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87)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87화(87/190)
【087화 –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한 줄기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랑은 피어오른다】
센터게이트빌딩 19층,
김앤강 기업법무팀.
사무실로 돌아온 양호락은 참고 있었던 언짢음을 드러냈다. 미간 위로 이마에 짙은 주름이 파인다.
“흠-”
내뱉은 신음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러한 의문에는 이정후의 지시에 대한 불만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부분은 특허팀과 한범상에 대한 감탄이었다.
‘놀랐다.’
사전 내부 회의 때는 몰랐다.
특허팀 시니어 파트너 유경민으로부터 브리핑을 받는 형식이었기에, 제법 넓게 보고 접근한 전략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었다.
그런데, 막상 삼전 전략팀의 반응을 보니, 흠칫했다.
법률은 서비스업이다. 소송에서 이기고, 분쟁을 처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의뢰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의뢰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결해 주는 것이 최상인데, 특허팀은 삼전 전략팀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읽은 듯싶었다.
‘어쩐다.’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짚었으니, 그가 할 일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정후와 특허분쟁팀 시니어 파트너 유경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아마도 유경민이 이정후를 패싱하고 직접 삼전에게 의견을 전달했겠지. 그것이 오늘 같은 회의에서든, 아니면 몰래 뒤로든. 뭐가 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패싱이 중요한 거지.
‘그래서 나를 감독관으로 투입한 것이겠지.’
그렇다고 특허팀 일을 훼방 놓으라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런 멍청한 지시를 내리는 선배였다면 애초에 따르지도 않았다.
결국 특허팀으로부터 주도권을 박탈하라는 뜻인데, 오늘 발표를 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늘 미팅에서 느낀 바에 의하면, 한범상만큼 전장(戰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전략팀 오정진 상무 정도밖에 없었다.
당연히 삼전 R&D 팀장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있고, 법무팀 이사가 진행 중인 다른 소송들의 현 상황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들 모두와 질문을 주고받고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는데, 그중 한 명이 한범상이었다.
황당한 장면이었다.
3년도 안 된 어쏘가 중역들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간혹 유경민 쪽을 바라보기는 했어도, 그건 시니어 파트너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것이었을 뿐, 대답들은 애초에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처럼 술술 나왔다.
양호락은 고민스러웠다.
적어도 그가 보기엔, 특허팀에서 주도권을 빼앗아 오려면, 한범상을 데리고 오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흠?.”
신음 소리가 깊어질 뿐이다.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변호사님, 삼전 법무팀 김종문 이사님이신데요. 연결할까요?
다행인 건, 그와 비슷한 종류의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삼전에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연결해.”
-네.
-*-
센터게이트빌딩 12층,
김앤강 국제중재팀.
범상은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 빌딩 맞은편에 있는 가게에서 블루베리 스무디 두 잔을 샀다.
똑똑-
“회의 잘하셨어요?”
방 주인 하영은 범상을 반갑게 맞이했다.
“뭐 그럭저럭 잘한 것 같아요.”
“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잘했겠죠?”
“그건 결과가 나와 봐야 말할 수 있는 거라서···아, 그리고, 이거.”
범상은 들고 있던 음료 중 하나를 그녀의 책상 위에 놓았다.
“이거 뭐예요?”
“블루베리 스무디요. 저번에 주신 거에 대한 보답.”
“아, 고맙습니다.”
“근데, 그때 주신 것만큼 맛있지는 않네요.”
“진짜요?!”
“그건 어디서 사신 거예요? 그때 주신 컵에 로고가 없길래, 빌딩 맞은편에 있는 아주머니가 하시는 가게에서 파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하영은 직접 만들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그거 저희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파는 거였어요.”
“아- 그런 거구나. 진짜 맛있던데. 블루베리도 엄청 많이 들어있고. 나중에 메신저로 알려주세요.”
“블루베리 스무디 먹으러 집까지 찾아오시게요?”
“찾아가고 싶을 만큼 맛있었어요.”
찾아오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카페는 그녀의 집이었으니까.
“나중에 또 사다드릴게요.”
“그럴 순 없죠.”
“왜요?”
“네?”
“찾아오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면서요.”
“아, 염치가 있죠. 일찍 출근하시는 분한테 그런 거 부탁드리는 건 민폐죠.”
“아닌데. 제 거 살 때 한잔 더 사는 거라서 괜찮은데.”
“아···그러면, 가끔 생각나실 때, 사주시면, 맛있게 먹겠습니다. 대신, 제가 점심 사겠습니다. 아, 아니다. 그때 그 호텔 지하의 바에서 칵테일 살게요. 그것도 맛있었는데.”
“콜. 좋아요.”
“그럼, 오늘도 화이팅.”
염치는 있지만 눈치는 없는 남자는 방금 두 눈을 반짝이며 좋다고 대답한 여자에게 엄지를 추켜세우고는 그냥 돌아서려 한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잡았다.
“한 변호사님은 오늘 바쁘세요?”
“아니요. 오늘은 준비할 회의도 없고 해서 집에 일찍 가려고요.”
“아···.”
어색한 침묵.
99%까지 잡아당긴 하영은 범상이 남은 1%는 당겨주기를 기다렸다.
“아!!! 그럼, 오늘 하실래요?”
다행히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지는 않다.
“전 오늘 좋은데.”
“좋아요, 좋아요. 그럼, 한 아홉 시쯤 어떠세요?”
