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79)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79화(79/190)
【079화 – 없으면 기다리게 만들면 된다. 존재하는 공간에서만 흐르는 시간처럼】
한국,
금요일,
김앤강 사무실.
“한 변호사 출근했어?”
“잠시만요, 변호사님.”
출근과 동시에 국제중재팀 주니어 파트너 최재민은 한범상부터 찾았다.
변호사의 질문에 담당 비서는 한범상 비서를 보좌하는 정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질문을 확인하곤 바로 끊었다.
“아직 출근 안 했답니다.”
최재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제 베트남에서 귀국하기는 했나?”
“정 대리 말이 비행기표 일정을 변경해달라는 말씀이 없으셔서 그렇게 알고 있다고는 하는데···전화 한번 해볼까요?”
“해 봐.”
변호사의 지시에 다시 수화기를 든 비서는 한범상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다행히 두 번의 신호음 뒤에 연결되는 통화음.
“안녕하세요, 한 변호사님. 저 김 과장인데요.”
-아, 네 과장님.
“지금 어디 계세요? 한국이신가요? 최 변호사님이 찾으셔서요.”
통화는 길 필요가 없었다. 비서는 한범상의 현재 있는 곳과 도착 시간 정도만 확인하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딸깍-
“지금 인천공항이고 한 시간 정도면 사무실에 도착한답니다.”
그나마 다행. 그러나, 최재민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웠다.
나흘 전, 베트남 출장을 다녀오겠다는 보고에 의욕도 좋지만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는 것 아니냐며 에둘러 타일렀다.
가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한범상은 갔다.
‘이래서 미팅 준비는 제대로 할 수 있었겠어?’
백번 잘해도 한번 실수로 무너질 수 있는 게 로펌 변호사의 커리어다.
과욕은 실수를 불러일으키는 법.
최재민은 찌푸린 미간을 펴지 않았다.
“들어오면 바로 내 방으로 오라고 해.”
“네, 변호사님.”
“도 변은 출근했지?”
최재민은 도하영을 불렀다. 혹시라도 한범상이 못 참석하게 될까, 준비를 제대로 못 했을까 해서 도하영에게 따로 준비를 시켜두었다.
상황의 변수에 대비하고 있어야 하고, 어쏘의 실수도 커버해야 하는 것이 파트너의 몫이다.
똑똑-
“변호사님, 부르셨나요?”
“어서 와, 도 변호사. 오늘 듀워트 사건 미팅 관련해서 잠깐 회의 좀 할까.”
최재민은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빈틈에 대비했다.
···
두 시간 뒤,
좁게 느껴질 정도로 꽉 찬 국제중재팀 중회의실.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최재민의 정수리에 땀방울이 송골 맺혔다.
“회의실이 작아서 죄송합니다. 대회의실을 잡아두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저희도 갑자기 통보를 받아서 그만···.”
원래는 부사장과 법무팀 직원들만 올 거라고 통보를 받았다.
보통 그러면 서너 명. 많아야 대여섯 명이다.
참석 인원과 비교해 회의실이 너무 커도 좋지 않기에, 스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중회의실을 잡아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의뢰기업의 사장이 찾아온 것이었다.
사장이 참석한다고 하자, 전략실과 영업팀도 참여하겠다고 하면서, 대규모 군단이 되었다.
총 열두 명의 손님.
둘러앉으면 자리는 충분하나, 이상적인 장소는 아니었다.
급하게 대회의실이 비는지 알아봤지만, 다른 팀의 회의가 잡혀있었다.
최재민의 사과에 오히려 법무팀 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미리 귀띔하여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 역시 마지막 순간에 통보받은 모양이었다.
이렇듯 변수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
사실 이 정도 곤란함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상대방과의 회의 도중에 의뢰인이 위증 사실을 자백한 적도 있었는데 뭐. 더 큰 돌발상황도 경험해 본 그였다.
최재민은 괜찮다는 눈짓 보낸 후, 회의를 시작했다.
그래도 민감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작부터 덜그럭거리는 것이 좋은 사인은 아니니까.
“그럼, 일단 ICDR(미국중재협회 국제분쟁해결센터)에 제기된 사건 관련해서 현재 진행 상태를 말씀드리면···.”
“변호사님. 말씀을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네.”
