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02)
45. 눈송이 하나 만큼의 무게.(2)
마하륵이 조용히 말하자 혈마륵이 앞으로 쏘아갔다. 지금까지 천천히 걷던 걸
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마하륵은 달려나가자 마자 전륜신공으로 혈마사의 절학인 전륜혈영장(轉輪血影
掌)을 펼쳤다.
마하륵의 혈장(血掌)이 수레바퀴가 돌 듯 고속으로 회전하며 태허자에게 몰아
쳐 갔다.
파파파팟!
그의 손이 일으킨 경기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던 눈송이들을 사방으로 밀어냈
다.
태허자는 라마승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쌍장을 휘두르자 공동파 비전의 복마장
법(伏魔掌法)으로 마주쳐 갔다.
펑! 펑! 펑!
복마장법은 그 기괴함과 강맹함이 지나쳐 사악하다는 평이 있을 정도였는데,
라마승의 혈영장과 부딪치자 맥없이 파괴되고 말았다.
태허자가 혈영장에 맞서지 않고 신형을 뒤로 빼자 라마승이 히죽 웃으며 손가
락을 태허자를 향해 쭉 펼쳤다.
그 순간 태허자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파르르 떨리며 송곳 같음 암경이 밀
려드는 것을 느꼈다.
“크윽!”
암경은 태허자의 좌측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태허자가 상체를 휘청이며 뒤로 물러나다가 두 발로 번개같이 팔방의 방위를
찍어 마침내 신형을 안정시켰다.
‘이건, 과연 지풍(指風)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무림을 종횡했지만, 손가락의 바람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절대 고수가 지금 태허자의 눈앞에 서있는 것이다.
태허자가 허리에 차고있던 복마검(伏魔劍)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제자들을 둘
러보았다. 제자들 모두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태허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숨을 조절하던 태허자가 한소리 크게 외치며 라마승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모두 떠나라!”
태허자의 검 끝에서 한자길이의 검기가 뻗어 나와 눈발을 가르며 라마승에게
날아갔다. 검 끝이 광폭한 한 마리 야생마처럼 사방을 쓸며 라마승에게 접근했을
때, 라마승이 들고 있던 선장을 들어 검을 마주쳐갔다.
챙! 챙! 챙!
검과 선장이 부딪칠 때마다 청명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동파 제자들은 장
문인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몸을 찔끔 떨었으나 아무도 달아나지 않았다.
휘날리는 눈발 속에서 태허자가 라마승의 선장에 맞서 검무를 추고 있었다.
공동파 제자들은 희끗희끗한 눈발을 뚫고 언 듯 언 듯 보이는 스승의 검술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태허자의 검술을 보고 감탄한 건 공동파 제자뿐이 아니었다.
마하륵의 두 눈이 감탄에 물들었다. 이십 년 전에도 저런 비슷한 검법을 견식
한 적이 있었다. 이 십 년 전과는 다른 모양이었지만 서장을 떠나 중원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경지였다.
‘과연 중원에는 고수가 많구나.’
혈마륵이 마침내 전륜신공의 마지막 초식인 전륜무적(轉輪無敵)을 펼치기 시작
했다.
선장과 복마검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허공에서 맞물려 돌아갔다.
차차차창!
두 사람은 서로의 검과 선장을 보지도 않고 느낌만으로 손을 놀리고 있었다.
마하륵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 한쪽이 지치는 순간 그는 단번에 맞아 죽으리라.’
그의 생각은 옳았다.
한 순간 태허자의 숨결이 흐트러졌고, 태허자의 머리는 허공에서 수박처럼 터
져 나갔다.
퍽!
“장문인!”
“사부님!”
공동파 제자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하얀 눈밭에 붉은 피가 점점이 떨어져 내렸
다. 머리를 잃은 몸통이 서서히 넘어졌고 그 위로 또 눈이 쌓여갔다. 사방이 백
설로 하얗게 덮였는데 태허자가 서있던 자리만 붉게 물들어 갔다.
혈기가 치솟은 혈마륵이 선장을 돌리던 그자세로 계속해서 공동파 제자들을 향
해 날아갔다.
혈마사의 라마승들이 “와아!” 소리를 지르며 혈마륵을 따라 몸을 날렸다.
공동파의 제자들은 장문인을 잃은 슬픔에 잠길 틈도 없이 라마승들의 혈장과
선장을 상대해야 했다.
피비린내 나는 그날 공동파에서 빠져나간 사람은 겨우 이십 여명에 불과했다.
* * *
산동성(山東省)의 청도(靑島)는 이름과는 달리 섬이 아니라 산동반도에 자리잡
은 중국 대륙의 일부분이다.
청도에 사는 사람들은 섬도 아닌데 청도라는 이름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청도의 서쪽 해안가를 따라가다 보면 소청도라는 조그마한 섬이 나온다. 그런
데 그 섬이 아주 푸르러 청도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결국 지역의 이름이 되었다
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섬에 한 어부가 살았는데 하늘에
사는 선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 이루어 질 수 없는 비밀스런 사
랑에 나누던 두 사람은 결국 신의 분노를 사게되었다. 결국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된 선녀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다. 선녀가 죽은 이후에 선녀가 살아 생전에 연주
하던 비금소리가 이 섬 주위에서 들리곤 했다고 한다. 그 뒤로 사람들은 이곳을
아름다운 비금의 섬이라는 의미로 금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금이라는
발음이 한어로 청이라는 소리와 거의 비슷하여 마침내는 청도라는 이름으로 불
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의 기원이야 어쨌든 청도는 한겨울에도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아 사람이
살기에 아주 적당한 지역이었다.
