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06)
1장 수계현(水系縣)의 사람들(3)
장염은 오후가 되면 강변으로 나가 해가 떨어질 때까지 좌정하고 앉아 명상에
잠겼다. 이미 내공을 회복한다거나 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린지 오래였다. 어
쩌면 영화소저가 천마후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장염은 그전까지 가지고
있던 조급한 마음을 버렸는지 모른다. 이미 천마후가 된 영화소저를 되찾아 온다
는 것은 장염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다. 영화소저 본인이 원했건 원치
않았건 간에 이미 장소의 부인이 되었다면, 이제 장염이 그녀를 위해 해야할 일
이란 그저 행복을 빌어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장염은 강가에 앉아 흘러가는 물을 보며 마음속에 남아있던 모든 미련과 회한
을 씻어 내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장가촌 사람들의 죽음 때문에라도, 장소야, 나는 너를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장염은 이런 마음이 영화소저를 빼앗긴 것에 대한 복
수심은 아닐까 돌이켜 보곤 했다.
영화소저 때문이든, 장가촌 사람들의 죽음 때문이든 장염은 장소를 찾아가야
한다고 거듭 다짐했다. 그렇게 한동안 마음을 다잡고 나면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속에서 장염은 자기의 마음속에서 아직도 태워버리지
못한 불순한 생각들은 없는지 고민했다. 그런 후에야 자기 자신의 마음속으로 끝
없이 떨어져 내려가 밑바닥에 깔린 의념(意念)들을 하나씩 다시 걷어내기 시작했
다. 그것은 무공의 회복에 대한 열망과 잃어버리고 빼앗긴 사람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장소에 대한 애증이었다.
인적이 끊긴 한겨울의 강변은 춥고, 외로웠지만 장염의 수련에는 그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장염은 그곳에서 다시 전이(轉移)의 수련을 시작했다. 마음을 비우
고 몸마저 비워내면 장염은 자신이 한줄기 겨울 바람이 되어 강변의 죽은 갈대
숲 사이를 휩쓸고 다니는 것을 느꼈다. 다시 도도하게 흐르는 검은 강물을 바라
보며 그 깊은 세월을 함께 느껴보고자 애쓰면, 그의 몸은 어느새 땅 밑으로 가라
앉아 장강(長江)의 일부가 되어 물고기들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
안 바람과 물과 별이 되어 사방을 주유(周遊)하다가 문득 강변에 쪼그리고 앉은
한 초라한 사나이를 발견하면 그제서야 다시 장염이라는 사람으로 돌아와 눈을
뜨곤 했다.
장염이 그렇게 전이의 수련을 하고 난 후에 내공을 일으키면 내공은 있는 듯
없는 듯 했지만 온몸은 말할 수 없이 상쾌해 졌다. 그것은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
이기도 했다. 장염의 내공은 어느새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지만, 장염은 더 이상
내공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전이의 수련을 하면서부터 진원청이 전해준 내단연기
법을 조금씩 체득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말이나 글로 전해 줄 수 없는
것으로 오직 자기 자신만이 우주와 합일할 때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 * *
장염과 향이가 수계현에 정착하여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때, 추료는 벽운산장
을 찾아온 일단의 무림인들과 만나고 있었다.
추료가 비명을 터뜨리듯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라고? 사제의 말이 틀림없는 사실인가!”
추료는 광료와 그의 뒤에 서있는 세 사람의 젊은 공동파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사제가 세 사람의 제자를 데리고 와서 전한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 사부님께서 혈마사의 마승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인가?”
그의 앞에 서있던 광료가 목이 쉰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형, 공동파는 멸문의 화를 당했습니다. 몇 명이나 살아 남았는
지 알길은 없지만, 저는 사부님의 명으로 이 아이들을 이끌고 공동산에서 몸을
피했습니다.”
추료는 부들부들 떨며 광료를 바라보았다. 근래에 들어 자주 사부가 꿈에 나타
나시더니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혈마사의 마승들은 몇이나 되었더냐?”
“삼 백 명 정도입니다. 지금 하남의 무림맹에서 무림인사들을 초빙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삼 백 명이라면 이십 년 전의 숫자와 같은 것이니 한두 개의 문파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공동파의 멸문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헌데 사제는 왜 그리고 가지 않고 나에게 찾아 왔던가?”
“문파의 맥을 보존하라는 엄명이 계신지라 감히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추료는 광료를 바라보았다. 광료는 주색(酒色)과는 거리가 먼 무공광이었다.
다만, 그의 자질이 보통밖에 되지 않는지라 공동파의 원로들이 처음에는 그다지
중용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자신이 차기 장문인 자리에서 내쳐진 후 광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타협할 줄 모르는 광료의 성격으로 볼 때 그 자리를 빠져 나온
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아마 세 사람의 어린 제자를 책임져야 하지
않는다면 사부의 옆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휴우, 내가 수계현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느냐?”
“사형이 공동파를 떠날 때, 사부께서 제자들을 시켜 사형이 어디에 계신지 알
아두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태허자는 추료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태허자는 어쩌면 백년
만의 기재라는 추료를 통해 공동파 무공의 끝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런 소원을 풀어 드리지 못하고 먼저 보냈으니 추료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 졌다.
“나는 아직 사부님이 말씀하신 바를 성취하지 못했으니, 공동파의 이름으로 나
설 수 없다. 사제도 무림맹으로 당장 갈 것이 아니라면, 나와 함께 이곳에 당분
간 머무는 것이 어떻겠는가?”