“괜찮으시면, 김현성 전무님에 대한 FBI 조사 관련해서 먼저 들을 수 있을까요? 저희 사장님께서 어쩌면 회의 중간에 가셔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시작부터 자신이 세워둔 계획에서 하나둘씩 계속 빗나간다. 최재민은 목 주위가 서서히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현재 미국에서 조사받고 계시는 김현성 전무님에 대해서 저희가 리서치한 부분을 먼저 보고드리고, 중재 사건은 그다음에 논의하도록 하죠. 일단 저희가 직접 조사한 것과 사건의 내용을 밝히지 않고 받은 미국 로펌의 의견서를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의뢰인 회사는 현재 미국 ICDR에서 듀워트 케미컬 사(社)와 영업비밀 침해 관련으로 중재 중이었다.
중재 금액이 적지 않은 소송. 그래도 관련된 민사 이슈라든지 ICDR 절차 관련해서는 익숙한 최재민이었다.
그게 어려워서 이렇게 신경이 곤두선 건 아니었다.
해당 중재에 관련된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듀워트 사(社)의 연구원을 접촉해 영업비밀을 빼 왔다는 혐의로 의뢰인 회사의 전무가 현재 미국에서 FBI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로 판명 난다면 중재도 지게 되는 상황.
형사사건이 얽혀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까다로운데, 조사받는 전무가 다름 아닌 사장의 처외삼촌이었다. 유무죄를 떠나, 사장의 지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정황이었다.
절대 쉽지 않은 사건.
그래서 다른 주니어 파트너들이 맡기를 꺼린 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진짜 꺼린 이유는 ‘신선’ 이정후가 내려보낸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의뢰인 회사는 한국 회사였으나, 사장은 일본인이나 다름없는 재일교포였고. 이정후가 공들이고 있는 일본 대기업 회장 아들과 절친한 사람이었다.
잘 해내면 혁혁한 공을 세울 기회. 하지만, 자칫 핸들을 잘못하면 비난을 면치 못할 사건이었다.
백번 잘해도 한번 실수로 무너질 수 있는 게 로펌 변호사의 커리어. 하지만, 위로 올라가려면 남들이 꺼리는 이런 사건을 해야 하는 법이었다.
최재민은 자기가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런데···
“저희 사장님께서 방금 하신 말씀이 이해가 잘 안 가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FBI 조사 개시가 형사절차의 시작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아, 그러니까, 그게···.”
시작부터 약간씩 틀어지기 시작한 미팅의 분위기가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갔다.
의뢰인 법무팀과 논의한 바에 의하면, 오늘 미팅의 포커스는 ICDR에서 중재 중인 민사였다.
형사 관련된 부분은 혹시 이야기가 나올지 몰라 대비해 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최재민은 베테랑답게 변경된 상황에 적응하며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문제는 사장의 얼굴이 점점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변해간다는 점이었다.
그와 통역 비서가 법률 쪽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면도 있었지만, 언어에서 오는 장벽이 컸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그였기에, 통역이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자꾸 회의 맥락이 끊겼다. 본인도 그게 짜증이 났는지, 직접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더 어색해지는 분위기가 되었다.
“왓또 아에무 스피킹 이주 위 슈주 포카손···.”
“Pardon me. Can you say that again?”
아주 곤란해졌다. 최재민은 그의 발음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는 그였다.
“I am sorry. Could you say that one more time?”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쏘 이후위 기브업쁘 디앤도오 인슈아란스 프로시즈 앤도 포카손···.”
‘하아- 못 알아듣겠다.’
정수리 맺힌 땀방울이 목을 타고 내려와 와이셔츠 깃을 적셨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최재민은 어쩔 수 없이 사장 옆자리의 비서를 쳐다봤다. ‘정말 죄송하지만, 제발 당신네 사장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통역해 주세요’라는 무언의 요청이었다.
딱히 그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나, 잘잘못을 떠나, 미팅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그 책임은 파트너 변호사의 몫. 예고치 않게 많이 들이닥친 손님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회의실 크기처럼 말이다.
답답한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또다시 한번 말씀해달라고 하려는 순간, 회의 시작 전 필요하면 도하영 변호사한테 물을 테니, 조용히 하고 있으라고 타일렀던 한범상이 입을 열었다.