청도의 영산(靈山)은 중국 유교의 명산이며 신선(神仙)이 사는 산으로 신성시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영산을 순례하느라 북적댔다. 그런데 최
근 이 영산 근처를 오가는 사람이 없어졌다.
몇 달 전 천신에게 제례를 드리기 위해 몇 명의 도인(道人)이 영산을 찾았다가
실종되기 시작한 뒤로, 청도의 처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
라졌다.
사람들은 대재앙의 시작이라고 믿었고, 그 뒤로 영산의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가끔 아주 먼 타지에서 영산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도 영산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어떤 이는 정말 신선이 되어서 인세를 떠났다고
했는데 그야말로 근거 없는 소리였다.
그 영산(靈山)의 제일봉인 영정(靈頂)에 한 남자가 우뚝 서있었다.
그가 마치 제사라도 드리는 듯 두 손을 하늘로 뻗자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기
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순간 영정을 중심으로 그 아래의 나무들이
서서히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순간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이 사정없이 뽑혀 허공으로 치솟기 시작
했다. 사내는 두 손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광소를 터뜨렸다.
“끄하하핫!”
영정의 하늘위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한참 후에 서서히 가라
앉았다. 태풍이 가라앉은 영정은 처참했다. 나무 한 그루 성한 것이 없이 모조리
뽑혀 있었고, 나무들은 조각조각으로 부서져 마치 장작을 쌓아 놓은 듯 한곳에
뭉쳐있었다.
“경재학아, 천간목의 기운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다시 네 앞에서 등을 보일 일
은 없겠구나. 끄하하핫!”
그는 섬전수 장경선이었다. 낙양에서 경재학에게 패한 뒤 달아났던 장경선은
청도의 영산에서 마침내 오행혈마신공을 완성하고 만 것이다.
장경선이 청도의 영산에 오른 건 그의 오행지기가 영산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
이었다. 청도의 영산은 특이하게도 오행(五行)의 목기(木氣)가 충만했다.
목의 기운은 그 색깔로는 푸르스름한 것이 특징이다. 청도의 그 청(靑)자는 어
쩌면 오행지기 중 목(木)의 기운 때문이리라고 장경선은 생각했다.
경재학을 피해 무조건 동쪽(東)으로 달렸건만 그 동쪽의 끝에서 장경선은 목기
(木氣)의 정수를 얻은 것이다.
섬전수 장경선은 천하제일가에서 있을 가족들을 떠올렸다. 경재학이 바보가 아
닌 이상 자기 가족들은 아마 천하제일가의 비밀뇌옥에 갇혀 있을 것이다. 지난
세월동안 천하제일가의 원수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무림에서 제명되어 졌다.
“크흐흣! 가족들이 살아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경재학아 너는 무림맹
과 함께 내 손에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장경선이 영산을 내려가 다시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하제일가로 돌아
가는 것이었다.
* * *
제갈위기는 운남성의 곤명에서부터 원하지 않던 혹을 하나 달고 다녀야 했다.
며칠 전 오행지기로 대원주루를 뒤엎고 나왔을 때였다. 주루에서 그의 등을 떠
밀던 꼬마가 졸졸 따라왔다.
‘운도 좋은 녀석이로군.’
그 지옥의 현장에서 간발의 차이로 살아났으니 지독히도 운이 좋은 꼬마였다.
자기가 운이 좋은지 나쁜지 알지도 못한체 꼬마는 열심히 제갈위기를 따라왔다.
제갈위기가 오행혈마신공을 완성하지만 않았어도 이 꼬마는 한끼의 식사로 끝났
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신공을 완성한 지금 제갈위기는 피의 갈증마저도 자기
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멈추면 꼬마도 멈추고 그가 걸으면 꼬마도 걸었다. 경공을 펼치면 떨치고
가버릴 수도 있었지만 제갈위기는 왠지 그러지 못했다.
두 사람이 묵묵히 한사람은 앞에서 다른 한사람은 뒤에서 걷기만 했다.
마침내 참지 못한 제갈위기가 꼬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왜 나를 따라 오느냐?”
“주루가 사라졌으니 달리 갈곳이 없어요.”
“갈곳이 없다고 나를 따라 오느냐?”
“아저씨같이 운수가 대통한 사람을 따라 다녀야 거지신세를 면할 수 있는 거라
구요.”
제갈위기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보기에는 내가 거지로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나는 지독히도 재수가 없
는 사람이다. 나의 가문은 나 때문에 망했고, 가족들은 모두 나 때문에 죽었다.
이보다 더 재수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
소걸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봉두난발한 거지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저씨는 운이 좋은걸요. 제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예요. 그 지독한 지진이 일어 났는대도 아저씨가 앉아있던 자리만 멀쩡했
잖아요. 그것 하나만 봐도 아저씨는 앞으로 운이 좋을 거예요.”
제 목:[연재] 천사지인44.눈송이하나만큼의무게.(3) 관련자료:없음 [13176] 보낸이:조진행 (빈들 ) 2001-01-19 01:01 조회:4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