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95)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95화(95/190)
【095화 – 인연이란】
광화문,
센터게이트빌딩 12층,
국제중재팀 사무실.
아람코 미팅 후 범상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최재민은 시니어 파트너 성일용의 방을 찾았다.
“이웃이었다고?”
“네.”
“무슨 그런···한 변호사가 베트남에 아파트가 있었어?”
“연말에 파이낸스팀 사건 관련해서 출장 갔을 때, 반탄쩐 변호사한테 임대했답니다.”
“반 변호사? 베트남 반 변호사? 반 변호사한테 임대를? 왜?”
“그거까지는 저도 아직···자주 갈 것 같아서라고는 들었는데···.”
질문들이 매우 1차원적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어쏘 변호사가 출장 가서 베트남에 아파트를 임대했다는 사실도 의아한데, 거기 아파트에 같이 살았던 이웃이 아람코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라는 건 더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설사 그 모든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 인연으로 한범상을 찾는다는 건 더 납득이 가질 않았다.
성일용의 다음 질문도 1차원적이었다.
“정말 그게 다야? 아까 미팅에서 보니까 둘이 꽤 친해 보이던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고?”
“아니랍니다.”
“허-”
헛웃음이 난다.
누구는 선물에, 골프에 온갖 로비를 다 해서 일을 따오려고 해도 안 되는 판국에, 누구는 같은 아파트에서 오고 가다가 만났다는 이유로 일을 주고.
게다가, 하필이면 오가다 만난 사람이 아람코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이고.
“될 놈은 된 다 이건 가···.”
“네?”
“아니야, 아무것도. 그래서, 한 변호사는 아까 그 친구가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인 사실도 몰랐다고?”
“네. 미국 변호사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 그때는 빈슨 앤드 엘킨스라는 미국 로펌 소속이라고 들었다고 합니다.”
“빈슨 앤드 엘킨스? 빈슨 앤드 엘킨스면···오일 에너지 전문이잖아. 텍사스 베이스.”
“네. 찾아보니까, 몇 개월 전까지는 정말 빈슨 앤드 엘킨스에 근무했었더라고요. 아람코에 스카우트된 것은 최근이고요.”
설명을 들어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잘 모르겠다.
무슨 ‘썰’을 듣는 것 같다. 비행기 옆좌석에 우연히 같이 탄 사람이 알고 보니 테슬라 법무팀 총괄책임자 같은.
시니어 파트너 변호사가 말을 잇지 못하자, 최재민은 조심스럽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할까요?”
최재민이 그렇게 묻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무실 정치와 권력 구조에 빠삭한 최재민.
이정후가 아람코에 관심이 많고 공을 들인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 질문이었다.
“어떡하기는 뭘 어떡해? 당연히 수임해야지.”
“아람코는 케이오일 윤 부사장님 통해서 이정후 변호사님이···.”
“그건 케이오일 관련 일들이고. 우리를 찾아온 건 베트남에 건설하는 정유공장 자문 건 때문이잖아.”
“네, 그렇죠.”
“한범상 변호사의 인볼브먼트(involvement: 참여 정도)는 내가 김창균 변호사랑 이야기해서 정리할 테니까. 최 변호사는 한 변호사한테 얘기 잘 해둬.”
시니어 파트너가 딱 잘라 말했다.
더 길게 물어볼 필요 없다.
최재민은 시니어 파트너의 뜻을 알아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최 변호사.”
“네, 변호사님.”
“아람코야.”
“네.”
“신경 쓰라고.”
성일용은 마음을 먹었다.
이번 기회는 무조건 잡는다.
‘신선’과 싸워야 할 일이 생긴다고 해도.
“예, 알겠습니다.”
-*-
사직빌딩 9층,
이정후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 했다.
아람코 내부 사정에 대해 제일 잘 알 법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띠리링- 띠리링-
-변호사님, 윤 부사장님 연결되었습니다.
“연결해.”
-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찰나의 정적 후, 수화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배님.
윤항준,
동향 출신이자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를 나온 후배,
현재 주식회사 K-Oil의 부사장.
그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 데에는 알게 모르게 이정후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었다.
“윤 부사장,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야?”
이정후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진다.
윤항준은 곧바로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 마디 나세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본 것들을 전달했다.
-텍사스 빈슨 앤드 엘킨스에서 미국 내 사우디 국부펀드를 관리하던 친구라고 합니다.
“빈슨 앤드 엘킨스면 미국 오일·에너지 쪽을 전문하는 로펌? 그럼, 왕족인가?”
-왕족은 아니고, 아람코 이사회장이랑 꽤 친분이 깊은 것 같습니다.
“아람코 이사회장이면 이브라힘 알 루마이얀?”
-네. 이브라힘 이사장이 꽤 오랫동안 구애해서 지난달 아람코에 입사했다고 하네요.
