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78)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78화(78/190)
【078화 – 동시에 두 곳에 있어야 한다면】
어젯밤 퇴근 전에 공 변호사님께서 갑자기 물어보셨다.
“한 변, 혹시 내일 호찌민 출장에 같이 갈 수 있어?”
나는 참석할 필요 없다고 들었던 스케줄.
“네, 갈 수는 있는데···”
“그럼, 같이 가는 거는 어때? 김 변호사님이 예상했던 것보다 큰 미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한 변 스케줄이 괜찮으면 한번 물어보라고 하시네.”
“네, 갈 수 있습니다. 근데, 그러면 비행기표를 사야 하는데.”
“비행기표는 있을 거야. 만석은 아닌 거 같더라고. 내가 김 대리한테 문자 넣어놓을 테니까, 한 변은 여권 사본만 보내줘, 김 대리한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정해졌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3박 4일간의 일정.
집에 돌아온 나는 일단 짐부터 싸 놓은 뒤, 그간 미리 해두어야 하는 일들을 들고 아공간으로 향했다.
나왔을 땐, 같은 시각이었다.
푹 자고 짐을 챙겨 나왔다.
아침 비행기라 일찍 나왔더니 도로도 한산해서 공항에는 금세 도착했다.
“공 변호사님, 여기입니다!”
“어! 한 변. 하아아— 아- 춥다. 왜 이렇게 춥냐. 일찍 나왔네?”
“네. 혹시라도 출근길에 길이 막히면 안 될 거 같아서요.”
“차 가지고 왔어?”
“아니요. 버스요.”
“버스는 뭐 괜찮지. 나도 버스 타고 왔어. 비행기표는? 있지?”
“네, 어젯밤에 김 대리가 예매해 줬습니다.”
“그래, 관광 시즌도 아니라서 비행기 자리는 많을 거야.”
“혹시 커피 드시나요?”
“좋지.”
“그럼,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뭐로 드시나요?”
“그러지 말고, 거기 가 있자. 김 변호사님은 30분 정도 걸리신다니까.”
“그럴까요?”
일찍 나오기를 잘했다.
안 그래도 출장 관련해서 물어볼 것이 좀 있었는데.
“출장 관련해서 오고 간 메일들을 최근 거까지 다 봤는데, 그러면 이번 미팅에는 베트남 정부 측에서도 참석하는 건가요?”
“응, 그런다네.”
“자기네는 이 분쟁과 관련이 없다라는 게 베트남 정부 측 입장이 아니었나요? 그런데, 이렇게 참석하면 관련이 있다는 거는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꼴 같은데. 아닌가요?”
“그렇지. 그런데, 뭐, 자기네 나라잖아.”
“그렇기는 한데···.”
“아, 그러고 보니, 한 변은 이 프로젝트 초기에 없었구나!”
“네.”
“지난번 내부 미팅에서 배경을 아주 잘 알고 있길래, 한 변도 같이 한 줄 착각하고 있었네. 아, 맞네. 그러면, 베트남 정부 측 인사들 안 만나 봤겠네.”
“네. 처음입니다.”
“만나 봐. 재미있을 거야. 흐흐- 다른 팀에서 중국 쪽 프로젝트도 해본 적 없지?”
“네.”
“좋은 경험이 되겠네. 색다를 거야. 공산당들. 약간 시간여행 같은 느낌도 들 거야.”
공유찬 변호사님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듯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셨다.
그 순간에는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다섯 시간 뒤, 호찌민 떤선녓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저절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공기부터 달랐다.
“와- 여기는 1월인데도 후덥지근하네요.”
-*-
만약 누가 내게 포털을 열고 다른 세계로 가는 건 어떤 기분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비행기 타자마자 잠들었는데 눈 떠보니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라고 설명해 줄 듯싶다.
분명히 다섯 시간 반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고 호찌민에 도착했는데, 도착하는 순간부터 그 중간 과정이 희미해진다.
게다가 귀가 빨개질 정도로 추운 나라에서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더운 나라로 왔더니 비현실감이 더하다.
“덥지? 여긴 원래 이래. 그래도 이 시기에는 습도가 낮아서 밤에는 좀 나아져.”
“아, 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같은 행성,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이렇게 다른 환경이라니.
좁으면서도 넓다.
고작 다섯 시간 반이면 올 수 있는 장소인데···
가까우면서도 멀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처럼.
“김 변호사님! 여기입니다!”
떤선녓 국제공항에는 김앤강 베트남 사무소에 근무하는 변호사님과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어이- 반 변호사.”
2007년 1월, 베트남이 세계무역기구(WTO)의 150번째 회원국이 되면서, 많은 국제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 진입했다.
대한민국의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값싼 노동력과 자원 그리고 개발이 필요한 도시들.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공장이 필요한 대기업들이 제일 먼저 관심을 보였고, 그들이 들어간다고 하자 건설사들과 은행이 따랐다.
