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86)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86화(86/190)
【086화 – 연어 저키, 블루베리 스무디 그리고 삼전 왕국】
배가 고팠나 보다.
아공간에서 나오자마자, 피자 한 판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다.
이제 씻고 정장을 입는다.
밤 11시, 나는 또 출근한다.
“또 그렇게 바로 가야 하는 거야? 밥은?”
“방금 피자 먹었어.”
“너 근데 그런 거만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니?”
“아니라니까. 건강식을 훨씬 많이 먹는다니까. 내 얼굴을 봐, 엄마. 이게 인스턴트 음식만 먹고 다니는 삼십 대 남자의 얼굴 같아?”
엄마는 아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신기하다. 한 달이 넘게 맨날 야근에, 집에 들어왔다가는 곧장 나가는데, 피부가 좋다. 윤이 난다. 똘망똘망하다. 건강해 보인다.
한시름 놓인다.
“근데 요새 하고 있는 일들이 그렇게 많은 거야? 집에도 못 들어올 정도로?”
“들어왔잖아.”
“씻고 옷만 갈아입고 가니까 그렇지. 계속 그렇게 회사에 살다시피 해야 하는 거면 차라리 회사 근처에 원룸 같은 거를 구하는 게 낫겠다.”
“싫은데요. 나는 엄마랑 살 건데요.”
“얘, 나는 싫어. 얼른 너 좋다는 여자 만나서 결혼해.”
“아우- 그놈의 결혼. 이제 돈 좀 벌어서 효도 좀 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 못 내보내서 안달이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효도야.”
“옛날 사람.”
“그럼, 엄마가 옛날 사람이지 요새 사람이니? 회사에는 좋은 사람 없어?”
“없어.”
“진짜? 네가 못 보고 있는 건 아니고?”
“있어도 못해. 일하기도 바쁜데,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어.”
“얘, 드라마 보니까, 바쁜 와중에도 변호사들이고 검사들이고 다들 연애하더라, 뭐.”
“그건 드라마니까 그렇죠, 어머니.”
“드라마가 다 현실이지 뭐. 뭐 다를 거 있는 줄 아니? 남녀가 같이 일하다 보면 정도 들고, 연애도 하고 그런 거지.”
“우리 어머니는 장사하기도 바쁘신 분이 드라마 보실 시간이 어디 있어서 변호사 나오는 드라마를 다 보셨대.”
“가게에 TV 있잖아. 장사하기 바빠도 드라마 볼 시간 있고, 일하기 바빠도 연애할 시간 있는 거야. 요새 그거 재미있더라, <하트브레이커 로펌>. 너도 거기 나오는 여자 변호사 같은 아가씨랑 연애하면 좋겠구먼. 정말 너희 회사엔 없어?”
엄마 얼굴 보려고 일부러 이 시간에 들어온 건데, 또 잔소리시다.
근데 그게 좋다.
몇 주씩, 때로는 심지어 몇 달씩 아공간에 있다가 돌아왔을 때 처음 듣는 소리가 엄마가 잔소리일 때.
이곳이 진짜 내가 존재해야 하는 세상임을 일깨워 준다.
“갔다 올게.”
“조심해서 다녀와. 그럼 또 아침에 오는 거야?”
“응.”
“아침에 오면 조금이라도 자고 가는 거야? 그 바쁜 일은 언제쯤 끝나는 거니?”
“바빴다가도 또 안 바빠지는 게 일이야. 나 갈게.”
“밥 잘 챙겨 먹고.”
“응.”
“일하다가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좀 하고.”
“네에-”
“커피 같은 거 많이 마시지 말고.”
“엄마!”
“왜?”
“사랑해-”
영화 <인셉션>의 토템처럼.
-*-
다음 날 아침,
한남동, 도하영의 집.
봄방학이라서 한국에 잠깐 나온 도하석은 냉장고를 뒤지다 말고 문득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있어야 할 게 없다.
“엄마.”
“응?”
“나한테 누나가 있지 않았어?”
“얘가 또 왜 이래?”
“누나 시집갔어?”
“제발 좀 갔으면 좋겠다.”
“그럼, 집 나갔어? 맨날 나가 살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나간 거야?”
“나가긴 어딜 나가. 네 아빠가 그걸 허락하겠니.”
“근데 왜 안 보이는 거지?”
한국에 나온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마주친 적이 없다. 언제나 바쁜 변호사 누나였지만, 그래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스치는데, 이번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니 누나 요새 바빠.”
“로펌 사건 혼자 다 해? 일이 많아도 그렇지. 이렇게나 집에 안 들어온다고?”
“일이 많대. 새벽에 들어왔다가 벌써 나갔어.”