이브라힘 알 루마이얀,
사우디 아람코 이사회의 회장이자, 사우디 국부펀드 총재,
사우디 장관회의의 사무국장, 사우디 국가 사안 결정 기구 회장, 영국 뉴캐슬 FC 회장, 일본 소프트뱅크 이사회 멤버, 미국 우버 이사회 멤버······
굵직굵직한 타이틀만 나열해도 A4 용지가 모자라는 그는 빈살만 왕세자의 ‘금고지기’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꽤 오랫동안 구애해서 입사한 남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실력은 있는 친구인가 보네.”
-네, 옥스퍼드 법대 졸업했고, 하버드 로스쿨 학위랑 MBA 학위 둘 다 가지고 있다는 거 보면, 그냥 연줄로 들어간 자리는 아닌 듯싶어요.
“옥스퍼드대를 나왔으면 영국 출신?”
-그런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모두 영국에서 다녔다고.
“그런데, 왕족이 아니라고? 방계도?”
-평범한 집안 출신이라고 하는데, 개인 집안 사정까지 꼬치꼬치 물어볼 수 없어서···일단 왕족이 아니라는 건 확실한 듯싶습니다.
“그러면 알 루마이얀 이사장하고 어떻게 아는 사이인데?”
-알 루마이얀 이사장이랑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동문이라고 합니다. 빈슨 앤드 엘킨스 로펌에 조인하기 전에 MG 파이낸셜에서 근무했을 때 알게 되었는데, 워낙 똑똑한 친구라서 알 루마이얀 이사장이 미국에만 가면 찾았던 사람이래요. 몇 년간 스카우트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에 조인한 거라고 합니다.
‘그런 인재가 왜 한범상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아리송해질 뿐이다. 도무지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겠다.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 마디 나세르가 김앤강을 연락해 온 것과 관련해서 이정후는 K-오일 부사장 윤항준에게 연락을 취했다.
마디 나세르가 어떤 인물인지를 물어봤다.
다만, 그가 한범상을 찾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그게 가장 궁금한 점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그걸 물을 순 없었다.
친한 사이기는 했어도 윤항준은 외부 사람.
밑에 어쏘 변호사가 아람코 담당자랑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를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외부 사람에게 확인하는 듯한 꼴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정후가 다음 질문을 고민하고 있는 사이, 그 해답의 힌트를 윤항준이 먼저 준다.
-그 친구가 이번에 베트남 호찌민에 정유공장 건설 투자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한 6개월 정도 호찌민에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베트남?’
-아무튼 미국 부시 가문하고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 같고, 미국 정계에도 닿아있는 인물들이 꽤 있는 듯 해요.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새로 취임한 총괄자로 인사를 하러 온 거고, 앞으로 볼 기회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베트남이라는 말에 이정후는 궁금해하던 연결고리를 찾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스러운 점들이 많다.
“알았어. 알아보느라 수고했네.”
-그 친구도 참 김앤강에 연락할 거면 저나 김 이사한테 한번 묻기라도 하지. 그래도 뭐 잘됐습니다, 김앤강에 연락했으니.
윤항준은 마디 나세르가 김앤강에 전화해 한범상을 찾았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아쉬운 건 자기를 통해서 연락을 취하지 않은 것뿐.
“그래, 그럼. 자네가 그 친구랑 골프 자리나 한번 마련해. 연락을 먼저 해온 건 해온 거지만, 그래도 또 그게 아니니까.”
-아, 안 그래도, 말을 꺼냈는데, 골프는 다음에 오면 치자고 하네요.
“왜? 골프를 싫어하나?”
-그런 거는 아니고, 그냥 이번에는 일정이 조금 빠듯해서, 나중에 치자고···다음에 오면 그때 다시 한번 약속을 잡아보겠습니다.
“그래? 흠···어쩔 수 없지. 그래, 알았어.”
-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딸깍.
통화를 마친 이정후는 머릿속이 복잡한 나머지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출장 몇 번 갔을 뿐이고 상대 역시 고작 6개월 살았을 뿐인데, 일을 맡길 정도라고?’
그가 가진 상식으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이정후는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오늘 아람코 담당자와 미팅을 한다고 했는데···.’
시간을 보니, 끝났을 듯싶다.
이정후는 전화기의 훅 스위치 눌렀다.
‘성일용을 불러 물어볼까? 아니면, 베트남에서 돌아왔다던데, 한범상이 그놈을 불러 직접 물어볼까? 누구를 부르는 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똑똑-
노크 소리가 그를 방해했다.
“누구야?”
“변호사님.”
베트남 관련 일들을 두고 민감한 또 다른 시니어 파트너.
“경 변호사가 무슨 일이야?”
파이낸스팀 경수찬이었다.