광료는 추료의 대답을 듣자 서운함을 느꼈다. 하남의 무림맹이 사람을 모은다
는 것을 말한 이유는 추료가 대신 공동파의 원한을 갚아 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료가 그것을 거절하였으니 한편으로는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사형의 뜻이 그러시다니,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공동파의 거취
문제를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네 사람의 공동파 생존자는 벽운산장에서 추료와 함께 생활을 하
게 되었다.
“사부님, 대륙전장의 금대인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추료는 공동파 사람들과 장래의 일을 상의 하다가 제자 이심(李芯)이 와서 전
하는 말을 듣고 객청으로 나갔다.
객청에는 금의를 걸친 육십대의 노인이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대륙전장의
장주 금소구(金訴求)였다.
“금대인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금소구가 추료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허헛, 추사부께서 저의 아들을 지도하고 계시니, 제가 자주 찾아 뵙고 인사
를 드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금소구의 아들 금마장(金磨掌)이 추료의 지도를 받고 있었으니 금소구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으나, 왠지 오늘의 금소구는 다른 볼일이 있는 듯 했다.
“허헛, 금대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두 사람이 객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지 일각쯤 됐을 때
금소구가 넌지시 운을 떼었다.
“추사부, 이번에 제 아들 녀석이 혼기가 차서 마땅한 혼처를 물색하고 있지 않
았습니까?”
추료는 금소구가 자신에게 아들의 혼사를 꺼내자 일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
다. 추료는 자식도 없고, 문하생 중에 여제자도 없기 때문이다.
“금대인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꺼내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있다마다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금소마는 정색을 하고 아들의 문제를 꺼내 놓았다. 그의 말인즉, 아들 금마장
이 근래에 들어 시장통에서 만두를 만들어 파는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
이다. 금소구가 아들의 말을 듣고 슬며시 뒷조사를 해보았더니 그 여자는 한 남
자와 동거를 하면서 밤마다 무술을 익힌다고 했다.
“그러니 추사부께서 제자의 앞길을 위해 무언가 따끔한 말씀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그 남녀 또한 무림인인 듯 하니 우리 같은 장사치들은 섣불
리 나설 수가 없어 더욱 추사부에게 의지 할 뿐입니다.”
추료는 그렇지 않아도 공동파의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마당에 금소구가 아
들의 문제를 늘어놓자 일순 짜증이 났지만, 금소구는 벽운산장의 주요 후원자중
의 하나였다.
“금대인께서 그처럼 마음이 쓰이신다면 제가 나서서 그 남녀에 대해 알아본 후
에 기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료의 말이 떨어지자 금소구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의 일을 부탁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 앉아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
다.
“추사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저는 돌아가 추사부의 기별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 * *
원단(양력 일월 일일)이 되자 하남의 무림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주로 두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정식으로 무림첩을 받은 구대문파의 고수
들과 무림맹의 원로들이 각지에서 초빙을 한 무림의 고수들이었다.
무림맹은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무림맹의 객실을 모두 사용하고도 모자라 근처
의 객점을 얻어야 했다. 경재학은 무림맹의 객실은 구대문파의 고수들에게 배정
하고 나머지 고수들은 근처의 객점에 머물도록 조치를 취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시비거리가 끊이질 않는 것이야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
만, 행사를 치뤄야 하는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더구나 그 상대가 모두
구대문파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총순찰 일기검(一技劍) 유선재(柳先在)가 경재학을 찾아와 또다시 벌어진 싸움
에 대해 보고를 했다.
“맹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무당파의 고수들이 곤륜파(崑崙派)의 고수들과 비
무(比武) 직전의 상황까지 갔습니다.”
“휴우, 그러니 난들 어쩌란 말이오. 어제는 점창파(點蒼派)의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오늘은 또 곤륜파라니…”
“오늘은 종남파(終南派)까지 가세를 해서 무당파의 분위기가 아주 좋지 않았습
니다.”
경재학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총순찰을 바라보았다.
말을 마친 유선재가 머리를 저으며 경재학의 앞에서 물러났다.
경재학은 숙소로 돌아가 무당파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
했다. 풍림장은 무림첩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임에 참석도 하지 않았고, 무
당파는 나와서 연일 다른 문파의 고수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었다. 구대문파가
주축이 되어 무림맹을 이끌어 왔지만, 사실상 소림사와 무당파, 화산파가 주도권
을 가지고 행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림사와 아미파, 화산파를 제외한
오대문파가 이번 무림대회에서 무당파를 견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재학으로서는 무당파의 고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 그들의 알력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이미 공동파가 무너진 이상 여기서 불필요한 논쟁으로 또다
시 무당파를 잃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경재학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오대문파의 고수들은 사사건건 무당파를 물
고 늘어졌다. 무당파가 함께 있으면 팔대문파의 회의가 시작되지도 못했다. 한마
디로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오대문파의 고수들이 억지를 부
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느 문파도 나서서 중재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
면 그것은 적당한 의심과 적당한 견재심리가 작용한 것인지도 몰랐다. 소림사와
더불어 무림의 양대 산맥이었던 무당파였으니, 이제 그만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것이 공통된 마음이었던 것이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2부 2.추락하는무당파(1) 관련자료:없음 [13263] 보낸이:조진행 (빈들 ) 2001-01-29 01:13 조회:2801