“유별나긴. 그래봤자, 아직 어쏘잖아. 작은아버지도 저렇게까지 일하시지는 않잖아?”
“원래 그 연차에 일이 제일 많은 법이야. 의사들도 봐. 레지던트들이 제일 피곤하다잖아.”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 집에 의사도 없는데.”
“드라마 보면 다 알지.”
“아무튼 어머니들이란. 이래서 주입식 교육이 무서운 거야. 엄마는 유튜브 보지 마.”
하석은 냉장고에서 보랏빛 음료를 꺼냈다.
뭔지 모르겠지만 맛있게 생겼다.
뚜껑을 열고 맛을 보려고 하는데···
“어머, 얘! 너, 그거 하영이한테 허락받고 먹는 거니?”
“뭔데, 누나한테 허락까지 받아야 하는 건데?”
“그거 니 누나가 만든 블루베리 스무디야.”
“블루베리 스무디? 그 인간이 만들었다고?”
“힘든가 보기는 하더라, 제 손으로 라면도 안 끓여 먹는 애가 블루베리가 눈에 좋다면서 사 가지고 와서는 직접 씻고 갈고 설탕에 레몬즙까지 넣어서 만들어 싸 갔어. 요새 건강에 엄청 신경 써. 지난번에는 유자차도 직접 만들어 갔어.”
도하영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난리가 난다.
석달 치 사이드 용돈이 날아갈 수도 있다.
하석은 슬며시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도로 넣는다.
쩝, 맛있어 보였는데··· 누나가 만든 블루베리 스무디 한잔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한 동생은 괜히 심통을 부려본다.
“누나도 이제 노안이 올 때가 됐지. 삼십 대잖아.”
“얘!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서른하나 밖에 안 된 애한테.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서른하나야? 둘 아니었어?”
“하나야, 얘! 생일 안 지났잖아.”
“둘이나 하나나. 이젠 삼십 대지. 몇 개월 안 남았네.”
“너 왜 그래, 진짜. 요새는 다 삼십 넘어서 시집가. 엄마 친구 딸도 서른다섯에 갔는데, 신부가 아직 젊고 예쁘기만 하더라, 뭐.”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신 거겠죠.”
“얘!”
짝!
결국 매를 번다.
“아! 아파.”
“지 누나를 두고는 꼭 말을 그렇게 해야겠니? 일이 많아도 요새 얼굴에서 빛이 나고 얼마나 고운데.”
“엄마 눈에나 그러겠지.”
“아니야, 얘. 맨날 어두운색 정장만 입고 다니던 애가 요새는 밝은 옷도 입고 다녀.”
“진짜?”
“회색이랑 하얀색이지만···.”
“그래봤자. 무채색이네.”
“아니라니까. 달라졌다니까.”
“그러니까 달라져봤자, 도하영이 도하영···.”
순간 눈썹이 빼죽 올라가는 도하석.
냉장고 안 블루베리 스무디를 본다.
라면도 제 손으로 끓여 먹지 않는 여자가 블루베리를 직접 사다가 스무디를 만들었다.
입는 옷들이 달라졌단다. 그래봤자, 같은 무채색이기는 해도.
그리고 얼굴에서 빛까지 난다고?
“혹시 누나 연애해?”
누나와 최대한 멀리 지내고 싶지만, 누나를 잘 아는 동생이다.
-*-
김앤강,
센터게이트빌딩.
아침 일찍 출근한 도하영은 싸 온 블루베리 스무디를 일단 탕비실 냉장고에 넣어 두어야 할지, 아니면 당장 가서 주는 게 나을지 고민 중이다.
특허팀에 용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출근하자마자 15층 소회의실을 찾아가는 건 아무래도 용기나 나질 않는다.
그래도 아침 빈속에 먹으면 더 맛있을 텐데···
지난번에 유자차를 가지고 왔을 때처럼 탕비실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이원으로 사무실을 쓰고 있지 않을 때였다.
한범상 변호사는 한 달이 넘게 국제중재팀 층과 특허팀 층을 오가면서 일을 하고 있다.
거의 매일 밤을 새우는 것 같다.
그런데도 짜증 한번 내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영이 보기엔 그가 이 로펌에서 가장 강인한 남자였다.
똑똑-
“변호사님, 혹시 지금 J104-1120 사건 기록 보고 계시는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망설이던 사이, 어느덧 비서들이 출근했다.
“네, 제가 보고 있었어요.”
“최 변호사님이 찾으셔서요. 가지고 가도 될까요?”
“네, 잠시만요.”
하영은 책상 위를 살폈다.
근데, 없다. 분명 어젯밤 퇴근 전에 보고 그대로 두고 갔는데.
“어, 어디 갔지?”
“없으세요?”
“그러게요. 여기 두고 퇴근한 것 같은데.”