“FBIが召喚したからといって刑事手続きが始まったわけではないと主張してこそ、デュワートを相手にする関連仲裁手続きで私たちに有利です。 ただ、Director&Officer保険の観点からは刑事手続きが始まったと主張してこそ保険処理ができるので、困った状況なのです。”
(FBI가 소환했다고 형사절차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야 듀워트를 상대로 하는 관련 중재절차에서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다만, Director & Officer 보험 관점에서는 형사절차가 시작된 거라고 주장해야지만 보험 처리가 되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인 것입니다.)
‘!!’
순간 최재민의 동공이 커졌다.
눈치챈 사람은 없었지만, 도하영의 두 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재일교포 사장도.
“日本語ができるんですね。 ということは、もし私たちがD&O保険を放棄すれば、主張がしやすくなるということですか?”
(일본어가 가능하셨군요. 그렇다면, 만약 임원배상책임보험 상의 청구를 포기한다면, 중재절차에서 우리 측 주장이 쉬워진다는 말씀이신가요?)
사장은 범상을 향해 몸을 돌리며 물었다.
범상은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최 변호사님, 오 사장님께서 방금 임원배상책임보험상 청구를 본인들이 포기한다면, 중재절차에서 승소할 확률이 높아지는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뭐라고 대답할까요?”
옆자리 파트너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한다.
“응? 아, 그건 말이지···”
당황한 모습을 들킬 뻔했던 최재민은 재빨리 집중하고, 마치 이 모든 것이 계획이었던 것처럼 설명을 이어갔다.
‘후우—’
실수할 뻔했다.
사실 미팅 시작 전, 자기 말을 듣지 않고 과욕 부린 어쏘를 교육할 목적으로 미팅에 참석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랬으면 이런 반전도 없었겠지.
목에 흐른 땀은 나중에 닦으면 된다.
최재민은 범상을 신뢰한다. 좋아한다. 기대를 걸고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돌다리도 항시 두드려야 봐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가 그가 서 있는 파트너라는 자리였다.
만약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는 그때도 한범상에게 우려를 표할 것이다.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것이다.
그게 파트너의 직무이니까. 백 번 중에 한 번의 실수도 일어나지 않게 하도록.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그의 뇌리에 박혔다.
우려를 표할지언정, 불평할지언정, 이제 최재민이 하는 모든 중요한 케이스에는 첫 번째 선택은 한범상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삐걱거렸던 미팅은 그때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사흘 뒤,
호찌민 인민위원회 청사.
“Thưa Bộ trưởng, dường như có sự hiểu lầm về sự thật. Điều tôi nhớ lại từ lần trao đổi hồ sơ trước đây về những lời tuyên bố…”
(장관님, 사실관계에서 관해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클레임 관련하여 당사자들이 주고받은 기록들을 보면···)
김앤강의 또 다른 파트너 변호사도 최재민과 똑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한 변호사, 베트남어를 할 줄 알았어?’
김창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체될 것 같은 논쟁의 실마리가 보인다.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80화
공간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여러 나라에서 온 파트너들이 베트남에 모여 거대한 쇼핑몰을 짓기로 했다.
일본계 백화점, 홍콩 자본, 한국 건설 회사, 현지 컨설팅 회사, 은행 등등.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이 대부분 그러하듯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리먼 사태 이후 얼어붙었던 베트남 부동산 시장이 2010년 중반부터 다시 활기를 찾는 듯싶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코비드가 터진 것이었다.
건설은 중단됐다.
시작에 참여했던 싱가포르 자본은 발을 뺐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좌초될 뻔했었다.
다들 손을 놓고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만 바라보고 있어야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폐쇄 속에서도 각 회사의 로펌들은 분주했다. 이 처음 겪어보는 범국가적 초대형 전염병 유행을 법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책임분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 세계 판례들을 뒤지고 논리를 세웠다.
어려운 문제였다.
몇백 년 전 흑사병, 천연두 등 큰 팬데믹을 겪어본 지구였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니까.
그때는 이런 식의 민영 자본이 주도하는 다국적 프로젝트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다.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회사만 저 정도일 뿐이었지, 사실상 자재를 대는 회사들, 분양을 받은 회사들, 지연 등을 보장하는 보험회사들 등 수십 개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고, 그들은 각기 다른 프로젝트 파트너들과 계약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수십 개의 계약.
수 개의 준거법.