자연스레 로펌들도 하노이와 호찌민에 지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김앤강도 그중 하나였다.
“여행은 괜찮으셨어요?”
“어, 괜찮았어.”
반탄쩐(Phan Thanh Tran) 변호사는 한국어가 능숙했다.
나중에 들었다. 김앤강 서울 사무실에서 7년간 근무하고 다시 이곳 호찌민으로 돌아오신 분이라고.
“아, 이 사람들이 미팅 장소를 또 바꿔서요. 조금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투에 베트남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내는 그 특유의 억양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표정이나 단어 선택은 한국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서둘러야 한다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먼저 돌아서 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앞장서는 그였다.
“어디로?”
“호찌민 시청으로요.”
“시간은 같고?”
“네.”
“미팅 전에 우리끼리 잠깐 회의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있을까?”
“네, 호텔에서 한 30분 정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가실까요? 차 대기 되어 있습니다.”
김창균 변호사님과 공유찬 변호사님하고는 친한 듯 보였다.
그 역시 나중에 들었다, 7년 전 호찌민 시내 쇼핑몰 프로젝트 시작할 때부터 함께 일하셨다고.
일정이 바쁜 나머지, 나는 차로 가는 도중에야 제대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이쪽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온 한범상 미국 변호사.”
“안녕하십니까, 한범상입니다.”
“안녕하세요, 반탄쩐 변호사입니다. 한 변호사님은 베트남에는 처음이신가요?”
왜 한국말을 이렇게 잘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소 ‘인싸’ 기질이 보이시는 분. 바쁘다면서도, 반탄쩐 변호사님은 김 변호사님과의 대화 중간중간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한 변호사님은 김앤강에는 언제 조인하셨나요?”
“나이는 어떻게···? 결혼은 하셨나요?”
“김 변호사님께서 이렇게 데리고 오신 걸 보면 자질이 있으신 분이신가 보네요.”
기분 나쁘게 꼬치꼬치 캐묻는다는 느낌보다는 대화에 계속 끼워주려는 듯한 질문 세례였다. 다만, 첫 만남이다 보니 질문의 방향이 공적인 부분보다는 사적인 부분으로 자꾸 가서 그랬지.
그래서, 처음에는 ‘이분이 왜 이러시지?’ 하는 기분이 전혀 없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 덕에 금세 친해줄 수 있었고, 친해지고 나서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다 왔습니다. 그럼, 5분 뒤에 라운지에서 볼까요?”
“이 사람아, 화장실도 좀 쓰고 한 15분은 줘야지.”
“아,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15분 쓰십시오. 근데, 그럼, 내부 회의는 한 20분밖에 못 할 것 같은데.”
“알았어, 알았어. 5분 뒤에 내려올게.”
“넵, 그럼 저는 여기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왜 그가 김앤강에 7년이나 계실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국식 ‘빨리빨리’ 모드가 잘 장착된 분이셨다.
방에 올라 온 나는 제일 어린 한국 사람답게 사무실에서 온 문자만 확인한 뒤 필요한 것만을 챙겨 곧바로 로비로 내려갔다.
“한 변호사님, 여기입니다! 아, 행동이 빠르시네. 일 잘하시겠네요. 어떻게, 기다리는 동안, 먼저 커피 한잔하시겠습니까? 아아?”
“네?”
“아이스아메리카노. 아아. 아니면, 베트남에 오셨으니까, 베트남식 커피로 하시겠어요? 연유가 싫으시면 블랙도 있는데.”
당연히 ‘아아’가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건 나도 알았다. 다만, 베트남 현지에서 현지 사람의 입으로 들으니 순간 베트남어처럼 들렸던 거였다.
역시나 한국어 패치가 최근 버전까지 잘 되어 계신 분.
반탄쩐 변호사님은 나 대신 ‘카페 다’라고 부르는 아이스 블랙커피를 주문해 주셨고, 본인은 ‘카페 다’에서 슈가를 뺀 ‘아아’를 주문했다.
“덥죠?”
“네, 한국은 지금 진짜 추워서요. 그래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들었어요. 한국 겨울은 진짜 아우···호찌민 1월은 따뜻해요. 한낮에는 살짝 덥기는 한데, 비도 없고 밤에 바람 불면 선선해요.”
“안 그래도, 오는 길에 공 변호사님이 말씀 해주셨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한 변사님은 이번에 새로 배당되신 신 건가요?”
“네.”
“사건 배경은 좀 아세요?”
“일단 기록은 다 보고 왔습니다.”
“복잡하죠?”
“그렇더라고요. 7년 전에 시작된 프로젝트라 기록이 많더라고요.”
“못 보죠. 중간에 담당자도 두어 번 바뀌고 코비드까지 와서 엎어질 뻔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어떻게 오픈은 했습니다.”
