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98)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98화(98/190)
【098화 – 김앤강의 가치】
여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출장이 많아졌다.
호찌민, 텍사스, 다시 호찌민, 다시 텍사스. 휴가를 다녀온 이후에도 각각 두 번의 출장을 더 다녀와야 했다.
아공간 세계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평소보다 더 빨리 시간이 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공간 속에선 무제한으로 시간을 쓸 수 있었지만, 다급하게 돌아가는 사건들을 여럿 맡고 있었고, 각각 페이스 유지가 중요했다.
중간에 쉬면 다시 몰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쉬웠다.
게다가 인터넷 리서치가 필요한 부분이 많은 사건들이라, 현 세상의 시간을 잘 이용해야 했다.
오랜만에 바쁘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고 있었다.
아공간에서는 리서치한 것들을 읽고 공부하고,
출장 가서는 새로운 정보들과 지시들을 받아오고,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는 해상팀, 특허팀 등 다른 팀 사건들 회의를 했다.
일 관련을 제외하곤 사무실 동료하고 말할 기회도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두 달을 정신없이 보내고 오랜만에 주위를 둘러봤더니, 어느새 회사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정 대리: 변호사님, 경수찬 변호사님이 찾으세요.] [범상: 지금요?] [정 대리: 네, 방으로 좀 오시래요.]‘김앤강의 신선’ 중 한 분이셨던 파이낸스팀 수장 남경수 변호사님이 퇴사하셨고,
그 결과 자연적으로 사건 매지니먼트와 인사 부분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 하나가 아람코의 베트남 정유시설 투자 프로젝트였다.
[범상: 네, 알겠습니다.]메신저에 답을 타입한 후, 범상은 리걸패드를 챙겨 17층으로 향했다.
···
똑똑-
센터게이트 빌딩 17층,
파이낸스 시니어 파트너 경수찬의 방.
“들어와.”
방주인의 허락을 들은 범상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변호사의 방은 해당 공간을 쓰는 변호사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알려준다.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도 방주인이 어떤 인물인지 대충 가늠해 볼 수 있다.
일단 정리벽이 있는 건 확실했다. 책장이고, 책상이고 흐트러짐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보고 있는 기록 하나 없는 걸 보면, 모든 걸 전자 파일로 검토하는 듯싶고.
외모도 그렇다.
오십 대 초반 같아 보이지 않는다.
파이낸스팀 변호사들이 대부분 세련되고 깔끔한 편이지만, 경수찬 변호사는 그들 중에서도 돋보인다.
운동도 꾸준히 하는 모양. 어깨고 등이고 전부 꼿꼿하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출장은 잘 다녀왔나?”
그에 반해 목소리는 부드럽다.
상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네, 잘 다녀왔습니다.”
범상은 다른 시니어 파트너에게 하듯 깍듯하게 대답했다.
“리포트는 잘 봤어. 정리 잘했어. 이슈도 그렇고 앞으로 해야 할 것도 그렇고. 계속 그렇게 해주라고.”
이상하다. 최근 리포트를 쓴 게 몇 개 있기는 하지만, 그중에 경수찬 변호사에게 보낸 건 하나도 없었다. 경수찬 변호사랑 하는 사건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무슨 리포트를 말씀하시는 것이지?’
한범상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경수찬은 그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정 변호사한테 아직 못 들었지? 세부적인 것들은 차차 듣고. 일단 당장 알아야 할 거는, 아람코 베트남 정유시설 투자 건에 대한 것들은 앞으로 나한테 보고하면 돼.”
‘?’
하지만 물음표만 커질 뿐이다.
그에 대해서는 답변해 주지 않는다.
“뭐 문제 있나?”
목소리만 상냥할 뿐이지 친절한 건 아니다.
“아니요.”
“그리고 미스터 나세르에게 베트남 정유시설 프로젝트 관련해서 앞으로 좀 더 그 분야에 경험이 많은 우리 팀이 맡게 될 거라고 설명하는 이메일을 하나 보내야 하니까, 초안 잡아서 정 변호사한테 올려.”
“정 변호사라고 하시면···.”
“정세민 변호사. 모르나?”
프로젝트 도중 담당 변호사가 바뀔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갑작스럽게···출장 전에 아무런 언질도 듣지 못한 범상은 살짝 당혹스러웠다.
“압니다.”
“한 변호사는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한 변호사의 롤이 바뀌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네, 알겠습니다.”
“한 변호사 실력에 대해 많이 들었어. 기대할 테니까, 계속 잘 부탁해.”
“네.”
“그래, 그럼. 가서 일 봐. 아, 혹시, 뭐 질문 있나?”
“아니요.”
질문은 있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상냥한 그가 친절히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 느껴본 감정.
범상은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깍듯이 인사를 한 후 경수찬의 방을 나왔다.
···
방에 돌아온 범상은 머리가 복잡했다.
사건 중간에 담당 변호사가 바뀌는 일은 종종 있다.
유학을 간다든지, 개인적 사정이 생겼다든지, 불륜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든지···
그래도 지금 상황은 조금 이상했다.
밑에서 있는 어쏘나 주니어 파트너가 바뀐 게 아니라 시니어 파트너가 바뀐 일이었다.
범상이 고민스러운 이유는 이 흔치 않은 상황 관련해서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아서였다.
‘정세민 변호사님한테 가서 여쭈어봐야 하나?’
어찌 됐든 자신은 여전히 프로젝트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시니어 파트너가 바뀐 것이다 보니 누구한테든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웠다.
‘왜 바뀐 거죠?’라고 따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에.