“그래요? 알겠습니다. 제가 그러면 파일 장을 한 번 더 찾아볼게요.”
“죄송해요. 저도 다시 보고 있으면 최 변호사님께 제가 직접 가져다드릴게요.”
“네.”
비서가 나가자, 하영은 책상을 다시 뒤져 본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분명히 여기 놔두고 퇴근한 거 같은데, 누가 치웠지?’
아!
‘혹시?!’
두 눈이 동그래진 하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블루베리 스무디를 챙겼다.
15층 소회의실에 갈 구실이 생겼다.
범상이 안 가지고 갔어도 상관없다. J104-1120 사건을 배당받은 또 다른 변호사가 한범상인 거 하나면 충분하다.
-*-
세계 경제가 안 좋아졌다.
지구 이곳저곳에서 전쟁 중이다.
자국중심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
각국의 정세가 변하고 있고, 새로운 법들이 개정되고 있다.
그런 와중, 전기차, 인공 지능, 로봇 산업 등, 제4차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코앞에 두고 있다.
역대급 호황을 맞고 있는 반도체 시장의 플레이어들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전략을 제대로 짜지 못하면 주도권을 내주고 말게 될 것이다.
삼전 전략실 상무 오정진은 법무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실 변호사들 자체를 그리 신임하지 않는다.
변호사들이란 무슨 일을 하기도 전에 면책조항부터 쓰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습성이 회사 간의 계약을 검토할 때만 나오면 좋으련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튀어나온다.
리스크가 있는 일은 외부 로펌에 맡겨 버리고, 그렇다고 법률적인 부분에서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절대 자기 책임 밖의 일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오정진은 특히나 법무팀 팀장 김종문 이사가 싫다.
정치인이다.
“듣자 하니까, 강태산 전 대표변호사가 꽂은 낙하산이라고··· 국내 무슨 국제로스쿨을 나왔다고 하던데···.”
삼전 전략팀 오정진의 방.
김앤강과의 추가 전략 미팅 일정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더니, 대뜸 찾아와서는 관심에도 없는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법무팀 김종문 이사. 오정진은 그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반문했다. 삼전이 반도체 전쟁에서 승자가 되려면 이런 인간들부터 쳐내야 한다.
“그래서요?”
물론 쉽지는 않을 거다.
여기는 삼전 왕국.
왕이 아직 살아있는 지금, 왕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 그라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법무팀 김종문 이사도 그중 하나였다.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87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봄날의 햇살 같은…
법은 복잡하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건, 우리네 인생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
삼전 그룹 본사, 전략팀 회의실.
한범상의 설명을 듣고 있는 양호락의 표정이 자꾸만 어두워진다.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 NEC가 뉴욕대 연구소를 상대로 제기하고 있는 이의의 중점은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 설계 장착 시 요구되는 감광액, 포토레지스트 관련으로, 현재 차세대 칩이라고 불리는 3나노미터 이하 파운드리 공정에 필수적인···.”
못 알아듣겠다.
법적인 부분은 그나마 이해가 가는데, 기술적인 부분은 도저히···.
저놈은 도대체 언제 저런 전문적인 부분을 공부한 것인가.
삼전 법무팀의 요청으로 그리고 이정후의 지시로 전략 회의에 참석한 양호락은 심기가 불편했다.
감독을 하러 온 것인데,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다.
“한 변호사님, NEC 측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기존 EUV에 사용되는 화학증폭형 포토레지트가 아니라, 금속산화물질인 인오가닉 폴리머에 기반한 소재인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 삼전이 인프리트 사와···.”
“네, 맞습니다. 다만, 삼전이 특허 출원을 먼저 한 무기화합물 포토레지스트는 NEC 측의 특허와는 달리···.”
양호락은 기회를 엿봤다. 전략 회의인 만큼 기술적인 부분은 나중에 실무진들과 상의하고, 소송 전략적인 부분에 집중하자고 하려 했다.
그러나,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전략팀 오정진 상무가 기술적인 부분 관련 설명에도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회의 내내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변호사님, 그러면, 포토레지스트 분쟁 관련해서 승소율은 어떻게 보나요?”
“미국 피셔 앤드 리처드슨 IP 전문 로펌의 조언에 따르면, 8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김앤강 특허팀도 그 수치에 동의하는 거고요?”
“네, 상무님.”
법률적인 부분에서도 특허팀의 준비는 빈틈이 없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회의에서 양호락이 한 말이라고는, 시작 때 인사를 제외하고,
“그럼,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정리하죠. 회의 때 드린 질문들은 서면으로 다시 보내겠습니다. 의견 보내주시면 추후 미팅 잡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양 변호사님, 혹시 끝내기 전에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가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