“다름이 아니라···변호사님, 혹시 사우디 아람코가 베트남에 정유공장 건설 프로젝트 자문 관련해서 저희한테 연락을 취했다는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잘 왔어. 안 그래도 지금 경 변호사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거기 좀 앉지.”
“그게 사실인가요? 아람코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가 한범상 변호사를 찾았다는 게?”
생각보다 빠르게 사무실에 말이 돌기 시작했다.
이정후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잡혔다.
-*-
흔히들 그런 말을 한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또 만날지 모르는 것이라고.
그것은 비단 남녀 사이에만 통하는 진리가 아니다.
반년 전 범상은 마디 앤드류 나세르를 임대한 호찌민 아파트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눈인사 정도만 했을 뿐인데, 공교롭게도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또 마주치게 되면서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우연히 겹치다가 한번은 근처 바(bar)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서로가 미국 변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베트남에 오게 된 이유도 알게 되었다.
만남은 그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마디 앤드류가 아람코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라는 사실에 범상 역시 놀랐고, 서로에 대한 인상은 좋았었지만, 몇 번 마주쳤다고 자신을 찾았다는 점에 의아했다.
“뭐라고? 설마 내가 그것만 가지고 너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하하하. 당연히 아니지. 수십억 달러 프로젝트의 로펌을 선정하는 일이야. 내가 백그라운드 체크도 안 했을까 봐?”
“나도 그래서 의아해서 물어본 거야.”
“베트남 정부 관련 부처 인사들이 네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 특히 응우옌 건설부 차관이. 해외 로펌을 쓸 거면 김앤강을 쓰라고 하면서, 네 이름을 콕 짚어 말했어.”
“아- 그래서···.”
“아니. 그것만이었으면 안 찾았지. 물론 베트남 정부랑 의사소통이 잘 돼야 하니까, 베트남 정부가 선호하는 로펌을 선임하는 것이 장점이기는 해도, 동시에 리스크가 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범상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 마디 앤드류 나세르는 자신도 이 상황이 매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지? 이런 일이 실제 벌어지는 게.”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빈슨 앤드 엘킨스를 조인하기 전에 일했던 곳이 어딘 줄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MG 파이낸셜.”
“아, 그랬어? 근데?”
“MG 파이낸셜에서 일할 때, 내 상사가 누구였는지 맞혀볼 테야?”
“모르지. 나는 네가 아람코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라는 사실도 오늘 알았는데.”
재미있는 수수께끼의 정답을 말해주기 전엔 꼭 뜸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잠시 말을 멈췄던 앤드류 나세르는 그 상황을 몇 초간 더 즐긴 후 범상에게 대답해 주었다.
“토마스 뮐러.”
“응? 토마스 뮐러? 설마, 그 미스터 뮐러?”
“그래, 그 미스터 뮐러. 현 MG 제너럴 카운슬.”
미국 자동차 회사 MG의 제너럴 카운슬(General Counsel: 법무 총괄이사) 토마스 뮐러,
국제중재팀 미시간 첫 해외 출장에서 만났고,
송도 CC에서 첫 홀인원을 했을 때 같이 골프를 쳤던.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비롭다.
범상의 아공간처럼.
모두 연결되어 있다.
숨겨진 문만 찾으면 되는.
신선대전 II
“그나저나 해외에 나가 있었던 거 아니었어? 휴가 중이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설마 이번 미팅 때문에 들어온 거야?”
“아람코의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가 찾는다는데 어떡해? 들어와야지.”
“하하하- 김앤강 일 처리가 벌써부터 마음에 들려고 하는데. 하하하.”
“더 마음에 들 거야.”
인연의 시작이 지극히 사적이어서 그런가, 앤드류와는 수월한 부분이 있었다.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점도 도움이 됐다.
여태껏 상대했던 클라이언트들과는 달리 대화가 편했다.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럼 다시 나갈 거야?”
“고민 중이야. 들어왔는데, 굳이 또 남은 휴가 기간 채우겠다고 비행기 타고 나가는 게 정말 현명한 건지 모르겠네.”
“어디에 있었는데?”
“호찌민.”
“아, 진짜? 출장을 호찌민으로 가는데, 휴가도 그리로 간다고?”
“나 베트남 좋아해.”
“다행이네. 앞으로 많이 갈 기회가 있을 듯싶은데.”
“고마워.”
“별말씀을. 근데, 베트남이면 다시 나가도 되겠네. 다섯 시간이면 가잖아?”
“그렇기는 한데, 원래 계획은 한 사흘 있다가 거기서 텍사스로 가는 거였어.”
“텍사스?”
“응.”
내 다음 목적지를 재차 확인한 앤드류는 피식 웃었다.
“거기라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응? 도움?”
공교롭게도 그의 다음 목적지 역시 텍사스였다.
“같이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