“네. 좋아요.”
이미 너무 스며들어 버렸을까,
하영은 약속이 잡혔다는 사실에 그저 기쁠 뿐이다.
···
그날 저녁,
범상과 하영은 광화문 포시즌 호텔 찰스 H. 바를 찾았다.
긴장했던 미팅이 끝나서였을까, 평소보다 말이 많은 범상이었다.
하영은 오늘 약속 잡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때보다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삼전 법무팀 하고의 미팅은 어땠어요? 또 다르죠?”
“그렇더라고요. 제가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도 변호사님도 삼전 법무팀하고 회의하신 적 있어요?”
“아니요. 없는데, 많이 들었어요. 동기 중 몇 명이 삼전 법무팀에서 일하기도 하고.”
“아- 삼전 법무팀도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던데.”
대한민국의 최고 로펌이 김앤강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최대라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한다.
국내 및 외국 포함 소속 변호사 수 대략 1,000명.
그런데, 대한민국의 최대 로펌보다 더 많은 변호사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이 있다.
삼전 그룹.
본사 법무팀에만 6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근무하고 있고, 계열사 법무팀들 전부 포함하면 1,000명이 넘어간다. 법무팀이 아닌 팀에서 일하는 변호사 자격증 보유자들까지 포함하면 1,200명이 넘어간다.
“계열사면 몰라도 삼전 본사 법무팀은 웬만한 대형 로펌 들어가는 거만큼 어려울걸요. 전략팀 변호사 자리 같은 데는 더 들어가기 어렵다고 들었고요.”
“전략팀 변호사는 따로 뽑나요?”
“법무팀에서 차출하는 방식으로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서, 같은 법무팀인데도 그분들이 따로 앉으셨구나.”
오전 회의 때 삼전 측에는 두 무리의 변호사들이 참석했었다.
건네받은 명함에는 둘 다 법무팀이라고 쓰여있었는데, 두 무리는 회의실 책상에 떨어져 앉았다.
회의에서 범상에게 그런 부분까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영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따로 앉았다고요? 같은 법무팀인데?”
“네. 오늘 회의에 삼전 측 변호사들이 몇 분 참석했는데, 법무팀 김종문 이사님 측 변호사님들하고 전략팀 홍 상무님 측 변호사님들하고 따로 앉으시더라고요.”
“역시 알력 다툼 같은 게 있다는 게 사실인가 보네요.”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두 팀이 질문하는 게 조금 다르기는 했어요.”
“삼전에 입사한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오면, 삼전도 장난 아닌 것 같더라고요.”
“뭐가요?”
“사내 정치.”
“아-”
“뭐, 우리도 만만치 않지만.”
“우리도 심한가요?”
“네? 안 심해요?”
“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다른 데는 안 다녀봐서···.”
“저도 잘은 모르지만, 선배 어쏘들 말하는 거 들어보면 우리도 꽤 심한 거 같던데.”
“아-”
“왠지 한 변호사님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있겠죠. 근데, 어디나 정치는 있으니까···.”
대답하는 범상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그런 거에 휘말리면 골치 아프잖아요. 그냥 일만 하면 좋겠는데. 괜히 알력 다툼에 양쪽 눈치 봐야 하면.”
“그렇죠.”
하영은 그 표정의 의미를 캐치할 수 없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한 변호사님, 배 안 고프세요?”
“배요? 살짝 고프기는 한데···.”
“2차 안 가실래요?”
이미 열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좀 더 같이 있고 싶다.
“그럴까요?”
“2차는 제가 살게요.”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No. 제가 살 거예요. 그런데요, 한 변호사님, 그 블루베리 스무디가 진짜 맛있었어요?”
하영은 사랑에 빠졌다.
“네.”
-*-
같은 시각,
강남의 한 식당.
“하물며 수년간 머리 맞대고 싸워서 나온 법률도 시행하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데, 전략은 오죽하겠습니까. 실제 실행해 보지 않는 한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양호락은 삼전 법무팀 이사 김종문을 만났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오늘 미팅에서 나온 전략에 대해 우리 법무팀은 전략팀하고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양호락은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88화
정략가들
완벽한 전략은 없다.
그리고 그런 데에는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점이 늘 한몫한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가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
덜컥.
“윤 변호사, 그 노이에 프로젝트 말이야. 영업팀에 끌려···.”
법무팀 회의실,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전략팀 오정진 상무였다.
누가 봐도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 일순간에 회의실 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오 상무님, 무슨 일입니까?”
법무팀 김종문 이사는 모르는 척 차분하게 용무를 물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오 상무가 왜 그런 얼굴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텍사스 IP 소송 관련해서 TSPC 사(社)와 합의하는 안에 결재를 안 하시겠다고 했다고요?”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일부러 사인을 안 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웃으며 대답한 김종문은 회의실에 있던 법무팀 변호사들을 먼저 내보냈다.
“윤 변호사, 나머지 안건들은 좀 이따가 다시 하지. 오 상무님, 잠깐 앉으실까요?”
법무팀 변호사들이 나간 후, 오정진이 테이블 맞은편에 앉자, 김종문은 좀 전에 멈췄던 말을 이어갔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다.
“텍사스 IP 분쟁 관련해서 TSPC 사(社)와 지금에 이 시점에 합의하는 건 조금 성급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게 저희 법무팀 검토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