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74)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74화(74/190)
【074화 –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진원그룹 전무실에는 불편한 침묵이 맴돌았다.
조금 전, 양호락은 신기성에게 확약서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는 의견을 냈고, 신기성은 그러한 그의 의견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결정은 전무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저는 분명히 조언해 드렸습니다. 현진모터스에 확약서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만약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고 확약서를 제공하면, 그 뒤에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
신기성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대답했다.
“양 변호사님이 굳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네요. 신 회장이 필리핀 법인을 통해서 진원테크 지분을 취득한 적이 없는데, 확약서를 제공했을 때 어떤 리스크가 있다는 건지···양 변호사님, 회사 기밀이라서 양 변호사님에게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우린 현진 UAM 프로젝트를 꼭 해야 합니다.”
‘그랬으면 좀 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지, 이 양반아. 2년밖에 안 된 어쏘 변호사한테 패나 읽히고.’
양호락은 말해주지 않아도 다 안다는 표정으로 한 번 더 말했다.
“말씀드렸듯이 결정은 전무님이 하시는 것이니, 더는 뭐라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신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확약서는 형사적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니까요.”
검사 생활 포함해 이 분야에 27년이다.
양호락은 진작에 눈치챘다. 신 회장이 필리핀 리조트 회사를 통해서 자회사들 지분으로 개인적으로 취득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그 이상 캐지 않고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
신 회장을 대리하는 변호인으로서 알아봤자 골치만 아파질 것이기에, 그냥 덮어뒀다.
현진 UAM 컨소시엄에 왜 이렇게 목을 매는지도 안다.
하루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내서 주주들의 마음을 붙들겠다는 것이겠지. 경영권분쟁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겠지.
하지만, 그러겠다고 현진모터스에 확약서를 제공하는 건 또 다른 리스크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
물론 의도한 대로 다 잘되면 문제 될 건 없다.
상대방(경영권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생들 측)이 증거를 구하지 못해 자회사 지분 취득 사실은 흐지부지 묻히고,
진원테크가 현진 UAM 컨소시엄의 시스템 관리회사 자리를 차지해서 진원그룹 현(現) 회장이 경영권분쟁에 승리하면 확약서가 문제 될 일은 사라진다.
문제는 사람이다.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
전략이 좋으면 무엇하나, 책임자가 그만한 능력이 없으면 부질없는 일인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조차 조급한 표정 하나 제대로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신기성을 양호락은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래서 어떻게 끝까지 잘 숨기고 해내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메시지였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뭐가 말씀입니까?”
“현진 UAM 프로젝트 관련해서 현진모터스가 확약서를 요청했다는 사실은 극비정보인데···내가 양 변호사한테 말한 적도 없는걸, 양 변호사가 이미 알고 있다는 건 김앤강 내부에서 정보 공유를···.”
“전무님.”
“?”
“다급해져서 한범상 변호사에게 연락하신 건 전무님이 아니신가요?”
“···.”
신기성은 한범상을 너무 얕잡아 봤다.
하긴, 그렇게 보이는 인물이지.
그래도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신중치 못한 건 신기성의 역량이 그 정도라는 말이었다.
방을 나오기 전, 양호락은 경영권분쟁을 대리하는 변호사로서 좀 더 명확하게 짚어주었다.
“한 변호사가 신 전무님하고 통화하고 나서 저한테 찾아와 언급한 내용입니다. 전무님께서 확약서 이야기를 꺼내셨다고 하던데요.”
“나는 별말 안 했는데. 그저···.”
“경영권분쟁에 관련된 용무라면 저나 이성훈 변호사에게 연락하셨을 테고. 현진 UAM 관련 일이라 한 변호사에게 연락하신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하기는 했는데, 별말···.”
“별말 안 했는데도 저를 찾아와 얘기한 거 보면, 전무님 수(數)가 다 읽혔다는 게 아닐까요?”
“양 변호사!”
“전무님, 상황 판단을 잘하셔야 합니다. LKT를 상대로 100% 이길 자신이 없다면, 확약서 제공은 신중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현진 UAM 프로젝트가 정말 배수의 진을 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죠.”
미팅 내내 한심한 눈초리로 대했지만, 마지막 말만은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하는 양호락이었다.
오래전 검사 시절의 눈빛이 나왔다.
자칫 감정 섞인 발언을 할 뻔한 신기성은 이성을 되찾는다.
이제야 자신이 한 실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너무 조급했다. 술자리 한 번 같이 했다고 한범상을 너무 얕잡아봤다.
양호락은 신기성의 방을 나왔다.
···
돌아가는 차 안,
양호락은 자신을 돌아봤다.
신기성의 행동에서 자기가 할 뻔한 실수를 봤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양호락은 신기성과의 술자리에 한범상을 데리고 갔었다.
신기성이 요청한 이유도 있지만, 한범상을 떠 볼 심산이었다.
