고 있지 않다.
대법관은 법조인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국내 변호사들은 판례문에서든 선배로부터든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아무튼 아버지 백이야, 내가 김앤강 파이낸스팀에 있을 수 있는 건.”
가볍게 내뱉는 말투에서 자조적인 느낌이 든다. 살짝 고민한 범상은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제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김앤강이 백만으로 버틸 수 있는 곳은 아니지 않나요? 방금 말씀은 그렇게 하셨어도, 파이낸스팀 케이스 리스트 보니까, 큰 사건에 공 변호사님 이름이 다 있었던데.”
사실이었다.
공유찬은 범상이 파이낸스팀 사건 목록을 보고 자기가 하는 사건들이 무엇인지 체크해 봤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그때도 느꼈지만, 생긴 건 평범한데 뭐든 허투루 보내는 게 없는 사람 같다.
“아니야.”
“이번 현진 UAM 미팅 때도 그렇고, 김창균 변호사님이 변호사님을 많이 신뢰하시는 것 같던데요.”
“그렇게 보였어?”
“네.”
“김 변호사님이 우리 아버지의 후배이시거든. 하하.”
다시 나온 자조적인 말투.
공유찬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 같은 존재.
그래서, 피곤할 때면 언제든 그 그늘에서 쉴 수 있는 존재.
하지만, 햇빛을 받고 싶어도 역시나 그 그늘 때문에 받을 수 없는.
고마우면서도 원망스러운 존재.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공유찬은 늘 이것부터 밝히고 시작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나중에 알게 되면 대부분 자신을 대하는 것이 달라졌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일종의 사람을 사귀는 전술 같은 것이었다.
“그것과는 별로 상관없는 것 같은데요.”
앞에 앉은 후배가 말했다.
비슷한 대답을 들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담담한 말투가 묘하게 신뢰감을 준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사실 공유찬은 한범상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그날 현진-코너스톤 미팅에서 그가 보여준 당찬 모습에 그렇게 됐다고나 할까.
그와 강태산 변호사의 관계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졌다.
그러한 데에 정치적인 이유는 없었다.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한 변, 술은 좀 해?”
“전에는 많이 안 마셨는데, 요새는 기회가 많아져서 그런지 좀 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더 늘 거야.”
“파이낸스는 술을 많이 먹나요?”
“아무래도. 이게 다른 팀들은 사건을 주로 한다면, 파이낸스는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거라, 클라이언트랑 술 마실 기회가 많은 편이지.”
“아-”
“그래도 우리 팀은 해외 클라이언트가 많은 편이라서 다른 파이낸스팀보다는 좀 덜해. 부동산 개발 쪽은 진짜 많이 마시지.”
“아-”
“왜? 아쉬워?”
“아니요.”
“클라이언트하고 하는 술자리는 조심해야 해. 업무의 연장이지 절대 뒤풀이가 아니야.”
그냥 한 말에 범상은 어젯밤 술자리가 떠올랐다. 솔직히 어제는 업무의 연장도 아니었다.
“아, 맞다. 현진모터스 측에서 들어온 메일 읽어봤어?”
“네.”
“LKT가 적극적인 건 매우 긍정적인 일인 것은 맞는데, 경험상 쉽지는 않을 거야. 현진모터스 측에서 보내온 메일을 보니까, 절대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느낌이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 엄청 많아질 거야. 한 변도 그날 미팅에 있어서 알겠지만, 현진모터스는 이미 진원테크를 파트너로 점찍은 거 같으니까 말이야. 앞으로 기싸움이 장난 아닐 거야.”
“네.”
“자, 짠- 잘 부탁해, 한 변. 난 한 변만 믿을게.”
“제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냥 바이브가 맞는 사람들.
‘낙하산’이라는 유대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유찬과 한범상은 같이 일하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서로에게 들었다.
“아, 근데 한 변? 저번에 보니까 방에 고양이 사료 캔이 있던데. 혹시 고양이 키워?”
“아···네.”
“어! 나돈데.”
그래서 그랬나?
“변호사님, 미혼이라고 하셨죠. 혹시 사귀는 분 있으세요?”
“뭐지? 그 의미심장한 질문은? 당연히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의외로 공통점이 많은 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