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01)
45. 눈송이 하나 만큼의 무게.(1)
장염이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것은 향이의 근심어린 얼굴이었다.
“장동생, 드디어 깨어났군요.”
몸을 일으킨 장염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깨어 나다뇨?”
“오늘은 장동생이 쓰러진지 이틀이나 되는 날이예요.”
“네?”
장염이 깜짝 놀란 얼굴로 향이를 바라보았다.
향이가 그간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이틀 전에 도지라는 분이 장동생을 찾아왔다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
다. 그 뒤 저와 오당주님이 장동생을 돌보아 왔지요.”
장염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을 쓰다듬어 보았다. 영화소저의 일로 충격을 받
은 뒤로 내상이 악화되어 있었다.
“장동생,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겼나요?”
향이가 조심스럽게 장염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누님의 몸은 좀 어떠십니까?”
“어깨의 상처가 많이 아물어서 이제는 마음대로 돌아다닌답니다.”
삼도회의 분위기가 어수선하자 그처럼 말을 한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장염이 향이에게 말했다.
“누님, 저는 이제 그만 삼도회를 떠날까 생각합니다. 누님의 상세가 다 나을
때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곳은 곧 싸움터로 변할 것 같습니다.”
“장동생, 저는 장동생이 하라는 대로 할 터이니 염려하지 마세요.”
두 사람이 떠날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밖에서 오극렬의 컬컬한 음성이 들렸
다.
“향소저! 장아우가 깨어났는가?”
향이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서 들어오십시오. 마침 장동생이 오당주님을 찾던 중입니다.”
오극렬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장염의 손을 붙잡고 큰소리로 물렀다.
“아니, 아우의 몸이 그처럼 아픈 것을 왜 말하지 않았나? 내가 진작에 알았다
면 약을 지었을 것일세.”
“하하, 형님. 제 몸은 백 약이 소용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은 이처럼 멀쩡
하니 심려 놓으십시오.”
잠시 머뭇거리던 장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 저는 내일 삼도회를 떠날까 합니다.”
오극렬이 섭섭하다는 듯이 장염을 바라보다가 씩씩하게 말했다.
“마음으로야 잡고 싶지만, 이곳은 곧 싸움터로 변할 것이니 잡을 수도 없구먼.
그런데 어디 마땅히 갈곳은 있는가?”
“예, 제 걱정은 마십시오. 그나저나 형님께서는 무슨 일이 생기면 청해성으로
가셔야 합니다.”
“하하핫! 염려하지 말게.”
장염이 삼도회를 떠나던 날, 사천성 일대에는 새벽부터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
작했다.
두 사람이 눈발을 피해 한 장원의 대문 앞에서 잠시 쉬어 갈 때였다.
“장동생,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향이가 어제 장염이 자신 있게 갈곳이 있다고 한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하하, 누님의 고향이 어디라고 하셨습니까?”
“제 고향은 수계현(水系縣)인데,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귀주성과 인접한 곳
에 있어요.”
“우리는 바로 그 수계현으로 가는 겁니다.”
“네?”
향이가 고개를 돌려 장염을 바라보았다.
장염은 눈발이 휘날리는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무엇인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비애감이 가득했다.
“누님은 눈송이 하나의 무게를 아세요?”
향이가 장염의 말을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죠?”
“누님께 눈송이 하나의 무게를 아시냐고 물었습니다.”
“글쎄요, 아주 가볍겠죠?”
“저기를 보세요.”
향이가 장염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앙상한 나무가 있었다. 가
지 위에는 제법 소복하게 눈이 쌓여 있었다.
‘대체 무얼 보라는 것일까?’
향이가 한참동안 나뭇가지를 바라볼 때였다. 눈 꽃 한 송이가 하늘거리며 내려
앉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다.
뚝.
향이의 눈앞에 작은 가지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지금 내려앉은 저 한 송이 눈의 무게를 보셨습니까?”
장염의 시선이 다시 먼 곳으로 향했다.
향이가 주변을 둘러보니 아주 무거운 눈이 천지(天地)를 뒤덮고 있었다.