주눅 들게 한 뒤, 흔들 심산이었다. 혹여 나중에 삼전이 정말 UAM 산업에 뛰어든다고 하면 이용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적인 의도가 있었다.
그런데, 1차 자리가 끝나고 2차 자리로 이동하기 위해 각자 차로 향하는 도중, 중간에 멈춰 선 한범상이 그를 보며 말했다.
“변호사님,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파이낸스팀에서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 관련해서 현재는 진원테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지만, 앞으로 생길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요. 신 전무님에게는 변호사님께서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건방지게 어디 감히 시니어 파트너에게···’
양호락은 한범상을 노려봤다.
하지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한범상의 두 눈에는 한 톨의 두려움이나 죄송함도 깃들여 있지 않았다.
아는 것이었다, 신기성이나 자신의 의도를.
고작 2년밖에 안 된 놈이 꿰뚫어 본 것이다.
“그래? 알았어. 그럼, 가봐.”
양호락은 한범상을 잡지 않았다.
잡을 수 없었다.?
차라리 그때 신기성에게 싹수가 노라니 조심하라고 얘기해 두는 편이 나았을 뻔했다.
어쏘 하나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서 마치 일부러 보냈다고 했더니만···
아니다. 그렇게 경고했어도 신기성은 한범상을 찾았을 것이다.
아까도 보아하니 아직도 얕잡아 보고 있는 듯하다.
양호락도 그랬을 때가 있다.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초라한 스펙에 사로잡혀 허투루 봐서는 안 될 인물이다.
무서운 놈.
1년 전쯤 처음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고작 1년 사이에 어떻게 저렇게 변했지?’
남들과 다른 속도로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 같다.
그 짧은 사이 무섭게 성장했다.
절대 2년차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범상치 않은 놈이다.
‘강태산의 낙하산이 아니었으면 좋았을걸.’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
며칠 뒤,
현진모터스 대표실.
경영전략팀 상무 박성욱은 조금 전 진원으로부터 받은 확답을 보고했다.
“신기성 전무로부터 진원그룹 명의로는 확약서를 발행해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역시 경영권분쟁에 진원테크도 걸려있나 보네요?”
“예, 아무래도 그래 보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안 되겠죠.”
“네, 알겠습니다.”
구태현 대표의 지시에 박성욱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LKT는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LKT도 쳐내야죠.”
“그렇기는 한데, 진원테크를 내보내면 LKT를 쳐낼 명분이 없어서···.”
“진원테크에 일단 프레젠테이션에는 참여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박성욱은 대표의 지시를 알아들었다.
사실 대표가 방금 내린 지시와 같은 대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대표가 의견을 물었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그가 있는 자리는 손 들고 실력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다.
항상 준비된 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자리이지.
“준비 확실하게 시키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확약서 부분은 넘어갈 수 있는 척하겠습니다. 대신 LKT 쪽 제안서보다 확실하게 낮게 써오라고 요구하겠습니다.”
“그러면, 그걸로 LKT를 내칠 명분은 될 거고. 어차피 코너스톤도 경영권분쟁 문제가 살아있는 한 절대 진원테크 선정에 동의하지 않을 거니까, 그때 가서 확약서를 다시 거론하면서 내치면 되겠네요.”
“네.”
“진원테크 다음으로 우리가 추천할 회사가······.”
고래들 싸움에 새우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현진과 코너스톤의 기싸움에 진원의 운명은 정해졌다.
그렇다면 LKT의 운명은?
다들 LKT의 운명도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현진뿐만 아니라, 큰판을 보고 있는 코너스톤도 파이낸스 시니어 파트너 김창균도 크게 희망을 걸지는 않고 있었다.
서로의 1차 지명을 그렇게 제하고 적당히 두 번째 선택에서 합의 볼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아니었다.
-*-
충전호 앞에서 현진 UAM 기록들을 검토하고 있던 범상은 조금 생각이 달랐다.
“아무리 봐도 이건 LKT 쪽에 승산이 있는데···.”
“야옹-”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야옹-”
범상도 이해했다.
현진모터스와 코너스톤의 이 싸움이 기싸움인 것을.
진원테크가 안 되면 LKT도 안 된다는 것을.
그런데, 만약 LKT의 제안서가 최선이라면?
그보다 더 나은 제안서를 받을 수 없다면?
정말 그래도 현진모터스가 고집을 피울 수 있을까?
뭐, 그래도 고집을 피우겠다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범상은 시도해 보고 싶다.
에너지도 남아돌겠다.
‘다른 컨소시엄의 시스템 관리회사들은 어떤데?’
범상은 LKT 측에서 보내준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어떤 파동은 느리게 온다
봄에 뿌린 씨앗은 가을에 열리고,
먼 하늘에 뜬 구름은 저녁깨나 비를 내린다.
어떤 파도는 느리게 온다.
그렇지만 파도를 버틸 수 있는 생물은 없다.
제아무리 큰 고래라고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