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00)
44. 산 넘어 산(3)
오극렬이 장염을 바라보며 웃다가 말했다.
“동생은 이 기회에 먼저 청해성으로 가는 것이 어떤가?”
장염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몸이 불편한 자신이 지금 가봐야 그들에게 아무
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간 이무심의 뒷바라지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몸이 나으면 돌아가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도록 해줄 것이다.’
장염이 입을 다물자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용한 것을 참지 못하는 오극렬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동안 마교 때문에 정파인들의 기세가 등등하더니 요즘은 아주 우습게 되고
말았으니…”
“무슨 일이라도 생겼답니까?”
“일이야 생겼지만, 큰일은 아니네. 남녀간의 문제인데 다만 그 상대가 뜻밖이
라 그런게지. 아우는 천마후에 대한 소문을 아직 듣지 못했는가?”
“천마후라뇨?”
장염으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마교교주인 제천혈마의 부인을 천마후라고 한다네.”
“그가 결혼을 했다고 합니까?”
“그렇지. 그런데 그 상대가 바로 정파의 여식이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장염의 마음속으로 불안이 밀려들었다.
“혹시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당연하지 않나, 무림에 그토록 소문이 요란한데 어찌 천마후가 누군지 모르겠
나. 바로 풍림장의 영호화라고 하네. 천마후의 집안이 무림 삼장 중 하나이고,
또 그 사문이 무당파라고 하니 정파인들의 기세가 수그러들 밖에.”
“아닙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장염이 부들부들 떨며 소리치자 오극렬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우,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한동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장염이 중얼거렸다.
“이제 괜찮습니다. 몸이 좀 좋지 않으니 들어가 쉬겠습니다.”
“어이쿠, 그렇다면 어서 들어가서 좀 쉬시게.”
장염은 오극렬을 뒤로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숨도 턱턱
막혀왔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장염아, 장염아, 너는 참으로 헛되이
살고 말았구나.’
괴로워할수록 통증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극심한 충격으로 내상이 도지고 있
는 것이다.
“으으윽…”
장염은 입으로 피를 흘리며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 * *
호북성(湖北省)의 무한(武漢)에 있는 풍림장은 어수선했다. 얼마 전부터 퍼지
기 시작한 천마후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가주인 영호성(英號星)이 식솔들을 모아놓고 소리를 쳤다.
“지금까지 풍림장이 무림에 협명을 떨쳐 왔건만 이제 와서 이 무슨 치욕스런
일이란 말이냐!”
큰아들 영호진(英號振)과 둘째딸 영호은(英號恩)이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 앞
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영호성의 부인인 연화부인(蓮花夫人)도 고개를 들지 못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애지중지 키운 셋째 딸 영호화가 마교 교주의 부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나돌면
서부터 풍림장은 몸살을 앓아야 했다. 정파의 무림인들이 서서히 풍림장을 따돌
렸고, 제자들도 하나둘 떠나갔다. 아침이면 풍림장의 대문에 ‘무림의 쓰레기’ 혹
은 ‘이단자’라는 글이 먹물로 진하게 쓰여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호성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은 근처의 사도 방파들이 풍
림장으로 재물을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사파의 무림인들은 마교 교주의 사돈댁에
잘 보이려고 앞다투어 선물을 보내왔다.
이 모든 일들이 영호성의 자존심을 매우 상하게 만들었다.
영호진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아버님, 영화를 만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으니 고정하
심이…”
“누가 그걸 모르고 하는 말이냐! 다만 무림 동도들이 풍림장을 사마외도 보듯
하고, 사도 방파의 마귀들이 제집 드나들 듯 하니 하는 말이 아니더냐!”
영호성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이번에 무림맹주가 무림첩을 돌렸다고 한다. 구대문파와 무림의 대방파들이
이미 원단에 모이기로 하였다는데, 풍림장은 연락을 받지 못했다.”
영호진이 고개를 떨구었다. 풍림장이 정도(正道) 무림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림맹에서 조차 그렇게 여길 줄은 몰랐다.
한참 만에야 영호성이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중얼거렸다.