만약 프로젝트가 그대로 좌초되었다면 아마도 수십 개의 소송들이 체인 리액션처럼 각국에서 열렸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랬다면, 버틸 자본이 없는 작은 회사들은 망해나갔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조금 짜증이 날 법도 해요.”
베트남에 온 첫날, 파트너 변호사님들이 짐을 풀고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반탄쩐 변호사님이 설명해 주셨다.
기록에는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는 부분이었다.
“거의 없을 거예요. 대부분 오프-더-레코드로 진행되고 마지막에 합의 내용만 문서화됐으니까.”
호찌민 도심 대형 쇼핑몰 프로젝트는 민영 자본의 주도로 시작된 개발 프로젝트였다.
베트남 정부는 프로젝트의 당사자가 아니다. 서류 어디를 뒤져봐도 직접 사인을 하거나, 프로젝트 파트너로 명시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부의 허가·지원이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그건 비단 프로젝트의 장소가 베트남이어서는 아니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를 시행하려면 당연히 정부의 허가·지원이 필수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정부의 입김이 다른 자유주의 국가들보다는 좀 더 세게 작용했다는 점이었다.
“넓게 보면 그게 장점이었어요. 베트남 정부의 푸시가 없었으면 아마 코비드 터졌을 때,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니까.”
반탄쩐 변호사님은 변호사답게(?) ‘푸시(push, 압박)’라는 표현을 썼지만, 문맥과 그의 표정을 봤을 땐 ‘서포트(support, 지원)’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다른 나라 기업들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발을 빼지 못하도록 협박함과 동시에 세금 면제, 규제 완화 등 혜택을 아끼지 않았으니까.
그런 세부 사항들을 이해하고 나면, 왜 당사자도 아닌 베트남 정부가 이 민사 분쟁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소통의 문제이기도 한데, 그게 또 이렇게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면, 쉽지 않은 거니까요.”
그래서 프로젝트는 계속될 수 있었고, 끝내 완성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떠난 싱가포르 자본을 홍콩 자본이 대체했고, 한국의 은행도 들어왔다. 당장 소송이 시작될 수 있었던 하도급 업체들과의 문제들도 뒤로 미루어졌다.
일본계 백화점이 들어왔고, 각국의 브랜드들이 들어왔다.
초기 기획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당연히 그게 끝은 아니다.
로펌들이 다시 분주해질 시간.
2년 넘게 지속된 지연으로 인한 손해들과 그 지연 이자들,
기획과 달라진 모습으로 인해 떨어진 가치에 대한 책임,
계획 변경으로 인해 소모된 비용,
과거와 미래를 포함해 각자 다르게 얽혀있는 이해관계들.
모두가 책임을 분담 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논란이 없다.
그러나, 누가 얼마를 책임져야 하는 데에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당연히 다들 최소의 책임만을 지고 싶어 한다.
악인은 없다.
있다면 코비드겠지.
상황들도 다 다르다.
일본계 백화점은 앞으로 쇼핑몰 운영을 해야 하는 처지었기에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한국 건설 회사는 또 다른 베트남 건설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있어 정부와 척지고 싶지는 않고,
자본들은 언제나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처럼 조용히 있지만, 법적으로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양보하지 않을 생각이고,
현지 컨설팅사는 모두의 눈치를 보고,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돈을 낼 생각은 없고.
이러니 이 분쟁이 계속될 수밖에.
매일매일 이자가 쌓이는 은행이 승자일 수도.
그렇다고, 그들도 100% 안전한 위치는 아니다.
만약 이 분쟁이 해결되지 못한다면, 누구 하나에게 부채를 몰아버리고 파산시킬 수도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오랜 병마에 장사 없고, 백년 전쟁에 승자는 없는 법.
악인은 그럴 때 탄생한다.
그래서 보다 못한 베트남 정부가 중재를 해보려고 나선 것이었다.
문제는 그 방식이 섬세하지 못하다는 점.
다른 나라 정부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개입했을 것이다.
다만, 좀 더 섬세하고, 교활하게 했겠지.
