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0)
7. 가다보면 알게된다(去去去中知). (1)
날이 밝자 천하객잔에는 다시 활력이 흘러 넘쳤다. 무당파 사람들은 아침을 먹
자마자 서둘러 짐을 꾸렸다. 장소룡 일행도 짐을 꾸려 떠날 준비를 하였다. 장소
룡 일행이 먼저 객잔 앞에 모였다. 무당파 사람들도 하나 둘 씩 객잔 앞으로 모
여들었다. 제일 먼저 나온 사람들은 무당 사검사 라고 불리는 속가제자들이었다.
그들 중 은의를 입은 청년과 홍의를 입은 아가씨는 낄낄거리며 자기들이 하던 얘
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하핫, 그러니까 그 방 사람들도 귀를 막고 자더란 말이지 사매?”
“호홋, 그렇다니까요. 장문인 제자 일곱 명이 방을 다 돌아보았는데 오직 두
방에서 사람들이 나와보질 않았대요. 아무 소리도 못 들었으니까 못나왔죠.”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무림의 괴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하하하핫… 검진강호에
서 귀를 막고 잠을 잘 수 있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거나 강호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아니냐?”
“그러게요, 칼은 왜 차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요. 호호호…”
“오죽 하겠냐?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주정이나 하는 촌 놈 일행인 것을…”
“사제, 그리고 사매 이제 그만들 해라.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지 않느냐.”
은의를 입은 청년과 홍의를 입은 아가씨는 금의를 입은 청년이 나무라자 그제
서야 조용해졌다. 아닌게 아니라 어느덧 장가촌 일행뿐만 아니라 무당파 사람들
도 거의 나와 있었다. 무당파 사람들은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장가촌 일행을 볼
때마다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 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주정이나 하는 촌놈
이라는 마지막 말이 장염의 가슴에 박혔다. 장염은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얼마 후 도천 도사와 이원지가 무당파의 두 원로인 추풍검 심방과 만리검 양극
을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심방과 양극은 밖으로 나오자 마자 장염을 한번 쳐다
보았는데 그들의 눈빛이 매우 복잡해 보였다. 장문인은 모른척 했지만 심방과 양
극은 사부인 창허자를 통해 폐인이 된 장염이 그들의 사백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
고 있었다. 그러나 장문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저히 아는척할 엄두가 나질 않
았다. 십 년 전 춘양진인을 통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어제
밤의 주정과 새벽의 발작을 직접 목격하니 여간 실망스럽고 부끄러운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행이 천하객잔에서 나온지 일주일쯤 지났다. 그동안 무당파 사람들은 객잔으
로 들어갔고, 여비가 떨어진 장가촌 일행은 노숙을 했다. 물론 도천 도사가 방을
잡아 주겠다고 했지만 장소룡은 왠일인지 한사코 거절했다. 무당파 사람들은 처
음에는 어색해 했지만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밤이 되면 서로 헤
어졌다가 아침에 다시 만나 동행을 했다. 비록 낮 동안만의 동행이었지만 서로
조금씩 친해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게 친해진 사람이 있다
면 장염과 녹의 소녀였다.
“여기서 잠시 쉬기로 하자.”
이원지가 다섯 제자들을 향해 말하고 도천 도사와 함께 지쳐 보이는 심방과 양
극을 모시고 그늘로 찾아갔다. 무당파 사람들과 장가촌 일행은 저마다 그늘을 찾
아 앉거나 누워 지친 몸을 달랬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때문에 계속해서 움직인
다는 것이 무리였던 것이다.
“아니, 사매 또 그 장가(張家)에게 가는 건가?”
은의의 청년이 어디론가 가려는 녹의의 소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둘째 오라버니, 그냥 놔두세요. 저러다가 흥미가 없어지면 다시 찾아가지도
않을거예요… 원래 영화(英貨)사매가 호기심 많은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
홍의의 아가씨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은의의 청년은 여전히 불
만이 가득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이젠 넷째 사매도 다 컸는데 사람들의 구설수에라도 오르
면…”
“핏, 제 일에 상관하지 말고 둘째 오라버니의 일이나 잘하세요.”
녹의의 소녀가 은의의 청년에게 한마디를 던지고 장염에게로 걸어갔다.
장염은 멀리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살의 느낌이 좋았다. 발바닥에 닿는 시원한 자갈의 매끈한
감촉을 느끼며 장염이 미소짓고 있는데 뒤에서 작은 음성이 들였다.
“장 오라버니, 뭐가 그리 재미있나요?”
장염이 뒤돌아 보니 녹의를 입은 소녀가 빙긋 웃고 있다. 무당 사검사 중 막내
인 매화검(梅花劍) 영화였다. 그녀는 자신의 별호답게 서늘하고 신선한 아름다움
을 지니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전 장염에게 다가올 때도 장염은 매화 향기 같은
그녀의 매력에 잠시 취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불쑥 다가와 자신이 당금 무
림의 삼장(三莊) 중 하나인 풍림장(風林莊) 영호성(英號星)의 셋째 딸이며, 무당
파의 도천도사 밑에서 무공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 뒤 장염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
었다.
“아… 영화 소저, 그냥 물에 발을 담그니 옛날 생각이 나서요…”
영화가 장염의 곁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영화 소저가 모예요? 그냥 영화라고 부르시라니까요.”
“하하핫, 그게 익숙치 않아서 말입니다.”
나이 열 여덟의 영화가 장염을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따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지난 일주일전 소광자 장염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했다. 처음
영화의 눈에 비친 장염은 평범하게 생기고 비쩍 마른 스물 세 살의 시골 청년에
불과 했다. 그러나 한 나절 만에 그녀는 장염의 해박함과 부드러운 음성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장염의 입에서는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장염이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영화는 자기가 알고 있던 사실도 장염이 얘기하면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영화가 본 장염은 말만 잘하는게 아니었다. 그녀는 장염에게서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인생과 세상을 진지하게 살려고 하는 치열한 고상함을 엿보
았던 것이다. 그것은 장염의 초라하고 볼품없는 외모에 가리워졌던 지고한 정신
의 발현이었다. 나이가 십 팔 세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순수함은 오히려 그것을
쉽게 포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영화는 장염을 만날 때마다 산다는 것에
대한 아찔할 정도의 자극을 받곤 했다. 아직 젊은 장염에게서 그런 분위기가 자
연스럽게 뭍어 나오는 것은 지난 십 오년 동안 목숨을 건 꿈속의 비무 때문일 것
이다. 죽을힘을 다한 뒤 맞이하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장염만큼 많이 맛본 사
람이 또 있을까?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작된 영화와 장염의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진지해 졌고,
영화는 장염이 무림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애를 태웠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장
염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장염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세상
사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 7.가다보면알게된다(2) 관련자료:없음 [12560]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1-21 01:03 조회:4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