* * *
공동파의 제자 일운(一雲)은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빗자루를 들고 산문
밖으로 나갔다. 요즘처럼 무림이 어수선한 때에 홀로 산문을 나와 비질을 해야
하는 것이 조금 섬뜩하기도 했지만 누군가 쓸어야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공
동파에서 오직 자기 하나 뿐이었다.
쓱! 싹!
일운이 눈을 맞으며 비질을 할 때였다.
“어이, 괜히 부지런 떨지 말고 눈이 그친 다음에 비질을 하지 그래?”
사형인 청운(靑雲)이 멀리서 한마디 던졌다.
“사형, 지금 한번 쓸어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비질이 몇 배나 힘들어
진다구요.”
“하하핫! 그렇담 더욱 열심히 쓸려무나. 나도 너만 할 때는 빗자루를 끼고 살
았단다.”
일운이 뒤를 돌아보니 이미 청운은 사라지고 없었다.
‘쳇,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빗자루로 길을 쓸어가던 일운이 잠시 허리를 폈을 때였다.
산길 아래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이 눈길에 누가 저렇게 부지런히… 헉! 라마승이닷!’
일운이 빗자루를 내던지고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리고 산문을 향해 달리기 시
작했다.
“사형! 사형! 혈마사가 와요!”
얼마 후 조용하던 공동파에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라마승들은 종소리가 나
건 말건 일정한 속도로 다가왔다.
공동파의 장문인 태허자(太虛子)가 제자들의 앞에 버티고 섰다. 이 백 명의 제
자들 앞에 선 태허자의 안색은 어둡기만 했다.
태허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제자 광료를 불렀다.
“광료(光了)야!”
광료가 태허자의 곁으로 달려갔다.
“말씀하십시오, 장문인.”
“운자배(雲字輩) 제자들을 데리고 뒷문으로 하산하여 공동파의 맥을
보존하라.”
“사부님…”
광료가 떨리는 음성으로 태허자를 불렀다. 죽어도 함께 남아 있고 싶었지만,
사부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허헛, 염려 말아라. 우리가 다 이곳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야. 그저 공동파의
자리를 단번에 내어 주자니 그것이 내키지 않을 뿐이다.”
태허자가 애잔한 눈으로 광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가기 전에 복마전(伏魔殿)에 들러 꾸려놓은 작은 짐들을 함께 가지고 가도
록 해라. 본파의 내력과 무공이 담긴 것이니 훗날 쓰임이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친 태허자가 내력을 돋구어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공동파의 제자들은 들어라. 우리는 오늘 혈마사의 마승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러나 공동파가 어찌 하루아침에 멸문의 위험을 무릅쓰겠느냐? 제자들은 적당한
때에 한사람도 남김없이 몸을 빼서 각자 살길을 도모하라.”
태허자의 말을 듣던 광료가 눈물을 흘렸다. 태허자는 분명히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등을 돌리면 그것이 마지막이 될 터였다. 나이 열 세
살에 태허자의 손에 거두어져 삼십 년을 모시고 살아왔다.
광료가 공동파의 무리들 중 제일 뒤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세 명의 어린 제
자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 입산한지 삼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소년들이었
다.
광료가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청운(靑雲), 풍운(風雲), 일운(一雲)은 나를 따라오너라.”
세 명의 어린 제자가 광료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광료가 세 명의 제자와 공동파를 빠져나간 직후 한 무리의 라마승들이 눈 속을
뚫고 공동파 산문을 넘어섰다.
태허자가 내력을 끌어올려 소리쳤다.
“그대들이 공동파를 찾은 까닭이 무엇인가!”
그러자 한사람의 라마승이 걸어나오며 어눌한 한어(漢語)로 대답했다.
“본 라마들의 거할 곳이 필요하니, 그대들은 모두 겨울 짐승들을 위해 공양 할
준비를 하라.”
“와하하핫!”
태허자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오히려 크게 웃자 떨어지던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진동을 일으켰다. 대단한 내공이었다.
“혈마륵이여, 네가 저자를 상대해도 될 듯 하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44.눈송이하나만큼의무게.(2) 관련자료:없음 [13175] 보낸이:조진행 (빈들 ) 2001-01-19 01:01 조회:3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