‘아니면, 최재민 변호사님이 나을까? 공유찬 변호사님?’
좀 더 편한 선배들이다 보니 그쪽이 나을 것 같기는 하지만, 대답하기 곤란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성급하게 가서 묻기가 망설여진다.
‘그래도 배경을 좀 알아야 앤드류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범상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이, 옆방 변호사가 그의 방문을 노크하며 들어왔다.
똑똑-
“텍사스는 어땠어요?”
“도 변호사님.”
“아, 좋겠다. 나도 출장 가고 싶다.”
도하영은 반갑다. 몇 주 만에 보는 얼굴이다.
“다음 출장은 또 언제예요?”
“다음이요? 정해진 거 없는데.”
“요새는 거의 1주 간격으로 나가시지 않았어요?”
“그랬나?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네요. 도 변호사님은 잘 지내셨어요?”
“똑같죠, 뭐. 일, 일. 야근, 야근. 사무실, 사무실.”
범상도 하영이 반갑다. 그녀가 없으면 이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었을 테니까.
“혹시 약속 없으면, 점심때 식사 같이하실래요?”
“아, 안 그래도 그거 물어보려고 왔는데. 디타워에 인도 음식점이 새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거기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점심에 인도 카레는 어때요?”
“좋아요.”
“오키, 인도 카레로 콜. 그럼, 이따가 한 12시 반쯤 출발?”
“네.”
“줄을 많이 선다고는 하는데, 12시 반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예약은 따로 안 할게요. 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네.”
“그럼, 12시 반에 엘리베이터에서 보는 걸로?”
“네, 좋습니다. 아, 저기 도 변호사님.”
범상은 약속을 잡고 돌아나가는 하영은 붙잡았다.
“네.”
“이거.”
그러곤 책상 위 한쪽에 고이 놓아두었던 물건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저번에 말한 거 있잖아요?”
“저번에 말한 거? ···아! 피칸 커피? 맞아요?”
“네.”
한 달 전쯤에도 이렇게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같이 점심을 할 시간은 없었지만, 출장 갔던 일에 관해 삼십여 분 정도 대화를 나눴고,
그때 했던 대화 중에 나왔던 것 하나가 바로 텍사스의 명물(?)이라고 하는 피칸 커피(pecan coffee)였다.
텍사스에 가면 꼭 마셔보라고 하영이 추천했고, 범상은 그녀의 말을 기억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로 하나 사달라고 한 것을, 범상이 이번에 사 온 것이었다.
“아, 고마워요! 그냥 한 말이었는데.”
“변호사님 말대로 진짜 맛있더라고요. 저도 집에 몇 개 사다 놨어요.”
“그렇죠? 많이 마시면 살짝 과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데, 가끔 마시면 진짜 맛있어요. 고소하고. 라테에도 진짜 잘 어울리고.”
“네.”
“아, 고맙습니다. 그럼, 밥은 제가 사는 걸로.”
하영은 큰 두 눈을 빤짝이며 범상을 바라봤다.
귀엽다.
그런 하영을 보며 범상은 어쩌면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무실에서 그가 누구보다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
한범상이 서 있던 자리를 보던 경수찬은 모니터를 켰다.
한범상의 이력서가 띄워져 있다.
솔직한 심정은 사건에서 빼고 싶다.
일을 잘하고 말고는 떠나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인물이었으니까.
게다가 “잘 좀 데리고 해봐”라고 말한 이정후의 말이 목에 자꾸 걸린다.
이정후는 그 말 뒤에 토를 달았다.
“아무리 거기 담당자가 찾았다고 해도 아람코 같은 클라이언트를 어쏘한테 맡길 수는 없잖아. 삼전 때 같은 일이 벌어지면 곤란하지. 안 그래, 경 변호사?”
그냥 잘 키워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정 변호사, 잠깐 소회의실에서 회의 좀 할까. 아람코 건.”
-네, 알겠습니다. 아, 혹시 한범상 변호사도 부를까요? 출장에서 돌아와서 출근했다고 하는데.
적당히 잘 가둬놓으라는 의미였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팡!
총은 참 특별한 발명품이다.
들고만 있어도 그 힘과 공포가 동시에 느껴진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기 위해 만든 무기.
그것은 인간을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올려놓았다.
팡!
“멍멍!”
“괜찮아. 괜찮아.”
라이플총 소리에 긴장한 장군이를 달래고, 서쪽 능선을 바라봤다.
흠칫한 녀석들은 몇 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뿐이다.
진정한 총의 무서움을 목격하지 못해 그런 걸까. 적당히 거리만을 유지한 채 여전히 이쪽을 지켜보고 있다.
팡! 팡!
얼마 전 나타난 ‘늑대’ 한 마리는 이제 여러 마리가 됐다.
가끔은 두세 마리가 무리 지어 나타났을 때도 있고, 최대 일곱 마리까지 한꺼번에 몰려온 적도 있다.
녀석들은 서쪽 숲에 사는 듯하다.
위협적 존재임은 확실하다.
잠시 호수에 갔다 온 사이, 닭장을 박살 내놨다.
놈들 때문에 목장식으로 박아놓았던 펜스를 제거하고 철조망을 설치해야 했다.
그래도 난 녀석들과 이 넓은 곳을 공유할 생각이 있다.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우~~ 아우, 아우, 아우우우~”
“멍멍멍멍! 멍! 멍!”
내가 항시 옆에 있을 것이니 그럴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변수는 일어나는 법.
그것들이 나타나면 극도로 긴장하는 장군이를 보고 있으니, 문득 장군이에게 나 말고도 든든한 동료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장군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