어찌 됐든 명시적으로는 당사자도 아니고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정부가 이렇게 전면적으로 나타나는 데에 거부감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
“Thưa Bộ trưởng, dường như có sự hiểu lầm về sự thật. Điều tôi nhớ lại từ quá trình trao đổi hồ sơ trước đây về các khiếu nại là các bên đã đồng ý giải quyết vấn đề thông qua trọng tài tại SIAC…”
(장관님, 사실관계에서 관해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클레임 관련하여 당사자들이 주고받은 기록들을 보면 분쟁은 SIAC 중재를 통해 해결하게 되어 있고···)
우리, 그러니까 김앤강 파이낸스팀에서, 고안해 본 중재안은 매우 설득력 있는 해결 방안이었다.
다만, 워낙에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분쟁이 지연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커져있는 상태.
사흘간의 미팅에서 받은 내 느낌은 반 변호사님의 의견과 같았다.
소통의 문제였다.
신뢰의 문제였고.
각자 주장만 펼치느라 조정이 되지 않는 상황. 한 이슈에 대해 A와 B가 같은 의견을 내고 C가 다르면 그 이슈에 대해서만 의견 조정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다른 이슈가 개입됐다. 그러는 데에는 의도적일 때도 있고, 그저 사공이 많아서 그렇게 될 때도 있었다.
괜히 한 시간만 해도 충분한 미팅이 세 시간이 넘게 길어지는 게 아니었다.
법정이 아닌 곳에서 진행되는 조정이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뭣도 모르는 초보자의 만용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베트남 정부의 이 갑작스럽고도 권위적인 개입을 기회로 봤다.
판사 역할을 해줄 존재가 생긴 것이었으니까.
투박하고 섬세하지 못한 판사. 그런 존재를 잘 이용하면 이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분쟁의 실타래가 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법적 책임이 두려워서 아무도 하지 못하는 가위질을 해줄 수도 있고,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에서는 그들이 해줄 수 있는 혜택의 접착제를 발라줄 수도 있고.
그래서 회의 끝나고 그렇게 말씀드렸다.
안타깝게도 김창균 변호사님은 내 의견에 관심을 보이시면서도 조심스러워하셨다.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사건을 배당받은 3년차 어쏘니까.
내가 현실 세상의 몇 달의 시간과 맞먹는 기간을 아공간에서 기록을 봤다고 얘기할 수도 없고.
게다가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그런 상황에서 반탄쩐 변호사님께 내 의견이 이러하니 ‘베트남 정부에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부탁해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베트남어를 공부했다.
‘내 말을 좀 들어봐 주세요!’ 하려면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기회를 놓친다면 또다시 지지부진해지거나 분쟁이 심각해질 것 같았다.
“Xin hãy nhìn vào biểu đồ này chúng tôi đã chuẩn bị cho cuộc họp này…”
(자, 여러분, 이번 회의를 위해 저희가 준비한 이 차트를 한번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베트남어는 어려웠다.
대학 시절 들었던 중국어 강의가 시작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어도 다른 언어. 일만 시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원고를 준비해 외워버렸다.
여러 질문들을 예측하고 다르게 흘러갈 수 있는 토론의 방향들을 시나리오로 짜봤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오래된 분쟁이다 보니 기록을 꼼꼼히 보면 각자 다른 입장들은 명확했다.
그걸 어떻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선뜻 보이지 않았을 뿐.
적어도 그게 내가 느끼는 것이었고, 나름대로 준비해봤다.
그 외에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김창균 변호사님께서 내가 이 사건을 최재민 변호사님 사건 다음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가진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고 싶었다.
“Now, that is the end. Do you have any question? Please feel free to raise. Bây giờ, đó là kết thúc. Bạn co câu hỏi nao không? Xin vui lòng để hỏi. これで終わりです。質問はありますか?お気軽にお問い合わせください。”
(자, 여기까지 저희가 준비한 중재안입니다. 질문이 있으면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Mister ハン、利息請求についていくつか質問があります。それについて少し詳しく説明してもらえますか?”
(한 변호사님, 이자 청구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Of course, Mr. Takahashi. Yet, could you repeat that question in English? So that everyone can understand. Then, I will answer in English as I will say that same in my limited Vietnamese and Japanese, if that helps.”
(물론입니다, 타카하시상. 근데, 그전에 방금 하신 질문을 영어로 다시 해주시겠습니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이죠. 그러면, 제가 영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다음에 만약 필요하다면, 제 부족한 베트남어와 일본어 실력으로 통역해 보겠습니다.)
“Oh, please. Sure. I will speak in English. So, my question is…”
(오, 그래 주시지요. 물론입니다. 영어로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질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