“휴! 그녀석이 어쩌다가 마굴에 떨어져 이렇게 가문에 먹칠을 하는지…”
연화부인이 곁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나마 영화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살아있다는 것이 다행일까? 차라리 명예롭게 죽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영호성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사랑스런 딸의 얼굴이 떠오르자 속으로 중얼거렸
다.
‘내가 못난 아비이다…’
격앙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자 영호진이 말했다.
“아버님, 제가 마교로 찾아가 영화를 만나 볼까요?”
“그만 두어라. 만약 네가 찾아가면 무림에서는 마교와 풍림장이 왕래한다고 더
큰 소문이 나고 말게다. 그때는 정말 수습할 길이 없다. 게다가 가면 또 무엇하
겠느냐? 영화를 데리고 올 수도 없는데, 풍림장이 영화를 천마후로 인정한다는
걸 알리려고 거길 가겠다는 것이냐?”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지금은 그저 영화가 살아 있다는 걸 안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 * *
풍림장이 천마후가 되어버린 영화의 일로 골머리를 싸고 있을 때 무림맹도 어
수선한 분위기였다. 천하 십대고수 중의 하나인 영호성의 풍림장이 마교와 사돈
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요? 마교가 어느 틈에 하나로 뭉쳤단 말이오?”
경재학이 개방 장로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림맹은 특별한 기
구가 없었다. 구대문파의 특성을 살려서 운영하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예컨데 과
거 사천성의 의혈단은 자체내의 정보수집부가 필요했지만, 무림맹에서는 그 일을
개방이 맡아서 했다. 그런데 지금 개방의 장로가 얼마 전에 마교가 극비리에 통
일되었다고 보고한 것이다.
“지금 혈마사의 동진(東進)으로 무림맹의 힘이 크게 위축이 되고있는 마당에
갑자기 마교가 통합되다니, 진정 무림의 앞날이 염려되는 구려.”
경재학은 마교가 적어도 이 년 이상은 소모적인 싸움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했
었다. 그런데 단 여섯 달 만에 싸움도 없이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정파는 무림첩을 발송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천마후라
는 사람이 풍림장 장주의 여식이며, 무당파의 제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럴 경
우 무림의 명숙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좀처럼 단결하지 않을 것이다. 비밀회의를
하더라도 그 내용이 새어나가지 않는다고 누가 확언할 수 있겠는가!
‘산 넘어 산이구나.’
경재학은 무림 맹주가 된 이래로 오늘처럼 무림의 앞날을 걱정해본 적이 없었
다. 혈마사, 마교, 오행혈마인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결과가 뻔한 정파의
내분… 어느 하나 시원한 해답이 없는 문제였다.
* * *
한편 무림첩을 받아든 무당파의 장문인 춘양진인은 진무궁(眞武宮)에서 장로들
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춘양진인이 결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러분, 무림첩이 날아왔소. 신년의 원단에 무림대회가 열리니 각파의 고수들
을 파견하라고 하는 구려.”
“오오! 드디어 무림첩이 도는 군요.”
장로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혈마사의 행로를 지켜볼 때 조만간 무당파로 밀고
올 것이 분명했다. 혈마사가 무당파로 몰려오기 전에 무림맹이 막아준다면 무당
파로서는 커다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장로인 백운도사(白雲道士)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문인, 천마후의 일로 다른 문파에서 시비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렇기는 하오만,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도 제자를 잃지 않았소? 본파의 제자
들 중에도 실종자가 있으니 설마하니 그들이 그걸 모른다고야 하지 않으리라 믿
소.”
춘양진인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지
금까지 무당파는 무림에서 존경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번 무림대회만큼은 그 끝
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혈마사 다음은 곧바로 마교의 문제인데, 천마후가 무당
파의 제자라면 무당파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혈마사와의 일전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오. 특
별히 여러 원로들께서 함께 동행하신다고 하니 제자들을 엄선하여 무림대회에 차
질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라오.”
“알겠습니다. 장문인.”
무당파 장로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근 이십 년 만에 무림맹으로 올라가 무당파
의 이름을 빛낼 때가 도래한 것이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44.눈송이하나만큼의무게.(1) 관련자료:없음 [13174] 보낸이:조진행 (빈들 ) 2001-01-19 01:00 조회:4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