“그러니까요.”
“그래도 해결해야 할 분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변호사인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기는 한데···아, 어떻게? 변호사님들 내려오시기 전에 잠깐 오늘 미팅의 배경이랑 진짜 목적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드릴까요?”
“아, 그래 주시면 저야 진짜 감사하죠.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미팅을 왜 열게 된 거냐 하면은······.”
내가 인싸 기질이 있으신 분이라고 했던가.
파트너 변호사님들이 내려오시기까지 한 15분 동안, 반탄쩐 변호사님은 기록에 나와 있지 않은 정보들과 이해관계들에 대하여 재빠르게 설명해 주셨다.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내가 갖고 있던 의문점들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었다.
“반 변호사, 미안해. 내가 좀 늦었지. 화장실을 좀 다녀오느라고.”
“괜찮습니다. 대신, 저희 내부 회의는 한 15분 정도밖에 못 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뭐. 나도 커피 한잔할 수 있을까? 근데, 인민위원회 청사까지 얼마 안 걸리잖아.”
“네, 한 1분이면 갑니다.”
“뭐야, 시간 좀 있네.”
그리고 우린 호찌민 시청이 있는 인민위원회 청사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탄쩐 변호사님을 포함해 모두가 그날 미팅은 분쟁의 개요만 정리하기 위해 만나는, 그냥 형식적인 미팅 자리일 거로 추측했다.
아니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공산당 정부는 시작부터 강압적으로 나왔다.
“분쟁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미팅에서 어느 정도 해결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갑시다. 동의하십니까?”
순간 1년 전쯤 다녀왔던 미시간주 출장이 떠올랐다.
느낌이 이번 출장 역시 길어질 것 같다.
‘어쩐다? 금요일에 듀워트 중재 관련 미팅이 있는데···.’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79화
존재하는 공간에서만 흐르는 시간처럼
길어야 한 시간 정도 될 거로 예상하고 참석한 회의가 세 시간이 넘어갔다.
그냥 늘어진 거면 상관없는데, 베트남 정부는 분쟁이 불필요하게 지속되고 있다며 회의 내내 합의를 종용했다.
수십 장짜리 계약서를 써도 모자랄 판에 두세 장짜리 미팅 미닛츠(Meeting minutes, 회의록)로 합의서를 갈음하려는 상황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빨리, 갑작스럽게 태도를 변경할 줄이야.
김앤강 파이낸스팀 시니어 파트너 김창균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는 공유찬과 둘이 오려다가, 마지막에 어쏘 한범상을 데리고 오기로 결정해서.
이제 막 사건을 배당받은 3년차 어쏘 변호사에게 큰 활약을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한국에 다녀올 때까지 선배 공유찬을 보필해서 베트남 정부의 강압을 버텨주기 정도를 바랄 뿐이었다.
현진 UAM 프로젝트에서 에이스의 자질을 보여주기도 했고.
그런데···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오기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번 주 금요일에 국제중재팀 사건 관련해서 중요한 미팅이 잡혀있어서요.”
“그거 한 변이 없으면 안 되는 미팅이야? 지금 여기 상황이 조금 급박한데. 웬만하면 미루는 게 어때?”
“죄송합니다. 제가 꼭 참석해야 하는 미팅이라서요. 돌아가는 일정도 그래서 목요일 밤 비행기로 예약한 거라··· 대신, 미팅이 끝나면, 다음 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으로 복귀하겠습니다.”
김창균도 알고는 있었다.
금요일에 국제중재팀 미팅이 있어 목요일 밤 비행기를 타고 먼저 돌아가야 하는 한범상의 일정을.
솔직히 맡은 사건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오기 전엔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너무 빨리 신뢰를 보여준 건가. 이제 고작 반년 밑에서 일한 어쏘한테···.’
이율배반적이지만, 자기 팀 사건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시니어 파트너 변호사의 처지에서, 이곳저곳에 발을 걸치고 있는 한범상에 건 기대와 신뢰가 조금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꼭 그래야 한단 말이지?”
“네.”
“미룰 수 없다고?”
“예.”
끄응-
김창균은 한범상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물론 그가 없다고 심각한 일이 벌어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범상을 데리고 왔다.
큰 무대, 좋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 목을 매는 어쏘들이 파이낸스팀에만 수십 명.
이런 기회를 다른 팀 사건 때문에 놓친다면, 그건 잘잘못을 떠나, 선택의 문제.
“알았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공 변호사, 공 변호사가 반 변호사랑 잘 버티고 있어.”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
이번 한 번은 넘어가지만,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널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경고였다.
역시나 원칙은, 실력 좋은 어쏘보다는 필요할 때 자리에 있는 어쏘이었기에.
범상 역시 못마땅한 시니어 파트너의 표정에 담긴 의미를 잘 알아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